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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달부전기--춘풍만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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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11-18 13:10| 조회 :4,7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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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달부전기--춘풍만취 


“봄바람에 취한 밤(욱달부대표작1923년 7월에 창작) ”은 욱달부의 단편소설인데 아주 유명합니다. 욱달부가 성고민으로부터 생활고민으로 넘어가는데 이 작품은 그 전절점이 됩니다. 소설은 아주 짜릅니다. 모두 네개 부분으로 되여있는데 첫번째 부분은 그가 이사하는 장면입니다.

아주 더럽고 란잡한 1층에서 아주 작은 층집의 다락방으로 이사하는데 다락방도 두칸으로 나누어서 창문이 있는 방에는 가난한 녀성로동자가 들고 문인인 남자주인공은 캄캄한 뒤방에 들게됩니다. 책까지 무져놓으면 방은 아주 보잘것없이 작습니다. 저는 그 소설을 볼때 욱달부가 아주 과장적으로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명한 문인을 어쩌면 이렇게 쓸수가 있는가하는 의문에서였습니다.

후에 욱달부의 생평자료를 보면서 욱달부가 곽말약과 일찍 태동수국에서 처음으로 창조사를 세울때 생활이 확실히 곤난했고 돈도 없었으며 주숙처도 좋을수가 없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일정한 생활기초가 있게되자 과장을 한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행운아였습니다. 방은 보잘것없이 작아도 옆방에 이쁜 녀자가 있다는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지는것이였습니다.

소설에서는 그가 처음 그 녀성로동자가 올라오는것을 봤을 때 그녀와 저는 오늘 방금 이사왔습니다 하고 알은체를 하면서 길을 비켜주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초상묘사를 했는데 창백한 얼굴에 가느다란 몸매를 가졌고 눈은 검고 컸는데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고 했습니다.

말이 난 김에 말하지만 욱달부가 “봄바람에 취한 밤”에서 묘사한 그 녀성로동자는 로신이 “상서”에서 묘사한 자군과 아주 비슷합니다. 심지어 언어에서 창백하고 여위였다는 말까지 똑같습니다. 성격이 완연히 다른 두 작가가 녀성에 대한 심미관이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 후로 일주일간 그녀는 그 남자의 방을 지나가면서도 말이 없다가 어느날 한마디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첫마디가 “무슨 책을 보시나요?" 였습니다.남주인공은 책은 앞에 놓고만 있을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소설의 제2부분은 녀성로동자가 빠나나와 빵을 사가지고 와서 남자주인공을 자기 방에 청해다가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남녀관계가 여기로부터 화목해지는 첫발자국을 내디디게 되는데 함께 음식을 먹는것입니다. 후에 유명한 소설 “부용진”이 나왔습니다.  “부용진”은 또 영화로도 찍었습니다.  소설“부용진”은 고화가 쓴것인데 소설속의 남녀주인공은 어떻게 서로 알게 되였습니까? 그들은 길을 쓸다가 큰비를 만나서 함께 어떤 집안으로 뛰여들어갔습니다. 옷이 흠뻑 젖었기에 옷을 뻣었습니다.그러다가 문득 대방도 옷을 입지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서로 끌어안았습니다.

사진은 영화를 찍을 때 그대로 찍을수가 없었습니다. 캄캄한데서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성세절이 중국의 실제에 맞겠습니까? 그래서 아성이 개편을 했는데 이제 다시 영화를 보십시오. 그 장면이 아주 정채롭습니다. 류효경이 쌀부두 한사발을 들고 있는데 강문이 달려들어옵니다. 류효경이 앓는다고 찾아온것입니다. 류효경이 강문더러 쌀두부를 먹으라고 하자 강문은 머리도 들지않고 먹어줍니다. 류효경이 그 옆에 서서 정깊게 바라보고있습니다.  강렬한 음악이 울리자 강문은 류효경의 불타는듯한 눈길을 바라보고는 쌀두부를 먹지않고 한손으로 류효경의 손을 잡고 진짜 두부를 먹습니다.

때문에 남녀관계의 돌파는 음식을 매개물로 한다는것입니다. 빠나나와 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그 녀성로동자는 남자와 말했습니다. 원래 그녀는 한 담배공장에서 일하고있었는데 로동시간이 길고 아주 힘들었습니다. 이런 대화는 오늘날 한 작가가 심천에 가서 한 약세군체의 녀성로동자를 만나서 말하는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후 남자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글로 써냈습니다. 뜻은 대개 로동자들을 그렇게 착취하다니 정말 말도 안돼 하는 것이였습니다. 우리의 문학사를 보면 줄곧 이렇게 써왔습니다. 이것은 중국 5.4문학이 제일 일찍 로동자계급을 묘사한 소설이였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표준에 많이 치우치고 있습니다. 욱달부도 당시 이 소설에는 다다소소 사회주의 색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본가도 썼지만 당시 그의 작품에서는 약세군체를 더이상 관심할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부분입니다..한면으로 이는 고난에 대한 관심이고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한면으로는 문학청년의 뼈속에 아직도 문인으로서의 자기적인 련정이 있다는것을 보아낼수가 있습니다.

세번째 부분에서는 남주인공이 자기 방에 창문도 없고 방안이 답답하여 밤중에 밖에 나가 산보를 하는것을 쓰고있습니다. 그러자 녀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오해하게 됩니다. 밤중마다 나가는것을 보면 꼭 문제가 있다는것이였습니다. 바로 그때 남주인공은 번역비 5원을 받게 되는데 남주인공을 그 5원으로 세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새옷을 한벌 샀습니다. 기실은 새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였습니다. 그때는 낡은 옷을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 상해에는 없는데 기실 이런 전통은 회복해야 합니다. 낡은 옷을 파는 상점은 아주 좋은것입니다.

둘째, 먹을것을 샀습니다. 셋째, 아주 중요한 세절인데 목욕을 했습니다. 한달이나 목욕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먹을 것을 사고 새옷을 사입고 목욕을 한것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봄바람에 취한 밤” 입니다. 이제부터는 크라이막스를 기대해 볼때가 됐습니다. 이날 밤 따라 녀주인공은 아주 늦게야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남주인공을 보고 나쁜 일을 하는 버릇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남주인공은 내가 무슨 나쁜 일을 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녀주인공은 네가 밤마다 나가서 들어오지 않더니 지금 갑자기 돈이 생긴게 아닌가? 그러니 이따위 돈을 탐내지말고 나쁜 짓을 하지말라는 것이였습니다.

녀주인공은 아주 전통적인 도덕관념으로 남주인공을 권고했습니다. 남주인공은 내가 나쁜일을 한게 아니고 이 돈 5원은 내가 번역을 해서 번 원고료라고 알려주었습니다. 5원이란 당시로 말하면 대단한 수자였습니다. 욱달부가 후에 왕영하와 함께 2층짜리 집을 세맡았는데 세값이 8원이였습니다. 그러니 당시 5원이란 어마어마한 수자였습니다.

녀주인공은 그제야 웃으면서 그럼 제가 잘못 욕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주 중요한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번역을 한번 하면 5원씩이나 들어오는데 그럼 좀 더 많이 하라는것이였습니다. 남주인공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녀를 안아주고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그녀를 좋아했던것입니다. 다락방에서 일남일녀가 벽을 사이두고 함께 산다는것은 푸제니의 “보헤미아사람”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그런데 욱달부는 일관적으로 욕망의 바다에 침몰되여있는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니 일이 생기지 않을수 있겠습니까?그러나 이때 욱달부는 아주 낯선 사람처럼 처리해버렸습니다. 그의 리성은 그에게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말아야하고 그녀를 끌어안아서는 안된다고 충고를 한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끓어번지려는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녀성로동자더러 돌아가서 자라고 한후 자기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 다음 부분은 아주 걸작입니다. 현대주의적인 풍경묘사, 봄바람, 밤거리, 구름…이렇게 소설은 끝납니다. 이 소설에서는 무엇을 쓰고 있겠습니까? 모두가 타락한 사람들이라는것을 쓰고있습니다. 원래대로 말하면 한 문인과 가난한 로동자는 함께 만날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가지 조건하에서만 만날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문인은 재난을 당했을 때면 가난한 사람과 접촉했습니다. 과거보러 가는 길에 겁탈을 당했거나 관리질을 하다가 모함을 당했을 때입니다. 백거이의 “비파행”에서처럼 구술이 땅에 떨어져야 문인들은 가녀를 동정하게 되는것입니다. 때문에 “봄바람에 취한 밤” 도 이런 창작모식에 습관이 된것입니다. 이러한 모식은 듣기좋은 말로 하면 문인들의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지식분자들이 자기의 운명만을 관심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타락도 보았다는것입니다.

원래는 로동자농민의 운명과 함께 하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이였습니다. 이는 생활에 대한 일종의 고민적인 관심이고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면으로보면 문인들의 자기련민이 아직도 남아있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일종 예언인데 20세기에 많은 지식분자들이 대중을 계몽시키지만 나중에는 대중을 초월했다가 대중에게 침몰된다는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방금 말했지만 한 남자가 한 녀자를 사랑하려면 그 녀자를 교육하는것과 같다는것입니다. 먼저 계몽을 해야하고 많고 많은 일들을 이야기해야 하고 동시에 이 사람이 이 사람을 구하는것과 같다는것을 배워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자군을 낡은 가정에서 구해내는것입니다. 그래서 5.4의 많은 소설들이 지금까지 연속되여오고있습니다.

기실 녀자쪽에서 이미 남자를 보는척도 하지않고 있지만 남자는 자기 생각만 하면서 자기의 남녀관계를 여전히 지식분자와 대중과의 관계처럼 생각하면서 자기가 계몽해야 한다고 여기는것입니다. 때문에 한 사람을 사랑하는것은 한 사람을 교육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입니다. 20세기에는 많은 지식분자들이 대중을 계몽한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대중이 초월하고 대중에게 침몰되고 마는것입니다. 그런데 욱달부는 자기와 진이매 사이의 간격은 메울수 없다는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간격을 메울수 없다는 원인은 그와 혁명의 도리를 말할수 없기 때문이라는것이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한 문인이 심천에 가서 아주 이쁘게 생긴 가난한 녀성로동자를 만나후 사랑하게 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후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문화적으로 그녀를 개변할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그녀를 설복하겠습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관건적인것은 그녀가 언제야 그에게 호감이 생기는가 하는것입니다.

비록 번역을 해서 5원을 벌고 또 번역을 몇개 더 한다고 해면 그 5원과 재간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롱담삼아 남자는 재간 녀자는 미모 “랑재녀모”라고 말할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랑재녀모”라고 하는데 원래의 재(才)자옆에 배(贝)가 더 붙었습니다. 욱달부는 아주 명석했습니다. 자기는 진이매를 구해줄수 없는데 진이매가 자기를 구해준다면 자기는 성고민의 고해속에 빠져들어가게 될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와 버린것입니다.

“봄바람에 취한 밤”과 같이 높은 평가를 받은 소설은 하층생활을 반영한 “변변치 못한 공물”인데 한 인력거군을 쓴 소설입니다. 욱달부는 인력거를 타면서 그 인력거군을 아주 동정했는데 차츰 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그 인력거군을 만나려고 집으로 찾아가니 한창 돈때문에 티각태각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회중시계를 몰래 그 집에 두고 나왔는데 그 인력거군이 쫓아와서 회중시계를 두고 갔다면서 돌려주려했습니다. 욱달부는 그 시계가 지기의 것이 아니라고 잡아뗐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인력거군을 도와주고 싶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얼마후 그 인력거군은 자살인지 물에 빠졌는지 어쨋든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돈을 내서 종이인력거를 한대 만들었습니다. 인력거군의 평생소원이 자기의 인력거가 있었으면 하는것이였습니다. 소설은 결말에 이렇게 쓰고있습니다. 

그들은 진짜 인력거를 종이인력거로 장식하고 거리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는 뒤의 차에 앉아있었는데 길가던 아름다운 옷차림을 한 젊은 남녀들이 이상한 눈길을 던져왔습니다. 필경 그 정경은 아주 익살맞았기 때문이였습니다.  한 인력거우에 종이로 만든 인력거가 있었으니 익살맞지않겠습니까?  욱달부는 옆에서 소리쳤습니다. “보기는 뭘 보는겁니까? 이 인력거 주인은 당신들 때문에 죽었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소설은 로동계급에 대한 다른 한가지 동정을 표현한것입니다.

현대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서 그는 남이 자기를 위해 직접 고통을 받는것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한사람이 앞에서 뛰여가는 목적은 남을 이끌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길은 아주 고통스러운 길인데 보지않는것이 상책이라고 했습니다. 장자는 “주방과 멀리하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차에 앉으면 차부를 볼수 없기에 동정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력거군에 대한 묘사는 모두 같지않습니다. 로신은 가송했고 호적은 동정했고 나중에는 “내무부서로 끌어갔습니다.” 그는 동정하는것은 괜찮지만 그렇다고 그의 인력거에 앉지않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욱달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수고하는데 난  당신의 인력거에 앉지 않겠습니다 “ 그러자 인력거군이 “ 그러지 마시오. 인력거에 앉지않는것이 저를 해치는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욱달부는 그 사람이 가련하게 보여 그한테로 다가가서 자기의 목수건을 뻣어주고 한끼를 대접했습니다. 욱달부는 원래 곽말약과 함께 상해에서 창조사를 꾸리고있었는데 창조사가 한창 잘 꾸려져나갈 때 북경대학에서 그더러 통계학을 강의해달라고 해서 그는 북경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그는 곽말약과 헤여지는것이 아주 섭섭했습니다. 북경에 간후 그는 로신과 친구로 되였습니다. 동시에 호적네 현대평론파에서도 그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얼마후 욱달부는 또 무창에 가서 얼마간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룡아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댔는데 룡아는 병으로 죽게됐습니다. 욱달부는 아주 감동적인 산문을 쓴것이 있는데 “ 한사람의 길” 입니다. 욱달부의 산문 두편은 아주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중 한편이 “한사람의 길”인데 저의 기억에 의하면 그가 아이를 잃은후 마누라와 한 침대에서 자면서 뜨락의 대추나무에서 대추가 땅에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대추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날가봐 온밤 자지못했다는 아주 세밀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쓰고있습니다.

다른 한편은 “ 문학청년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입니다. 그 산문도 아주 멋있습니다. 당시 호남의 문학청년이 북경에 왔는데 막다른 길에 들어 돈 한잎도 없었습니다. 욱달부는 그 청년이 가련해보여 목수건을 벗어주고 한끼 청해 먹였습니다. 그런후에 문장을 썼는데 북경에 와서 뭘하는가고 썼습니다. 공부하러 왔다면 기회가 없을것이고 토비질하러 왔으면 힘이 없을것이고 혁명을 하러 왔으면 담량이 없을것이고 사업을 찾으러 왔으면 찾을수가 없을 것이다. 문인이 되려고 왔다면 그건 반거세다. 거세라는게 무슨 말인가? 없애버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진짜 작가로 되기위해 왔다면 반거세가 아니라 전거세를 해야 할것이다.

욱달부의 이 비유는 아주 정채로운것이였습니다. 그는 내가 가르쳐줄테니 아무일도 하지말고 딱 한가지 일만 하되 그 일이란 바로 도적질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욱달부를 퇴페파라고 했습니다. 욱달부는 또 도적질을 하되 절대로 낯선 집에 가서 도적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붙잡히면 감옥살이를 한다는것이였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우리 집에 와서 도적질을 하되 먼저 말하고 하라는것이였습니다. 그래야 내가 먼저 알게 아닌가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리를 지르면 너는 울기만할뿐 도적질을 하지못하게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이 문장은 기실 사회에 대한 공소였습니다. 한 청년이 당시 사회에서 갈곳이 없어서 헤매는 것을 쓴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반어적인 풍자였고 희학질적인 고의적인 퇴페의 공소였습니다. 곁들어 말하면 그 아무런 이름도 없었다는 청년이 바로 우리가 알고있는 심총문입니다. 이것을 욱달부와 심총문 사이의 어떤 문인간의 문학적 교류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심총문은 그때 문인이 아니였고 일반적인 문학청년이였습니다.

욱달부는 문인과의 래왕이 많았는데 서지마는 그의 중학시절의 동창생이였습니다. 그는 후에도 많은 문인들과 래왕했습니다.  만년에 그는 림어당의 책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심총문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후 욱달부는 무한으로부터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광주에서 그는 문학출판사의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그는 광주에서 얼마든지 빨리 발전할수 있었습니다. 국민당의 높은 장령들이 그때 모두 광주에 있었습니다. 대계도, 주가화, 곽말약이 다 광주에 있었고 곽말약은 북벌군 정치부 부주임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욱달부는 정치를 눈에 든 모래알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광주의 북벌군내부에 서로 물고 뜯고하는 개싸움이 있다는것을 보아내고 로신이 말한 국민성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실망해했습니다. 비록 욱달부가 일찍 “ 문학상의 계급투쟁” 이라는 문장을 쓰기는 했지만 진정 계급투쟁의 소용돌이중심인 광주에 오자 계급투쟁에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일과 많은 사람들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않았고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상해로 가서 창조사를 정돈했습니다. 그러나 후기의 창조사는 그를 반대했습니다.

1926년 겨울에 욱달부가 광주에서 상해로 올 때 그의 가정, 그의 정치전도, 개인전도는 아주 묘망했습니다. 말 그대로 산과 물이 막히여 길이 없었습니다. 그 뒤에 말은 응당 “버드나무 어둡고 꽃이 밝은 새마을”이여야 하는데 버드나무 어둡고 꽃이 밝은 새마을은 다음 집에서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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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박 고분의 비밀(상) 인기글 라포박 고분의 비밀(상) 신강의 천산남쪽기슭을 지나면 타크라마간사막에 들어서게 된다. 천여년래 여기에 들어온 외부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18세기부터 수많은 외국탐험가들이 여기를 찾았다. 그들은30여만평방킬로메터에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사막에는 30여개의 성보뿐만 아니라 비단의 길에 있었던 수많은 재부가 매장돼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세계적으로 고고학의 흥기와 더불어 서역에 대한 탐험도 여기서 조용히 시작됐다. 루란, 니야 등 력사유적지도 련이어 발견됐다. 21세기에 와서70여년…(2011-05-31 09:19:36)
중국의 세계유산 (하) 인기글 중국의 세계유산 (하)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에는 중국고대문명과 신앙의 상징인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산입니다. 중국에서 고대 제왕들은 등극초기 태평성세를 바라고 태산에 와서 천지에 제를 지내고 소망을 빌었습니다. 이렇게 태산에 올라 축제를 올린 제왕만이 백성을 통치할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게 했습니다. 중국인은 등산과 물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의 희노애락과 자연의 산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중국산수문화의 풍부한 내연을 만들었습니다. 태산의 돌을 다듬어 만든 석각은 근 천여개에…(2011-05-18 09:08:28)
중국의 세계유산 (상) 인기글 중국의 세계유산 (상)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은 만리장성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시황은 사분오열된 전국시대를 결속짓고 기원전221 년에 중국력사에서의 제일 첫번째 봉건제국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원래의 북방장성을 이음과 동시에 장성을 보수하고 확건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장성이 형성되였습니다. 그 이후 력대의 조대로 내려오면서 2000여년간 끊임없이 보수와 수건을 하여 길이가 5천만메터에 달하게 되였습니다. 진시황이 건립한 제국이 얼마나 흥성…(2011-05-17 09:46:06)
음력설의 진미---풍속 인기글 음력설의 진미---풍속 조 형 조형은 학자이며 연산출판사의 주필입니다. 주요하게 중국문화사 북경사와 희곡사 등 령역의 연구에 종사합니다. 주요저작으로는: 《로주만필》《수장쇄담》《구외담설》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선 여러분들에게 늦게나마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정월 초이레입니다. 이전에 이런 한마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을 기다리다가…(2011-03-14 10:08:48)
음력설의 진미 ---년화 인기글 음력설의 진미 ----년화 송 조 린 송조린은 중국국가박물관의 연구원이며 중국민족고고학의 일인자다. 저작으로는《중국원고문화》《중국전통명절》《녀아국친력기》등이 있음. 무엇을 년화(年画)라고 할가요 간단하게 말…(2011-03-11 15: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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