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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경》해독-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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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5-13 09:10| 조회 :2,3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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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자경》해독-2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
汤伐夏  国号商 六百载  至纣亡

삼자경은 통속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언어뒤에 모두 풍부한 력사이야기와 문화적인 교양이 내포되여 있습니다. 이 짧다란 12개 글자에서도 한 조대의 6백년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해 줍니다.

현명한 상탕은 성공적으로 음탕하고 잔폭한 걸왕을 토벌하고 상나라를 건립함으로써 휘황찬란한 은상문화를 창조했습니다. 력사에는 놀랍게 비슷한 점이 있는데 5백년후에 상나라에도 걸왕과 같은 폭군 주왕이 나타났습니다. 상주와 걸왕은 어떤 비슷한데가 있겠습니까? 무엇때문에 은상문화는 세계문명발전에 걸출한 기여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 이것은 상나라의 력사를 말한것입니다. 상은 원래 하나라 수도 동쪽에 있던 작은 나라였습니다. 상은 원래 한 부락의 이름이였습니다. 탕은 상이 하를 멸한후 상나라의 첫번째 군주였습니다. 물론 상족의 첫번째 수령인것은 아니였습니다. 그전에 많은 상족 수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나라의 개국군주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탕이라는 이름은 아주 많습니다. 중국력사에 “탕유7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탕이라는 이름이 일곱이라고 했는데 그것만도 아닐겁니다. 상나라의 주요한 활동구역은 오늘의 하남성 북부, 하북성 남부와 산동성 서남부였습니다.탕에 이르러서는 이미 몇세대가 바뀌였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수도도 자주 바꾸었는데 여덟번째로 옮긴후의 수도가 오늘의 하남성 상구입니다. 하남성의 상구는 상조의 수도로 된후에 비로서 상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이 상족부락은 당시에 지위가 아주 상당했습니다. 왜서겠습니까? 상족의 선조가 원래 요의 밑에서 교화를 책임진 관원이였기 때문입니다. 교화를 교육하는 관원이였다는 말입니다. 다른 선조는 또 대우를 도와 물을 다스렸습니다. 때문에 이 부락은 당시 많은 부락중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탕이 이 부락의 수령으로 되였을때 혹은 상나라의 군주가 되였을 때 상나라는 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국력도 강해졌습니다. 한 나라가 강대해지려면 여러가지 원인이 있어야 하지만 상나라가 강대해진 주요한 원인은 탕이 아주 어질고 너그럽고 아주 인애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재되여 있습니다. 한번은 탕이 수림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