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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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5-26 09:21| 조회 :5,803| 댓글 :0본문
《금기서화》----기
바둑은 중국에서 오래된 일종 유희입니다. 거의 30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습니다 고대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일과 달을 결합하여 역자를 창조해냈습니다. 태양과 달이 순환하고 왕복하는 부단한 변화로 음과 양의 대립통일과 서로의 전화를 체현합니다. 동시에 그것으로 길흉화복을 점치고 예측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바둑이 정형화 되기전의 형식은 원시적 전투부호로부터 변천해 온것입니다. 고대사람들은 이것을 역자와 동음인 바둑으로 명명했습니다.
바둑은 상징적 의미가 충만되였습니다. 바둑판은 우주를 상징하며 천체 일륜의 순환을 360일로 합니다. 때문에 바둑판은 세로로 19 도이며 가로로 19도입니다. 도합 361개의 교차점이 있습니다. 중심에 더 많은 하나의 점은 천원이라고 하며 우주의 본체를 표시합니다. 바둑판 네귀의 각은 분별하여 춘 하 추 동을 상징합니다. 흰돌과 검은돌은 분별하여 낮과 밤 음과 양을 표시합니다. 작디작은 한 판의 바둑이 천지와 우주를 그 속에 포괄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주요배역으로 되여 무궁무진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말을 타고 달립니다.
바둑은 두 사람의 유희이며 바둑돌은 흑백 두가지 색갈로 나눕니다. 바둑판에서 빈자리를 많이 차지한 자가 이깁니다. 바둑을 두는 쌍방이 바둑알을 움직일 때 지와 세 공과 수 국부와 전체의 여러가지 모순에 직면하게 됩니다. 중국의 전통적 철학에서는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신비한 일종의 력량을 기라고 여깁니다. 국가의 흥성은 기의 왕성과 쇠약에 유관되며 사람의 생과 사도 기의 집합과 흩어짐에 있다고 합니다. 이는 만사만물이 생존을 의지하는 기본조건입니다.
전하는데 의하면 당태종 리세민은 제위에 등극하기 전에 일찍 그처럼 천하를 얻으려고 생각하는 규염객과 바둑을 두었다고 합니다. 규염객은 먼저 네개의 별자리를 점하고 나의 네개 바둑돌이 사방을 차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리세민은 침착하게 천원에 바둑알을 하나 답례하면서 나의 바둑알이 천곤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규염객은 종래로 있어본적 없었던 기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중원을 쟁탈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바둑에서도 졌음을 승인했습니다.
바둑으로 싸우는것은 생명의 기를 주는 쟁탈이며 바둑에서 기점은 인류가 생존공간을 쟁탈하는 상징입니다. 바둑을 둘 때 흑백 쌍방은 언제나 가능한 수단을 채취하여 대방의 생존의 기를 억제시키거나 멸절합니다. 우아하고 탄성이 넘치는 바둑의 형상은 기류를 거침없이 펼치고 생명의 활력을 부여합니다. 악렬한 바둑형상은 서로 충돌되는 기를 응집시켜 사람에게 생기없고 음침한 감각을 줍니다. 기를 기본으로 하는 바둑의 이런 법칙은 바로 중국의 전통적 우주관의 체현입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바둑의 형세를 전투의 국면같다고 여겼습니다. 1천여년전에 위자건이라고 부르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출정하여 침범해 오는 적군을 응전했습니다. 대전이 눈앞에 닥쳤는데 종일 바둑만 두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황제는 그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장군께서 토지신과 곡신을 중히 여기고 국가의 중탁을 저버리지 말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결과 위자건은 적군을 크게 패배시키고 탁월한 군사재능을 나타냈습니다. 개선하여 돌아온 후 위자건은 황제에게 제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종일 바둑을 둔것은 바둑판을 전쟁터로 비했기 때문입니다. 바둑의 도리와 용병의 도리가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둑알을 사병으로 대체해 병사와 진지를 포치했습니다.
현대바둑은 스포츠의 승부 싸움입니다. 스포츠의 경쟁과 기술성을 체현합니다. 바둑을 두는 과정도 역시 하나의 기술과 심리를 겨루는 과정입니다. 중국문화 정수중의 하나로 되여 바둑은 이미 국가의 대문을 걸어나가 해외에 전파되였습니다. 바둑을 두는것은 또 손대화라고도 부릅니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손으로 입을 대신해 무성중에 바둑을 두는 자의 내심속의 넓고 드높은 기세를 체현합니다. 이는 일종 무성의 교류이며 매 하나의 묘수는 모두 상대에게 무성의 말을 보냅니다. 손대화는 바둑이 가지고있는 일종 문화를 포함한 기본정신의 대화성을 구비했습니다. 대화는 역시 바둑이 일종 관용성을 구비하고있으며 한 판의 바둑국면에 늘 네속에 내가 있고 내속에 네가 있는 화평공처의 태세를 나타내고있습니다.
바둑은 일종 마음과 마음의 교류이며 상대는 적이면서도 또 친구입니다. 완미한 바둑국면은 쌍방의 끊임없는 지혜의 대결속에서 최종적으로 화목에로 나갑니다. 중국의 문화가 력사적으로 근면하게 추구하던 경계는 바로 화목입니다. 바둑은 일종의 예술로 직각 령감 깨달음을 숭상하며 하나의 창조적인 사유입니다. 때문에 바둑의 우아함은 어떻게 실을 두는가에 있지 않고 천변만화속에서 심령이 깨닫는 허에 있습니다. 이런 유미경계의 추구는 바로 고대인들이 무엇때문에 바둑을 예술범주에 인입시켰는가 하는 원인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바둑은 중국의 예술정신과 서로 통하며 중국의 고대철학과 뜻이 일치합니다. 바둑은 중국전통 문화중의 지위를 체현했습니다. 삼백고기 일방목평 보통사람들이 보는것은 승부이지만 선비가 보는것은 우아하고 고상한 정취를 즐기는것이고 문인이 보는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지혜로운자가 보는것은 도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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