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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경》해독-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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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5-02 07:39| 조회 :2,69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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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자경》해독-20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하유우  상유탕  주문무  칭삼왕 
夏有禹  商有汤  周文武  称三王
하전자  가천하  사백재  천하사
 夏传子  家天下  四百载  迁夏社

이제부터 “삼자경”은 우리 나라 력사조대의 대체와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후세사람들이 력사인물에 대한 품평과 표창도 이야기합니다. 대우는 요순과 나란히 칭송하는 고대성왕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전통문화에서는 어떤 군주가 왕으로 불리울 자격이 있었겠습니까?

대우가 세번씩이나 집앞으로 지나가면서 집에 들리지 않았다는 전설은 어떤 전설이겠습니까? 그리고 대우 이후의 제왕이 천하를 독차지는 시대는 어떻게 선양제를 대치하였으며 마지막에 누가 하나라 4백년의 기업을 말아먹었겠습니까?

삼자경의 력사부분은 이 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특수한 의의를 가지고있습니다. 무엇이 특수하겠습니까? 앞에서 말한 삼황오제와 같은 전설과 달리 이제부터 말하는 하상주는 모두 고고발견과 문헌기재로 명확히 증명할수 있는 조대들입니다. 하나라에 약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라도 확실히 존재했던 나라라는것을 믿고있습니다.

우선 먼저 똑똑히 짚고넘어가야할것은 여전히 수자문제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을 짚어가며 헤여보느라면 삼자경에서 수자놀음으로 우리와 롱지거리를 하고있다는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하나라에는 우가 있었고 상나라에는 탕이 있었습니다. 대우와 상탕, 주문왕과 주무왕,그 다음은 삼왕이라는것입니다. 삼자경의 작자가 셈을 셀줄 몰랐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가 말한것은 세개 조대의 명왕을 말한것입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삼왕이라고 한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문왕과 주무왕과의 관계가 력사적으로 보면 아주 특수하다는것입니다. 이건 후에 다시 말하기로 합시다.
 
중국사람이라면 대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하나라의 대우는 유가전통에서 리상적인 군주였으며 그 누구도 그처럼 유가전통에서 군주의 형상으로서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공자가 찬미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눈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러나 대우에 대해서는 찬미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론어” “태백”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우,오무간연의비음식이,치효호귀신악의복이치미호비궁실이진력호구혁 우오무간연의]

이 말의 뜻은 대우에 대하여 비판할것이 없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는 형편없이 먹으면서도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때면 제사상을 아주 풍성하게 차렸고 자기는 형편없이 입으면서도 제사를 지낼 때 입은 상시옷은 가장 멋지게 지었으며 자기는 형편없는 곳에서 살면서도 모든 힘을 수리건설에 바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자의 마음속에서 대우의 지위가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넉넉히 말해줍니다. 우리는 력사상에서 그리고 중화문명의 전통에서 대우의 가장 유명한 사적은 물을 다스린것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우치수는 이미 우리 문화전통에서 하나의 핵심적인 화제로 되고있으며 영원한 핵심가치를 가지고있습니다.

전하는데 의하면 대우는 신혼후 나흗날부터 집을 떠나 물을 다스리러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전설입니다. 그처럼 먼 옛날의 일을 누가 그렇게 날자까지 짚어서 이야기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설에서는 그냥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치수는 대우의 위대한 공적입니다.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대우는 사처로 바삐 돌아다녔는데 13년이나 집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집앞을 세번이나 지나가면서도 집에 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대우를 두고 한 이야기랍니다.

고한어에서 3이라는 수자는 딱 셋이라는 뜻이 아니고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세번이 아니라 여러번이나 집앞을 지나면서 집에 들리지 않은것입니다. 그러나 민간전설에서는 3을 아주 구체적으로 딱 세번이라고 말하고있습니다. 그 세번이란 이런 세번입니다.

첫번째, 대우는 물을 다스리기 시작한지 4년이 되는 어느날 아침에 자기집 문앞을 지나게 되였습니다. 그는 원래 집으로 들어가려했는데 문앞까지 갔다가 안에서 들려나오는 어린애의 울음소리에 그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대우는 결혼한후 나흘사이에  대를 잇는 중요한 사명을 완수한것입니다. 그가 물을 다스리느라고 바삐 도는 사이에 안해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는 이미 네살이였지만 대우는 한번도 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꾸중소리가 안으로부터 들려나왔는데 아마도 아들이 장난을 써서 할머니가 꾸중을 하는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꼭 집으로 들어갔을것입니다. 들어가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도 보고 4년이나 갈라져 있은 어머니도 보았을것입니다. 그러나 대우는 그렇게 하지않았습니다. 그는 들어가면 어머니가 성을 낼것같아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려 치수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두번째. 물을 다스리기 시작한지 6.7년이 되는 해에 대우는 또 자기 집앞을 지나게 되였습니다. 그는 집앞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가서 자기 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굴뚝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피여올랐고 이미 예닐곱살 된 아들의 웃음소리가 랑랑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간간히 섞여서 들려왔습니다. 아들이 이미 커서 철이 든것을 보자 대우는 한시름 놓으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다시 치수공사로 달려갔습니다.

세번째는 그후로부터 또 3~4년이 지난 후 어느날 밤에 대우는 또 집앞을 지나게 되였습니다. 때마침 큰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대우는 자기 집 처마밑에 들어가 비를 피했습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가 자기 아들과 하는 소리를 엿들었습니다. 너 아빠는 인차 올거다. 홍수를 다 다스리면 우리 보러 올거란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일반사람같으면 언녕 문을 떼고 뛰여들어갔을것이지만 대우는 오히려 물을 다스릴 신심을 더 견정히 하고  다시 치수공사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민간전통에서 고정한 대우가 세번 집에 들리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공을 위해 사를 잊는 견인불발의 정신은 대우를 요순과 나란히 고대 성현으로 되게했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물을 다스린 방법은 대우의 풍부한 로동지혜를 체현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우가 물을 다스림에 있어서 선인들과 다른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림종유언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대우가 우리 후세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된것은 그의 치수방법이 선인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대우 이전에도 물을 다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막거나 채우는 두가지 방법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지면 막아서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거나 채워서 넘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홍수가 커질때면 더구나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대우는 중국치수력사에서 처음으로 막힌 물을 터서 통하게 하는 완화방법을 썼습니다.

완화라는 말을 우리는 지금도 쓰고있습니다. 교통완화라던지 인파완화라더지 완화란 말을 쓰고있는데 완화라는 말은 기실 대우로부터 시작되여 나온 말이랍니다. 대우는 많은 홍수를 터서 바다로 흘러들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여 홍수의 피해를 철저히 제거하게 되였습니다. 대우는 이렇게 몇천갈래의 강물을 완화의 방법을 다스린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많은 부락들에서 공동히 그를 부락련맹의 수령으로 추대했습니다.

당시에는 나라라는 형태가 없었고 부락형태로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는 부락련맹의 수령이였습니다. “장자. 천하편”에는 이렇게 쓰고있습니다.  “우대성야”. 대우는 생활이 아주 검박했습니다. “사기”의 기재에 의하면 대우는 치수를 하면서 늘 치수의 결과를 순찰하였습니다. 또 다른 홍수의 우환이 수시로 덮쳐들수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대우는 강남을 순찰하다가 오늘의 절강성 소흥 회계산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이미 백살을 넘었답니다. 백세로인이 치수를 위하여 밤낮으로 뛰여다닌것입니다.

그는 유언을 남겼는데 16글자입니다. [ 의구3령  동관3촌  분고3척  물상농전-사기  하본기 ] 그 뜻은 내가 죽은 후에 옷을 세층만 입히면 되고 관은 3촌두께의 오동나무로 만든것이면 되고 무덤은 석자 높이면 되고 절대로 논과 밭을 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볼수있는 웅위롭게 우뚝 솟은 대우무덤이나 대우묘는 후세사람들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 세운것임을 알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세는 대우의 유언과 엄청난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우는 중국력사에서의 하나의 기념비이며 만세에 칭송할 선현성왕입니다. 중국전통문화에서는 무릇 어느 군주나 다 왕으로 불리우는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왕의 함의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 말하는 초요사회란 또 어떤 력사적인 유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또 주의해야할 몇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첫째, 중국력사에서는 대우가 북천사람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전에 있은 5.12대지진때 주의해보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봤습니다. 문천지진때 허물어진 페허속에 대우초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넘어져있었는데 페허를 청리할때 꼭 다시 세웠으리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재해지구의 인민들도 좋고 새시대의 중화민족도 좋고 모두 대우정신이 필요하고 또 대우의 상징적인 의의와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기서 해석해야 할것은 삼자경에서 말하는 “칭3왕” 의 “왕”자는 학술의의상에서의 문자학원리에는 부합되지 않을지 몰라도 민간백성들은 줄곧 이렇게 해석해왔는데 내가 보건대는 해석이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왕”은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3횡이란 말이 있는데 천, 지, 인 3층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중간의 내리끔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도인데 바로 공자가 말한 오도일이관지입니다.

이 “왕”자를 민간에서는 이렇게 해석하고있습니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왕천하 소귀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왕은 천지간의 대도를 대표하는 전범이라는것입니다. 이는 중국문화전통에서 왕에 대한 아주 소박한 정의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니면 왕으로 될수 없으며 패주로 됐다하더라고 패도는 있을수 있으나 왕도는 없게 되여 인민의 옹호를 받을수 없다는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삼자경에서 말한 하, 상, 주 세 조대가 후의 조대처럼 그렇게 통일된 나라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진정한 대통일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통일한 중국입니다. 기실 그들은 당시 중화대지의 많고많은 작은 나라중의 하나일 뿐이였습니다. 주나라 초년에만 해도 지금의 중원일대에는 거의 3천여개나 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주나라 때에 와서 하, 상, 주의 국력이 강대하고 군주들이 대우처럼 도덕상의 위망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작은 나라의 옹호를 받았고 공도와 정의를 사회하는 역할을 한것입니다.

유가에서는 하,상,주 세 조대에 대하여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있습니다. 유가에서는 우리가 말한적 있는 당요 우순시기, 그리고 대우의 초기, 요순우시대를 천하가 일반 국민의 것이라는 대동시대였다고 보고있습니다. 손중산선생은 “천하위공”이라는 제사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이 네 글자는 유가에서 온것입니다. 유가전통에서는 요순우 세조대를 천하위공의 대동사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상주는 어떠합니까? 하상주는 천하위공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사심이 생겨났고 사람마다 자기의 속셈이 따로 있었습니다. 했으나 필경은 례의를 지키고 군신 부자 부부 형제간의 거리는 있었으며 후에처럼 그렇게 어지럽지 않았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그래서 하상주를 초요사회라고 하는것입니다. 요순우는 대동사회라 하고 하상주는 초요사회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초요사회의 최초의 원형이고 유래입니다.

초요사회는 초기에 하상주를 형용해서 이른 말이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지금 말하는 초요사회와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초요사회는 이미 새로운 시대적 의미가 첨가된것입니다. 그러나 그 력사적 근원은 바로 삼자경에서 말한 하상주에 있는것입니다.

황제로부터 요순이래의 전통에 따라 왕위의 교체는 줄곧 어질고 재능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방식 즉 선양제를 써왔습니다.대우 역시 자기의 재능과 덕조에 의거해 왕위에 오른것입니다. 그런데 대우가 림종할 무렵에 선양제는 페지되였습니다. 중국력사는 그때로부터 가천하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하전자  가천하  사백재  천하사
夏传子  家天下  四百载  迁夏社


우에서는 하상주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이어서 삼자경에서는 하상주 세조대를 일일이 소개하고있습니다. 하나라를 삼자경에서는 열두글자로 종합하고 있는데 [하존저  가천하4백재  천하사]라고 했습니다. 대우는 력사상에서 마지막으로 상읍손선양에 의해 왕위에 오른 군주입니다.

그렇다면 상읍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서로 읍하면서 겸손하게 자리를 양보한다는것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못하니 당신이 수령자리에 앉으시오. 난 수준이 낮으니 재간있는 당신이 해야지유…이처럼 겸손하게 선양하는것을 상읍손이라고 했습니다. 어질고 재간있는 사람을 추천하는데 누가 현명하고 누가 기여를 많이 했고 누가 재능이 있으면 그런 사람을 수령으로 추천하는것을 선양이라고 했습니다.

그후의 중국력사에는 선양에 대한 여러가지 설법들이 있는데 조조의 아들 조비도 선양에 의해 올라왔다하고 왕망도 선양에 의해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선양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당태종도 아버지한테서 선양받았다고 하지만 기실은 아버지를 핍박한것이지 아버지가 내놓고 싶어서 내놓은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그후의 선양은 모두 가짜라고 합니다.

중국력사에서의 마지막 진정한 선양은 대우였고 그후엔 없었습니다.왜서 대우를 마지막으로 선양한 군주라고 하겠습니까? 한것은 그가 자기의 수령지위 혹은 왕위를 자기의 아들 계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천하입니다. 바로 우리 한가족의 천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천하는 대중의 천하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원래 천하는 대중의것이였고 혈통이나 누구의 아들인가를 묻지 않고 기여를 보아서 왕으로 추천한것입니다.

그런데 대우는 혈통을 보았습니다. 대우는 자기의 왕위를 자기의 아들에게 념겨준것입니다. 그러나 력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대우 본인의 뜻이 아니였습니다. 대우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래 자기의 치수 조수인 백익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했습니다.  [백익   동이족수령 소오지후  사냥과 목축에 능했고 대우를 보좌하여 치수하는데 공이 있음]

대우는 자기의 아들이 아무런 공로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기의 조수 백익은 자기를 도와 홍수를 다스릴때 거대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수령자리를 백익에게 넘겨주려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겠습니까?

첫째, 대우의 아들 계는 아무런 기여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어리석거나 재간이 없는 사람은 더구나 아니였으며 아주 걸출한 인재였습니다. 둘째, 대우가 늙었을때 계의 나이도 아주 많았습니다. 대우는 백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의 아들은 스무살에 보았다해도 칠팔십이 되지않습니까? 그도 자기의 힘이 있었고 자기의 옹호자들이 있었으며 자기의 간부대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우가 죽은후 계와 백익 사이에는 충돌이 생겼습니다. 대우는 선양방식으로 백익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계와 계의 옹호자들이 반대해 나서서 서로 싸움을 벌렸습니다. 싸움결과 우의 아들 계가 승리하여 백익은 왕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수령이거나 국왕의 자리는 가족으로 대대손손 전하게 되였으며 선양방식은 철저히 력사무대에서 물러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주 먼곳에 있는 아름다운 꿈으로 되였고 현실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계가 어떻게 아버지를 대신하여 수령이 될수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습관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나중에 계가 승리한것입니다. 여러차례의 전쟁을 겪은후에야 사람들은 차츰 가천하라는 이 사실을 접수할수 있었습니다.

대우의 아들 계가 선양제를 페지하고 왕위에 올라서부터 4백여년후에 하나라가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중국력사상의 첫번째 가천하 왕조를 망하게 했겠습니까? 그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라는 몇대를 이어왔고 왕은 모두 몇이였겠습니까? 이는 상이나 주처럼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데 여러가지 설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총적 년한은 4백년 좌우입니다. 그래서 삼자경에서는 4백재라고 쓰고있습니다. 삼자경의 매 한글자는 모두 래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라는 어떻게 멸망되였겠습니까? 하사는 왜 옮겨갔고 옮겨가서는 왜 고쳐버렸겠습니까? 이걸 말하자면 하나라의 말대왕인 악명높은 하걸을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 하걸  명계  리계  하조 제17대 군왕  재위53년 ]그는 재위한 년한이 아주 긴데 53년이나 됩니다. 그는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였으며 또한 중국력사에서 가장 유명하게  포악하고 음탕한 국왕이였습니다. 그렇다고 걸은 아무런 재간도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문무가 겸비했는데 특히 무예가 대단했습니다. 력사기재에 따르면 그는 빈손으로 쇠갈구리도 곧게 펼만큼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잔폭했고 백성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중국고적 “죽수기년”의 기재에 의하면 아주 아름다운 정자루각을 짓고 옥문을 세웠는데 문은 옥석으로 만들었으며 아주 사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라의 대우처럼 그렇게 검소하고 자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궁에 숱한 미녀들을 두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기막힌 일이 있었는데 “조주지조제취락”이였습니다.그는 크게 못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물을 채운것이 아니라 술을 채웠습니다. 술을 빚고나면 술지게미가 생기는데 그는 그 술지게미를 버리지 않고 못주위에 제방을 쌓았습니다. 그것을 주지조제라고 했습니다.그 술못이 그저 목욕탕만큼 큰것이 아니라 배를 탈수 있을만큼 그렇게 컸답니다.

하걸은 늘 많은 미녀들을 데리고 배에 앉아 술을 마시며 즐기거나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어떤 미녀들은 배에서 이미 취해 쓰러졌고 어떤 미녀들은 술못에 떨어져서 빠져죽었습니다.  혹은 조심하지 않아서 빠져죽기도 했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하걸은 더구나 황당했습니다. 그는 술못에서 한무리의 라체 남녀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 자기도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주색에 취해서 달이 가도록 해가 넘도록 조정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들이 간언을 하면 그는 그 대신을 죽여버렸습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 절대로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않는다는 그런 왕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도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희라는 첩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누이라는 매에 즐긴다는 희자 이름을 가진 즐거움이 넘친다는 뜻의 매희였습니다.그런데 이 매희에게 한가지 모병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라가 망할때가 되면 재앙이 덮쳐드는데 아주 이상한 일이였습니다. 매희는 노래를 듣기 좋아했습니다. 이건 아주 정상적인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매희는 비단필을 찢는 그런 소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딱 그런 소리만 들으려하고 다른 노래소리는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걸은 매희의 비유를 맞추기 위하여 많은 비단필을 가져다가 매일 매희앞에서 찢게 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매희가 기뻐하면 하걸도 좋아했습니다. 하걸은 또 간신을 중용하고 충신을 배척했습니다. 매개 말대황제 옆에는 늘 그러루한 소인들이 있어서 날마다 참언을 올리고 황당한짓을 배워줍니다.

하걸은 력사상에서 유명한 폭군이였습니다. 그는 물론 재간도 있었으나 너무도 음탕하고 잔폭하여 하나라를 돌아올수 없는 길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는 왕비를 총애하여 중국력대 바보군주들의 “녀색오국”의 첫시작을 떼놓았고 매희는 하나라를 망하게한 홍안화수가 되였고  하걸의 대포밥이 되고말았습니다.

기실 한 녀자가 어떻게 한개 왕조를 말아먹을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강산을 말아먹은 것은 어리석고 황당하고 잔폭한 걸이였습니다. 천하백성들의 분노앞에서 하걸은 또 어떤 태도를 보였겠습니까?

하걸에게는 또 병태적인 자신심이 있었는데 자기에 대하여 늘 신심으로 충만되여있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문무를 겸비했던것만은 사실이며 자만할만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유명한 말 한마디가 있는데 자아감각이 극도에 오르면 “하늘에 태양이 있는데 내가 곧 태양이다. 누가 태양이 떨어지는것을 보았는가? 난 태양이 떨어져야 멸망할것이다” 라고 말했다는것입니다. 그의 자신심은 그처럼 컸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하걸을 아주 미워했으나 감히 욕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로백성들은 태양을 욕했습니다. 어떻게 욕했겠습니까? “하늘에 계시는 태양이시여, 로인장께서는 언제면 떨어지겠나이까? 빨리 떨어져주시오서. 우리도 태양어른과 함께 죽고말겠나이다.”이것은 민가입니다. “시경”이나 다른 많은 고적에 기재되여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왕조가 망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하나라는 중국력사의 첫번째 가천하왕조로서 4백여년을 통치했습니다. 대략 기원전21세기부터 기원전 16세기까지였습니다. 하나라가 통치한 중심구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제국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산서, 하남일대에서 통치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라에 대한 지식이 아직 풍부하지 못하고 많은 문제들의 해답을 얻어내야 하는데 지금 탐색과 연구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고고발견은 이미 우리들에게 산서, 하남일대에는 확실히 상당히 발전한 문명이 존재했다는것을 알려주고있습니다.

하나라는 확실히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이지 신화전설이 아닙니다. 이것은 긍정적입니다. 공자는 하나라의 력법을 아주 높이 칭찬하였습니다. 하나라의 력법은 수준이 높았는데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농력, 음력은 로인들의 말에 의하면 하력이라고 합니다. 하나라력서란 말입니다.

삼자경은 다음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하나라를 멸망시켰겠습니까? 다음 시간에 계속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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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경》해독-23 인기글 《삼자경》해독-23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나라는 어떻게 몰락하기 시작했고 왜서 도읍을 동으로 옮겨갔겠습니까? 주왕조는 동쪽으로 옮겨간후 동주라고 불렀습니다. 동주는 또 춘추와 전국 두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때 주천자가 천하를 호령하는 지위는 이미 텅빈 이름만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제후들이 서로 왕으로 자청하고 내부투쟁을 해서 전화가 그칠새 없었습…(2013-05-13 09:18:47)
《삼자경》해독-22 인기글 《삼자경》해독-2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무왕 시주주 팔백재 최장구周武王 始诛纣 八百载 最长久 주철동 왕강타 령건과 상유설周辙东 王纲坠 逞干戈 尚游说상주왕의 우매무도는 여러 제후국들의 불만을 자아냈는데 이때 서북쪽에 있는 한 자그마한 나라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주나라였습니다. 인애로 나라를 다스렸을 뿐만아니라 …(2013-05-13 09:14:26)
《삼자경》해독-21 인기글 《삼자경》해독-2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汤伐夏 国号商 六百载 至纣亡삼자경은 통속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언어뒤에 모두 풍부한 력사이야기와 문화적인 교양이 내포되여 있습니다. 이 짧다란 12개 글자에서도 한 조대의 6백년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해 줍니다. 현명한 상탕은 성공적으로 음탕하고 잔폭한 걸왕을 토벌하고 상나라를 …(2013-05-13 09:10:34)


《삼자경》해독-20 인기글 《삼자경》해독-20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하유우 상유탕 주문무 칭삼왕 夏有禹 商有汤 周文武 称三王하전자 가천하 사백재 천하사 夏传子 家天下 四百载 迁夏社이제부터 “삼자경”은 우리 나라 력사조대의 대체와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후세사람들이 력사인물에 대한 품평과 표창도 이야기합니다. 대우는 요…(2013-05-02 07:39:50)
《삼자경》해독-19 인기글 《삼자경》해독-19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황오제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떠받들리고 있습니다. “삼자경”에서는 삼황오제중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있는데 바로 요와 순입니다. 천백년래의 세월이 덮쳐흘렀으나 요와 순- 이 상고시대의 승왕은 계속 중화민족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요천순일이라는 말로 태평세월을 비유하고 요순지치를 후세덕정의 전범으로 삼…(2013-05-02 07:36:01)
《삼자경》해독-18 인기글 《삼자경》해독-18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의 력사는 삼황의 복희, 신농과 황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세사람은 무엇때문에 삼황이라고 불리우겠습니까? 민간전통에서는 복희와 녀와의 교미도에 어떤 이야기를 기재했겠습니까? 복희는 왜서 중화민족의 인문시조로 떠받들리겠습니까? 신농은 중화민족의 발전에 어떤 거대한 기여를 했겠습니까? 삼황중의 첫째이고 오제중의 첫째인 황제에게…(2013-04-22 08:15:32)
《삼자경》해독-17 인기글 《삼자경》해독-17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삼자경에서 말하는 “급로장”이 바로 로자와 장자를 말하는것입니다. 그들 두사람은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중국문화와 중국사람들로 말하면 이 두사람의 중요성은 어떻게 말해도 과분하지 않습니다. 적지않은 학자들은 아직도 로자와 장자의 사상을 진정으로 리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사상도 진정으로 리해…(2013-04-22 08:11:11)
《삼자경》해독-16 인기글 《삼자경》해독-16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은 우리에게 다섯명의 제자를 추천했습니다. 제자중에서 이 다섯 사람이 비교적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그 다섯명 제자는 “오자자 유순양 문중자 급로장”.순자와 다른 한 사람인 양자입니다.양자는 력래로 두가지 쓰임법이 있었습니다.지금까지 어느것이 정확한것인지를 모릅니다.하나는 나무 목 양자이고 다른 하나는 제수변 양자입…(2013-04-19 08:00:32)
《삼자경》해독-14 인기글 《삼자경》해독-14 복단대학 전문충교수공자는 《시경》의 정신이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그런데《시경》의 아름다운 정신이 무엇때문에 멸망했을가요?전설에서 주왕조의 쇠락을 초래한 미녀 포사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을가요?주유왕이 봉화로 제후들을 희롱한것은 어떤 일일가요?공자는 어떤 상황에서 《춘추》를 편성하고 만들었을가요?《춘추》에서 우포폄은 선악을 분별하는 중요한 작용을…(2013-04-19 07:57:21)
《삼자경》해독-12 인기글 《삼자경》해독-1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삼자경》의 순서에 따라 《상서》를 강의하겠습니다.유전모 유훈고 유서명 서지오有典谟 有训诰 有誓命 书之奥여기에서 서술한것이 《서경》입니다.그것이 유가의 경전으로 된 이후책은 흔히 많이 볼수 있는 이름인 《상서》로 변했습니다.《상서》란 무슨 의미일가요?상이란 년대가 오래다는 뜻입니다.서는 력사적문헌을 이야기합…(2013-04-16 08:21:42)
“삼자경”해독-11 인기글 “삼자경”해독-1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四书通 孝经熟 如六经 始可读근근히 사서만 알아서는 중국전통문화를 다 료해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자경에서는 “효경”을 더 읽을것을 권장합니다.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서를 통달하고 효경에 익숙한 후에야 륙경을 학습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효경”은 아주 특별한 경전이라는것을 주의해야 하겠습니…(2013-04-16 0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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