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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잔등은 학생들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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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2-03-29 08:49| 조회 :2,67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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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잔등은 학생들의 다리


초봄시절, 추위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들에 핀 유채꽃만이 봄날이 사천하조에 찾아왔다는걸 알리고 있었습니다. 룡가촌 사천하조는 중경시수산현보안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대략 4,5십호의 인가가 살고 있고 인구는 3,4백명인데 어느모로 보나 한낫 평범한 산촌마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건운 /(묘족)보안향중심학교 교장:이 소조로부터 보안향 관할구에 있는 그 어느 학교까지 모두 15리이상의 거리를 상거하고 있습니다. 마을과 제일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 가려해도 십여리의 산길을 걸어야만 하는데 길마저 가파로와 다니기가 매우 힘듭니다.

[해설]:룡가촌은 보안향학구에 속하지만 평균 3,4시간씩 걸리는 산길이 외계와의 련계를 가로막고 있었고 아이들이 지식을 추구하는 희망마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마을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사천하를 바라보게 되였습니다. 사천하 맞은켠기슭에 소학교 하나가 있었는데 십분도 안되는 거리를 상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경은 두개의 행정구역관할에 속하고 거기에 사천하도 천연병풍마냥 사람들의 기대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주건운]: 1987년에 현 교육위원회의 동의를 거쳐 호남성보정현 패목소학교와 협의를 달설하였는데 보안향 룡가촌 사천하조의 40여명 학생들이 패목소학교에서 공부할수 있다는 협의였습니다.

[해설]:하천만 넘으면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수 있겠습니까?

635712752_904408fd_2007620124315159_2.jp왕환장 (토가족) 촌민:해마다 봄이되면 물이 붇는데 10월이나 11월에 가서야 물이 줄어듭니다. 봄이면, 지금처럼 홍수가 시도때도없이 오군 합니다.

 [해설]:1987년,사천하조에 집이 있는 민반교원 석원영은 중경학생이 호남성에서 학교다니는 교환조건으로 패목소학교에 파견되여 교학하게 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학생들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는 일은 그의 중요한 일과으로 되였습니다.

녀[석원영]:저는 헤염칠줄 모르기에 학생들을 거느리고 건너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저의 남편이 “일부 학부형들도 도와줄수 있소.물이 옅을 때엔 애들을 업고 건너오. 만일 물이 불으면 내가 도와주겠소.”라고 말하여 나도 그러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또 “돌아올 때 물이 불어 건너오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오, 일이 끝나면 내가 마중가겠소.”라고 말했습니다.

 [해설] :석원영의 나이는 50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이곳 사람이 아니였는데 사천하조에 시집온 후부터 패목소학교에 파견되여 교원사업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전체 2학년을 가르치는외에 담임교원까지 겸하고 있었습니다.

[해설 및 동기자막]:농촌학교의 교원사업은 언제나 힘들었습니다. 석선생님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니만 먹고 점심시간에 늘 숙제를 수개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보도를 해주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매일마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변함없이 학생들을 거느리고 물을 건너야 했습니다.사천하의 이 구간에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를 막론하고 석선생님의 잔등은 학생들이 의지할수있는 유일한 “다리”로 되였습니다.

 [해설]:1년내내 학생들을 거느리고 물을 건넜기때문에 석선생님은 눈을 감고도 강기슭까지 얼마만한 거리가 남은걸 알수있었습니다. 그가 넘어진 차수는 얼마인지? 흘린 피 또한 얼마인지? 그 누구도 알수없습니다. 한기 또 한기의 학생들이 이 하천을 건너 산밖의 드넓은 세계에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남은것은 다리에 남은 다시는 없어지지 못할 상처자욱이였습니다. 아지도 석선생님은 물을 건널 때마다 그와 학생들이 서로 념려하던 정경들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녀[석원영]:아마 1989년이였습니다. 하학하였을때까지는 큰물이 아직 오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위는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제가 학생들을 거느리고 물을 건널 때, 5,6학년 고급학년학생들은 바지와 옷을 벗고 물을 건넜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고급학년 학생들이 하나씩 업고 건넜습니다.

마지막 학생을 업었을 때 큰 물이 불시에 닥쳐왔습니다. 저는 큰물이 2,3자 가까이까지 온걸 목격했지요. 뒤따라 홍수가 곧 오게 되지요. 그 시각 저도 긴장해 났습니다. 큰물이 나를 이기느냐? 내가 큰물을 이기느냐? 나도 이걸 몰랐기때문이지요.제가 기슭에서 1자정도 남았을때 홍수가 닥쳐왔습니다. 바로 이 시각 나도 마침 기슭에 올랐습니다.

[해설]:기슭에 오르자마자 거세찬 홍수가 하류로 쓸어 내려가는것을 보았습니다. 그 기세사나운 위력은 지금 생각하여도 석원영으로 하여금 무서운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후로부터 매번 물을 건느기 전에 그는 하천의 물상황에 대해 더욱 주의하게 되였습니다.

[해설]:석원영의 남편 왕환림은 평범한 농민이였습니다. 안해가 학생들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는 일이 신고스럽다는것을 알고있는 왕환림은 주동적으로 대부분 가정일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안해가 위험한 상황에 복착한후부터 매번 물이 불을때마다 그는 곡식담는 큰 말로 석원영과 학생들을 건너다주고 데려오군 하였습니다.

왕환림:큰물이 질때면 확실히 시름이 놓이지않습니다. 안해만 근심되는것이 아니라 이 많은 학생들의 안전도 근심되였습니다. 안해가 학생을 업어야 하는데 바로 이 점이 근심스럽습니다. 만일 일이 생긴다면 둘 다 위험하니깐요. 이건 실말입니다.  

[해설]:마을어린이들을 위하여 왕환림과 기타 학부형들은 짬만 있으면 강가에 나와 돌층계를 다시 한번 바로잡아 놓군 하였습니다. 그들이 건너는데 더욱 편리하고 더욱 안전하게 하는것이 목적이였습니다.번마다 그는 새 돌을 옮겨다가 큰돌 웃켠에 세심하게 놓군 하였습니다.

 [해설]:석원영은 사천하에서 18년이나 학생들을 업었습니다. 맨 처음 업혀다니던 많은 학생들은 이미 자라서 어른이 되였습니다. 지금은 그 학생들의 자식들이 또 석선생님의 등에 업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석원영으로 하여금 기쁘고 위안감을 느끼게 하는것은 이 18년간 한 어린이도 안전사고가 나지않았다는것입니다. 또한 사천하조 적령기아동들의 입학률도 장기적으로 100%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녀[석원영]:저는 원래 신체가 아주 건강했습니다. 학교시절에 장거리 운동원이였는데 신체가 튼튼하였습니다.

[해설]:비록 겨울에 얼음이 얼어드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강물은 뼈를 에이는듯 차거웠습니다. 장기간 강을 건너 다보니 석선생님의 신체는 엄중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녀[석원영]:제가 자주 아이들을 업고 강을 건넜기때문에 신체가 이렇게 되였습니다. 물은 차고 하루에 여러번씩 건너야 했지요. 어떤때엔 뼈를 에이는듯 물이 차거웠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의 이쪽 발이 점차 아파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아팠는데 갈수록 엄중해졌습니다.일주일이 지나 심하게 아파나면서 교학할 때 서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설수없게되자 저는 의자에 앉아 교학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 앉아있기도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점심까지 교학하고나서 저는 앉지도 못하게 되였습니다.

[해설]:이리하여 석원영은 교장한테 청가를 맡았습니다. 다른 교원을 자기대신 대과하게 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평시에는 반시간이면 갈수있는 길을 그는 3시간 들여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녀[석원영]:병원에서 층계를 올라야 하는데 오를수가 없었습니다. 후에 한 의사가 나를 부축하여 병실로 가서 검사하여주었습니다.

[해설]:진단결과 석원영은 엄중한 풍습병이여서 입원치료를 받아야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패목소학교에는 교원이 모자라다나니 만일 그가 입원하면  교학진도에 영향이 끼치게 되였습니다.

녀[석원영]:그가 나보고 어디에서 사업하는가고 물어서 나는 패목소학교 교원이라고 알려주었지요. 그는 또 학교에 의사가 있는가고 묻더군요. 나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약을 사가지고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저 약만 사가지고 돌아와 주사를 맞았습니다.

[해설]:주사를 맞은 다음 석선생님은 또 절뚝거리며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그날, 그는 학교에서 하루 묵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루가 일주일이나 될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녀[석원영]:학교에서 하루밤 자고난 그 이튿날에 저는 고꾸라졌습니다. 일어설수가 없었습니다. 하는수없이 학교에서 일주일이나 있었습니다.

진의건 /(한족) 패목소학교 교원:제일 엄중할 때, 그는 침대에서 내리지도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갈수 없어 학교에서 주숙했습니다. 위생실에 다닐때에는 녀교원이 여럿이 업고 다녔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제가 침대앞까지 가져다 주었지요. 아파나기 시작하면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서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해설]:석선생님은 일주일간 학교에 있으면서 매일 다른 교원과 학생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교학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그는 더는 지탱해내지 못했습니다. 하는수없이 남편한테 업히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녀[석원영]:집으로 돌아 올때, 걸을수 없었기에 남편이 저를 업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업히울수마저 없었습니다. 한 다리가 굽어들면 죽을듯이 아팠지요. 하는수없이 남편이 나를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 드러누웠는데 옹근 한달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해설]:병상에 누운 석원영은 자기의 학생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수업진도가 걱정되였고 자기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을가봐 근심되였습니다. 더우기 그는 자기가 이렇게 드러누우면 아이들의 강넘을 다리가 끊어질가봐 걱정되였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그리고 있는 동시에 학생들도 자기의선생님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특히는 매일 그한테 업히워다니던 학생들이 선생님을 더욱 그리워했습니다.
]녀[석원영]: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들이 돈을 모아가지고 저를 위문한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누워있는 저를 보고 그들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기에 우리를 배워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이 가르쳐도 매한가지라고 타일렀습니다.

[해설]:아무리 좋은 배라 하더라도 물이 샐 때가 있고 아무리 견고한 다리라 해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장기간 물에 젖으며 강을 건너다닌 사람이야? 석선생님은 한달넘게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의 왼쪽다리는 줄곧 움직일수 없었고 오른다리마저 욕창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물이 불어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침대옆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해설]:천사는 별하늘에 속하고 선생님은 교단에 속합니다. 그러나 당시 석선생님의 마음속에서는 이 교단이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아득히 멀고 높아 보였습니다.

녀[석원영]:후에 호남성의 령도와 학부형, 그리고 중경에 있는 령도와 학부형들이 모두 저를 병문안 하였습니다. 령도들은 많은 의사선생을 저한테 보내여 병을 보아주고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저의 집에까지 온 의사만하여도 세분이나 됩니다.

[해설]:석선생님이 학생들을 너무나 그리워하여서인지? 아니면 학생들의 관심이 지극하여서인지? 질병을 전승하려는 석선생님의 신심은 더욱더 굳세여졌습니다. 한달넘게 누워있던 석선생님은 드디여 또다시 일어서게 되였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하여, 마음속의 그 그리움을 위하여, 신체가 회복되자 석선생님은 또다시 사업에 뛰여들었습니다. 학교에 갈 때나 돌아올 때면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업고 강을 건넜습니다. 다만 풍습이란 그 고질이 종종 재발하군 하였는데 이는 그를 괴롭히는 마음의 병으로 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이 아이들을 외부의 드넓은 세계로 내보내는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였습니다.

사천하의 수위가 올라가 학생들이 학교로 못가게 될 때마다 석선생님의 집뜨락은 학생들의 림시교실로 되였습니다.

1999년,사천하에 마침내 다리가 준공되였습니다. 이 다리는 중경시와 호남성정부에서 공동으로 투자하여 건축한것이였습니다. 다리가 준공된 후로부터 룡가촌의 학생들은 다시는 물에 젖으며 강을 건늘 필요가 없었습니다. 석선생님에게 있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석선생님은 의연히 어린 학생을 업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소륜병은 석선생님 학급의 불구자 학생인데 석선생님의 잔등에 업혀 학교에 다닌지 이미 5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녀[석원영]:그는 천성적으로 불구였는데 지력에도 좀 장애가 있습니다.하여 그는 학전반에서 2년 다니고 1학년도 2년 다녔습니다. 지금은 2학년에 다니게 됩니다. 이러다나니 학전반부터 제가 업고 다녔습니다. 그의 부모도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면 업어다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농망기에는 제가 이렇게 업고 다닙니다.

[해설]:5년동안 소륜병의 키는 날따라 자랐습니다. 그러나 석선생님은 의연히 매일마다 그를 업고 학교로 다녔습니다. 그는 “저 아이가 얼마나 큰 성취를 거두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식을 더많이 배워 앞으로 잘 살기를 바랄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석선생님은 오래잖아 50이 됩니다. 몇년후이면 그는 정년퇴직하게 됩니다. 퇴직하기전까지 그는 계속하여 소륜병을 업고 학교에 다닐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유일한 희망이라면 자기의 학생들이 모두 미래에 전도가 있어 고향에 더 많은 다리를 건설하고 더 많은 일을 하여 앞으로의 생활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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