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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 거상 호설암의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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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4-06 09:31| 조회 :2,16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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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가에 대한 호설암의 공헌에 감사드리기 위해 좌종당은 호설암을 데리고 북경에 갔다. 그는 자희태후가 호설암을 포상하기를 희망했다. 호설암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좌종당과 함께 북경에 가는건 좋은 일인데 호설암은 어이하여 이처럼 고도로 긴장해 하였는가? 조정 관원들은 모두 자희태후가 변덕스러워 기분이 좋으면 상을 내리고 기분이 잡치면 사람죽이는걸 알고 있었다. 북경에 가는것이 복인지? 아니면 화인지? 호설암은 짐작할수 없었다. 하여 그는 신중하게 모든것을 충분히 준비하였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이미 호설암에게 리련영이 자희태후의 신임을 받고있으므로 리련영에게 뢰물을 주면 자희태후의 고비를 넘을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호설암의 례물을 받은후 리련영은 호설암을 방조하였겠는가? 변덕많은 자희태후는 또 어떻게 호설암을 대해주었겠는가?


호설암은 항상 자기가 국가와 좌종당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여겼습니다. 호설암을 확실히 좌종당을 많이 도왔습니다. 좌종당도 그에게 푸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좌종당은 줄곧 호설암을 제발시켰습니다. 호설암의 관직은 실지 권리가 있는것이 아니였는데 2품으로부터 1품으로 되였습니다. 호설암이 좌종당을 만나기 전에는 3품밖에 안되였습니다. 여기에서 좌종당이 그를 제발시킨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실 좌종당이 호설암을 제발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좌종당 본인은 제발시킬 권력이 없습니다. 이 권력은 자희태후에게 있었는데 자희태후는 변덕많은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기분이 좋으면 무엇이든 될수 있는데 기분이 잡치면 아무것도 안되였습니다. 때문에 좌종당은 호설암을 제발시킬 일은 마음속에 두고 있으면서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남을 방조할때 앞에서 응낙하지 않습니다.진실로 도와 주려는 사람은 상대방의 요구를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기회를 기다립니다. 이런 사람이 진심입니다. 좌종당도 적극적으로 호설암을 도우려 하였습니다. 하여 그는 이 일을 마음속에 두고있었습니다.

한번은 좌종당이 북경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호설암에게 함께 갈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북경에 기쁜 심정으로 갑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였습니다. 북경으로 간다는 말을 듣자 호설암은 몹시 긴장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북경에 가서 어떤 후과가 있게 될지 몰랐습니다.

북경에 간다는 소식을 듣자 호설암은 수하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북경에 가면 길흉을 짐작하기 어려운데 미리 준비하는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전에 미리 준비하다”입니다.만일 준비가 없이 곤난에 봉착하면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사람입니다. 그는 한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면서 필요할 때에는 재산을 버리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물어봅시다. 돈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목숨이 중요합니까? 돈을 만히 가지고 물에 빠졌을때 돈을 쥐겠습니까? 아니면 나무를 잡겠습니까? 당연히 나무를 잡습니다. 이때 누가 “구해줄테니 돈을 몽땅 달라”고 하면 아까와하지 않고 줍니다. 하지만 기슭에 올라오면 돈준걸 아쉬워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모순됩니다. 이걸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 합니다. 호설암은 돈을 얼마 쓰던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돈은 없으면 다시 벌수 있어도 목숨은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경에서 그는 자희태후가 자기를 접견하기를 기다리기만 하였겠습니까? 아닙니다. 호설암은 머리를 짜내며 궁리했습니다. 좌종당이 자기를 보호해주는 외에 자기도 무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그는 골동품점에 가서 값진 물건을 샀습니다. 누구를 주려고 샀을가요? 리련영에게 주려했습니다. 무엇때문에 리련영에게 주어야 했습니까?

자희태후가 자기에게 무슨 례물을 준비했는가고 물을수 있습니까? 그럴리 없습니다. 준다해도 그는 진귀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호설암은 골동품점에 갔습니다. 호설암은 선덕화로를 샀습니다. 누구에게 주려고 샀을가요? 리련영에게 주려고 산것입니다.

리련영은 자희태후의 측근 환관이였다. 리련영이 자희태후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기에 리련영에게 잘 보이면 자희태후의 고비를 넘길수있다는것을 호설암에게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자희태후는 호설암을 소견했습니다. 호설암도 고분고분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자희태후는 호설암을 낮잡아 보았지만 좌종당의 체면을 보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방이 자기를 공손히 대해주면 자기가 대단해서 그런가고 생각합니다. 기실 아닙니다. 그건 소개한 사람의 면목을 보고 그런겁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희태후는 “자네 무슨 띠인가?”고 물었습니다. 호설암은 자기가 양띠라고 대답했습니다. 자희태후는 “그렇구먼, 나도 양띠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희태후는 또 호설암에게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고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자기에게 무엇을 갖고싶은가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합니까? 호설암은 이면에서 일류였습니다. 호설암은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여 제가 장사를 잘할수 있으면 만족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건 모두 겉치레만 한 말입니다. 실말이 아닙니다. 그럼 중국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속인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그럼 틀렸습니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좌종당이 옆에 있고 자희태후가 우에 앉아있는데 호설암이 아무리 담이 크다해도 거짓말을 못합니다. 누굴 감히 속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걸 잘 료해하지 못합니다. 호설암은 그저 자희태후앞에서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온것이던 아니던간에 이렇게 말할수밖에 없고 이건 자희태후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라는 뜻입니다. 

 무릇 중국사람들의 일은 대답이 하나뿐인데 바로 합리하면 좋고 합리하지 못하면 나쁩니다. 이처럼 간단합니다. 솔직하지 않은것이 좋습니까? 합리하면 좋은거고 합리하지 못하면 나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완전히 적라라하게 말한다면 좋습니까? 합리하면 좋은겁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만일 얼버무리며 어떤 일을 말하지 않는다면 좋습니까? 합리하면 좋은겁니다.

중국사람이 사람을 죽으라해서 죽는다면 바보입니다. 죽으라고 한것은 죽지 말라는 뜻인데 정말 죽으면 어쩝니까? 때문에 많은 말들을 외국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류용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합니까. 무엇때문에 우리는 류용을 탄복합니까. 류용의 주인 건륭황제가 자기를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황제가 신하를 죽으라고 하면 신하는 반드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류용은 확실히 대단했습니다. 그는 “예. 알았습니다.”고 대답하고는 주방에 들어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수 있는가를 궁리했습니다.

나중에 꾀가 생각나 그는 목욕통에 들어가 온몸은 적셨습니다. 주방에서 나올때 그는 죽은 시체처럼 두발 모아 뛰면서 나왔습니다. 건륭황제는 대노하여 어찌하여 죽으라는데 죽지 않았는가고 질책했습니다. 류용은 자기가 죽었다가 한사람한테 욕을 먹고 나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건륭황제는 누구한테 욕을 먹었는가고 물었습니다. 류용은 굴원한테 욕을 먹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건륭황제는 허튼소리 친다면서 굴원이 어떻게 욕하던가고 물었습니다. 류용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굴원은 ‘나는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해 강물에 뛰여들어 죽었네. 자네는 그처럼 훌륭한 황제를 섬기면서 어찌하여 죽는가? 어서 돌아가게.’라고 욕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건륭황제는 “돌아오면 좋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사람의 지혜입니다. 어찌 죽으라면 죽을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모두 서방의 표준으로 중국사람을 대하면서 호설암이 실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그자리에서 누가 감히 실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날 좌종당이 옆에 있고 자희태후가 우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호설암에게 묻는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 두사람이 “이번에 와서 무얼 갖고 싶은가?”고 묻는데 호설암이 “내가 조정을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장려를 주시오.”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건 실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만일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면 서태후는 리련영을 시켜 그를 쫓아버렸을겁니다.

서태후도 좌종당이 아무 연고없이 호설암을 대리고 온것이 아닌걸 알고 있었고 좀 혜택을 주라는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아도 짐작할수 있습니다. 일단 말을 꺼내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서태후는 무엇을 주겠다고 담보하지도 않습니다.그는 리련영에게 “무엇을 장려하면 좋은가?”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리련영의 작용이 나타납니다. 만일 리련영이 “태후께서 친히 접견만 해도 최고의 영예입니다. 무슨 상이 필요합니까?”고 말했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리련영도 무엇을 주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바보가 아닙니다. 만일 바보였다면 리련영은 언녕 쫓겨났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무엇을 주라고 서태후에게 말했다면 서태후는 “도대체 네가 결정하니? 아니면 내가 결정하니? 너는 결정권이 없다. 냉큼 나가지 못해?”하면서 당장 반목합니다. 리련영이 그처럼 오래 살수 있은데는 자기의 수완이 있었습니다. 리련영은 “태후께서 아무거나 장려해도 괞찮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뜻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말길을 잘 알아듣습니다. 아무거나 주어도 된다는것은 청나라를 주어도 되고 서태후의 자리를 주어도 된다는걸 표시합니다. 서태후도 말귀를 잘 알아 듣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도 호설암이 리련영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말을 수다하게 하지 않아도 말뜻을 알아 듣습니다. 서태후는 “그럼 좋네, 자네에게 약간 상을 내리지.”라고 했습니다. 이 “약간”이란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강소, 강서, 절강, 복건 이 네개 성의 세금대리권이였습니다. 이 네개 성의 세금액이 얼마겠습니까? 다른걸 제외하고 호설암의 전포에 저축만해도 대단했습니다. 이리하여 호설암은 큰 수확을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도 좌종당이 무엇때문에 호설암에게 북경으로 가자는 소식만 전하고 다른건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가를 깨달을수 있을겁니다. 이래야만이 호설암의 잠재력을 격발시켜 일을 원만하게 할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말이 많으면 부하는 적게 하고 주인이 아무말도 안하면 부하는 많이 궁리하게 되고 각 방면을 빈틈없이 돌보게 됩니다.
좌종당의 령도능력은 대단했습니다. 뜻인 즉 “내가 너를 한번쯤 도와주는건 되지만 전부 나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럼 나는 지쳐죽을거다. 내가 도와주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과연 아주 성공적이였습니다.

이건 서태후가 호설암에게 준것입니다. 그럼 좌종당은 그에게 무얼 주었겠습니까? 좌종당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자원이 없는데 무얼 줄수 있겠습니까? 좌종당이 줄수 있는것은 사업뿐입니다. 때문에 좌종당이 호설암에 대한 가장 큰 은혜는 바로 호설암에게 부단히 자기를 표현할 기회를 준것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어떤것을 포함했겠습니까? “싸우겠는데 량식이 부족하다. 무기와 탄약이 모자라다. 약품이 모자라다.” 좌종당 끊임없이 이런 요구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나는 이미 너에게 혜택을 주었다. 내가 요구하지 않으면 난 조정에 미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좌종당은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호설암이 대단한것은 그가 모든 요구를 승낙하고 또한 모두 출중하게 완성한 점입니다.

이렇게 되니 좌종당의 심리부담은 더욱 커졌습니다. 비록 자희태후에게 천거하여 호설암에게 리득을 얻게 하였지만 호설암이 이렇게 자기에게 계속하여 끊임없이 물자를 지원해주니 마치 자기가 호설암에게 빚진감이 들었습니다. 하여 좌종당은 호설암에게 또 무슨 요구가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생각밖에 호설암의 요구가 큰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호설암은 좌종당이 보낸 사람이 그에게 “좌대인이 자네에게 또 무슨 요구가 있는가고 물어보라고 하였네.”라고 말하자 그는 “저는 아무것도 갖고 싶은것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저에게 많은것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될수 있다면 저는 황제가 하사한 노란마고자를 입고 싶습니다.” 호설암의 요구는 간단한 한마디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구는 좌종당을 골치 아프게 했습니다. 청조의 규정에 따르면 노란 마고자는 오직 황제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과 황제의 가족 혹은 조정에 특별히 큰 공헌이 있는 사람들만이 입을수 있었습니다. 붉은 모자는 얻기 쉬워도 이 노란 마고자는 특별한 영예로써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노란 마고자는 오직 자희태후가 수여하다보니 누구도 감히 청구하지 못했습니다.

호설암이 이 요구를 제게하자 좌종당은 결심을 내리고 그에게 노란 마고자를 얻어주려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간단하게 한번 청시해서 자희태후가 동의한다고 여기면 잘못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것처럼 중국사람들은 한가지 일을 할때 우선 포석부터 해놓습니다.좌종당은 포석부터 해놓았습니다. 그는 공친왕을 만나 이 일을 부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근본 부탁도 하지 않았을거네. 호설암도 나에게 이런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았네.” 중국사람은 모두 이렇습니다. 자기도 말하지 않고 상대방도 말하지 않으면 자기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공친왕는 이 말을 듣자 곧 “내가 방법을 강구해 보겠네.”라고 말하면 속임수에 든것입니다.

두번째에 만나서 좌종당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에 자네밖에 부탁하지 못하겠네. 다른 사람은 근본 안되겠네. 그래도 자네가 나를 동정하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거절할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기회를 보아가며 기세를 조성해야 합니다.기세가 조성되면 가로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면 모든것을 수습한것입니다.

좌종당은 포석을 여러번 하고 기세도 여러번 조성하여 나중에 마침내 서태후를 설복했습니다. 여기에 물론 공친왕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국사람들의 많은 일들은 기실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보다싶이 아무일이나 마지막에 순리롭게 되는것은 대부분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도운 덕분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늘 한사람만이 자기를 도와주었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는데 이러면 경상적으로 미움을 사게 됩니다. 좌종당은 끝내 호설암에게 노란 마고자를 얻어 주었습니다. 호설암은 날마다 그 마고자를 입었겠습니까?

만일 호설암이 매일마다 그마고자를 입고 다녔다면 그는 일년도 못살고 목숨을 잃을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눈꼴사나워 꼭 성가시게 굴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은 얻기 힘든 귀중한 물건은 숨겨두고 자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호설암도 총명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일년에 한번만 입었는데 바로 정월 초닷새날이였습니다. 이날 호설암은 그 마고자를 입고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제가 이 마고자를 있게된것은 당신들의 덕분입니다. 제 한사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저는 당신들앞에서 입은것은 이 영예가 우리 모두의것이라는것을 표시합니다. 내가 입으면 당신들이 입은것과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직원들은 좋다고 하면서 더 열심히 일합니다.

한 물건이 효능이 있는가 없는가는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렸습니다. 그 본신이 효능이 있는것은 아닙니다.만일 유용하게 사용하면 효능이 있고 잘못 사용하면 반대로 시끄러움을 가져옵니다. 무엇때문에 호설암은 정월 초닷새날에 입었겠습니까? 바로 그날이 새해에 개업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일년에 제일 길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던간에 모두 시기가 좋으면 효능이 크고 시기가 나쁘면 효능이 없다는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호설암은 노란 마고자가 있은후 내심이 편안하여 만족을 느꼈겠습니까?

만일 호설암이 정말 바라는것이 없이 만족했다면 우리는 “이사람이 효성이란 모르는구나. 어머니를 념두에 두지도 않는구나.”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중국사람들은 이상합니다. 한사람이 모든것을 얻게 되면 사람들은 이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였는가를 봅니다.
자기가 이처럼 발달하게 되자 어머니에게 “고명부인”이란 칭호를 구해주려 하였다. 하지만 이 칭호는 자희태후가 친히 봉하는것이였다. 호설암은 어머니의 “고명부인” 칭호를 쟁취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였겠는가?

그래도 좌종당이 그에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호설암을 보고 어머니가 한 좋은 일들을 써서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좌종당의 말뜻을 깨닫고 호설암은 어머니의 명예로 수십만냥을 시주하여 리재민을 구제했습니다. 이런 다음 그는 이런 사적들을 정리하였는데 도합 20여만냥에 달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상급부문에 알리려는것이였습니다. 그다음 좌종당은 또 “호설암이 비록 자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되지만 그가 늘 어머니를 념두에 두고있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는것을 발견했다”고 상주했습니다.

좌종당은 반드시 자기가 호설암과 함께 있는 시간이 오라지 않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만일 온종일 함께 있었다고 하면 자희태후는 “너희 둘은 온종일 붙어 있으면서 무얼 하니? 나를 욕하겠지?”이렇게 생각하며 의심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말할때 신중하게 고려합니다. 잘못하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므로 아주 적절하게 말해야 합니다.

호설암이 어머니에게 효도한다는 말은 자희태후를 감동시켰습니다. 자희태후가 제일 괘씸하게 여기는것이 바로 어린 황제들이 모두 효성이 없는것이였습니다. 지금 이처럼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있으니 그에게 상을 내리면 자기의 아들을 훈계하는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자희태후는 이런 심정으로 호설암의 어머니에게 편액을 주어 “고명부인”으로 봉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호설암은 얻을수 있는것을 모두 얻게 되여 더이상 바라는것이 없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자기자신에게는 유리한 점이 없었습니다. 한사람이 아무 상도 받지 못했을때에는 동료들과 아주 화목하게 사귈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상을 받게 되면 자연히 고립되고 곁사람들의 안색이 달라지게 됩니다. 호설암도 이런 압력을 받았습니다. 동업자들은 그를 눈꼴 사납게 보았고 동료들도 이상하게 느꼈습니다.

이 시기에 호설암은 인생의 최고봉에 도달함으로서 중국력사에서 유일하게 재부와 명예를 한몸에 지닌 홍정상인으로 되였다. 그러나 “사람은 유명해지는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것을 두려워한다” 그럼 호설암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득의할때 어떻게 사람들과 교제하였겠는가?

호설암의 사교방법을 분석하자면 한가지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남들이 당신에게 “자네가 사들인 주식이 올랐는가?”고 물어보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만일 올랐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그럼 자네 돈을 적잖게 벌었겠구먼.”할겁니다. 당신이 “그렇소.”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의 낯색은 금시 변합니다. 이건 무슨 원인이겠습니까?

보다싶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쯤 알고 반쯤 깨닫습니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남이 자기보다 잘 되는것을 질투하고 남이 잘되면 얼굴이 굳어진다하는데 절대 이렇지 않습니다. 본인이 대답할줄 모르기때문입니다. 례를들어 내가 주식을 사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자네의 주식이 올라 돈을 많이 벌었겠구려?”라고 물으면 나는 첫마디에 웃는 얼굴로 “내가 한턱 내지. 돈을 좀 벌었네.”라고 대답합니다.

무엇때문에 한턱 내겠다는 말은 먼저 하지않고 하필 돈번것부터 말합니까?중국사람들은 돈벌고도 한턱 내지 않는 사람을 깎쟁이라 하면서 이같은 사람과 친구로 사귈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때문에 금후에 리득을 보게되면 남들이 물을때 먼저 “한턱 내겠네. 지점은 자네가 선택하게나. 몇번이라도 되네.”라고 하면 상대방은 몹시 기뻐합니다.

호설암도 이런 심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여 그는 동료들과 리득을 함께 나누고 동업자들이 방조가 필요하면 두말없이 도와주었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자기가 리득을 보았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리득을 얻었을때 우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자기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 점을 모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호설암은 동료들에게 “리득이 있으면 우리 함께 나누고 곤난에 봉착하면 제자신만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감히 하지 못합니다.이 말을 못하는것은 행동에 옮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설암은 이렇게 했습니다. 모험은 자기가 했고, 고생도 자기가 맛보고, 리득은 남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아주 관심했습니다. 때문에 동료들은 그의 영예를 나누어 향수했습니다. 그를 질투하고 그를 헐뜯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렇다해도 호설암은 많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호설암이 순풍에 돛단격입니다. 4.50살때에 호설암은 이미 전국에서 제일 돈많은 상인이였습니다. 호설암을 매사마다 모두 잘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모두 남들을 위해 좋은일을 한것뿐입니다.

그럼 그는 자기의 집식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방조를 주었겠습니까? 그의 가족을 위해 공헌을 했겠습니까? 이것도 우리가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음 단원에는 호설암이 자기의 가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는가에 대해 강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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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이 천만냥을 들여 구입한 누에실은 모두 썩어 버리였다.회풍은행의 이미 기한이 찬 4백만냥 대출금도 리홍장에게 억류되여 갚을수도 없었으며 더욱 골치아프게 한것은 호설암이 대출할때 리자를 더 추가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자희태후는 대노하여 호설암…(2013-04-10 08:46:51)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은 몇십년간의 분투를 걸쳐 끝내 빈곤한 소몰이아이로 부터 부유한 상인으로 변모하였습니다.공적을 쌓아 명성을 떨친 호설암은 자손들에게 무언가 남기려고 거금을 들여 큰 저택을 수건하였습니다.부지가 10여무에 달하는 장방형 저택은 왜서 동북쪽 귀모퉁이…(2013-04-10 08:10:33)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 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국가에 대한 호설암의 공헌에 감사드리기 위해 좌종당은 호설암을 데리고 북경에 갔다. 그는 자희태후가 호설암을 포상하기를 희망했다. 호설암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좌종당과 함께 북경에 가는건 좋은 일인데 호설암은 어이하여 이…(2013-04-06 09:31:25)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인기글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좌종당은 청조말기 부패한 조정에서 보기드문 청렴한 장군이였다. 좌종당이 내란을 평정할때나 해군조선소를 세워 해안방어를 강화했을때나 특히는 반란을 평정하고 신강을 수복할때 좌종당의 부대에서 수요하는 급여와 보급품…(2013-04-02 10:56:52)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하루 빨리 항주를 수복하기위해 호설암은 자기의 돈으로 좌종당의 부대를 위해 군량을 구입했을뿐아니라 또 외국 은행에서 대출하여 부대에 서양총과 대포를 사주었다. 호설암의 심정은 몹시 긴장했습니다. 만일 호설암이 상첩군을 건립한후좌종당이 태평군과…(2013-04-02 10:51:29)
성의로 신용을 얻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성의로 신용을 얻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설암은 도처에서 소식을 탐문하면서 무슨 방법으로 항주성을 구할것인가고 궁리하면서 소식을 탐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좌종당의 군대가 강서에서 절강으로 쳐들어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그때 그의 부대는 구주에 주둔해 있었는데 능히 항주를 수복할수…(2013-02-18 13:30:52)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교수 증사강좌종당은 호설암에 대하여 엄격한 고찰을 거친후 많은 중요한 일들을 호설암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였습니다.얼마나 처리하기 힘든 일일지라도 슬기롭고 재치있는 호설암은 이전의 벗들을 통하여 모두 성사시킴으로 하여 좌종당의 신임을 깊이 얻게 되였습니다.항…(2013-02-18 13:27:51)
벗을 중요시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벗을 중요시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교수 증사강 태평군이 항주성을 포위공격하여 성내에는 탄약과 량식이 다 떨어졌습니다.절강순무인 왕유령은 항주성과 생사존망을 같이하려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호설암에게 위탁하여 성을 빠져나게 했는데 첫째는 구원병을 청하고 둘째는 량식을 구해오려고 한것이였습니다. …(2013-02-12 13:32:09)
화복을 함께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화복을 함께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 교수 호설암은 거두어들인 대순금 오백냥을 왕유령에게 주어 그더러 실제직무를 맡았던 관리의 결원을 쟁취하게 하였습니다.왕유령은 돈을 가지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바로 그의 소꿉친구였습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2013-02-06 08:29:06)
림기응변-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림 기 응 변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인생의 기쁜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제일 바라는것이 바로 처음으로 얻게되는 목돈입니다. 그 수량이 많고 그 얻은 경력이 전기적이여야 하는데 이것은…(2013-02-06 08:22:35)
성실을 근본으로-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인기글 성 실 을 근 본 으 로 -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광용(胡光墉1823—1885…(2013-02-05 08:20:04)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인기글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이런 계책은 전쟁터에서만 사용되는것아니라 다른방면에서도 대량적으로 사용되는데 상업에서 더욱 뚜렷합니다.송조때 남송의 수도가 림안이였는데 바로 오늘의 항주입니다. 항주에 성이 배씨라는 한 상인이 있었는데 원래 전당포와 보석가게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항주에 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력사에서 아주 유명한 한차례의 큰 불이였는데 마침 가게가 불길에 제일 강한곳이여서 거의 아무것도 구해낼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였습니다.그래도 그의 …(2013-01-04 08:58:51)
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인기글 현대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으로 전쟁터에서 순리롭게 승리를 얻을수 있을뿐만아니라 경쟁이 치렬한 상업대결에서도 이는 늘쌍 쓰는 모략의 한가지입니다.다만 이 모략의 교묘한 정도가 이미 변화발전했을 따름입니다.그럼 상업경쟁에서는 어떻게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을 활용할수 있을가요?례하면 미국에서 20세기 40년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복사기가 탄생하게 되였는데 이 복사기의 특허권은 윌슨이라는 사람이 샀습니다.이 복사기는 당시의 원가로 2400딸라였는데…(2013-01-04 08: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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