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문학으로부터 본 중국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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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11-03 09:10| 조회 :4,778| 댓글 :0본문
외국문학으로부터 본 중국문화(2)
륙건덕
19세기말 20세기초에 중국은 두차례 아편전쟁을 겪었고 또 갑오전쟁을 경과했습니다. 그후 소유의 사대부, 지식인들은 중국문화에 병이 생긴것 같다고 하면서 반성을 했습니다. 1900년좌우부터 1920년 긴 시간동안 중국사람들은 중국의 문화가 무예숭상주의가 아니고 아주 나약하다는것을 의식했습니다. 바로 로신선생이 이런 감촉을 느꼈습니다. 모주석은 1910년에 체육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국외와 접촉해보니 외국사람들은 움직이기 좋아하는 민족이고 중국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외국문학을 볼때 문제를 갖고 보면 자기의 문화에 모자라는 점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기실 외국문학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한 면으로 외국문학을 거울로 삼아 자기를 비춰보며 눈은 바로 박혔는가, 얼굴은 어떤가를 살펴봅니다. 때문에 외국문학은 사실상 중국문화를 개조하는 공구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100년이 지난 다음에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원래 외국과 거래할때 이를테면 양무운동이라든가 그 후에 총을 사고 대포를 사고 또 무한에서 저절로 철공장을 꾸려 배를 만든다든가 하면서도 말합니다.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문학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것은 우리 소유의 중국문화를 개조하는데 영향력이 특히 큰것입니다. 오늘 제가 책 한권을 가져왔는데 <<흑노우천록>>입니다. 이 책은 미국19세기 중엽에 출판된 소설인데 작자는 스타부인입니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소설이 미국에서 노예제를 철페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901년 우리 나라 번역계의 로선배인 림금남선생이 이 책을 중문으로 번역했습니다. 그가 중문으로 번역할때 목적이 미국문학을 소개하려는것이 아니고 미국문학소개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문화를 개변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사실 중화민족은 1900년좌우에 어떤 상태에 처해있었느가를 의식하게 합니다. 때문에 림금남선생이 이 책을 번역할때 책머리에 서언을 쓰고 뒤면에 또 글을 썼으며 가운데는 또 립언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사실 번역이 아니라 고쳐쓴것과 같습니다. 아주 많은 부분을 고쳤습니다. 그가 <<흑노우천록>>에서 두 인물에 주의를 돌렸는데 하나가 바로 탕무아저씨입니다. 이 소설의 영문제목은 <<Uncie,Tom`s.Cabin>>입니다. 이 탕무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그는 아주 경건한 기독교신자입니다. 그리고 백인주인을 보면 굽신거리지만 .사람은 아주 성실합니다. 하지만 반항할줄 모르며 갖은 고생을 다 하고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노예주를 떠나버린다든가 도망친다든가 하는걸 못합니다. 이것이 한 흑인노예입니다. 그리고 또 한 흑인노예가 있는데 이름은 죠지라고 부릅니다. 죠지는 젊은 로동자인데 총명하고 머리를 잘 쓰며 기술도 좋습니다. 그리고 대담하게 반항합니다.
때문에 림금남선생은 이 책 번역에서 죠지라는 인물형상을 돌출시켰습니다. 그가 어떠어떠하게 용감하다고 했고 어떤 장면은 아주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가 한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넜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때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미국 북쪽에 있는 카나다에는 노예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죠지는 카나다에 가서 자유를 추구합니다. 림금남선생은 이 장면에 대한 번역에서 죠지를 아주 용감하게 형상했습니다. 림금남선생은 죠지의 이런 기질이 중국사람에게는 없는 특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럼 그가 당시 외국문학을 번역하고 이 책을 번역하는데 또 어떤 중요한 사상이 있었겠습니까 그때 많은 화교로동자들이 미국에서 기시를 당하고 까닭없이 붙잡혀가고 구류당했습니다. 그때 미국에는 화교를 배척하는 법안을 내왔습니다. 하지만 그때 화교들은 미국사회의 건설에 아주 큰 작용을 했으며 이러한 공헌은 너무나 큰것이였습니다. 이를테면 화교로동자들은 미국을 가로 지르는 철도를 부설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공적을 인정합니다만 그때는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아주 불안해했습니다. 그것은 화교로동자들의 리익이 침해를 당했고 인격존엄이 담보를 받지 못했기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중국정부는 너무 나약하여 미국정부와 교섭할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그래서 림금남선생은 이 책을 번역하는걸 통하여 결사적으로 중국문화를 개변하려 했습니다. 어떻게 개변할수 있는가 하는데 대해 말했는데 그는 중국 사람들이 아주 많은 면에서 19세기중엽 흑인노예보다도 더 불쌍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것에 대하여 그는 번역원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국력이 너무 약하다.>> 그다음 <<국가요직에 있는 자들은 겁나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로 국가 관원들이 외국정부와 교섭을 두려워한다는것입니다. 그는 <<또 사람을 통하여 이런 일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글을 쓸줄 하는 사람이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화교로동자들의 고난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림금남선생은 이런 상황이 기실은 흑인노예보다 더 비참하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림금남선생은 이 책의 번역에서 죠지의 이야기를 쓸때 많은 부분에 중국사람들의 귀속말을 더 넣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귀속말은 지금 와서 읽어보아도 아주 재미 있습니다. 이 작품속의 죠지는 카나다에 온지 얼마 안되여 자기의 지식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불란서로 류학하는데 파리대학에 들어갑니다. 파리대학에서 4년 공부한다음 어디로 갈것인가 미국에 가면 어떨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후에 죠지는 자기가 흑인이기에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대륙에 있는 많은 흑인동포들을 단합하여 아프리카에 가서 자기의 나라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이런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는데 바로 지금 아프리카의 리비리아입니다. 리비리아 이 나라는 국기가 미국국기와 아주 비슷한데 당시 흑인노예들이 아프리카에 건너가 세운 나라입니다. 그다음 죠지는 자기의 벗들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의 리상을 이야기합니다. 죠지의 리상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림금남선생이 많이 고쳤는데 사실 번역이라기보다 고쳐썼다고 해야 더 적절합니다. 림금남선생은 시시각각 중국의 당시 국제형세하에서의 처지를 념두에 두고 썼습니다. 작품속의 죠지는 반드시 자기의 나라가 있어야 하며 자기의 법률을 내놓고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여 신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백인들이 흑인을 죽이는걸 가만두지 말아야 하며 백인들이 흑인종족을 소멸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흑인은 사실 중국사람입니다. 그가 말한 공법공리란 말은 바로 나라가 있으면 모든것이 있게 되므로 오직 나라만 있다면 그다음 권리는 얻을수 있고 이래야만 모든 일을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림금남선생은 이 책의 첫머리에 쓰기를 1901년에 광서황제와 자희태후가 아직 서안에 있을때 이미 북경에 돌아올 준비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때 리홍장이 8국련합군과 조약을 체결하고 있었는데 자희태후와 광서황제는 조서를 내려 변법을 단행했습니다. 1901년부터 1911년 이10년은 바로 중국당시 개혁개방의 보조가 아주 컸습니다, 보조가 갑자기 너무 커서 청조는 인차 붕괴되였습니다. 이 변법을 내오고 아주 많은 면에서 이를테면 과거제도페지라든가 하는것은 그 사회에서 받아낼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변혁은 너무 큰 충격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최후에 나라는 분렬되여 몇십년동안 군벌할거상황을 조성하였습니다. 림금남선생은 1901년에 광서황제와 자희태후가 변법을 일으킨 소식을 듣고 아주 흥분했습니다. 하여 그는 <<사람마다 낡은 종이를 버려라>>고 했는데 그것은 묵은 책더미에 파뭍혀있지 말라는것이였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라 내 책이 천박할지라도>> 내가 번역한 책이 통속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개를 북돋우며 애국보족하는데는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기개를 살리고 나라를 사랑하며 종족을 보존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시기동안 외국문학은 중국을 비춰보며 중국사회를 개조하는 도구로 되였습니다.
그럼 로신선생은 어떠했을가요 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림금남선생과 취지가 같습니다. 로신선생이 당시 일본에서 류학할때 장편 <<마라시력설>>을 썼는데 1908년에 썼습니다. 이 문장 역시 적지 않은 정도로 일본학자의 어느 한 문장에 대한 번역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이 문장이 완전히 그의 문장인지를 몰랐고 또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로신선생은 그 글에서 반역정신을 제창했는데 모로라는 인물은 바로 마귀반란자입니다. 그럼 로신선생이 바이런, 쉴러 그리고 베테페이등 인물형상을 통하여 반역정신을 선양하려 했는데 사실 그도 반란파의 편에 섰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아주 급진적인 반란파입니다. 20년대에 와서 그는 영미문학은 모두 시시껄렁한것들이고 심심풀이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쓰려면 볼멋이 있는걸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볼멋이 있는것이 어떤것이겠습니까 바로 로씨아문학입니다. 그는 중국과 로씨아는 문자지교를 건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무장투쟁에 관한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다. 이것이 후에는 중국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후에도 계속되였지만 3,40년대에는 한면으로 좌익지식인들이 로씨아와 동유럽의 문학을 번역했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림금남의 방향으로 나가면서 영미문학이나 일본문학 그리고 기타 문학을 번역했습니다.
50년대에 와서 우리는 서방의 진보적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쏘련의 <<뜨락또르운전수>와 같은 사회주의건설문학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때문에 이 외국문학은 중국문화와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릴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외국문학을 보면 한면으로는 림금남선생이 말한 과감히 반항한다는것과 같은 점인데 림금남선생은 례를 잘 듭니다. 그는 중국사람은 유사덕처럼 나약하다고 했습니다. 기시를 당해도 가만있고 대항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천박한 부류입니다. 그외 허다한 문화적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관찰이 부족합니다. 이런것들은 우리는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는 원래 사회과학원에서 사업할때 사람들은 지식인이 이렇고저렇고 하면서 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나는 지식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왜 지식인이 아닌가고 했습니다. 그후 저는 실언한것을 느끼고 제가 지식인이라는걸 승인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식인이 아닐때 많은 지식인들이 원망을 터뜨리기 좋아하기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지식인들에게 지금도 이런 습성이 있는데 이런 습성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저들의 불만은 우아한것이고 시적이라고 여기면서 불평만 해대는것뿐이라고 여기면서 언제나 자기의 불행만을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들은 종래로 자기의 불행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병이 나도 여기저기에 알리지 않으며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쑤신다든가 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주 자중하며 군중들더러 원망을 터뜨리게 합니다. 자기가 대접받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자중할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총적으로 이런 현상을 제가 보기에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원망하는 습성이 아직도 있습니다. 저의 생각에는 외국문학에서는 이러한 실례들을 많이 본것 같지 않은데 더우기 영국문학에서 저는 이런 력사가 아주 적다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중국문학을 본다면 모두 주제사상에서 보통 인재가 기회를 못 만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중국문학사를 보면 허다한 시인들이 인재가 기회를 못 만났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안 좋기때문이라고 하고 만약 인재가 기회를 만났다면 세상이 좋다고 합니다. 가령 한 사람을 천리마에 비유한다면 사실 이 천리마는 뛰여보지도 않아 잘 뛰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문화에서 기회를 못 만났다거나 시대를 잘 못 만났다고 말하면 이것은 좋은 뜻이지 나쁜 뜻이 아닙니다. 시작품에서 보면 나라에 보답하려 해도 할 길이 없는걸 통탄하고 꼭 재상이 되여야만 나라를 위해 보답할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어느 누가 군자라고 하면 그는 군자로 됩니다. 이런것들은 오랜 뿌리깊은 관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문학에 대한 평론을 어떤 때에는 보기 싫어합니다. 바로 누가 기회를 못 만났다면 우리는 그를 동정해야 하는것 같아서 말입니다. 만약 그가 큰 관리가 되였다면 좋다고 하고 이 사회가 좋다고 여깁니다. 그들의 이런 평판들을 저는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의 영욕관으로 기준을 정합니다. 자기의 위치가 높으면 맹교와 마찬가지고 장안에 가서 과거급제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주 창궐한데 자기의 생사가 달린 목적을 이루면 가문을 빛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한달음에 장안의 꽃들을 다 보지 못 하는것을 한스러워합니다. 그럼 우리가 좀 더 멀리를 소급해봅시다. 굴원같은 사람을 볼때 우리는 굴원을 당연히 애국시인이라고 하고 그의 작품을 읽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영국문학이나 로씨아문학에 잘 보이지 않는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굴원은 자기흔상주의가 심합니다. 어떤 때에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 한 성숙된 사람은 자기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도 문제를 봅니다. 이를테면 어린이는 사탕을 못 가졌다고 울고 란동을 피우다가 사탕을 주면 울음을 그칩니다. 그럼 어른도 사탕을 좋아하지만 자기를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가진 사람이 먹고 좋아하면 나도 기뻐합니다. 그렇게 어른은 어린이나 환자 그리고 약자들에게 양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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