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경》해독-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5-13 09:18| 조회 :4,802| 댓글 :0본문
《삼자경》해독-23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주나라는 어떻게 몰락하기 시작했고 왜서 도읍을 동으로 옮겨갔겠습니까? 주왕조는 동쪽으로 옮겨간후 동주라고 불렀습니다. 동주는 또 춘추와 전국 두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때 주천자가 천하를 호령하는 지위는 이미 텅빈 이름만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제후들이 서로 왕으로 자청하고 내부투쟁을 해서 전화가 그칠새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자경에서 말하는 “5패강 7웅출”입니다. 그렇다면 춘추 5패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패업을 이루었겠습니까?
전번 강좌에서 우리는 주나라에서 기원전 770년 좌우에 한차례 큰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주왕조의 국운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습니다. 삼자경에서는 “주철동 왕강추 렬간과 상유설” 이라고 했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주유왕이 무도하고 얼간이군주였기 때문이였습니다. 옆에서 많은 대부들이 간언을 올렸는데 그중에 성이 포씨라는 대부도 충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왕은 듣지않았을 뿐만아니라 포대부를 옥에 가두어넣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포대부의 친척들은 천방백계를 다해 포대부를 구해내려했습니다.
포대부의 친척들은 주유왕이 호색이라는것을 알고 사처로 미녀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마침내 곱게 생긴 처녀를 만나게 되자 그들은 돈을 주고 그 처녀를 사왔습니다. 사온후 노래도 배워주고 춤도 배워주고 포사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습니다. 포씨 가문에서는 포사를 곱게 단장하고 훈련을 잘 시켜 주유왕에게 바치고 그를 통해 포대부의 죄를 감면하게 했습니다.
포사는 아주 이쁘게 생겼답니다. “동주렬국지”는 소설이지만 민간전설을 보아낼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포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용모가 수려하고 아미가 버들잎같고 입술이 앵두같고 이빨이 백옥같고 머리는 검은 구름같고 손가락은 옥으로 다듬은것 같고 얼굴은 꽃과 같고 달과 같아 경국의 미인이요 절세의 미인이여라”
주유왕은 포사를 보자 홀딱 반해서 사랑하기를 이를데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포사를 첩으로 삼고 당장에서 포대부를 놓아주었습니다. 주유왕은 포사를 얻은후 아주 총애했습니다. 그래서 생활도 더구나 음탕해졌습니다. 여기에서 성명할것은 무고한 포사에게 모든 책임을 들씌우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주유왕은 원래부터 아주 음탕했습니다. 때문에 포사는 한낱 희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포사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왜서 나를 사다가 왕에게 바치는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재에는 “꽃처럼 예쁘나 얼음처럼 차다” 적혀있습니다. 주유왕은 어느 정도로 음탕한가하면 상까지 내걸었다는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 자기가 사랑하는 애첩을 한번 웃게만 하면 천금을 상으로 준다는것입니다. 이때 앞에서 말한적 있는 간신 괵석부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봉화희제후”입니다.
주유왕은 미인을 웃게하기 위하여 경보를 알리는 봉화대에 불을 지폈습니다. 제후들은 적들이 침범해오는줄 알고 병사들을 거느리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와서야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후에 견융이 진짜로 침범해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유왕이 다시 봉화대에 불을 지폈는데 제후들은 누구도 오지않았습니다. 결과 주유왕은 죽어버리고 도읍은 페허가 돼버렸습니다. 견융이 돌아간후 제후들은 태자를 주평왕으로 모셨습니다. 주평왕은 도읍을 락양으로 옮겨가고 동주라고 했습니다.
왕실은 동으로 옮겨갔는데 원래의 제도나 법칙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락화류수라고 랑패해서 동으로 도망치다싶이 온 상황에서 언제 그런것들을 운운할 경황이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례붕락괴”입니다. 제후들간에 쩍하면 싸우고 약육강식하고 서로 병탄했습니다. 많은 작은 나라들이 그 란시판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중국력사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당시에 없어진 작은 나라들이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잘 모르고있다는것입니다. 국가의 수자로 보면 서주의 초기에 중원지대에 3천여개의 크고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춘추시대에는 1800개밖에 남지않았습니다. 1200개나 되는 나라가 없어진것입니다. 춘추말년에는 20 나라밖에 남지않았습니다. 2000여개의 나라가 없어진것입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7개 나라밖에 남지않았습니다. 물론 7개 나라외에도 작은 나라들이 있었을테지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왕실이 동으로 옮겨간후 원래 주왕실에서 경영하던 많은 문화사업, 경제사업을 왕실에서 다시는 장악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왕실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자유직업자가 돼버렸습니다. 껍질이 없는데 털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밥통이 떨어진것입니다. 그들중 어떤 사람들은 공자처럼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어떤 사람들은 상업을 경영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에 의거해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런대로 그럭저럭 살아갔습니다. 여러 나라 제후들 사이에서 유세하면서 제후들의 도구로 되였지만 그래도 기회를 타서 자기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가장 돌출한 대표가 바로 제자백가의 종횡가입니다. 소위 종횡이란 가로 와서 곧게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래 “령간과 상유설”이 아닙니까? 때문에 삼자경에 있는 이 여섯글자는 먹을 금처럼 아껴가면서 고도로 개괄한것으로서 수준이 아주 높은것입니다. 주나라는 하는수없이 서주와 동주로 나누어졌습니다.
(남) [자막] 사회자 해설: 주평왕이 동으로 옮겨간후 력사에서는 동주라고 했습니다.동주는 또 춘추와 전국 두개 시기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춘추와 전국시기의 특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력사에 어떤 저명한 인물을 남겨놓았겠습니까?
시춘추 종전국 5패강 7웅출
始春秋 终战国 五霸强 七雄出
5패란 춘추시기의 다섯 패주를 가리킵니다. 춘추도 동주의 일부분입니다. 동주가 끝나고 임금의 벼리가 떨어지고 주천자의 말을 듣는 사람이 없게 되였습니다.주천자는 일을 볼수없었고 제후들의 중재자로 될수도 없었습니다. 그럼 누가 중재자가 됐겠습니까?제후들속에서 주먹이 제일 세고 힘이 제일 큰자가 주천자의 지위를 대신해서 패주가 되였습니다. 춘추시기 일반적으로 공인하는 패주는 다섯이였습니다. 그래서 춘추5패라고 불렀습니다.
소위 “5패강”이란 어떤 5패이고 왜서 그들을 오패강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들은 어떤 형식으로 패주의 지위를 나타내겠습니까? 회의였습니다. 당시에는 회맹이라고 했습니다. 힘이 큰자가 사람들을 불러다가 회의를 해서 일을 상의합니다. 사실상 상의인것이 아니라 그자의 말대로 하라는것인데 그대로 하지 않으면 때린다는것입니다. 이것이 5패강입니다. 그자가 주천자를 대체해서 제후들에게 호령하는것입니다. 임금은 벼리가 떨어졌으니 끝이 난것입니다. 천자의 위신도 깡그리 없어진것입니다.
5패에 대하여 부동한 설법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제환공, 송상공, 진문공, 진목공, 초장왕 이 다섯사람을 가리킵니다.이 5패는 서로간에 한고리 한고리씩 련관되여 있는데 이 5패중의 매 한사람마다 모두 정채로운 인생궤적과 인생이야기를 가지고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렬하고 어떤 사람은 간교하고 어떤 사람은 진부하고 어떤 사람은 가소롭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5패인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한사람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제환공을 소개합시다. 제환공은 이름이 강소백이고 강태공의 후대입니다. 제환공은 아주 저명한 인물을 임용하여 개혁을 진행했는데 바로 관중입니다.중국력사상 아주 대단한 재정가, 재정전문가, 행정전문가로 불리운 관중을 리용하여 개혁을 진행하고 현인들을 불러들이고 군비를 강화하고 생산을 발전시켰습니다관중은 대단한 인물이였습니다. 공자는 관중을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론어에서도 볼수있는데 공자는 관중을 아주 존경했습니다.
당시 제환공 강소백은 아주 유명한 구호를 내놓았는데 “존왕양이”였습니다. 존왕이란 주천자를 존경한다는 말인데 그건 허울뿐이였습니다. 그도 주천자를 천자로 보지않았습니다. 양이란 외적을 물리치자는 것입니다. 제환공은 춘추5패에서 첫손을 꼽는 사람입니다. 력사상에서는 제환공을 어떻게 말하는지 알만합니까? 총명하다면 총명하고 둔하다면 둔하고 인애로 말하면 인애하지 않은것도 아니지만 잔인을 말하면 아주 잔인하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끝장도 아주 비참합니다. 패주들의 끝장은 모두 처량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제환공을 잊어버리고있습니다. 그런데 제환공을 기억하고있는 대신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역아입니다. 역아란 누구겠습니까? 중국료리의 선조랍니다. 중국료리가 맛있지요. 지금 우리는 문화의 정화를 선전하고있는데 중국의 료리문화는 세계에서 제일이랍니다. 료리예술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두 역아를 선조로 인정한답니다. “관자”의 기재에 의하면 “부역아이조화사공”이라고 했습니다. 조화라는 두자는 오늘날 모순을 조화한다는 그 조화인데 고한어에서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가지 맛을 잘 섞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가지 맛을 잘 섞어서 맛나는 음식을 만든다는것입니다.
고대에는 조미료가 없었기에 잘 섞는것으로 여러가지 맛을 냈습니다. 남방에서는 조라고 하는데 어떤것으로 어떤 맛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돼지나 닭을 곤 국물이 바로 조미입니다. 물고기지느러미는 아무 맛도 없습니다. 당면보다도 맛이 없지요. 그러나 돼지나 닭을 삶은 국물로 맛을 맞춰보십시오.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런것을 조화라고 한답니다.
역아는 어용취사장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역아는 대단한 간신이였습니다. 하루는 역아가 제환공에게로 가서 제환공의 시중을 들면서 사사와 공사를 조화했습니다. 그는 제환공의 시중을 들면서 제환공에게 어떤 음식을 자시고 싶은가고 물으면서 자기가 해오겠다고 했습니다. 제환공은 시루에 찐 아이를 못먹어봤다고 했습니다. 시루에 찐 아이를 먹겠다는 말인데 역아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큰아들을 쪄서 환공에게 바쳤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맏아들을 삶아서 제환공에게 바쳤습니다. 역아는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제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들까지 쪄서 바친것입니다.
제환공 41년인 기원전 645년에 제환공의 진정한 대신이고 현명한 대신인 관중이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제환공은 많은 대신들 중에 누가 너를 대신해서 재상이 될수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관중의 명이 오래갈것 같지않아서 제환공은 관중에게 물어본것입니다. 관중은 아주 로련했습니다. 이건 아주 큰 문제인데 어떻게 감히 자기가 추천한단 말입니까? 그럴수 없었습니다. 긍정코 먼저 국왕의 의사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아는데야 군주이상이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뜻인즉 환공이 신하를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나와 묻지 않아도 누가 나를 대신하기 제일 적합한 인선인가를 다 알고있지 않는가하는것이였습니다. 제환공은 역아가 어떤가고 물었습니다. 관중은 제아이를 죽여 군주에게 잘 보이는 사람은 인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역아는 안된다고 관중은 보아낸것입니다. 인정이 없다는것은 허위가 아니면 정신이 나간 사람인데 허위적인 사람이나 정신이 나간 사람이 어떻게 재상이 될수있는가하는 말이였습니다. 이것이 관중의 대답이였습니다.
제환공은 또 개방이 어떤가고 물었습니다. 또 다른 한사람을 물어봤는데 그것도 간신이였습니다.관중은 친인을 버리면서 군주의 환심을 얻는것은 인정에 맞지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제환공은 또 수조가 어떤가고 물었습니다. 수조가 누군가를 다 알고있지만 제환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절로 자기의 불을 까버린 사람입니다. 환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다 할수있다는것을 표명하기 위해서였답니다. 관중은 자기의 불을 까서 군주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인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관중이 죽은후 제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지않고 그 세사람을 중용했습니다.
관중은 그처럼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군주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개인의 품행이 악렬할 뿐만아니라 반드시 말못할 비렬한 목적이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아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단 대권을 쥐기만 하면 그것은 인민들의 대재난이고 국가의 말일이라는것입니다. 그랬으나 제환공은 이 세 소인을 아주 잘 봐주고 판단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관중의 말을 듣지않고 그 세 소인을 중용하였는데 어떤 후과를 가져왔겠습니까?
제환공 43년 즉 기원전 643년에 제환공은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의 다섯 아들은 서로 패거리를 묶어가지고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패주가 되여 패주의 자리를 이어받기위해서였습니다. 10월 초이레날 제환공은 병으로 죽고 강소백은 궁정정변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역아 등 세 간적들에게 침전에 감금된채로 생죽음을 당했습니다. 먹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굶어서 죽은것입니다. 이는 벌을 받은것입니다. 그는 역아의 아들을 먹었고 역아는 그를 침전에 감금시켜 굶어죽게 한것입니다.
아들 다섯도 누구 하나 그를 상관하지 않고 저마끔 병사를 일으켜 서로 싸우면서 자리 다툼을 했습니다. 제환공의 시체는 침전에 놔둔대로 있었습니다.67날이나 그대로 있다보니 시체에서 생긴 벌레들이 창문으로 기여나왔는데 그 끝장이 아주 처참했습니다.
제환공은 충신인 관중을 중용하여 나라를 부강창성하게 하였기에 춘추5패의 우두머리로 되였습니다. 그러나 대업을 이루고 이름을 떨친후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군주에게 잘 보인 간신소인들을 중용하여 결국은 나라가 분렬되고 자기마저 굶어죽게 된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중용하는가 하는것이 한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있습니다.
두번째 패주는 송상공입니다. 송상공은 기원전650-637년 사이에 재위해 있었습니다. 송나라의 실력은 그닥 강대하지 않았습니다. 주먹도 세지 못하고 팔도 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으나 패주의 유혹을 물리칠수 없었습니다. 제환공이 죽은후 송상공은 매일 패주로 될 꿈을 꾸었습니다. 제환공을 대신하여 패주가 되려는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제환공에게 아들 다섯이 있는데 자리다툼을 하느라고 서로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섯 아들중에서 공자소가 송상공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송상공은 패주의 아들이 자기한테로 넘어왔으니 이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도 비교적 인의적인 사람이였습니다. 력사인물의 내심세계는 아주 복잡한바 우리는 간단한 정서로 그들을 판단할수 없는것입니다. 아주 복잡한 심정을 안고 송상공은 공자소를 받아들였습니다.
기원전 642년 제환공이 죽자 송상공은 제나름대로 여러 나라 제후들에게 통지하여 우리 함께 공자소를 제나라로 호송하여 국왕으로 추대하겠으니 모두들 군대를 파견하여 성세를 일으키자고 했습니다. 대부분 제후들은 송상공이 부른다고 하니 이건 어디에서 튕겨나온 나부랭인데 큰소리를 치는가 하면서 아예 들은척도 하지않았습니다. 다만 송나라보다 작은 몇몇 나라들에서 약간의 군대를 보내왔습니다. 송상공은 바로 이런 작은 나라 련합군을 거느리고 제나라로 달려갔습니다. 독하지요.
제나라는 제환공이 방금 죽어서 나라가 아주 혼란했습니다. 그런데다 송상공이 병마를 거느리고 쳐들어오는데 그속에는 단지 송나라 병사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병마들까지 섞여있어서 허실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풀이 죽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공자소가 제나라에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올랐는지 모두를 그를 동정하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나라 사람들은 일떠나서 몇몇 간신을 처단하고 역아를 내쫓고 당시 제나라 도읍이였던 림치, 산동경내의 림치에서 공자소를 맞아들였습니다.
공자소는 나라로 돌아온후 국왕이 되였는데 바로 제효공입니다. 송상공은 배를 내밀게 됐습니다. 나는 나라가 작고 제나라는 우리 나라보다 크지만 제효공은 나 이 송상공 덕에 제나라 국왕이 된것이라고 불어대면서 아주 하늘땅을 진감하는 대단한 일을 한것처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만한 위망이면 패주가 될때가 됐다고 여기면서 회의를 하려고 열고 자기의 맹주지위를 확정하려고 했습니다.
송상공은 먼저 두개의 대국인 초나라와 제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제후회맹의 일을 그들과 먼저 토론한후 초나라와 제나라의 지지를 받기로 했습니다.처음에 당시 초나라의 국왕이였던 초성왕은 송상공의 편지를 받고 아주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송상공처럼 자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고 생각한것입니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초성왕의 군사가 가야한다고 건의를 제기했습니다. 회의에 참가하는 이 좋은 기회를 타서 중원으로 진군하여 패주의 지위를 확정하라는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초성왕도 자기의 생각이 있어서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초나라의 국왕이 온다고하자 송상공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송상공 13년 즉 기원전 638년 가을이 되여 회의시간이 되자 초, 진, 채, 허, 조, 정 여섯개 나라의 국왕들이 오고 제효공과 로나라 국왕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효공은 오지 않았습니다. 회의를 시작하자 송상공이 먼저 발언을 했습니다. 그가 주석이 아닙니까. 제후국들에서 다 왔으니 회의를 합시다. 나는 제환공의 작법을 모방하여 맹약을 제정해서 공동히 왕실을 보좌하자는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왕실 주천자를 도와 왕실을 보좌하고 상호간의 전쟁을 정지하고 천하의 평화를 도모하자는것입니다. 모두들 어떻습니까?
초성왕은 속사정이 있어서 그 생각이 좋긴한데 누가 맹주로 되고 누가 패주로 된는가고 물었습니다. 송상공은 머리가 아찔해났습니다. 이 회의는 내가 소집했는데 너는 그래 나를 패주로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데서였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있는 사람은 공에 따라 론하고 공이 없는 사람은 벼슬작위에 따라 론하자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금방 떨어지자 초성왕이 말했습니다. 그럼 좋소. 우리 초나라에서 나는 왕이지만 송상왕은 공이 아니요? 공후백자남이니깐 당신이 나보다 낮으니 내가 패주로 되여야 하지않겠소? 초성왕은 단번에 패주자리에 올랐습니다.
송상공은 망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회의를 열었는데 초성왕이 주석으로 되였으니 이건 진짜 망태기라는것이였습니다. 아무리 수양있는 송상왕이라 해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상을 치며 욕했습니다. 나 이 공작은 주천자께서 봉한것이라는걸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초왕은 초나라에서 봉한것이 아닌가?초나라에서는 제나름대로 초왕을 봉한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초나라는 근본상에서 주천자를 천자로 보지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왕을 봉한것입니다. 그러니 맹주로 될 자격이 없다는것입니다.
그러자 초성왕은 당신이 나를 가짜 왕이라고 하면서 왜 날 불렀는가? 당신이 나를 회의에 부른게 아닌가고 반문했습니다. 송상공도 록록치 않았습니다. 초나라는 원래부터 자작이 아닌가? 초나라는 중국 남방에 봉했기에 그닥 중요하지 않아서 공후백자남중의 자작밖에 되지않는데 지금은 너 가짜왕이 나 진짜공을 억압하는게 아닌가고 밭게 들이댔습니다.
이러자 일이 생겼습니다. 초성왕이 데리고 온 수종들이 입었던 옷을 벗어 내치는데 안에는 모두 갑옷들을 입고있었습니다.그들은 진면모를 드러내고 회장으로 뛰여들었습니다. 회의하러 왔던 제후들은 초성왕이 병사들을 데리고 온것을 보자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초성왕은 송상공을 잡아올리게 하고 대군을 이끌어 호호탕탕하게 송나라로 쳐들어갔습니다. 송나라는 원래 패주로 되려고 했는데 지금은 자기의 국군 송상공까지 잡혀서 수레에 갇혀있고 제나라 대군이 쳐들어오는 액운까지 당하게 되였습니다. 다행히도 송나라는 그때 비교적 생기가 있었고 방비가 되여있었습니다. 때문에 초성왕은 송나라를 멸하지 못하고 부대를 거두어 철퇴했습니다.
철퇴할때 초성왕은 송상공을 자기가 앉은 수레에 매서 초나라로 끌고갔습니다. 송상공은 포로가 된것입니다. 그후 몇달이 지난후 제나라와 로나라의 조정과 청구하에 초성왕은 송상공을 붙잡아와도 쓸모가 없다 생각하고 송상공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송상공은 초나라에 악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의 병력이 강했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송상공은 정나라에서 초나라가 패주로 되는것을 적극 지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나라는 나라도 작고 국력도 약했습니다. 송상공은 은근히 악에 바쳐 먼저 정나라부터 멸하리라고 작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나라의 국왕이 초성왕을 보러 가게 되였습니다. 송상공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기원전 638년 여름입니다.
모두들 송상공이 출병하여 정나라를 토벌하는것을 반대했습니다. 일단 정나라를 치기만 하면 정나라는 긍정코 초나라에 지원을 요구할것이고 초나라는 무조건 정나라를 지원할것이 아닙니까? 안그러면 체면이 서지않으니까요. 송상공을 눈에 넣지도 않는 초성왕은 그렇게 되면 직접 군사를 휘몰아 송나라를 들이칠것입니다. 그는 정나라와 버무리지 않고 송나라가 정나라를 친다면 곧바로 송나라를 칠것이였습니다.
송상공은 주저앉는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나라를 정복하기 전에 자기 둥지가 먼저 거덜이 날것 같아서 인차 군사를 거두어 철퇴했습니다. 어느 한 강변까지 와서 영채를 세웠는데 마침 초나라 병사들도 대안까지 온것입니다. 그래서 력사상에서 가장 희곡성이 있는 연극이 시작됐습니다. 송상공 옆에 있던 한 수행원이 송상공에게 말했습니다. 초나라 군대는 정나라를 구하러 가는것인데 우리가 이미 정나라에서 철퇴했고 또 초나라 군대와 싸워도 이길수 없으니 싸우지 말고 화해를 하자는것이였습니다. 외고집통인 송상공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초나라가 비록 강대하기는 하지만 인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회의를 할때 병사를 데리고 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겉옷을 바꿔입게하고 병사들을 데리고 온것은 신용을 지키지 않은것인데 우리는 비록 병력은 약하지만 인의를 지키는 나라라는것입니다. 인의를 지키지않는 군대가 어떻게 인의를 지키는 군대를 이길수 있느냐면서 송상공은 사람을 시켜 큰 기발을 만들게 했습니다. 기발에는 “인의”라는 두 글자를 크게 쓰고 그 기발을 들고 초나라와 싸우려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력사상에서 가장 우수운 일이 발생했습니다.초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올때 송상공은 대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송상공 신변에 공손고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송상공에게 초나라 군대가 대낮에 강을 건너오고있는데 그들이 강복판까지 왔을때 돌격해가면 능히 이길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송상공은 돌아서서 아주 장엄하게 인의기발을 가리키며 남들이 강을 건너오기 전에 쳐들어가면 그게 무슨 인의지사인가고 하면서 그들이 강을 다 건너온 다음에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고했습니다.
초나라 군대들이 강을 다 건너와서 진을 칠때 공손고는 또 송상공에게 말했습니다. 초나라 군대들이 이미 강을 다 건너왔는데 그들이 아직 진을 치지못하고 혼란에 빠졌을때 빨리 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송상공은 또 인의기발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왜 전탕 이런 궁리만하는건가? 그들이 아직 진도 제대로 치지못했는데 쳐들어간다면 그것도 인의인가? 그래서 치지 않았습니다. 송상공의 말이 떨어지자 초나라군대는 이미 진을 다 치고 일제히 쳐들어왔습니다. 송상공은 아주 용감하고 고집이 셌습니다. 그는 제일 첫사람으로 돌격해 들어갔는데 너무 빨리 돌격해들어가다보니 단숨에 초나라 진영의 중간에까지 쳐들어갔습니다. 그래도 그가 평시에 부하들을 잘 대해주었기에 부하들이 죽기내기로 싸워서 겨우 그를 구해냈습니다.
겨우 살아나와서도 송상공은 또 인의기발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기발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송나라의 백성들은 우리가 능히 이길수 있는 싸움을 졌다면서 송상공을 욕했습니다. 송상공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인의를 지키는 군대는 덕으로 남을 감복케 해야한다. 난 인의로 싸우는것이지 남의 바쁜 틈을 노려서 싸우는것이 아니다.
여기에 한가지 성구가 있는데 “불금이모” 입니다. 이모란 무엇입니까? 머리칼 두오리라는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반백이 됐다는 말입니다.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다 있으니 이모가 아닙니까? 당시에는 나이가 든 사람을 이모라고 했습니다. 나는 남이 바빠하는 틈을 노려서 치지도 않거니와 이모를 잡지도 않는다는것입니다. 즉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사람을 잡지않는것이 바로 인의지사라는것입니다.
이 송상공은 돈키호테같은 사람이였고 우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이였습니다. 우둔하긴 하지만 그래도 존경할만한 인물이였습니다. 기원전 637년에 크게 부상을 입은 송상공은 상처가 감염되여 그의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비장한 일생을 마친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가 신용을 지키고 인의를 지켰기 때문에 약소한 송상공이 춘추5패의 두번째에 들어가게 된것입니다. 춘추5패의 세번째 패주는 다음시간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