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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의 웨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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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7-23 18:33| 조회 :5,8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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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의 웨침-2


(3)예술가곡과 합창가곡의 습작

제3부분에서는 예술가곡과 합창가곡의 습작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먼저 말한 아동가곡과 군중가곡에 대해서는비교적 리해하기가 쉽습니다.예술가곡은 그로서의 특정정인 함의가 있습니다예술가곡이란 무엇입니까예술가곡은 간단한 독창가곡이 아니라이름 그대로 작곡가가 연창선률을 쓸때함께 피아노반주도 써야하는 것입니다.독창배우가 남자거나 녀자거나 남자고음이거나녀자고음이거나 혹은 중음이거나 모두 선률과 피아노반주곡을 함깨 써야 합니다.피아노 반주와 노래소리는 하나로 어울려야 하고 공동으로 하나의 주제를추켜세워야 합니다.이렇게 하자면 음악가는 전면적인 음악수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듣기 좋아하는 노래거나 독창하기좋은 우수한 작품이 다 예술가곡이 되는것은절대로 아닙니다전쟁시기의 우수한 예술작품은 륙화백선생의 “고향”입니다.륙화백선생은 우리 나라의 저명한 작곡가,리론가, 음악가이고 광서예술학원의일급 교수이고 저의 선생님이십니다.먼저 그의 “고향”을 들어봅시다 이 노래는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한1937년에 지은 노래입니다.륙화산은 상비산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면서이 노래를 작곡했습니다.륙화백은 강소성 사람인데 어떻게 계림에 왔겠습니까?항일전쟁시기에 저명한 미술대사 서비홍선생은 항전미술의 희망을 광서사람들에기게 기탁했습니다.

광서사람들은 그에게 계림미술학원을 지어주었습니다.지금의 사범대학 독수봉아래 남쪽의그 집 두채입니다.당시에는 학원에 음악계와 미술계가있었댔는데 륙화백은 서비홍이 청해서미술학원에서 교학을 맡았습니다.륙화백이 계림에 온후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했습니다.그래서 광서에서는 계속 이 학원을 지원할 힘이 없게 되였습니다.장개석은 광서를 전방으로 되게했습니다.목적인즉 일본의 힘을 빌어 광서패를 철저히 소멸하려는 것이였습니다.그러나 리종인이 령도하는 5로군 장병들은중국사람들을 위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한번에 일본군대 만명을 소멸해버리고 대아장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대아장전역을령도한 지도자가 바로 리종인이였습니다.장개석은 군비를 주지않거나 아예 제대로 주지않았습니다.광서에서는 물력과 재력을 전선에 보내야 했으므로 계림미술학원을 돌봐줄수 없었습니다.그래서 계림미술학원은 세웠지만학생들을 모집하지 않았습니다.광서성 주석이 이런 정황을 서비홍에게 알려주자 서비홍선생도 아주 난감했습니다.륙화백은 이런 때에 계림으로 왔습니다

“고향”을 창작한 후 첫번째 공연은 1938년5월29일 당시의 군중조직인“광서음악회”에서 전방의 전사들을 위하여모금음악회를 했댔는데 중앙녀자대학의매경향선생이 륙화백의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매경향선생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무대 아래는 눈물바다가 돼버렸습니다.청중 대부분이 모두 계림에 피난 온동북적 화북적 학생이였기 때문입니다그 노래는 면바로 그들의 아픈 가슴을건드려놓아 큰 공명을 일으켰습니다.노래의 첫부분은 고향에 대한 찬미와그리움을 쓴것이였고 두번쩨 부분은고향이 일본침략자들의 도살장으로변해버린것을 묘사한 것이였습니다.두 부분은 대비가 매우 강렬하고피아노 반주도 아주 정밀하였습니다.

국외의 일부 저명한 음악대사들은 륙화백의이 노래는 슈벨트의 예술가곡과 어깨를 겨룰수 있다고 평론했습니다.이 노래는 인차 국민당통치구에 펴졌는데남고음독창가거나 녀고음독창가거나 그 어느 가수나 다 이 노래를 자기들의보류곡목으로 삼고 오래도록 불렀습니다.또 이 노래는 동맹나라들과 미국, 프랑스및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도 전해져갔습니다매번 항쟁승리 몇주년 하면서 기념모임을할 때면 이 노래는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울려퍼집니다.우리 나라에서 이딸리아가곡 “나의 태양”로씨아가곡”삼두마차”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륙화백의 “고향”은 미국과 프랑스에서아주 많이 류행되고 있습니다.미국 삼판시에서는 이 노래를 성악경연에서 반드시 불러야 하는 노래로고정해 놓았습니다.1957년에 륙화백이 우파분자로 획분되자이 노래도 몇십년간 불리우지 못했습니다.1992년 중외음악가련합조직의 20세기 백부경전음악작품평선에서륙화백의 “고향”은 20세기백부음악작품으로평의되였는데 쉽지않은 일입니다.이 작품은 항일전쟁시기에 계림에서 창작한 수많은 가곡들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백부경전음악에 입선된 작품입니다.그렇다면 계림에서 항일전쟁시기에 창작된 노래 중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제일 크고 제일 널리 류전된 작품입니다.

작년에는 중앙테레비죤방송국 1채넬에서8월 15일 저녁 황금시간에 방송한항전가곡대련창에서 이 노래를 방송했습니다.“고향”은 항일전쟁시기 계림 예술가곡창작가운데서 성적이 제일 큰 작품입니다.지금까지 우리 광서 음악창작가운데서가장 큰 영예를 안아온 작품이기도 합니다.다른 작품들도 있지만 경전작품만 소개합니다.

오백초의 “중국사람”을 보기로 합시다.오백초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데 오백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교육가의 한 사람으로서 저명한 작곡가이며저명한 지휘가입니다.처음에 그는 류천화선생께서 민악을 배웠는데 대사로 되였습니다.후에 류천화는 북경대학음악전문학습소에 가서 학습하다가 졸업한 후 북경녀자교육학원에 가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상해국립음악전업학교로 갔습니다 .채원배, 소우매가 상해음악전문학교를 창립하고 류천화를 초청하여 교편을 잡게 한것입니다.그는 현대음악교육의 제1대 교원입니다.1931년에 그는 벨지끄에 류학을 갔는데류학 중에 화성습작과 푸가습작 대상을 받았습니다중국사람으로서 외국에 나가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습니다.소식이 중국에 전해오자 국내음악계는환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35년에 중국으로 돌아오자 그는 여전히상해음악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1938년에 그는 계림에 왔는데만겸자의 스승이였습니다.만겸자와 당시 교육청 청장 구창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광서성정부에서참의원으로 임명하고 광서성립예술교원훈련반담임을 겸해서 했습니다.그리고 또 광서예술관음악부 주임과광서국민자치학교음악교재편집위원회 주임까지 더 겸했습니다.


(가사)중국사람

후이배 작사 오백초 작곡

중국사람 중국사람
3백년전 왜병을 물리친 일 아는가
척가군과 유가군에 소국민 소탕했네
오늘도 연해엔 붉은 피 배여있네
중국사람 중국사람
만고에 불멸하리
어느 날 어느 때
항쟁의 기발 높이 날렸는가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리라
대장부 죽어도 수치안고 못살리니
왜적을 물리치고 대륙정책 받들자
줄지어 모여라항쟁기발 높이 들어라
총애하는 칼들고 앞으로 앞으로.


이 합창을 당시 계림무대에서 경상적으로 공연했는데 오백초선생이 친히 지휘를 했습니다.매번 공연 때마다 두 번 이상 부르고야 막을 내렸는데 영향이 아주 컸습니다.중국음악가협회에서 꾸리는 “음악창작”은1986년에 이 작품을 다시 실었습니다.이 노래는 중국합창가곡 창작에서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이 노래는 오백초선생이 계림에서창작한것인데 그의 창작에서의 황금시절은바로 계림에 있을 때였습니다.그 외에도 제재가 부동한 가곡 십여수를 창작하였습니다.그리고 지휘가로서 그는 계림으로 피난해온음악가들을 단결하여 계림방송국관현악대를세우고 1939년 5월부터 련습을 시작하여그해 9월에 계림이란 이 땅에서 민족이 위기에 처한 아주 간고한 정황에서관현악대를 지휘하여 히이튼, 모자르트, 베토벤, 무쏠스끼 그리고 에스빠냐인상파작곡가파야의 작품과 교향악을 연주하였습니다.이는 계림 항전음악력사상에서 아주 대단한 일입니다.지금 가무단에서도 이러한 작품을 연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그런데 그처럼 간고한 년대에 오백초가 해냈습니다.

그는 계림의 항전문화와 항전음악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습니다.1940년 1월에 오백초는 계림을 떠나중앙군관훈련단 음악간부훈련반에 가서부주임으로 있다가 주임이 되였습니다.국민당정부는 그에게 중장군굽을 주었습니다.한 음악가가 정부로부터 중장군급을 가진 일은 우리 나라 력사에 없습니다.오직 오백초 한사람 뿐입니다후에 그는 또 우리 나라 저명한 음악원국립음악원 원장을 6년 동안 했습니다.19489년 해방의 포성이 이 땅을 진감할 때국민당정부에서 음악원 원장으로 있던오백초는 새로 지을 학원의 지점을 결정하기 위하여 대만으로 갔습니다.가던 도중에 배가 암석에 부딪쳐불행하게 돌아갔습니다.

그가 국민당의 고급관원이였기 때문에중국음악력사에서는 종래로 그를 운운하지 않았습니다.2004년에 북경중앙음악학원에서 오백초탄신백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활동을 굉장하게 가졌는데 거기에 그이 작품이 실렸습니다.이는 우리 당이 3중전회이 후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하며 틀린것을 바로잡은하나의 작품이라고 봅니다.지금 중앙, 상해에서 여러 단체의 많은 음악책임자들이 모두 오백초원장이 양성해낸 사람들입니다우리는 이 단락의 력사를 잊지 말아야합니다.사실상에서 오백초선생의 계림에서의 창작은계림에서의 항전문화운동에 아주 걸출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4) 대형음악작품창작

이것은 중국무용사에서의 제1부 대형창작입니다. 대형음악작품창작은 계림에 두개가 있습니다. 하나는”루라강변”인데 6막으로 된 대형청창단인데 외국에서는 캉타타라고 합니다,1942년 계림에 있던 류아자선생이굴원을 기념하는 노래를 써서 항전열정을고무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그리하여 시인 오화가 장편시 한수를 썼는데륙화백더러 작곡을 하게 하였습니다,륙화백은 이 6개 악장을 정성들여 설계하였습니다,련습에 참가한 배우들은 모두 계림에서 가장이름이 있는 가수들이였습니다,

굴원의 역은 새중국극사의 가수이고 저명한 작곡가인 남고음 독창가수 요목이였습니다,그 자신은 독창가수이며 작곡가였습니다,시인역은 광서적인 저명한 남저음가수 리기서가 맡았습니다,두 어부역은 남고음에 설량이 맡고 하나는 수립덕선생이 맡았습니다,수씨네는 광서에서 잘 알아주는 예술가정인데수립덕은 수초견의 큰 아들입니다, 녀고음은 예사반의 선생이고 저명한 가수인증란주가 맡고 피아노반주는 석사분, 지휘는 륙화백 그리고 합창은 사예반의 합창대와 광서성예술관의 합창대였습니다,

륙화백은 그때 광서성예술관 음악부에서주임과 지휘를 겸직하고 있었습니다,두달 동안에 네차례 공연하여 문화계와신문계를 초대하였는데 아주 좋은 예술효과를 보았습니다,그때의 음악총보와 륙화백선생을 포함한다른 사람들의 총보가 저한테 있습니다,이 방면에 흥취를 가지고 연구하고 싶은 분들에게 제공해줄수 있습니다,두번째 큰 작품은 오효방선생이 극을 쓰고류식흔선생이 작곡한 4막 무극 “후예”입니다 .

극의 이야기는 한 지주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국민당에 참가하여 부대를 따라남방으로 철퇴해가고 작은 아들은 항일전쟁영향을 받아 유격대에 참가하며 나중에는일제를 몰아내고 고향을 해방하는 그런 내용을 다룬 작품입니다.이 무극을 공연할 때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당시 계림의 신문과 잡지에서는 분분히 이 극을 보도하고 평론을 실었으며큰 신문에서도 분분히 소식을 실었습니다계림판 “구국일보”에서는 극본을 그대로몽땅 실어주었습니다.먼 호남 형양과 광동 곡강 및 서남 각성의문예사업자들은 분분히 계림에 찾아와서오효방의 “후예”를 관람하였습니다.저명한 음악평론가 두선선생은 “후예”는 중국무용사에서 첫 번째 대형무용이라고 말했습니다.중국무용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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