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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의 진미---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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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3-14 10:08| 조회 :4,36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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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설의 진미---풍속


                                      조     형


     조형은 학자이며 연산출판사의 주필입니다. 주요하게 중국문화사 북경사와 희곡사 등 령역의 연구에 종사합니다. 주요저작으로는: 《로주만필》《수장쇄담》《구외담설》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선 여러분들에게 늦게나마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정월 초이레입니다. 이전에 이런 한마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을 기다리다가  정월 초이레가 되면 이미 정월 초닷새도 지났으니 설도 지나갔고 명절도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음력설도 결속되였으니 가고싶은데로 가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미 초닷새를 지나 초이레가 되였으니 설이 지났다고 말할수 있을가요?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이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월 초이레는 무슨 날이지요? 아마 거의 대부분 잘 알지 못할겁니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혹시 알수도 있지만 정월 초이레 역시 매우 중요한 명절입니다. 이 날은 음력설과 어어져 있는데  정월 초이레를 “인일”(人日)이라고 부릅니다. 무엇때문에 “인일”이 있게 되였을가요?

전설에서 초이레는 녀와가 하늘에 난 구멍을 메우고 여러가지 동물과 사람을 창조한 날입니다. 하기에 정월 초하루는 “닭일”이라 부르고 정월 초이튿날은 “개일”이라고 부르며 초사흘은 “돼지일”이고  초나흘은 “양일”이며 초닷새는 “소일”이고 정월 초엿새는 “말일”이며 정월 초이레는 즉 “인일”입니다. 이 “인일”의 풍속은 주요하게 이렇습니다. 만약 이 날에 날씨가 맑고 좋으면  일년내 사람들이 백병이 생기지 않고 신체가 건강하여 모든 일이 순리롭게 된다고 합니다. 즉 초하루부터 초이레까지 어느날의 날씨가 좋으면 그 날씨에 속하는 동물이거나 사람이 모두 그 일년중에 순리롭고 평안하며  건강하다고 합니다. 

    사실 중국의 음력설은 하루에 완성되는것이 아니고 비교적 긴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거의 한달이란 시간이 됩니다. 섣달 초 여드레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랍팔(腊八)이라고 하는데  어떤곳에서는 랍팔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랍팔절부터 시작되여 설을 쇠는 상황이 나타나고  설을 지내는 초급단계의 준비가 시작됩니다. 이 준비단계는 섣달 23일에 결속됩니다.  이 기간은 천천히 정서 조절로부터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물론 매우 많은 물질방면의 준비도 포함됩니다. 일부 집들에서 하는 여러가지 준비는  섣달 23일 이후까지 이어지는데 물론 각 지방의 습관이 모두 다릅니다. 북경에서는 섣달 23일에 조왕신에게 제를 지내고 상해는 섣달 24일에 조왕신에게 제를 지냅니다. 이 점에서는 모두 부동합니다.

부뚜막신에게 제를 지낼 때 일반적인 공급품외에도 상해에서는 케이크를 올리는것을 좋아하고 북방에서는 관동사탕을 올리기 좋아합니다. 사실 그 사탕은 맥아당으로 만든 사탕인데 사탕무더기를 만들거나 혹은 버터처럼 만들고 길다란 막대기에 안에 구멍이 있는 그런 맥아당입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할가요? 부뚜막나으리가 이것을 먹은다음 입이 붙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되여 이 집사람들의 나쁜말을 옥황상제에게 고하지 못합니다. 다음 섣달 30일 되면 다시 부뚜막신을 모셔옵니다. 이 짧은 시간내에 부뚜막신이 하늘의 법정에 가서 옥황상제에게   그집 사람들의 선과 악에 대하여 사업회보를 진행하거나 혹은  개인의 업무상황를 보고한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가장 고조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믐날에는  조상에게 제를 지냅니다. 낡은 사회의 전반 음력설 활동중에서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일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즉 영원히 선조에게 제를 지내고 조상을 기억하는것이 백성의 도덕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농후한 관습이 사회로 하여금 비로서 량호한 풍기가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런 활동은  한대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줄곧 2천년 좌우 연속되여 왔습니다. 조건이 되는 지방에서는 집에 사당을 세우고 사당에서 조상의 제를 지내습니다. 가정을 단위로 지내는 제는 먼저 부족에서 지내고 다시 사당안에서 선조에게 지낸 후  돌아와 자기의 조상에게 지냅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선조는 몇대까지 이를가요? 가장 일찍한것이 시조 선조입니다. 만약 족보가 완전하면 시조로부터 시작해  제사를 지내는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세상에 살아있는 제일 높은 세대로부터 지냅니다. 만약 지금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이 60세라면 그의 대로부터 추산하여 우로 올리 지냅니다. 즉 그의 고조에까지 지내는데 고조란 바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입니다. 지금 매우 많은 젊은이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친이라고 하고  부친의 부친을 조부라고 부르며 조부의 아버지를 증조부라고 부르고 증조부의 아버지를 고조부라고 부릅니다. 사실상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입니다.

이것은 설을 쇨때 가장 핵심적인 한가지 내용입니다. 때문에 조상에게 제를 지내기 전에는 단원밥을 먹지 못하도록 돼있었습니다. 온가족이  모이는 일은 모두 그 후의 일입니다. 친인들이 모여서 설을 쇠는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만약 이때 집의 식구들이 모두 모이지 못하거나 혹은 한 사람이라도 집에 돌아와 단원밥을 먹지 못하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상해에서는 설에 먹는 식품가운데  올방개라고 부르는 과일이 있습니다. 남방에서는 말발굽이라고도 부르는데 왜 올방개라고 부르며 또 그것을 무엇때문에  먹어야 할가요? 올방개는 음역에서 두글자의 제자를 취하였습니다. 집식구들이 반드시 모여야 한다는 뜻이기에  올방개를 먹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유감스러운것은 집에 돌아와 설을 쇠지 못하는것입니다. “하루밤만 지나면 일년이 다 가는데 만리밖에서 돌아오지 못하네” 일년이 거의 결속된다는것은  그해의 30일 밤이 되였는데 홀로 타향에서 떠돌고 집식구들과  모여앉지 못하는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집에 있는 사람이거나  외지에 있는 사람을 물론하고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문인 역시 그들의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문인은 필에 의거해 일년을 노력하여 생계를 유지합니다.  필은 문화인으로 놓고 말하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정월 초하루가 되면 신춘개필에 대해 아주 중시합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흰종이나 선지를 사용하여 먹을 갈아 글을 씁니다. 그러나 정월 초하루에는 검은 먹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그럼 무엇으로 글을 쓸가요? 중약이름으로 백급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는데 백급에 물을 타 주먹(朱墨)을 갈아야 합니다. 주먹이란 주사로 만든 먹입니다. 주먹을 갈면 주홍색갈이 납니다. 필에다 먹을 묻혀 몇글자 써야 하는데 하얀종이거나 혹은 색갈이있는 종이에 써야 합니다. 신춘개필 만사형통이라고 쓰거나 만사대길 만사여의라는 몇글자를 씁니다. 그 하루에는 사업을 하지 않거나 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개필하여 책상우에 놓아두어야 합니다.

개필한 후에는 하루동안  그의 문맥이거나 문장이 여러가지로 모두 순리롭다는것을 뜻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좋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신춘개필과  가정의 일부 활동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금방 강의한 조상에게 제를 지내거나 집식구들이 단원하는 문제는 모두  가정적 범위에 국한된 일부 음력설 활동들입니다. 

      정월 초하루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가정에서부터 사회로 향합니다. 어느 한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이런 사람들과 만나면  서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면  되지만 설에는 두손을 맞잡고 서로 읍하면서 인사합니다.  새해에 만사대길하세요 이렇게 인사하거나 적어도 한마디로 설을 잘 보내세요. 혹은 축하합니다. 이런 말들을 합니다. 대방도 역시 설을 잘 보내세요, 혹은 축하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서 서로 새해인사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적성있게 사람을 찾아가 설인사를 드립니다. 년장자거나 선배 선생님 동문도 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거나 동학들에게 설인사를 하며 상사에게도 설인사를 드립니다. 상사에게 설인사를 드리는데는 일부 아첨하는 뜻도 있을수 있습니다. 상사나 동료들에게 서로 설인사를 하는 활동중에서 일부 문제들이 나타날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백성들은 년장자거나 친우들의 집에 설인사를 다닐 때 걸어서 다니는데 이것은 매우 정상적입니다. 그럼 관원들은 어떠할가요? 구사회에서는 일부 상층사회의 사람들이  세배를 다닐 때 노새가 끄는 마차에 앉아다녔습니다. 그럼 모든 사람들이 노새가 끄는 마차를 교통공구로 사용하였을가요? 꼭 그런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분이 아주 높습니다. 대신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일품 이품의 대관원들은 평소에 다닐때면 큰 가마를 타고다닙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것은 설인사를 다닐 때 이런 큰 가마를 타고다닐 자격이 있는 사람들도 가마를 타지않고 노새가 모는 차에 앉아 다닙니다. 만약 여전히 가마에 앉아 다니면  사람들에게 편안하지 못한 감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당신의 동사자거나 혹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이미 퇴직한 사람들에게 세배를 드리려 다닐 때 오디A8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것과 같습니다. 만약 당신이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벤츠승용차를 타고  다른 사람의 집문까지 몰고가 설인사를 드린다면,  다소나마 례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습니다. 구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두 노새차에 앉아 세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마차를 타고 세배하려 다니는데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세배는 형식적이고 진짜 세배가 아닙니다. 아마 지금은 볼수 없지만 대략 한자 길이에 반자 너비되는 두껑이 있는 붉은 칠한 나무 상자가 있는데 그 상자안에 지금의 명함장 같은것이 들어있습니다. 지금의 명함장처럼 작지않고 크게 생긴 붉은 색갈입니다. 설이기에 붉은 색갈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인이 그 붉은 칠한 나무상자를 받쳐들고 문앞에  서서  말해야 합니다. 만약 찾아간 집이 성씨가 왕씨라면 왕 나으리 우리집 나으리가 세배하러 왔다고 고합니다. 그러면 대방에서 하인이 재빨리 나와 명함장을 받고 우리집 나으리께서 황송해 한다고 전하고 방문객을 사절합니다. 사실 노새차에 앉아온 사람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하기에 이 례의는 결속됩니다. 명함장도 건네주었으니 인사도 끝났습니다.



   상해는 개항한 이래 개방적이고도 상업화한 사회로 되였습니다. 때문에 재물신이 그들 생활속에서의 역활을  매우 중시합니다. 정월 초닷새가 되면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재물신을 영접하느라 떠들썩해집니다. 큰 길과 작은 거리마다 폭죽소리가 울리고  오로(五路)재신을 영접하는데 상당한 관심을 가집니다. 혹은 로두신을 영접한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상해에서 매우 보편적인 일입니다. 상점들에서는 돈을 많이 쓰는것을 아까워 하지 않고 폭죽을 사들입니다.  자신의 상점 정당에 조공원수의 사진을 모셔놓고 향초 종이돈 귀신의 화상을 불상앞에 차려 놓습니다. 다음 거리로 나갑니다.  이렇게 오고가는 행렬들인데 분장을 하고 재물신을 맞으러 갑니다.  재물신을 맞은후에는 화대를 줍니다.  이것이 정월 초닷새의 상해입니다. 로두신을 영접하고 재물신에게 향을 태우는 일은 아주 떠들썩한  한가지 일입니다. 정월 초닷새가 지난다음 설을 쇠는 활동은 상대적으로 점점 약해집니다. 

아까 제가 말했던 초이레는 오직 국부적인 “인일”이므로  어떤 사람은 지내고 어떤 사람은 지내지 않습니다. 다음은 정월 대보름을 지낼 준비에 들어갑니다. 상원절을 지금 우리는  원소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정월 대보름은 전반 설을 지내는 중  마지막 고조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정월 초여드레부터 시작합니다.  자기집 정원에 등불을 밝힙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기름 등잔을 켜는데 108개 켜는데    산등이라고 부릅니다. 순조로우려면 산등을 정월 초닷새까지 켜고있습니다.  정월 13일이 되면 여러가지 꽃등불을 걸기 시작합니다

. 상해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월 13일에 시작하여 등을 밝히고  정월 대보름을 지나 16일이면 결속됩니다. 과거에 상해에서는 이 등불을 가장 일찍 3일 즉 13 14 15일까지 밝히고 후에 16일까지 발전됐습니다. 그럼 상해에는 이 등이 어디에 있을가요? 주요하게 성황묘,서원 즉  예원이나 서원일대입니다. 오늘날의 상해사람들은 상해성황묘에  누구를 공양했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여러가지 설법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는 상해 성황에서 호광을 공양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존중하는 외래의 침략자를 항격한 민족영웅  진화성이라고 합니다. 사실 가장 주요한것은 그 두사람이 아니라 진유인데 상해사람들은 그를 진유백이라고 부릅니다. 진유백은 그의 관직에 따라 부르는것이고 사실 그의 이름은 진유입니다.부유하다는 유자입니다.

그는 송대의 진관 북송의 시인인 진소유 진관의 제 7대 손입니다. 그의 조상은 비록 송조사람이지만  그는 원조사람이며 원조의 관리였습니다. 원조에 매우 충성하였기에 명태조가 등극하자 그는 명조를 대신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후 주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명조의 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상해를 보위하였습니다.  하여 그를 상해 성황에 모셨습니다. 설을 쇠는 전반 활동에서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등불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등불이 약해진다는 말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할 때 왕왕 어떤 사람들은 오해할수 있습니다. 칠월의 류화처럼 말입니다. 찬란한 불꽃이 번성할 때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등불이 거의 꺼져갈 때를 말합니다. 신기질의 비유처럼 사람들속에서 천백번 찾았지만 돌연 머리를 돌려보니 꺼져가는 등불밑에  그 사람이 서 있었다는 격입니다. 오직 등불이 거의 꺼져갈 무렵에야  머리를 돌려 당신이 찾으려던 사람을   발견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등불이 밝게 빛나고 수많은 사람머리가 움직일 때면 한 사람을 찾아내기 얼마나 힘든지 찾을수 없습니다.   가정륜리의 개변을 다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가정마다 기본상  외자식입니다. 장래에 가서는  사회관계에서  삼촌이거나 백부 고모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하기에 음력설이 되면 몇세대가  함께 설을 지내기 매우 힘든일이 됩니다. 하기에 이런 가정의 륜리적 관념관계의 개변 역시 음력설에 영향을 줍니다.  매우 중요한 한 방면은 오늘의 정보사회에서 먼곳에 있는 친인이 집에 돌아와 설을 지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합니다.
 
례하면 경광선에서 생긴 일처럼 말입니다. 빙동사건이 발생하고 렬차가 막혀있는 상황 등 몇십만명이 그곳에 막혀 있었습니다. 무엇때문에 반드시 그날에 돌아와야 하지요? 하지만 추운 겨울도 밀려오는 사람들의 파도를  막을수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곤난이 가로막고있었지만  돌아오려는 그들의 마음을 막을수는 없습니다. 설을 쇠는것은 그들로 놓고 말하면 더없이  중요한 일이며 모두들 집에 돌아와  설을 쇠고 싶어합니다. 더우기 자녀들이 해외에 있는 로인들은 해양 건너에서 전화라도 걸어준다면 능히 위안을 얻을수 있습니다. 전반 사회결구와 사회형태에서는  모두 변화가 발생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원에 속하는 일들은 여전히  반드시 연속되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례하면 사람과 사람사이 ,부모에 대한 효성 ,이상분이거나 조상에 대한 존중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 이런것이 전반 사회를 구성하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때문에 이런것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오늘 일부 음력설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도 설을 쇠는 과정에 있으며 금년의 설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명년에는 또 새로운 음력설이 돌아올것입니다.설은 영원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희망하고 가장 동경하는  그런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음력설을 우리 중화민족의  밝은 등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것도 과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되고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미 하나의 가장 행복하고 화목한 설을 지냈을거라고 느낍니다.  설을 쇠는 화제를 오늘 여기에서 한단락 마치겠습니다. 이후에 설을 쇠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더욱 많은 체험이 있게 될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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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계유산 (상) 인기글 중국의 세계유산 (상)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은 만리장성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시황은 사분오열된 전국시대를 결속짓고 기원전221 년에 중국력사에서의 제일 첫번째 봉건제국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원래의 북방장성을 이음과 동시에 장성을 보수하고 확건시켰습니다. 이로부터 장성이 형성되였습니다. 그 이후 력대의 조대로 내려오면서 2000여년간 끊임없이 보수와 수건을 하여 길이가 5천만메터에 달하게 되였습니다. 진시황이 건립한 제국이 얼마나 흥성…(2011-05-17 09:46:06)


음력설의 진미---풍속 인기글 음력설의 진미---풍속 조 형 조형은 학자이며 연산출판사의 주필입니다. 주요하게 중국문화사 북경사와 희곡사 등 령역의 연구에 종사합니다. 주요저작으로는: 《로주만필》《수장쇄담》《구외담설》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선 여러분들에게 늦게나마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정월 초이레입니다. 이전에 이런 한마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을 기다리다가…(2011-03-14 10:08:48)
음력설의 진미 ---년화 인기글 음력설의 진미 ----년화 송 조 린 송조린은 중국국가박물관의 연구원이며 중국민족고고학의 일인자다. 저작으로는《중국원고문화》《중국전통명절》《녀아국친력기》등이 있음. 무엇을 년화(年画)라고 할가요 간단하게 말…(2011-03-11 15: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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