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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경》해독-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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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5-13 09:10| 조회 :2,4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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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자경》해독-2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
汤伐夏  国号商 六百载  至纣亡

삼자경은 통속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언어뒤에 모두 풍부한 력사이야기와 문화적인 교양이 내포되여 있습니다. 이 짧다란 12개 글자에서도 한 조대의 6백년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해 줍니다.

현명한 상탕은 성공적으로 음탕하고 잔폭한 걸왕을 토벌하고 상나라를 건립함으로써 휘황찬란한 은상문화를 창조했습니다. 력사에는 놀랍게 비슷한 점이 있는데 5백년후에 상나라에도 걸왕과 같은 폭군 주왕이 나타났습니다. 상주와 걸왕은 어떤 비슷한데가 있겠습니까? 무엇때문에 은상문화는 세계문명발전에 걸출한 기여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 이것은 상나라의 력사를 말한것입니다. 상은 원래 하나라 수도 동쪽에 있던 작은 나라였습니다. 상은 원래 한 부락의 이름이였습니다. 탕은 상이 하를 멸한후 상나라의 첫번째 군주였습니다. 물론 상족의 첫번째 수령인것은 아니였습니다. 그전에 많은 상족 수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나라의 개국군주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탕이라는 이름은 아주 많습니다. 중국력사에 “탕유7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탕이라는 이름이 일곱이라고 했는데 그것만도 아닐겁니다. 상나라의 주요한 활동구역은 오늘의 하남성 북부, 하북성 남부와 산동성 서남부였습니다.탕에 이르러서는 이미 몇세대가 바뀌였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수도도 자주 바꾸었는데 여덟번째로 옮긴후의 수도가 오늘의 하남성 상구입니다. 하남성의 상구는 상조의 수도로 된후에 비로서 상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이 상족부락은 당시에 지위가 아주 상당했습니다. 왜서겠습니까? 상족의 선조가 원래 요의 밑에서 교화를 책임진 관원이였기 때문입니다. 교화를 교육하는 관원이였다는 말입니다. 다른 선조는 또 대우를 도와 물을 다스렸습니다. 때문에 이 부락은 당시 많은 부락중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탕이 이 부락의 수령으로 되였을때 혹은 상나라의 군주가 되였을 때 상나라는 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국력도 강해졌습니다. 한 나라가 강대해지려면 여러가지 원인이 있어야 하지만 상나라가 강대해진 주요한 원인은 탕이 아주 어질고 너그럽고 아주 인애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재되여 있습니다. 한번은 탕이 수림속에서 산보를 하고있는데 한사람이 그물을 늘여서 새를 잡고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물을 늘이면서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고있었습니다. 두두두두…도대체 뭐라고 두두두 했겠습니까?

하늘에서 오는 새야 땅우에서 오는 새야 사면팔방에서 오는 새야 다른데로 가지말고 내 그물로 오너라. 그 사람은 념불을 외우듯이 그냥 두두두두 했습니다. 탕은 듣다못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세상 새를 다 잡을 작정입니까? 세면의 그물을 다 거두고 한면만 남겨놓으시오. 이것이 성어 “그물 한쪽을 벌려놓다”의 유래입니다.
 
탕은 또 새들에게 말했습니다. 새들아, 왼쪽으로 가고프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프면 오른쪽으로 가거라. 내 말을 듣기 싫으면 그물로 날아들거라.이건 탕이 그때에 한 말입니다. 그때 탕은 그물의 세면을 열어놓으라고 했는데 점차 그물 한쪽을 벌려놓으라고 변한것입니다. 이처럼 탕은 새한테마저 인애를 베풀었으니 사람에게야 더 말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탕의 이름은 점점 멀리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왔습니다.

옛날에는 한 부락의 사람이 많고 적음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상나라는 탕시대에 사람이 부쩍 늘어났고 그래서 탕의 세력도 강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왕이 되려면 단지 인자하고 너그럽기만 해서는 안되지요. 그렇다면 탕에게는 또 어떤 탁월한 능력과 담량이 있겠습니까?

 탕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점이 있었는데 사람을 쓸줄 알고 인재를 발견할줄 알고 인재를 쓸줄 알았습니다. 이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탕이 이윤을 중용한 이야기입니다.

일찍 탕은 좋은 마음으로 이윤을 하왕 걸에게 알선해주었댔습니다. 하왕을 협조해서 나라를 잘 다스리라고 준것이니다. 그런데 하걸은 이윤을 쫓아버린것입니다. 이윤은 원래 신분이 아주 낮았습니다. 어느만큼 낮았겠습니까? 그는 탕의 안해가 데리고 들어온 노예였습니다. 신분이 이처럼 낮았으니 무슨 일을 할수가 있었겠습니까?

탕은 그를 주방에 보내여 밥을 짓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탕에게 이런 취사원이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탕이 자기를 알아주게 하겠습니까? 취사원이 날마다 밥과 채를 맛있게 한다고 국왕이 그를 곱게 보겠습니까? 그럴수 없지요. 국왕이 기껏해서 오늘 채는 맛있구만 하고 한마디 하면 끝이 나는것입니다.

이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윤은 오늘은 채를 아주 맛있게 하고 다음날엔 대단히 맛이 없게 했습니다. 오늘은 채를 아주아주 싱겁게 하고 다음날엔 대단히 짜갑게 했습니다. 탕은 알수가 없었습니다. 주방에서 누가 채를 하기에 이따위로 하는가고 알아보았습니다. 다른 국왕같으면 이윤을 끌어내다 목을 땄을것입니다. 그러나 탕은 아주 너그러웠습니다.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은것입니다. 이윤도 탕의 그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탕은 이윤을 불러다 물었습니다. 그통에 노예신분인 이윤은 국왕을 만날수 있었고 국왕에게 자기의 책략을 진술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이윤은 자기의 책략을  류창하게 잘 이야기하여 탕의 호감을 사게되였습니다.

탕은 고의적으로 채를 마음대로 볶은 이 취사원을 단번에 우상으로 임명했습니다. 자기의 오른팔이 되여 상나라의 국사를 처리하게 한것입니다. 이윤의 기획과 기도하에 상나라는 하나라를멸할 장원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걸도 물론 머저리가 아니였습니다. 하걸도 상의 움직임이 상서롭지 못함을 눈치챘습니다. 감히 자기를 건드리려는 조짐이 보인것입니다.

걸은 탕의 세력이 커져서 자기를 위협할가봐 근심됐습니다. 그래서 걸은 탕을 하나라 수도로 불러올렸습니다. 이런 어명은 감히 거역할수가 없는것이였습니다. 탕은 위험한줄을 뻔히 알면서도 가는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에게 구류를 당하고 돌아갈수 없게 되였습니다. 걸도 아주 무서운 사람이였습니다. 그때 이윤은 뒤에서 하걸 주위의 관원들을 수매하여 탕을 석방하게 하고 다시 상나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건 범을 다시 산으로 돌려보낸것과 같게 되였습니다. 하나라가 얼마나 부패했으면 황제 주위의 관원들이 수매되여 황제의 원쑤를 빼서 돌려보낼 정도까지 되였단 말입니까?

상나라로 돌아간 탕은 이윤의 보좌하에 토벌행동을 다그쳤습니다. 이윤은 모략이 깊은 대단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맹동적으로 행동한것이 아니라 먼저 하걸의 우익을 없애버리는데로부터 손을 썼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실력을 확대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라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하걸에게 다른 어떤 움직임이 있는가를 주시해 본것입니다.

 얼마간 시일이 지나가자 우매하기 짝이 없는 하걸은 내가 너를 돌려보냈고 넌 돈도 가져갔겠다 인정빚도 졌겠다 다시 덮쳐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탕은 하나라를 공격하여 하나라를 정복하려 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이윤이 총명했습니다. 그는 아직 급해하지 말고 하걸의 반응을 더 살펴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공물을 바치지 말아보자는것이였습니다.

하나라는 원래 여러 작은 부락과 나라들의 종주였기에 작은 나라에서는 모두 공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공물을 바치지 말고 걸의 반응을 살펴보자는것입니다.

탕은 이륜의 계책대로 공물을 바치지않았습니다. 하걸은 이족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족은 중원민족이 아닌 민족이였는데 그들도 상나라에 공물을 바치고있었습니다. 이윤이 보니 이족들은 하걸의 명령을 잘 받들었고 하걸도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이윤은 탕더러 검토를 하고 공물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탕은 검토를 하고 다시 공물을 바쳤습니다. 나는 고의적으로 공물을 바치지 않은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고 미처 바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를 기다렸는데 끝내 시기가 왔습니다. 원래 하걸의 령을 잘 받들던 이족들속에서 점차 원성이 높아지고 하나라와 등을 지기 시작한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탕과 이윤은 하나라를 진공할 결심을 내렸습니다. 필경 하나라는 이미 4백년이나 천하를 통치했는데 자그마한 상나라가 하나라를 뒤엎는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탕과 이윤은 아주 신중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당시에서는 보기드문 한가지 일을 했습니다. 탕은 군사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선줄을 끌면서 결의대회를 열고 선언을 발표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한다는것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결의대회란 그때부터 생겨난것입니다. 이런것들은 “상서”에 기재되여 있습니다.  “탕서”가 있습니다. 나는 반란을 하려는것이 아니다. 걸이 갖은 악행을 다 하기에 하늘의 뜻을 받들어 그를 소멸하려는것이다. 나는 하늘의 뜻을 거역할수 없다.

탕은 이렇게 결의를 한후 아주 명확한 상벌조례를 선포했습니다. 공을 세운자는 어떻게 상을 주고 과오를 범한자는 어떻게 처벌한다는것을 명확이 한것입니다. 상탕은 하늘의 뜻을 빌어 군사들을 동원했습니다. 군사들은 그러지 않아도 걸이 빨리 멸망하기를 기다렸으나 수령이 없어서 거사를 못하던 와중에 수령이 나타나자 한결같이 호응해 나섰습니다. 그리고 싸움에서도 아주 용감했습니다.

하나라 군대와 상나라 군대는 명조 즉 오늘의 산서성 운성의 안읍진 북쪽 산서 운성에서 큰 싸움을 벌렸습니다. 걸은 소식을 접하자 바보가 아니였으므로 안차 군대를 거느리고 명조로 달려갔습니다.어가친정이란 말은 후에 나온 말입니다. 걸은 옆에 있는 낮은 언덕에 올라가서 두편이 싸우는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방정맞게 큰비가 쏟아져서 원래 부패하기 짝이 없는 걸은 비를 피하느라고 인차 언덕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가 내려가는 바람에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라 군대들은 원래부터 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걸이 먼저 도망치자 우야하고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하걸은 창황히 성안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상나라 군대들이 바싹 추격해 오자 걸은 수도에도 오래 있을수 없었습니다. 수도도 인차 점령될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걸은 자기가 좋아하는 매희와 진보를 데리고 배에 앉아 남소로 도망갔습니다.

남소는 어디에 있겠습니까?지금 안휘성 소현부근에 있습니다. 걸은 남소로 도망쳐왔으나 끝내는 탕이 파견한 병사들에 의해 매희와 함께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탕은 아주 관대했습니다. 걸을 죽이지도 않고 좋아하는 매희와 함께 이곳에서 살라고 했습니다. 안휘는 그때 아주 황량한 곳이였습니다. 걸과 매희는 높은 지위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데 습관되여 일할줄도 몰랐습니다.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굶어죽었을것이라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걸이 병들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굶어 죽었든 병들어 죽었든 어쨌든간에 하나라는 철저히 멸망된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라는 새롭게 흥기한 상나라에 의하여 멸망했습니다.

력사적으로 상나라가 하나라를 토벌한 전쟁에 대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상탕혁명이라고 합니다. 혁명이라는 말은 이때에 처음으로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혁명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온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말하는 혁명은 당시 상탕이 하걸을 멸하던 혁명과 뜻이 좀 다릅니다. 그때의 혁명은 천명을 개혁하는 그런 혁명이였습니다. 원래 천명은 하나라에 있었는데 인제는 천명이 상나라에 있게 된것입니다. 천명을 혁명했다는 뜻은 물론 오늘의 뜻이 아닙니다.

상탕은 17년간 부락수령으로 있었고 대개 13년간 개국군주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30년간 재위했다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기재에 의하면 병들어 죽은후 불봉불수했다고 합니다. 아주 현명한 왕이였습니다. 불봉이란 시체를 매장한 후에 덮는 흙을 봉토라고 하는데 그는 릉원을 세우지 말고 봉토도 올리지 말고 그저 보통사람처럼 낮게 매장하라고 한것입니다.

불수란 일반적으로 중국의 전통에 따르면 무덤주위에 나무를 심는데 그는 그런 나무도 심지 말라고 했다는것입니다. 이것을 불봉불수라고 합니다. 때문에 엄격한 의의에서 말하면 후세사람들은 상탕을 어디에 매장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혁명이 승리한후 상탕은 하걸을 대하는 태도에서 너그러운 인애를 표현하였고 또 상탕의 후사배치에서 우리는 대우의 박장애민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상탕과 같은 현명한 군주가 있었기 때문에 상나라의 견실한 발전에 튼튼한 기초가 있게 되였고 휘황찬란한 은상문화가 있게 된것입니다. 그렇다면 은상문화는 또 어떻게 몰락되였겠습니까?

10대가 지난후 상왕 반경은 수도를 지금의 하남성 락양 언사 즉 현장의 고향으로부터 은성 즉 지금의 하남성 안양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10대이후 즉 상왕 반경이후의 상나라는 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은상이란 부유한 상인이란 뜻이 아니고 그저 수도로 은이라는 뜻입니다.고고사업자들은 은상에서 많은 귀족무덤을 발견하고 많은 진귀한 문물을 얻어냈습니다. 은상에 대한 고고는 아주 성숙했고 고고발견도 아주 성숙해서 당시 상나라의 고도의 문명을 여실히 증명해주었습니다.

상나라는 도합 16대 30왕입니다. 그 사이에 물론 적지않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상나라 역시 제황이 천하를 독차지하는 나라였기에 위기를 면하기 어려웠으나 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비교적 무사하게 위기를 넘어왔습니다. 마지막 왕인 주왕 시기에 이르러 하걸과 꼭같은 정황이 나타났는데 그야말로 풍수륜류전이였습니다. [ 주왕  자성명신  상조제 32위 군주]

우선 먼저 상주왕이란 어떤 사람인가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사기”의 기재에 근거하면 상주왕은 하걸과 아주 비슷합니다. “제주자첩변질문 견심민재력 과인수격맹수 지족이거겸언족이식비 관인신이능 고천하이성 이위개출기지하 “무슨 뜻인가 하면 널리 보고 듣고 지식이 연박하고 사유가 민첩하고 키가 크고 기세가 있고 힘이 무궁하여 빈손으로 맹수와 박투할수 있고 사자나 범과도 씨름내기를 할수있는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도 총명하여 신하들의 충언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신하가 둬마디 하기전에 벌써 다 알아맞히고는 물러가라고 했답니다. 그는 또 언변이 너무 좋아서 틀린 일도 맞게 돌려붙인답니다. 틀린것이 번연한데도 그가 몇마디 하면 공을 세운 일처럼 좋게 변한답니다. 그 능력은 진짜 신하들 앞에서 큰소리를 칠만했답니다.  대신들중에서 그와 능력을 비길만한 사람이 없이 그렇게 대단했습니다.

 그 성망은 또 세인을 가볍게 볼만큼 높았습니다.백성들은 그를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그는 신하들이 도움이 안되기에 눈에 넣지 않았으며 세상사람들이 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런 사람이였다면 극상해야 겸손하지 못하다고 할것이지만 문제는 그의 모병이 그것뿐만 아니라는것입니다. 그의 모병은 하걸의 모병과 꼭 같았습니다.
그는 미녀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달기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이 일은 세상사람은 몰라도 중국사람은 다 알고있습니다. 그는 달기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도 지내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것은 당시로 보면 치명적인 일이였습니다.제왕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불법으로 생각했고 제왕을 너무하다고 했습니다.

력사는 놀라웁게 비슷합니다. 5백년후 상나라의 망국군주 주왕은 하걸과 그렇게도 신통하게 비슷햇습니다. 모두 문무가 겸비했고 모두 주색을 즐겼으며 모두 오만무례했습니다. 그외에 상주와 하걸은 또 무엇이 놀랍게 비슷했겠습니까?

 이주위지 현육위림이였습니다. 주지육림이라는 성어는 상주왕으로부터 온것이랍니다.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황음하고 방탕무도한 사람을 형용할때 우리는 주지육림이라고 합니다.

그는 주지육림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커다란 못을 파고 그 안에 몽땅 술을 채워놓았습니다.보아하니 이 군주는 술을 병들이나 독들이로 마시는것이 성차지않아서 꼭 못들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고기는 드럼드럼으로 가득 달아놓아 고기수림 같았는데 먹고 싶으면 아무때고 베다가 먹는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주지육림을 만들었으면 됐겠는데 그는 또 하걸처럼 남녀가 라체로 육림속으로 걸어다니게 하고는 옆에서 재미로 구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잔인했습니다. 두가지 일로 그는 중국력사에 악명을 남겼습니다.

그 하나는 포락지형입니다.포락지형이란 어떤 형벌이겠습니까? 속이 비거나 혹은 비지 않은 동으로 된 기둥인데 지금 그대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동기둥을 세워놓고 사람을 기둥에 붙들어맨후 밑에다 불을 지피는 형벌입니다. 누가 반항하거나 누가 그더러 너무 주색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하지말라고 권고하면 인차 동기둥에 묶어놓고 포락형벌을 주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밑에서 불이 붙는데 거기에 묶어놓은 사람이 살겠습니까?

이것이 한가지고 다른 한가지는 상주왕의 신하 비간입니다.비간은 중국력사에서 저명한 충신이고 현신이였습니다.[비간  자성명간  상주왕 숙부] 비간은 상주왕의 황당함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간언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상주왕은 갑자기 어디에서 성인이 왔느냐면서 비간을 놀려주었습니다. 너는 네가 성인인것처럼 생각하지만 내가 듣건대 성인의 이목구비는 일곱구멍이라고 하던데 어디 한번 보자면서 당장에서 비간을 해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너에게는 일곱구멍이 없는데 네가 무슨 성인인가고 앙천대소했습니다.

그리하여 신변에 있던 많은 대신들 즉 재간이 있은 사람, 량심이 있는 사람, 보고만 있을수 없는 사람들은 그런 폭군을 모시기가 싫어서 분분히 도망쳐버렸습니다. 그중에 비교적 중요한 인물이 두사람 있는데 한사람은 아주 저명한 기자입니다.기자는 조선반도로 도망쳐갔습니다. 여기에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조선반도에 기자의 후손들이 살고있다는것입니다.

또 아주 중요한 사람이 있는데 태사이자 아주 중요한 대신이였습니다. 그 대신은 제사악기를 가지고 주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주나라는 상나라를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대신은 귀신에게 제를 지내는 악기를 가지고 주나라로 간것입니다. 그 악기는 아주 중요한 악기였습니다. 지금 보면 그저 일반적인 악기라고만 생각하지만 그때에는 그런 악기를 아주 신성한 보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 악기를 잃어버렸으니 그 나라는 끝난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학술계의 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때 상주왕은 그렇게 나쁘지만 않다고 인정하고있습니다. 상주왕이라고 나쁜짓만 했겠습니까? 상주왕이 비록 음탕하고 잔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일을 했다는것입니다. 비교적 긴 력사적 단계로 보면 좋은 일을 한것도 있었습니다. 례를 들면 산동, 위하상류와 장강류역을 개척한것입니다. 상주왕은 경상적으로 병사들을 파견하여 싸우게 했습니다. 상주왕은 용감하고 힘이 세고 방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직 개발하지 않았던 회하하류, 산동, 장강류역을 개척한것입니다.

상나라지역의 확대는 중원문명의 전파를 촉진하였는데 이는 당연히 중화대지 생산의 발전에 유리했습니다. 이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다른 하나는 일찍 일련의 혁명적인 조치와 혁신적인 조치를 실행했다는것입니다. 그는 신권을 반대하고 낡은 풍속을 개혁했습니다.

세번째는 노예주세속귀족의 세습제를 타파하고 대량적으로 새사람을 등용한것입니다. 그는 자기 눈에 들기만하면 인차 그 사람을 등용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쓸때 혈통이나 신분을 보지않았고 많은 평민들을 등용한것입니다.

네번째는 상주왕이 고대중국의 통일을 위하여 모종 정도에서 사상적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것입니다. 중국통일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지요. 물론 이런 결론은 보편적인 공인을 받지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지않은 학자들이 이렇게 평가하고있습니다.력사상의 어떤 악인이나 모두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력사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논 일들이였으나 당시에는 상나라의 멸망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되였습니다. 무엇때문이겠습니까? 위하나 장강류역을 개발하려면 군대를 동원해야 했는데 군대를 동원하면 국력을 소모하고 인민을 동원해야 할게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민분이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력사란 이렇게 복잡합니다.

3천년이 되는 은상시대에 중화민족은 찬란한 은상문화를 창조하고 중국에서 가장 일찍한 문자 갑골문을 만들어냈습니다.한가지 주의할것은 삼자경에서는 상조6백년이라고 했는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삼자경에는 정확하지 못한곳이 많지 않은데 이것만을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기에 상나라는 6백년이 아니라 5백년입니다.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 상나라입니다.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 사이에 전반 세계의 방식이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사유와 안목을 단지 중국에만 국한하지 말고 세계적인 안목으로 보면 인차 명백해집니다.

고대 애급왕국은 극성시기에 들어갔고 고대 애급의 문명은 한창 흥성하고있었습니다. 량하류역의 바빌론이 바야흐로 흥기하고 고대 희랍의 마이시니문명도 궐기하고 있었습니다.그들과 상나라는 서로 어울려서 빛나면서 전반 인류문명에 거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당시의 세계는 문명흥성한 세계였습니다.

그외 우리가 앞에서 말한것처럼 상나라가 멸망된후 일부 유민들은 조선반도로 건너갔습니다. 국제학술계에서는 지금도 일부 유민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갔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야문명의 기원에도 관련되고 인디안사람들의 래원에도 관계됩니다. 이건 아주 큰 과제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 유민들이 아메리카로 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당지의 문명과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나라 사람들의 문명정도가 비교적 높았기 때문입니다.

상나라가 우리 중화문명에 기여한 가장 큰 일은 갑골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갑골문은 한자의 가장 일찍한 형태입니다. 갑골문 이전에도 물론 다른 형식이 있었지만 성숙되지 못하고 체계적이 못되고 글자수량도 적었기에 그처럼 큰 기재량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갑골문을 가장 중요했습니다. 주왕의 부패는 상나라의 멸망을 도래했는데 그렇다면 누가 상나라를 멸망시켰겠습니까? 상나라의 멸망과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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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인들이 뭘 제일 두려워할가 인기글   녀인들이 뭘 제일 두려워할가영국 런던”믿건말건”박물관의 위탁을 받고 연구일군들이 2000명 녀인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녀성들이 두려워하는 20가지를 모아봤다.공포한 내용을 보면 “친인을 잃는 것, 생매장 당하는것, 공개장소에서 연설하는것”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죽음은 4위를, 火排가…(2013-11-01 09:29:31)
《삼자경》해독-27 인기글 《삼자경》해독-27 복단대학 전문충교수고조흥 한업건 지효평 왕망찬高祖兴 汉业建 至孝平 王莽篡광무흥 위동한 4백년 종우헌光武兴 为东汉 四百年 终于献한조가 건립된 후 문경정치는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생활을 안정시키며 원기를 회복하는것을 경과하여 국력이 점차적으로 회복되였습니다.한무제가 변경을 넓히고 땅을 개척하여 강력하게 나라를 다스리는것을 경과하여 한조는 바야…(2013-05-22 12:06:38)
《삼자경》해독 -26 인기글 《삼자경》해독 -26 복단대학 교수 전문충영진씨 시겸병 전이세 촉한쟁蠃秦氏 始兼并 传二世 楚汉争진조가 건립되여 십여년이 되였을 때는 이미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사람들은 폭정을 견딜수가 없어 기발을 추켜들고 일떠났습니다.각 지방에서 기의군이 바람과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그 중에서 점차적으로 항우와 류방의 군대가 진국을 멸망시키는 두개의 대 주력으로 되였습니다.함양에서 진조를 …(2013-05-13 09:35:51)
《삼자경》해독-25 인기글 《삼자경》해독-25 복단대학 교수 전문충 영진씨 시겸병 전이세 촉한쟁蠃秦氏 始兼并 传二世 楚汉争진시황은 중국력사에서 제일 첫번째 황제입니다.그럼 황제란 이 두 글자는 무슨 의미일가요? 진시황은 무엇때문에 이 두 글자를 선택했을가요?《삼자경》은 진시황의 왕위가 2세에만 전해지고 초한 쟁탈이 시작됐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하다면 진제국은 어떻게 멸망…(2013-05-13 09:31:17)
《삼자경》해독-23 인기글 《삼자경》해독-23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나라는 어떻게 몰락하기 시작했고 왜서 도읍을 동으로 옮겨갔겠습니까? 주왕조는 동쪽으로 옮겨간후 동주라고 불렀습니다. 동주는 또 춘추와 전국 두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때 주천자가 천하를 호령하는 지위는 이미 텅빈 이름만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제후들이 서로 왕으로 자청하고 내부투쟁을 해서 전화가 그칠새 없었습…(2013-05-13 09:18:47)
《삼자경》해독-22 인기글 《삼자경》해독-2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무왕 시주주 팔백재 최장구周武王 始诛纣 八百载 最长久 주철동 왕강타 령건과 상유설周辙东 王纲坠 逞干戈 尚游说상주왕의 우매무도는 여러 제후국들의 불만을 자아냈는데 이때 서북쪽에 있는 한 자그마한 나라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주나라였습니다. 인애로 나라를 다스렸을 뿐만아니라 …(2013-05-13 09:14:26)


《삼자경》해독-21 인기글 《삼자경》해독-2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汤伐夏 国号商 六百载 至纣亡삼자경은 통속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언어뒤에 모두 풍부한 력사이야기와 문화적인 교양이 내포되여 있습니다. 이 짧다란 12개 글자에서도 한 조대의 6백년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해 줍니다. 현명한 상탕은 성공적으로 음탕하고 잔폭한 걸왕을 토벌하고 상나라를 …(2013-05-13 09:10:34)
《삼자경》해독-20 인기글 《삼자경》해독-20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하유우 상유탕 주문무 칭삼왕 夏有禹 商有汤 周文武 称三王하전자 가천하 사백재 천하사 夏传子 家天下 四百载 迁夏社이제부터 “삼자경”은 우리 나라 력사조대의 대체와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후세사람들이 력사인물에 대한 품평과 표창도 이야기합니다. 대우는 요…(2013-05-02 07:39:50)
《삼자경》해독-19 인기글 《삼자경》해독-19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황오제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떠받들리고 있습니다. “삼자경”에서는 삼황오제중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있는데 바로 요와 순입니다. 천백년래의 세월이 덮쳐흘렀으나 요와 순- 이 상고시대의 승왕은 계속 중화민족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요천순일이라는 말로 태평세월을 비유하고 요순지치를 후세덕정의 전범으로 삼…(2013-05-02 07:36:01)
《삼자경》해독-18 인기글 《삼자경》해독-18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의 력사는 삼황의 복희, 신농과 황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세사람은 무엇때문에 삼황이라고 불리우겠습니까? 민간전통에서는 복희와 녀와의 교미도에 어떤 이야기를 기재했겠습니까? 복희는 왜서 중화민족의 인문시조로 떠받들리겠습니까? 신농은 중화민족의 발전에 어떤 거대한 기여를 했겠습니까? 삼황중의 첫째이고 오제중의 첫째인 황제에게…(2013-04-22 08:15:32)
《삼자경》해독-17 인기글 《삼자경》해독-17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삼자경에서 말하는 “급로장”이 바로 로자와 장자를 말하는것입니다. 그들 두사람은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중국문화와 중국사람들로 말하면 이 두사람의 중요성은 어떻게 말해도 과분하지 않습니다. 적지않은 학자들은 아직도 로자와 장자의 사상을 진정으로 리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사상도 진정으로 리해…(2013-04-22 08:11:11)
《삼자경》해독-16 인기글 《삼자경》해독-16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은 우리에게 다섯명의 제자를 추천했습니다. 제자중에서 이 다섯 사람이 비교적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그 다섯명 제자는 “오자자 유순양 문중자 급로장”.순자와 다른 한 사람인 양자입니다.양자는 력래로 두가지 쓰임법이 있었습니다.지금까지 어느것이 정확한것인지를 모릅니다.하나는 나무 목 양자이고 다른 하나는 제수변 양자입…(2013-04-19 08:00:32)
《삼자경》해독-14 인기글 《삼자경》해독-14 복단대학 전문충교수공자는 《시경》의 정신이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그런데《시경》의 아름다운 정신이 무엇때문에 멸망했을가요?전설에서 주왕조의 쇠락을 초래한 미녀 포사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을가요?주유왕이 봉화로 제후들을 희롱한것은 어떤 일일가요?공자는 어떤 상황에서 《춘추》를 편성하고 만들었을가요?《춘추》에서 우포폄은 선악을 분별하는 중요한 작용을…(2013-04-19 07:57:21)
《삼자경》해독-12 인기글 《삼자경》해독-1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삼자경》의 순서에 따라 《상서》를 강의하겠습니다.유전모 유훈고 유서명 서지오有典谟 有训诰 有誓命 书之奥여기에서 서술한것이 《서경》입니다.그것이 유가의 경전으로 된 이후책은 흔히 많이 볼수 있는 이름인 《상서》로 변했습니다.《상서》란 무슨 의미일가요?상이란 년대가 오래다는 뜻입니다.서는 력사적문헌을 이야기합…(2013-04-16 08:21:42)
“삼자경”해독-11 인기글 “삼자경”해독-1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四书通 孝经熟 如六经 始可读근근히 사서만 알아서는 중국전통문화를 다 료해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자경에서는 “효경”을 더 읽을것을 권장합니다.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서를 통달하고 효경에 익숙한 후에야 륙경을 학습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효경”은 아주 특별한 경전이라는것을 주의해야 하겠습니…(2013-04-16 08: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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