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吉林

《삼자경》해독 -26 > 가정

본문 바로가기
전체인기글

《삼자경》해독 -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5-13 09:35| 조회 :3,062| 댓글 :0

본문

                       《삼자경》해독 -26


                                              복단대학 교수 전문충



영진씨 시겸병 전이세 촉한쟁
蠃秦氏 始兼并 传二世 楚汉争

진조가 건립되여 십여년이 되였을 때는 이미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사람들은 폭정을 견딜수가 없어 기발을 추켜들고 일떠났습니다.각 지방에서 기의군이  바람과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그 중에서 점차적으로 항우와 류방의 군대가 진국을 멸망시키는 두개의 대 주력으로 되였습니다.함양에서 진조를 무너뜨려 철저히 멸망시킨 후 지난날에 우군이였던 이 두개 부대는 재빨리 천하를 쟁탈하는 적으로 변했습니다.줄곧 렬세에 처했던 류방은 어떻게  피동적 국면을 돌려세웠을가요?승리자인 류방과 실패자인 항우의 성격과 됨됨이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어떤 평가와 설법들이 있을가요?한조가 건립된 후 또 어떤 사람들이 견결히 류방을 향해 머리숙여 신하가 되지 않으려 했기에 한단락의 비장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남겼을가요?

먼저번 강의에서 우리는 진시황이 원래 자신의 황제자리를 만세까지 전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삼자경》에 서술된것처럼 사실상은 겨우 2세밖에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진승,오광을 대표로 하는 대규모의 전국적인 반항과 항쟁이 폭발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력량이 두 갈래입니다.역시 《삼자경》이 서술한 “초한쟁”입니다.한갈래는 초국의 귀족후예였던 항우가 령솔한 군대였는데 초군이라 불렀습니다.다른 한갈래는 평민 류방이 령솔한 부대인데 한군이라 불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항우는 초나라 귀족의 후예였기에 호소력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류방은 일개 평민이였습니다.초군과 한군의 상쟁은 중국력사에서 기복이 자유분방한 한단락의 이야기들을 야기시켰습니다이 이야기들은 우리의  문화기억속에 인상이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패왕별희》와 같은 경극이나 희극형식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은 중국장기의 장기판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초하한계 이것이 바로 초한상쟁이 우리 민족의 기억속에 남긴 하나의 흔적입니다.이 과정은 력사의 기재에서도 상당히 분명합니다.

기원전 207년 즉 진시황이 붕가한 제 3년입니다.항우는 작은 군대로 많이 이겼었는데 거록에서 진조의 주력군에게 크게 패했습니다.기원전 206년에 류방은 도리여 그의 군대를 거느리고 함양을 공략했습니다.항우는 그곳에서 죽기내기로 싸우고있었습니다.류방은 자기의 부대를 거느리고 함양을 공략했습니다.그 곳은 진조의 국도였기에 당연히 이것을 표지로 합니다.기원전 206년을 진조가 멸망을 선고한 표지로 삼습니다.기원전 206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4년의 시간은 초한전쟁의 연속시간입니다.한왕 류방은 당연히 후날에 왕으로 불리웠습니다.류방이 저명한 한신을 모셔 대장군으로 삼고 한신의 장병들이 다다익선하다는것을 사람들은 알고있습니다.소하를 승상으로 모시고 후방을 정돈하고 병마를 훈련시켰습니다.

기원전 206년 8월 류방과 한신이 군대를 거느리고 관중을 칠때 관중의 백성들은 진조의 통지와 압박으로 이미 숨조차 내쉬기 힘들었습니다.진조는 엄한 형벌과 법률이 있었지만 동시에 일개 평민이였던 류방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무엇때문에 호감이 생겼을가요?이것도 우리가 경상적으로 사용하는 성구인 약법삼장(约法三章)과 련관됩니다.

류방의 약법삼장은 무엇일가요?“살인자사 상인급도저죄”-만약 당신이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면 목숨을 바쳐야 하며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물건을 훔치면그 죄를 물어야 합니다.당신의 죄행에 따라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게하는것입니다.이것은 당시 상당히 엄한 형법과 법률 그리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상황하에서 필경 일종의 규범작용을 일으켰습니다.때문에 관중의 백성들은 모종 의미에서 류방을 희망했습니다.그것이 누구든 상관없이 진조의 통지만 아니면 됩니다.그가 진조를 멸망시키기만 하면 됩니다.하기에 한군이 도착하자 관중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없었습니다.3개월도 안되는 노력을 거쳐 그처럼 큰 하나의 구역이였던 관중이 일개 평민인 류방이 거느린 한군의 지반으로 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초패왕인 항우가 있다는것을 잊지 마세요.항우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주요한 싸움은 모두 자신이 했는데 수도는 류방이 공략했습니다.하여 항우는 군대를 거느리고 함곡관을 격파하고 함양에 쳐들어왔습니다.기원전 206년 12월 항우의 군대는 도합 40만이였습니다.항우는 병사와 군마가 날래고 용맹했습니다.신풍에 주둔하고있었는데 신풍은 어디일가요?바로 오늘의 섬서 림동 동북쪽에 있습니다.이 일대의 어느곳이 홍문연의 발생지입니다. 항우는 40만 군대를 거느리고 홍문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당시 10만의 군대밖에 없었던 류방은 방법이 없었습니다.자신이 항우를 이길수 없다는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그리하여 홍문연을 마련했습니다.홍문연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있습니다.일종 귀순을 표시하는것입니다.항우와 싸우지 않겠다는것입니다.홍문연 이후 항우는 정식으로 병사를 거느리고 함양에 진입했습니다.서초패왕으로 자립하고 류방을 한왕으로 봉했습니다.하기에 류방의 한왕은 항우가 봉한것입니다.그럼 한왕 류방의 근거지는 어디일가요?책봉지가 어디였을가요?파촉의 한중입니다. 그 지방에 봉되였습니다.

항우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 임용하는것과 반대로 류방에게는 하나의 특점이 있었는데 인재를 끌어 모을 때 무척 주의했습니다.그가 소하를 채납한것도 이 책략입니다.그의 이 한 뙈기 봉지를 (한왕의 봉지) 질서정연하게  다스리려는것입니다.아주 공고한 후방근거지로 만들었습니다.기원전 206년 그 해 아마 그때 쯤입니다.징과 북을 자주 울려대며 초한상쟁이 벌어졌습니다.류방은 출병하여 항우의 고향인 팽성을 공격했습니다.항우의 고향인데 오늘의 숙천일대입니다.초한전쟁이 정식으로 폭발했습니다.

홍문연이후 초한전쟁이 발생한 이것은 력사적으로 하나의 절점이였습니다.자신을 치는 류방을 보고 항우는 대수로워하지 않았습니다.그는 병사를 파견해 류방을 공격할 준비를 했습니다.그러나 바로 이때 동쪽에서 큰 일이 한가지 발생했습니다.어떤 일이 발생하였을가요?

항우는 류방을 한왕으로 책봉하면서 다른 사람도 왕으로 봉했습니다.항우는 자기의 부장이였던 사람을 제왕으로 봉했습니다.헌데 제국의 오랜 귀족들이 병사를 파견해 그를 쫓아냈습니다.이 문제는 분명 중요한 문제입니다.그것은 항우가 제국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하여 항우는 먼저 제국을 대처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왕 류방은 항우가 제국과 싸우느라 바쁜 틈을 타서 팽성을 함락했습니다.항우의 보금자리를 들어낸것입니다.항우는 고향이 함락된것을 보고 제국의 싸움을 제쳐놓고 달려와 류방과 싸웠습니다.이 싸움에서 결과는 류방이 크게 패했습니다.그는 근본적으로 항우를 싸워이길수 없습니다.강에 떨어져 물에 잠겨죽은 한군이 사서에 기재된것은 기수부지였습니다.그의 아버지인 태공과 그의 처 려후마저도(그때는 아직 려후가 아니고 황후가 아니였습니다.)모두 항우에게 포로되였습니다.초군은 류방의 아버지와 안해를 잡아갔습니다.류방은 병사를 거느리고 형으로 물러날수 밖에 없었습니다.오늘의 하남형양 일대입니다.패잔병을 수습했는데 엉망진창으로 얻어 맞았습니다.

하지만 류방의 수하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류방은 귀족인 항우처럼 그렇게 도고하지 않았습니다.류방은 아주 부드러웠는데 수시로 어진이들을 례의와 겸손으로 대할수 있었습니다.이때 소하가 관중으로부터 한갈래 인마를 조동해 왔습니다.그리고 한신도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류방과 회합했습니다.한군은 다시  분발했습니다.류방은 이공위수의 전법을 채취했습니다.그의 밑에는 모략사들이 많았습니다.한 방면으로는 형양을 지키고 많지 않은 병력으로 항우의 부대를 끌고 다녔습니다.다른 한방면으로는 한신이 병사를 거느리고 북으로 진공했습니다.많은 지방을 점령했는데 그 곳이 어디였을가요?위국 연국 조국을 공략했습니다.진시황이후 그 시기 국가가 다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흐리멍텅하게 갈라졌습니다.

실력으로 론하면 류방은 절대 항우와 비할 방법이 없습니다.그러나 류방은 감히 서초패왕에게 도전을 걸수 있었습니다.사실은 황제의 보자를 향해 도전을 발동한것입니다.류방은 우선 리간계를 사용하여 항우가 자신의 지낭모사를 잃게 만들었습니다.이어서 끊임없이 항우의 부서를 소란하면서 천천히 국세를 개변시켰습니다.류방은 어떻게 피동적인 국면을 돌려 세웠을가요?

기원전 203년 항우는 동쪽에서 이기는 싸움을 했으나 도리여 재수없었습니다.싸움에서 이긴 다음  성고를 잃은 소식을 들었습니다.재빨리 병사를 끌고 서쪽에 당도해 류방을 대처했습니다.역시 형양부근입니다.초한량군은 다시 대치를 시작했습니다.이 때 력사적으로 유명했던 한 막이 발생했습니다.그것이 무엇이였을가요?

초군이 급급히 당도했을 때 그의 후근력량은 류방처럼 강하지 못했습니다.류방에게는 소하가 있고 진평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류방의 후근을 조직하고있엇습니다.시간이 길어지자  대진해 있던 초군의 군량이 없어졌습니다.량식이 모자랐습니다.류방은 숨어서 항우와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류방이 어떻게 감히 항우와 싸우겠습니까항우가 가서 류방을 욕했으나 류방은 뻔뻔스럽게 모르는체했습니다.항우는 정말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그는 류방의 아버지를 생각해냈습니다.태공이 아직도 자기 손안에 있으므로 태공을 묶어다 돼지잡는 작업대에 올려놓았습니다.나무판대기를 얻어 태공을 그곳에 내벼려 두었습니다.그리고 사람을 파견하여 고함치게 했습니다.

“류방 네가 만약 투항하지 않으면 너의 아버지를 죽이겠다.죽인 다음 그의 고기를 잘라내여 내가 삶아 먹겠다” 고 했습니다.그 시기에는 아마 마음대로 사람을 먹은것 같습니다.중국의 력사에서 사람고기를 먹는 기재는 력대에 모두 있습니다.하지만 항우는 진짜로 먹을 생각은 없었을것입니다.늙은이가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로만 류방아버지를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류방의 망나니 본색이 튀여나왔습니다.류방은 기본상에서 망나니입니다.일반사람 같으면  급해서 일이 났을겁니다.다른 사람이 아버지를  삶아 먹는다는데 류방은 안된다고 한것이 아니라 된다고 했습니다.어찌됐건 나는 너와 의형제를 맺은적이 있는데 내 아버지면 네 아버지라고 했습니다.네가 정말 우리 아버지를 잡아 먹겠다면 그래도 되지만 혼자만 먹지 말고 나한테도 국 한 사발을 갈라  달라고 말했습니다.이것이 우리가 경상적으로 사용하는 【청분아일배갱 《사기 항우본기》】분일배갱이란 말의 유래입니다.

항우는 괘씸해서 발만 구를 뿐이였습니다.정말 그 로인을 죽인다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그를 죽여서 뭐합니까. 정말 그의 고기를 먹을 생각도 아니니깐요. 하여 흥미를 잃었습니다.

항우는 이 방법으로도 류방을 자극하지 못하게 되자 사자를 파견하여 류방과 이야기하게 했습니다.지금 천하가 크게 혼란하고 생령들은 몇년동안 도탄에 빠졌는데 아무런 재미도 없다.사실은 모두 우리 두사람을 위한것이 아니냐?네 수하의 사람이면 어떻고 내 수하의 사람이면 어떠냐.모두 우리 둘의 일이니 이렇게 서로 싸우지 말고 둘이  단독으로 비기자고 했습니다.단독으로 높고 낮음을 비한 다음 누가 지면 누가 단념하고 태평을 이루자고 말했습니다.그래야 백성들도 고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류방의 구제불능은 계속되였습니다.그는 항우에게 나는 너와 지혜는 겨룰수 있어도 힘을 겨루는 일은 안한다고 대답했습니다.보아하니 항우는 정말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싸우려고 안하니 류방을 놓고 방법이 없었습니다.항우는 류방의 낡은 방법을 꺼내들었습니다.어떤 방법일가요?

류방을 불러내온 후 진앞에서 대놓고 욕을 했습니다.항우는 욕으로 류방을 이기지 못합니다.류방의 혀바닥은 사나운 편입니다.항우의 죄를 렬거하며 꾸짖었습니다.항우가 백성을 도살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느니 죄장이 많았습니다.사실은 입술을 나불거리는것입니다. 항우에게는 한가지 모병이 있었는데 류방도 그랬습니다.

류방이 항우를 꾸짖자 항우는 말로 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그는 급해 났습니다. 말로 싸워서 이기지 못하자 또 단독으로 싸우자 했습니다.이때 항우가 령을 내려 활을 쏘게 했습니다.그 중의 화살 하나가 류방의 가슴을 명중했습니다.당시의 기재에 의하면 요해를 명중했습니다.

이때 류방의 반응이 무서웠습니다.일대의 영웅이잖아요.그의 반응이 어쨌는지 아세요?그는 자기 가슴이 화살에 명중된것을 보고 수하의 장령들이 보면 군심이 동요될가봐 큰 소리로 마구 욕설을 퍼부었습니다.류방은 특별히 강한 사람입니다.어느놈이냐  네가 쏜 화살이 내 발가락에 맞았다고 했습니다.사실은 화살이 가슴을 맞혔습니다.그가 이렇게 고함을 지르자 한군의 장사들은 우리 주공의 발가락에 화살이 박혔으니 큰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고 별로 당황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회를 리용하여 류방을 막사로 부축해 갔습니다.부축받은 류방은 사실 일어나기 힘들었습니다.그러나 이때 장량이 군심이 동요될가 두려워 류방에게 기여일어나서 지탱하라고 권고했습니다.장량도 유명한 모사였습니다.군영안에서 한차례 순찰을 하자고 했습니다.한군의 병사들이 보니 정말 발가락에 화살이 맞은 거였습니다.우리의 주공이 능히 일어나 순찰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이번에도 항우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항우도 비록 화살이 가슴에 박히기는 했지만 류방이 죽지는 않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그는 크게 실망했습니다.이때 한신은 제나라 지방에 있었습니다.제국은 원래 제나라의 땅에 있었는데 초군에게 크게 패했습니다.한신은 큰 공헌이 있는 신하입니다.초한전쟁을 할 때 팽월은 초나라에 조금 남아있는 량식을 운반하는 통로를 차단하고 끊어버렸습니다.량식과 마초는 갈수록 적어졌습니다.

이때 류방은 용의주도한 계략을 다시 한번 나타냈습니다.그는 감히 항우와 싸우지는 못했습니다.그는 자신이 아직도 항우와  싸워 이길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그는 사람을 파견하여 항우와 화해를 청했습니다.무슨 조건이였을가요?자신의 아버지를 돌려보내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될수 있다면 형제의 처도 돌려보내달라고 했습니다.즉 태공과 려후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그러면 싸움을 멈추겠다고 했습니다.초한 쌍방은 홍구를 계선으로 홍구의 동쪽은 초국에 속하고 홍구의 서쪽은 한국에 속하게 하자고 했습니다.홍구는 오늘날 하남의 형양일대입니다.이것이 바로 초하한계의 래원입니다.

보아하니 항우도 방법이 없었습니다.그 역시 싸우고 싶지 않았고 한꺼번에 류방을 없애치울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태공과 려후를 돌려보내고 자신도 병마를 거느리고 팽성으로 돌아갔습니다.사실 류방의 이번 화해는 하나의 완병지계였습니다.한왕은 진평 장량의 계책을 리용하여2개월도 걸리지 않고 빠르고도 조용히 한신 팽성 영포를 조직했습니다.세갈래  인마가 회합했습니다.한신을 총사령으로 하여 항우를 추격했습니다.

초한전쟁의 결전은 이 시기에 발생했습니다.기원전 203년 년말 초한이 다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이때부터 병력이 강대해지기 시작한 류방은 항우를 해하에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오늘의 안휘 령벽현의 동남쪽입니다.량식이 끊기고 무기가 끊긴 항우는 이때 이미 아무런 방법도 없었습니다.이 시기 류방 수하의 모사에는 무슨 인재나 다 있었습니다.항우에게 아주 독창적인 한차례 음악회를 열어주었습니다.초지의 곡조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항우는 사면에서 들려오는 초가를 듣고 자기의 강산 자기의 초지가 이미 모두 류방에게 공략되였다고 여겼습니다.사실은 아니였습니다. 그때는 아니였습니다.항우는 갑자기 강동의 부모형제를 뵈울 낯이 없다고 느껴져 그곳에서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였습니다.기원전 202년 6월 초한의 싸움은 류방의 승리로 끝났습니다.다시  통일된 서한왕조가 중국을 통지했습니다.후에 동한까지 합하여 새롭게 통일된 한왕조는 중국을 441년간 통치했습니다.이것이 초한상쟁의 대체적인 결과입니다.

항우와 류방 이 두사람을 봅시다.사실상 항우는 여러방면에서 모두 뚜렷한 우세를 점하고있습니다.당시 류행된 한마디 말은 “초수3호 망진필초” 입니다.초국에  인가 세호만 남더라도 최후로 진조를 멸망시키는것은 반드시 초국이라는 말입니다.초국사람들의 용맹을 보아낼수 있고 초국사람과 진조의 피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아낼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말 이후의 중국은 사실상 당시 많은 사람들이 초를 정통으로 여겼습니다.사람들은 초를 정통이라 여겼습니다.여러분의 기억속에 진승 오광의 정권을 뭐라고 불렀지요?장초입니다. 장대초국 광대초국을 발양하는것입니다.항우는 명성이 혁혁한 초국의 귀족입니다.그의 호소력은 일개 평민인 류방과 비할수 없습니다.때문에 그는 조기에 능히 강대한 군력과 물자력량을 호소하고 축적할수 있었습니다.류방을 멀리 초과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우의 최대의 모병은 외고집에 자기가 옳다고 믿고 우유부단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교제를 하지 못합니다.허리가 굳고 몸이 나른하지 못합니다.그는 귀족이잖아요. 자신의 전부 력량을 효과있게 조정하고 발휘할 방법이 없습니다.

류방은 다릅니다.류방이 천하를 얻고 난 후 일찍 한단락의 총결이 있었습니다.그는 득의하면서도 매우 겸손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득의양양했습니다.어떤 한단락의 총결이였을가요?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것은 내가 사람을 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전략전술을 세우고 천리의 승부를 거두는데서 나는 장량만 못합니다.그는 스스로 자신을 똑똑히 인식했습니다.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군량을 운수하는데서 나는 소하에 못미칩니다.대군을 통수하고 도시를 공략하여 로략질하는데서 나는 한신보다 못합니다.장량 소하 한신은 바로 소위 말하는 한초3걸입니다.그들이 바로 류방을 협조하여 한조의 기업을 개척했습니다.

항우와 류방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항우는 귀족출신의 사람이고 류방은 밑층의 평민입니다.그리고 류방이란 사람은 때론 행동거지가 비상히 거칠었습니다.례하면 신분있는 일부 로인들이 그를 보러왔습니다.류방이 무얼했는지 아세요? 로인들의 앞에서 발을 씻었습니다.여기저기를 문질러 대면서 기뻐했습니다.급하면 로인들의 모자, 유생의 모자를 가져다 오줌을 눕니다.

항우는 힘이 산하를 뽑을만큼 영용무쌍하였습니다.류방은 문무 모두 출중한데가 없었습니다.그의 문화수준은 높지 않았습니다.《대풍가》 한 수도 두마디만 웨칩니다.“큰 바람이 일어 구름이 높이 난다”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예도 항우와 비할수 없습니다.항우는 의리가 있었고 감정을 중히 여겼으며 애증이 분명하였습니다.류방은 탐욕스럽고 색을 좋아했으며 변덕이 많고 교활하고 의심이 많았습니다.

사마천이 이 점을 보아냈습니다.《사기》는 무엇때문에 위대할가요?바로 사마천의 안목이 독특했고 사실이 출중했으며 사덕이 고상했기 때문입니다.《사기》를 썼을 때는 이미 한조가 성립된지 오래다는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그는 여전히 항우를 영웅의 말로로 썼고 류방을 위군자로 썼습니다.여러분이 돌아가 《사기》를 보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항우를 《본기》《항우본기》로 썼습니다. 뿐만아니라더 당당하게 《항우본기》를《고조본기》의 앞에 놓았습니다.때문에 사마천의 심목중에 류방은 항우만 못합니다.

항우는 평생에 싸워서 이기지 않은적이 없습니다.하지만 딱 이 한번을 졋습니다.류방은 헤아릴수 없을만큼 싸우고 또 그만큼 졌지만 딱 이 한차례 이긴것입니다.결과는 이 한차례 최후의 결전때문에 력사가 변모했습니다.류방이 한조를 건립한것은 중국의 력사에서 근근히 한개 조대를 연것만이 아닙니다.가장 주요한것은 류방이 성립한 한조가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어떤 메세지일가요평민도 능히 천하를 개척하고 황제가 될수 있다는것입니다.그 이전에는 없었습니다.그 이전에는 모두 귀족이였으나 류방에 이르러 시작되였습니다.내가 평민이여도 천하를 개척하고 기회가 되면 능히 황제가 될수 있다는것입니다.그때로부터 평민도 이런 하나의 황제몽을 지닐수 있었습니다.

비록 류방은 천하를 얻었지만 시작부터 민심을 얻지는 못했습니다.한조가 건립된 후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류방에게 허리를 굽혀 신하가 되려하지 않았습니다.그중 비장하고 강렬한 한막이 연역되기도 했는데 오늘날까지도 사람의 마음을 진감시킵니다.이것은 어떤 한단락의 이야기일가요? 

일부 사람들이 류방과 합작하려 하지 않고그에게 머리숙이는것을 원치 않았습니다.여기에서 우리가 소개할수 있는 유명한 사람은 전횡입니다.

전횡이 태여난 해는 우리가 알수 없습니다.그러나 그가 기원전 202년에 죽은것은 알고있습니다.그는 자살했습니다.그 역시 진말에 병사를 일으켰는데 천하가 혼란한것을 보고 재빨리 자신의 조업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그의 조업은 제국이였습니다.그는 당시 저명한 장령이였고 현사였습니다.매우 현명하였고 그 역시 일찍 자신을 제왕이라 자칭했습니다.처음 시작할 때 전횡은 주요하게 누구와 대적했을가요?항우와 대적했습니다.초왕이 사람을 파견하여 제지방을 공격 로략했기 때문입니다.한이나 류방에 대해서는 그는 방어만 할 뿐이였습니다.

그는 류방과 대치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류방은 제지를 공략할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하여 그는 사람을 파견하여 투항하라고 전횡을 권했습니다.이 시기 전횡은 그것이 계책인것을 몰랐습니다.그는 류방의 성격을 잘 료해하지 못했습니다.그 역시 일종 귀족적 심태로 류방을 가늠했습니다.당신이 사자를 보내 나하고 담판하려고 하니 우리들도 협의에 따라 여럿이 정정당당하게 협의를 협정하자고 했습니다.그가 금방 협의에 싸인하고 나서 류방에 대한  일부 방어설비를 금방 철수하고나니 한신이 병사를 거느리고 갑자기 제남을 습격했습니다.당시에는 력하라 불렀습니다.오늘의 제남에 아직도 력하구가 있습니다.제남을 공격하고 뒤이어 림치를 공략했습니다.이는 면바로 제국의 도성을 직접 핍박하는것이였습니다.

이때에야 전횡은 류방의 속임수에 넘어간것을 알았습니다.재수없은것이 누구였을가요?바로 류방의 사자였는데 류방은 관계하지 않았습니다.이 사자는 전횡에 의해 삶겨졌습니다.한가마에 삶았습니다.그때는 쩍하면 사람을 삶았습니다.류방의 사자도 삶았습니다.후에 전횡도 자신을 제왕으로 자립했습니다.그러나 사실상 그 시기 그 제왕은 빈 이름만 있었을 뿐입니다.아무런 병사도 없었고 지반도 없었습니다.

기원전 202년 류방은 항우를 전승하고 중국을 통일했습니다.전횡이 생각해보니 도망치지 않으면 류방에게 당할것만 같았습니다.이 사람은 상대하기 어렵다는것을 그는 이미 알고있습니다.도망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것입니다.전횡은 부하 5백명을 거느리고 해주 동해현해안에서 8백여리 떨어진 작은 섬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첫째로 전횡은 제국의 귀족이기에 호소력이 있었고 둘째는 횡형제가 이 일대에서 병사를 일으켜 다년간 경영하였기에 많은 백성들이 아직도 마음속으로 그를 기억하고있을것이라고 류방은 걱정했습니다.그를 붙잡지 못하거나 그를 손안에 넣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가 투항하지 않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불안할것입니다. 때문에 류방은 전횡을 사면할 타산을 했습니다.너에게 죄가 없다고 하면 전횡이 돌아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사적의 기재로 보면 최초에 류방은 전횡을 죽여버릴 타산을 하지 않았습니다.오직 그가 머리를 숙여 신하가 되면 그의 죽을 죄를 사면하려 했으나 전횡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전횡은 무엇때문에  투항을 안하려고 했을가요?첫째 전횡은 류방의  사절를 삶아 버렸습니다.그리고 그 사자의 형제인  동생이 지금 아직도 류방의 손에 있는 대장군입니다.하다면 전횡은 어떻게  생각했을가요?내가 너의 형님을 삶았는데 네가 지금은 나를 증오하지 않더라도 장래에는 어느날엔가 나를 없애려 할것입니다.류방은 전횡이 이런 걱정을 하는것을 알고 명령을 내렸습니다.그 사자의 동생에게 장래 전횡의 털끝 한오리도 상하게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만약 네가 전횡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는 너의 9족을 멸할거라고 했습니다.

류방은 이렇게 명령을 내리면 전횡이 나와서 투항할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를 대신해 제지의 백성들을 위안하리라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그래도 전횡이 근본 움직이지 않을줄 어찌 알았겠습니까?무엇때문일가요?전횡 자신은 제국의 귀족이고 류방은 신의를 지키지 않았기에 일개 평민이 자신을 놀려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너를 신이라 부르겠는가 생각하고 머리를 숙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류방은 또 한가지 필사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만약 전횡이 돌아오면 그를 제후로 봉하겠다고 했습니다.혹은 그에게 높은 작위를 봉해 주겠다고 했습니다.하지만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병사를 풀어 너의 모든 수종들을 몰살하겠다고 했습니다.

전횡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군자입니다.그는 자신을  따르던 이 오백명 사람들이 련루되는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하여 수종 두사람만 거느리고 길에 올라 락양을 향해 걸었습니다.걸으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자신이 류방을 향해 신이라 부를것을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정말 참을수 없었고 내키지 않았습니다.락양에 이르기전 30리에서 전횡은 신변의 두 사자에게 말했습니다.무슨 말을 했을가요?자신이 인차 천자인 류방을 배알한다고 했습니다.천자 류방을 배알하는데 목욕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이것은 례절이니 너희들이 회피해달라고 했습니다.두 수종은 잠간 피했습니다.바로 두 수종이 회피할 때 전횡이 자살했습니다.그리고 그의 두 수종들도 당장에서 자살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그에게 5백명 사람이 있는것을 기억하시죠.그가 데리고 함께 섬에 숨어있던 사람들입니다.이 소식을 들은 후 5백명 장사들도 전부 집체자살을 했습니다.죽어도 류방을 신이라 부르려 하지 않았습니다.오백명 장사들의 이같은 장렬한 행위로말미암아 그들은 중국력사에서 한무리 충의의 대표인물로 각광받고있습니다.이 섬은 산동 즉묵 오늘의 산동 즉 묵경내의 자그마한 바다섬입니다.오늘날에는 전횡도로 불리우고있습니다. 그곳은 중국에서 충의지기의  하나의 상징지와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설명할가요?비록 류방이 천하를 통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이라 부르기를 원하지 않았다는것을 설명합니다.때문에 그가 제위의 자리에 오른 첫 시각에나 그 이후에도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 황제라고 부르기를 원한게 아닙니다.
류방도 특수한 재능이 있었습니다.그의 많은 재능이 항우에게는 없었습니다.가장 중요한것은 그의 수하에 전사와 장병 모사가 구름처럼 모여 있있습니다.그는 력사가 그에게 내려준 기우를 틀어잡았고 초한상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취득했습니다.기원전 202년에 정식으로 한조를 건립했습니다.중국은 그리 길지 않았던 사분오렬과 전란의 상태를 경과하고 다시 한차례 대통일의 형태로 돌아왔습니다.그럼 한조의 구체적 력사상황은 어떤 모양이였을가요?

《삼자경》은 우리들에게 한조에 관한 얼마만의  력사지식과 력사이야기들을 알려줄가요?여러분께서 다음 강의를 듣도록 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가정 목록

Total 62건 1 페이지
가정 목록
녀인들이 뭘 제일 두려워할가 인기글   녀인들이 뭘 제일 두려워할가영국 런던”믿건말건”박물관의 위탁을 받고 연구일군들이 2000명 녀인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녀성들이 두려워하는 20가지를 모아봤다.공포한 내용을 보면 “친인을 잃는 것, 생매장 당하는것, 공개장소에서 연설하는것”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죽음은 4위를, 火排가…(2013-11-01 09:29:31)
《삼자경》해독-27 인기글 《삼자경》해독-27 복단대학 전문충교수고조흥 한업건 지효평 왕망찬高祖兴 汉业建 至孝平 王莽篡광무흥 위동한 4백년 종우헌光武兴 为东汉 四百年 终于献한조가 건립된 후 문경정치는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생활을 안정시키며 원기를 회복하는것을 경과하여 국력이 점차적으로 회복되였습니다.한무제가 변경을 넓히고 땅을 개척하여 강력하게 나라를 다스리는것을 경과하여 한조는 바야…(2013-05-22 12:06:38)


《삼자경》해독 -26 인기글 《삼자경》해독 -26 복단대학 교수 전문충영진씨 시겸병 전이세 촉한쟁蠃秦氏 始兼并 传二世 楚汉争진조가 건립되여 십여년이 되였을 때는 이미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사람들은 폭정을 견딜수가 없어 기발을 추켜들고 일떠났습니다.각 지방에서 기의군이 바람과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그 중에서 점차적으로 항우와 류방의 군대가 진국을 멸망시키는 두개의 대 주력으로 되였습니다.함양에서 진조를 …(2013-05-13 09:35:51)
《삼자경》해독-25 인기글 《삼자경》해독-25 복단대학 교수 전문충 영진씨 시겸병 전이세 촉한쟁蠃秦氏 始兼并 传二世 楚汉争진시황은 중국력사에서 제일 첫번째 황제입니다.그럼 황제란 이 두 글자는 무슨 의미일가요? 진시황은 무엇때문에 이 두 글자를 선택했을가요?《삼자경》은 진시황의 왕위가 2세에만 전해지고 초한 쟁탈이 시작됐다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하다면 진제국은 어떻게 멸망…(2013-05-13 09:31:17)
《삼자경》해독-23 인기글 《삼자경》해독-23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나라는 어떻게 몰락하기 시작했고 왜서 도읍을 동으로 옮겨갔겠습니까? 주왕조는 동쪽으로 옮겨간후 동주라고 불렀습니다. 동주는 또 춘추와 전국 두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때 주천자가 천하를 호령하는 지위는 이미 텅빈 이름만 남아있었습니다. 여러 제후들이 서로 왕으로 자청하고 내부투쟁을 해서 전화가 그칠새 없었습…(2013-05-13 09:18:47)
《삼자경》해독-22 인기글 《삼자경》해독-2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주무왕 시주주 팔백재 최장구周武王 始诛纣 八百载 最长久 주철동 왕강타 령건과 상유설周辙东 王纲坠 逞干戈 尚游说상주왕의 우매무도는 여러 제후국들의 불만을 자아냈는데 이때 서북쪽에 있는 한 자그마한 나라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주나라였습니다. 인애로 나라를 다스렸을 뿐만아니라 …(2013-05-13 09:14:26)
《삼자경》해독-21 인기글 《삼자경》해독-2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탕벌하 국호상 6백재 지주망汤伐夏 国号商 六百载 至纣亡삼자경은 통속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언어뒤에 모두 풍부한 력사이야기와 문화적인 교양이 내포되여 있습니다. 이 짧다란 12개 글자에서도 한 조대의 6백년의 흥망성쇄를 이야기해 줍니다. 현명한 상탕은 성공적으로 음탕하고 잔폭한 걸왕을 토벌하고 상나라를 …(2013-05-13 09:10:34)
《삼자경》해독-20 인기글 《삼자경》해독-20 복단대학 전문충교수하유우 상유탕 주문무 칭삼왕 夏有禹 商有汤 周文武 称三王하전자 가천하 사백재 천하사 夏传子 家天下 四百载 迁夏社이제부터 “삼자경”은 우리 나라 력사조대의 대체와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후세사람들이 력사인물에 대한 품평과 표창도 이야기합니다. 대우는 요…(2013-05-02 07:39:50)
《삼자경》해독-19 인기글 《삼자경》해독-19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황오제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떠받들리고 있습니다. “삼자경”에서는 삼황오제중의 두 사람을 소개하고있는데 바로 요와 순입니다. 천백년래의 세월이 덮쳐흘렀으나 요와 순- 이 상고시대의 승왕은 계속 중화민족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요천순일이라는 말로 태평세월을 비유하고 요순지치를 후세덕정의 전범으로 삼…(2013-05-02 07:36:01)
《삼자경》해독-18 인기글 《삼자경》해독-18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의 력사는 삼황의 복희, 신농과 황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세사람은 무엇때문에 삼황이라고 불리우겠습니까? 민간전통에서는 복희와 녀와의 교미도에 어떤 이야기를 기재했겠습니까? 복희는 왜서 중화민족의 인문시조로 떠받들리겠습니까? 신농은 중화민족의 발전에 어떤 거대한 기여를 했겠습니까? 삼황중의 첫째이고 오제중의 첫째인 황제에게…(2013-04-22 08:15:32)
《삼자경》해독-17 인기글 《삼자경》해독-17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삼자경에서 말하는 “급로장”이 바로 로자와 장자를 말하는것입니다. 그들 두사람은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중국문화와 중국사람들로 말하면 이 두사람의 중요성은 어떻게 말해도 과분하지 않습니다. 적지않은 학자들은 아직도 로자와 장자의 사상을 진정으로 리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사상도 진정으로 리해…(2013-04-22 08:11:11)
《삼자경》해독-16 인기글 《삼자경》해독-16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삼자경》은 우리에게 다섯명의 제자를 추천했습니다. 제자중에서 이 다섯 사람이 비교적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그 다섯명 제자는 “오자자 유순양 문중자 급로장”.순자와 다른 한 사람인 양자입니다.양자는 력래로 두가지 쓰임법이 있었습니다.지금까지 어느것이 정확한것인지를 모릅니다.하나는 나무 목 양자이고 다른 하나는 제수변 양자입…(2013-04-19 08:00:32)
《삼자경》해독-14 인기글 《삼자경》해독-14 복단대학 전문충교수공자는 《시경》의 정신이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그런데《시경》의 아름다운 정신이 무엇때문에 멸망했을가요?전설에서 주왕조의 쇠락을 초래한 미녀 포사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을가요?주유왕이 봉화로 제후들을 희롱한것은 어떤 일일가요?공자는 어떤 상황에서 《춘추》를 편성하고 만들었을가요?《춘추》에서 우포폄은 선악을 분별하는 중요한 작용을…(2013-04-19 07:57:21)
《삼자경》해독-12 인기글 《삼자경》해독-12 복단대학 전문충교수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삼자경》의 순서에 따라 《상서》를 강의하겠습니다.유전모 유훈고 유서명 서지오有典谟 有训诰 有誓命 书之奥여기에서 서술한것이 《서경》입니다.그것이 유가의 경전으로 된 이후책은 흔히 많이 볼수 있는 이름인 《상서》로 변했습니다.《상서》란 무슨 의미일가요?상이란 년대가 오래다는 뜻입니다.서는 력사적문헌을 이야기합…(2013-04-16 08:21:42)
“삼자경”해독-11 인기글 “삼자경”해독-11 복단대학 전문충교수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四书通 孝经熟 如六经 始可读근근히 사서만 알아서는 중국전통문화를 다 료해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자경에서는 “효경”을 더 읽을것을 권장합니다. 사서통 효경숙 여륙경 시가독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서를 통달하고 효경에 익숙한 후에야 륙경을 학습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효경”은 아주 특별한 경전이라는것을 주의해야 하겠습니…(2013-04-16 08:15:22)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