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吉林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 현대상술

본문 바로가기
전체인기글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4-10 08:10| 조회 :3,465| 댓글 :0

본문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설암은 몇십년간의 분투를 걸쳐 끝내 빈곤한 소몰이아이로 부터 부유한 상인으로 변모하였습니다.공적을 쌓아 명성을 떨친 호설암은 자손들에게 무언가 남기려고 거금을 들여 큰 저택을 수건하였습니다.부지가 10여무에 달하는 장방형 저택은 왜서 동북쪽 귀모퉁이가 조금 떨어져나갔을가요? 호설암은 또한 중약당을 한채를 지었는데 이름을 호경여당이라 달았습니다.호경여당은 호설암의 독특한 경영리념을 체현하였으며 민간에다 많은 신비한 전설을 남겨놓았습니다.백여년이 지났지만 호경여당은 의연히 그때의 풍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또한 당년의 그 규칙을 여전히 전승하고 있었습니다.호경여당의 정면에는 하나의 큰 편액이 걸려있었는데 그 우에는 <진불이가>라는 네글자가 씌여져 있었습니다.그 의미인즉 여기서 사는 물건은 진실하고 가격도 합리하다는것입니다.그러나 시장경쟁이 매우 격렬한 현대사회에서 호경여당처럼 <진불이가>를 실현할수 있을가요?


중국사람들이 일생동안 노력분투하는것은  무엇을 추구해서일가요?대체로 세가지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첫째는 자기를 위해 이름 날리는것입니다.중국사람들은 한방면으로 부모를 위해 이름날리기를 좋아하며 한방면으로는 자녀를 위해 무언가 도움을 주어 첫시작부터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마지막에는 자기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요.이는 복을 누리는것이 아닙니다.

중국사람들은 별로 복을 향수하려 하지 않으며 복을 쌓으려고만 합니다.복은 얼마라도 쌓으면 만년에 그리 고달프지 않습니다.사람들은 젊었을때는 고생을 두려워지 않고 늙은후의 고생을 무서워합니다.호설암은 가족주의를 신봉하는데 중국사람이라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중국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을 다스리는것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고 리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외국사람들이 여러번 저한테 물은것입니다.<수신,제가>로부터 일약 <치국>으로 뛰여오르니 정말로 대단한것이 아닙니까?그들을 잘 몰랐습니다.집이란 지금의 소가정을 말하는것이 아닙니다.중국사람들의 가정은 보통 3대,4대 지어는 5대가 함께 사는 대 가족인것입니다. <제가>란 가족의 사무를 잘 처리한다는것을 말합니다.중국사람들의 가족사무는 매우 복잡합니다.본댁을 제외하고도 여러 첩실이 있어서 말썽이 그칠사이가 없습니다.세대주로서 5대가족을 잘 다스린다면 나라도 잘 다스릴것입니다.

호설암은 비교적 전형적인데 돈을 벌어서 가족을 위해 호화로운 저택을 마련하였습니다.이전에는 호화로운 저택이라 감히 말을 내지 못했습니다.호설암은 집터를 보아두었는데 위치가 매우 좋았습니다.집을 지음에 있어서 집터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원보가에다 잡았던것입니다.이 거리의 이름은 매우 듣기 좋았고 네모반듯하게 생겼습니다.그는 건축사,풍수쟁이를 청하였으며 재료도 가장 좋은걸로 사놓았습니다.집 한채를 지음에 있어서 3-5년 거주할수 있을지 아니면 80-100년을 거주할수있을지를 알려면 그때에 사용한 재료를 보면 판단할수 있습니다.

그는 매우 좋은 재료를 사용했으며 건축공예도 매우 정성스럽고 세밀하였습니다.어째서일가요?집사람들에게 좋은 주거환경을 마련해주려고 한것이니 틀림이 없는것입니다.저는 이렇게 하는것을 틀린다고 보지 않으며 사람은 자기만 고려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호설암도 다른 보통 중국사람과 마찬가지이며 중국사람이기때문에 이런 관념이 있을수있고 이는 세대주로서 해야할 일인것입니다.

훌륭한 세대주란 무엇일가요?바로 어버지가 있어서 가족에게 덕을 쌓아주고 좋은 일을 해주는것을 말합니다.하기에 세대주라면 자녀를 잘 보살펴야 하며  자녀들이 제멋대로 날뛰거나 가풍을 어지럽히는것을 타일러야 하는것입니다.자식들을 상관하지 않고 자생자멸하게 내버려두면 안되는것입니다.집안에 아들이나 딸이 있다고 할때 좋게 가르치지 않으면 온가족을 해치게 됩니다.때문에 어느 누구와 척을 졌다면 매우 간단합니다.자기의 딸을 나쁘게 가르쳐서 척을 진 집 아들에게 시집보내면 온가족을 잘못되게 할수있어서 원쑤를 갚을수 있는것입니다.

그 호화저댁을 위해 호설암은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였으며 한번 고생으로 평생 편안하게 자자손손 여기서 살수있기를 바랐던것입니다.이는 매우 쉽지 않은것이며 누구도 해내기 쉽지않은것입니다.지금 항주의 원보가에 가면 그 저댁을 볼수있는데 확실히 중서문화가 어울려진 그래도 중국풍격이 농후한 건축이였습니다.

그는 북경에서 건축사를 청하여 왔고 소주의 원림을 참조하여 매우 긴 시간을 들여 계획하고 설계하여 완공하였던것입니다.그때 서방나라에서 새로운 물건들을 사들였는데 전화도 있었고 축음기로 음악을 감상할수 있어서 매우 류행을 따랐습니다.그의 저택을 <지원>이라 불렀는데 그의 부친의 호에 <지>자가 들어 있어 부친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원>이라 이름지었던것입니다. 특별히 지적해야 할것은 그의 저택은 10무에 달하며 네모번듯하게 생겼고 그중의 한모퉁이가 각이 떨어져있다는것입니다.

어째서 한쪽 귀퉁이가 떨어졌을가요?바로 그 땅 주인이 그만한 부분을 팔지않았기 때문입니다.호설암이 아무리 돈이 많고 의기양양해도 그만한 땅을 팔지않았던것입니다.그곳에 리발점이 있었는데 두 부자가 리발업을 하면서 한사코 이사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은 대대손손 여기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에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해도 팔지 않았던것입니다.

호설암이 정말로 방법이 없었을가요?당연히 방법이 있었지요.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던것입니다.여기서 그의 수양에 대해 알수있는것입니다.호설암의 저택은 그때는 설계도 잘했고 상상도 매우 좋았습니다.마지막에 일이 생긴후에는 온 집식구가 이사나갔고 누구도 감히 거주하려고 하지 못하였습니다.여기서 살고있으면 같은 죄목으로 붙들리기는 매 한가지이기에 도망가는것이 상책인것입니다.때문에 자손들에게 남겨도 거주할수도 없으며 팔아치우지도 못하는 상황이여서 그저 빈집이 될뿐입니다.

당신들이 만약 돈이 많다고 할때 이런 호화저택을 지을수 있습니까?저는 전세계의 호화주택을 다 돌아보았지만 그 운명은 비슷했으며 끝내는 유지하지 못하고 자손들에 의해 경매되기도 하였습니다.그러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을 관리할수 없었고 공손히 정부에 바쳐야 했던것입니다.제가 영국에 있을때 매우 굉장한 성새를 보았는데 이것도 끝내는 정부에서 회수하였던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어리숭하게 영국인들이 매우 의기롭다고 생각했는데 후에야 그들이 운영하기 어렵고 지어는 세금조차 낼수없는 상황이여서 정부에 바쳤던것입니다.때문에 어떠한것이든 사회에서 왔다면 결국은 사회에 되돌려지는것이며 누구도 그것을 장담하지 못합니다.지금 항주에 가보면 그 저택은 국가의 유물로 되여있습니다.

호설암은 한방면으로 저택을 짓고 한방면으로는 장래를 고려하여 산업을 남기려 하였는데 바로 호경여당입니다.오늘날 명확하게 긍정할수 있지만 호설암의 일생에 만약 호경여당이 없었다면 그저 지나쳤을것이며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것입니다.호설암이 아무리 막후에서 좌종당을 여차여차하게 좌우지한들 아무소용이 없는것입니다. 오직 호경야당이 있음으로 하여 사람들은 호설암을 생각하게 되고 이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공덕이였던것입니다.

호설암은 왜서 호경여당을 세웠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설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한 첩실이 병에 걸렸는데 도무지 낫지 않았습니다.사람들은 이를 웃음거리고 삼았는데 설기약공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약방에가서 약을 사들이고 병도 치료못한다고 말입니다.이로인해 호설암은 호경여당을 꾸렸던것입니다.둘째는 그가 선행을 베풀어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세웠다는것입니다.계절이 바뀜에 따라 많은 질병들이 류행되는데 그는 식량을 구제한외에 약도 백성들에게 많이 보내주었다고 합니다.그가 이렇게 한것은 아마 장기적인 자산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나 혹은 자기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것일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상상할수도 있지만 그가 무엇때문에 약방을 꾸렸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밖에 모르는것입니다.한 사람이 한가지 일을 처리할때 무슨 동기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은 알수 없으며 오직 그 본인만이 매우 명석할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주측할 따름입니다.허나 흥미로운것은 왜서 호경여당이라 이름지었는가하는것입니다.호설암은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지만 책속의 요점을 잘 틀어쥐였는데 이는 그의 행운스러운 점입니다.

<역경> 전문에서 오직 한마디 구절이 그의 인상속에서 매우 심각하였습니다.<적선한 집안은 반드시 경복이 따른다>호설암은 평생에서 이 말을 매우 신임하였으며 수시로 자신을 일깨우군 하였습니다.그래서 그는 약방을 세우려고 결심했고 이름을 여경당이라고 지었습니다.그의 모친은 반대하면서 왜서 하필 이 명칭을 택하는가고 했습니다.호설암은 <역경>의 한구절인 <적선한 집안은 반드시 경복이 따른다>는 말에 근거한것이기에 이는 정확한것이며 여경당이라는것이 합당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그의 모친은 옳고 그름은 자기는 알바없고 <여경> 이 두 글자를 송조때의 재상 진회가 사용한적이 있는데 그래고 쓰겠는가고 물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에 그는 얼마간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 글자는 남방에서는 회라고 발음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진회는 북방에서도 진회라고 부릅니다.진회가 일이 생긴후로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도 진회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여기에 앉은분들중에 왕회, 리회, 증회, 주회가 있으면 나서 봅시요.누구도 회란 글자는 감히 쓰지못합니다.누가 믿지못하겠으면 자기의 아들을 회라고 이름지어봅시시요.하여 그에 대한 력사는 그로서의 공론이 있으며 중국사회는 매우 공정한것입니다.어찌되였던간에 안되면 말지요.모든 장벽은 다 넘을수 있어도 백성들의 입은 막을수 없는것입니다.백성들이 말한것은 거의 인정되는것입니다.그래서 그의 모친의 한마디 말에 그대로 쓸수는 없었습니다.이 명칭을 그냥 버리기는 아쉽고 하여 두글자의 순서를 바꾸어서 경여당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가지 알려줄것은 그 세글자는 진회의 필체였던것입니다.진회의 서예는 매우 훌륭하였습니다.글씨 련습을 할때 다른 사람이 무슨 글자체인가 물으면 류공권 필체나 당원개 필체 혹은 왕희지 필체라고 하면 아무 문제도 없는것입니다.만일 누가 진회의 필체를 련습한다면 잘못되는것입니다.중국사람들의 안목에는 덕행이 안되면 필체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는것입니다.허나 호설암은 극구 그것을 믿지 않았으며 모친의 말을 들은후 명칭을 조금 수정하였지만 진회의 필체만은 그냥 쓰려고 했습니다.그후에는 귀찮아져서 안되면 말지만 조금 등한해서는 안되였던것입니다.호경여당의 네글자는 진회의 필체인데 이는 용납못할 필체였습니다.그러나 방법이 없었습니다.호설암에게 결정권이 있기때문입니다.그의 모친도 불편하면서도 이것저것 반대하고 나섰지만 정말로 더 깊이는 관할할수없었으며 그저 귀뜀해줄 뿐이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이름을 지을때 첫째는 듣기 좋아야 하고 둘째는 기억하기 쉬워야 하며 셋째는 상서로와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필연적인것입니다.지금은 듣기 좋고 기억이 쉽다하지만 상서롭지 못하면 고쳐야 하는것입니다.그래서 호경여당이라 하였던것입니다.


호경여당은 호설암이 51세가 되던 해에 지은것입니다.51세에 이런 큰 보금자리를 짓고 호경여당과 같은 업체를 만들어놓았으니 실로 간단치 않습니다.그가 기울인 심혈은 <지원>보다 호경여당에 더욱 많이 체현되였으며 건축재료도 적지않게는 자희태후에서 사들인것입니다.자희태후의 아들이 원명원을 다시 수선하려 계획하였는데 자희태후는 매우 기뻐하면서 허락하였습니다. 허나 한마디말에 수건을 중지하게 되였습니다. 어떤때는 한마디 말로 인해 전반 상황을 개변시키는것입니다.옆에서 자희태후에게 아들이 좋은 마음을 품지않고 원명원을  수건하여 그곳에서 태후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여 정사에 참여한는것을 막으려 한것이라고 하였습니다.자희태후는 그 말에 목재를 사들여놓고도 수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자희태후의 모든것은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습니다.자희태후가 한마디로 당신의 자산이 나보다 많다말인가고 하면 누구도 감히 달려들지 못하는것입니다.허나 중간에서 련계를 달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끝내는 그 진귀한 목재를 항주에 실어들이게 되였으며 호경여당을 수건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호경여당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 모습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백년 가는 오랜 점포이자 유명한 점포이기도 하였습니다.백년가는 오랜 점포는 중국력사가 유구하기 때문에 그 수량이 매우 많으며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북경에 만도 매우 많은것입니다.그러나 백년가는 유명한 점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유명한 점포로는 북방에는 동인당이고 남방에는 호경여당입니다.현재 공인하고있는 호경야당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에 백년가는 유명한 점포인것입니다.그런 유명한 점포가 되려면 유명무실해서는 안되며 진정한 그 정신이 전해져야 하는것입니다.

호설암의 정신이란 무엇일가요?(나라를 사랑하고 사람을 애호하고 본업에 충성하는것)호설암처럼 애국적인 상인은 많지 않습니다.상인들은 돈 버는것만 중시할뿐 국가대사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호설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그는 시종 애국적이였으며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였습니다.그리고 자신의 본업에 매우 충성하였는데 시종 의약업으로 인의를 베풀었으며 돈벌이를 위한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호설암은 지배인을 물색함에 있어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집에 참여하여 3년간이면 본전을 벌수있다고 장담해도 일률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후에 여수초란 사람을 채용하였는데 그가 한 첫마디가 의약업은 전당포와 다르다는것이였습니다.이 한마디말이 호설암의 마음을 움직이였습니다.그는 <우리는 반드시 어진 마음과 술책을 확보해야 하며 의약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됩니다.>고 말하였습니다.호설암은 두말없이 인차 그를 호경여당의 지배인으로 초빙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의약은 돈벌이하는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정신이 있음으로 하여 사람들의 구전도 매우 좋았습니다.중국사람은 칭송이 자자하면 인차 사면팔방에 알려지는것입니다.호경여당을 실례로 호설암의 경영모식에 대해 알아봅시다.그는 우선 약품을 베포하였습니다. 먼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약을 보내주니 자연히 인상이 깊었으며 많은 고객들에게 기초를 닦은후에 자기의 약품을 추천하였던것입니다.

그러나 상품처럼 광고를 하면서 내놓는것이 아니라 먼저는 무료로 약을 공급하였던것입니다.여러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데 만일 다른 장사가게를 꾸렸다면 기필고 본전을 회수하려 들것입니다.단지 의약에 한해서는 3년간은 결손을 보지않으면 안되였던것입니다.만약 3년간 손해볼 본금이 없다면 될수있는한 의약업을 하지않는것이 좋으며 이는 다른 장사업과 다른것입니다.호설암은 3-5년간 결손볼것을 작심하고 의약업을 경영하였는데 이는 아주 장원한 타산인것입니다.

지금은 전당강에 다리가 놓여있지만 그전에는 다리가 놓이지 않아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모두 무료로 하였습니다.새벽녘에 배를 타고 건너면 비록 비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백성들을 놓고 볼때 여전히 적지 않은 소비여서 무료로 하였던것입니다.차물이나 죽도 공급하였는데 이는 평상시에 늘 하는 일이였습니다.이런 거동은 광고를 하든 장사를 하든 비교적 실제적인것입니다.이는 확실히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되새기게 하였으며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칭송이 자자해 졌습니다.그러니 고객이 몰려오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두번째는 자기 가게의 명성을 울려퍼지게 하였습니다.지금의 여러 상점,가게의 이름들은 그리 적합하지 못합니다.하지만 호경여당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명성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항주에 가서 호경여당을 보면 일반적인 건축과 달랐습니다.이는 궁궐식이였습니다.보통 약방들을 보면  사람들이 약방이라는것을 모를가봐 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글자도 큼직하게 써놓았는데 들어가보면 확실히 약방입니다.사실 사람들이 약방에 들어갈때 심정은 그리 유쾌하지 못합니다.호설암은 이런 심정을 헤아리기에 약방에 들어온 느낌을 주지 않게 하였습니다.그의 의약당에는 복도가 있었는데 매우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사람들의 긴장한 심정을 느슨하게 해주었습니다.그리고 복도가 길게 생겼는데 가다가 피곤하면 앉아서 휴식할수있게 배치해놓았습니다.

의약당에 들어온후의 봉사도 특별했습니다.고객에게 첫마디로 무슨 약을 사려하는가고 하면 아마 놀라서 꼼짝못할것입니다.그래서 몸은 어떤지요?어디가 불편한지요?하며 관심어린 어조로 급히 서두르지 않으며 묻는다면 다른 효과인것입니다.만일 다른사람이 약방을 꾸린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무슨약을 사려는가고 할것입니다.호설암은 고객들이 약을 사지 않고 들어와도 환영을 표하였으며 차물을 권하기도 하였습니다.다른 약방에서는 아마 그렇게 환영을 표하지 않을것이며 고객을 불러들이는것이 약을 팔기위해서고 그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 일것입니다.그러기에 머리속에 돈밖에 없는 사람은 한평생 큰 돈을 벌수가 없는것입니다.

호설암의 정신은  호경여당에서 잘 터득했을것입니다.그것은 바로<어진 술책>인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업종에 종사하든지 반드시 사람을 애호하고 대중을 애호하는것을 근본으로 해야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봉사업인것입니다.

고객을 봉사하는 마음가짐은 호설암이 언녕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많은 사람들도 이렇게 할수있는데 어째서 호설암만이 상업계의 성인으로 불리는것일가요?사실 매우 간단한것입니다.결국은 그의 수양에서 귀결되는것입니다.상업경쟁에서 처음에는 상품이 좋고 가격이 합리하며 가게가 화려해야 합니다.그러나 결국은 경영자의 수양에 의해 결정되는것입니다.그는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데 이는 매우 고귀한것입니다.그는 절대로 언행이 다르지 않았으며 성심을 다하였습니다.그래서 외계에서는 그를 보고 호선생,호협객,호재신이라 불렀습니다.

호설암은 죽은지 오래되였지만 지금 항주에 가서 호설암을 거론하면 모두 그가 매우 대단하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이는 그가  확실히 매우 훌륭한 본보기를 남겼다는것을 말해줍니다.한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죽은후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것이며 마음속으로부터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평판받는것입니다.호설암은 이 방면에서 매우 잘해내였던것입니다.

어느한번 한사람이 과거에 급제했는데 너무 기뻐한탓에 정신이 잘못되였던것입니다.정말로 애석한 일이였습니다.10년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고생끝에 공명을 얻었는데 미쳐버렸던것입니다.미친사람은 고통도 모르며 그저 발광할따름입니다.그의 부모들은 정말로 마음이 아팠습니다.가문이 불행해서 그렇게 되였다고 여기였습니다.결국은 그 정신병자를 호경여당에 데리고 왔던것입니다.

호설암은 의사가 아니기에 안에 들어가 고칠수있는가고 물어보았습니다.의원은 고칠수 있다고 하면서도 맞는 약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고칠수 있는데 왜서 약이 없는가고 하니 이런 약은 만들수 없다고 하였습니다.한가지 약이 있긴 한데 독이 매우 심하였으며 잘 처리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게도 한다는것입니다.사람을 구하려다가 죽이는 꼴로 되는것입니다.게다가 관가에 소송을 당할수 있어서 할수없다는것입니다.호설암은 꼭 해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구해내려면 별수없이 아무리 소송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어들일수 없다고 해서 그만두어서는 더구나 안되는것이였습니다.이것이 바로 도의와 리익의 다른점입니다.이런 약처방은 수하사람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였습니다.이는 모험적이여서 호설암이 친히 약제사들을 모두 불러놓고 주인의 신분으로 그들에 차물을 권하면서 일일히 부탁한다고 하였습니다.그리고는 아마 그 과정이 매우 쉽지않지만 사람을 구하는것이 첫째이니 무슨 곤난이 있으면 제출하라고 하였습니다.호설암은 방법이 꼭 있을것이라고 하면서 정말로 그 과제를 돌파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여덟글자의 말은 지금까지 줄곧 전해지고 있었는데 바로<채판무진 수치무정>이라는것입니다. 그 의미인즉 원료를 구입할때 반드시 진짜 재료를 선택해야지 꼬물만한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며 약을 만드는 과정에 매 하나의 세부을 소홀히 하지 말고 반드시 매우 정확해야 한다는것입니다.그는 끝내 해내였던것입니다.<의리상제>는  그저 말로만해서는 안되며 이런 사람은 경멸을 당할수가 있습니다.

호설암의 머리속에는  사람을 구할  생각뿐이고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념두에 두었던것입니다.그 과정에서 얼마간의 돈을 버는것은 합리한것입니다.그 과정에서 너무 과분하게 돈을 벌어서도 안되는데 이는 폭리를 얻는것입니다.합리하게 리윤을 얻으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이 편한것입니다.

사람들은 호경여당의 약 판매가 잘되는것을 보고 약 사러 거진 여기로 달려오군하였습니다.다른 약방에서는 이쪽의 장사가 잘 안되는것 같으면 가격을 낮추는것으로 고객을 끌어들입니다.이로인해 호설암의 수하들은 긴장해졌습니다.부근의 약방들의 가격이 모두 내려가는데 호경여당에서도 가격을 낮추자고 제안하였습니다.호설암은 가격을 낮춰서는 안되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가격대로 였습니다.백여년전에 벌써 호설암은 <진불이가(真不二价)>를 리행하였던것입니다. 이 글자를 순서를 조금 바꾸면 <가이불진(价二不真)>이 됩니다. 만약 두가지 다른 가격이면 진짜 약을 살수없다는것입니다. 고객에게 가격을 흥정하는것이 아니라 두가지 가격을 받아들이지 말라는것입니다.

그렇다해서 절대적으로 두가지 가격을 받아들이지 말라는것은 아닙니다.이는 두가지는 다른 마음가짐인것입니다.바로 가격이 두가지면 진짜 약을 살수 없다는것입니다. 약을 사는 사람들의 보기에는 차라리 값을 흥정하지 않고 진짜약을 사는것이 가장 좋은것입니다.약을 사는데 눅은 것만 추구해선 뭘합니까?많이 먹어도 재수없을수도 있으니깐요.그래서 제가 보기엔 호설암은 사람들의 진정한  심리를 잘 틀어쥐는것입니다.

후에 그가 크게 실패하개 된 원인은 무엇일가요?바로 외국은행에서 대출할때 리자를 더 추가한것입니다.그럼 그의 최후의 결말은 어찌되였을가요?다음 강좌에서 담론해봅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현대상술 목록

Total 18건 1 페이지
현대상술 목록
중국소비자들 해외인터넷쇼핑에 열기 인기글 중국소비자들 해외인터넷쇼핑에 열기 인민페가치가 오르고 인터넷지불방식이 갈수록 편리해지면서 갈수록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인터넷쇼핑 소비군체에 가입하고있다. 중국의 《제3자 지불플랫폼》에 따르면 2012년 해외인터넷쇼핑고객 소비수치를 발표했는데 지난 한해 분유를 위주로 한 영유아식품들은 해외인터넷쇼핑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비품으로 되였다.해외인터넷쇼핑은 최근 흥행한 국제인터넷쇼핑 소비추세로 해외인터넷쇼핑의 상품가격이 비교적 실제적이고 품질이 국제와 잇닿아 있어 적지 않은…(2013-04-19 07:43:32)
자업자득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자 업 자 득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중사강교수호설암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마치 사전에 예상한것처럼 매개 일을 잘 처리해놓았으며 죽은후의 일도 매우 타당하게 안배한듯하였습니다.그럼 그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 없었을가요?그의 유감은 어떤것일가요?여기서 우리는 그가 재산을 잃었다거…(2013-04-10 09:25:59)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이 천만냥을 들여 구입한 누에실은 모두 썩어 버리였다.회풍은행의 이미 기한이 찬 4백만냥 대출금도 리홍장에게 억류되여 갚을수도 없었으며 더욱 골치아프게 한것은 호설암이 대출할때 리자를 더 추가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자희태후는 대노하여 호설암…(2013-04-10 08:46:51)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은 몇십년간의 분투를 걸쳐 끝내 빈곤한 소몰이아이로 부터 부유한 상인으로 변모하였습니다.공적을 쌓아 명성을 떨친 호설암은 자손들에게 무언가 남기려고 거금을 들여 큰 저택을 수건하였습니다.부지가 10여무에 달하는 장방형 저택은 왜서 동북쪽 귀모퉁이…(2013-04-10 08:10:33)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 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국가에 대한 호설암의 공헌에 감사드리기 위해 좌종당은 호설암을 데리고 북경에 갔다. 그는 자희태후가 호설암을 포상하기를 희망했다. 호설암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좌종당과 함께 북경에 가는건 좋은 일인데 호설암은 어이하여 이…(2013-04-06 09:31:25)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인기글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좌종당은 청조말기 부패한 조정에서 보기드문 청렴한 장군이였다. 좌종당이 내란을 평정할때나 해군조선소를 세워 해안방어를 강화했을때나 특히는 반란을 평정하고 신강을 수복할때 좌종당의 부대에서 수요하는 급여와 보급품…(2013-04-02 10:56:52)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하루 빨리 항주를 수복하기위해 호설암은 자기의 돈으로 좌종당의 부대를 위해 군량을 구입했을뿐아니라 또 외국 은행에서 대출하여 부대에 서양총과 대포를 사주었다. 호설암의 심정은 몹시 긴장했습니다. 만일 호설암이 상첩군을 건립한후좌종당이 태평군과…(2013-04-02 10:51:29)
성의로 신용을 얻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성의로 신용을 얻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설암은 도처에서 소식을 탐문하면서 무슨 방법으로 항주성을 구할것인가고 궁리하면서 소식을 탐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좌종당의 군대가 강서에서 절강으로 쳐들어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그때 그의 부대는 구주에 주둔해 있었는데 능히 항주를 수복할수…(2013-02-18 13:30:52)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교수 증사강좌종당은 호설암에 대하여 엄격한 고찰을 거친후 많은 중요한 일들을 호설암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였습니다.얼마나 처리하기 힘든 일일지라도 슬기롭고 재치있는 호설암은 이전의 벗들을 통하여 모두 성사시킴으로 하여 좌종당의 신임을 깊이 얻게 되였습니다.항…(2013-02-18 13:27:51)
벗을 중요시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벗을 중요시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교수 증사강 태평군이 항주성을 포위공격하여 성내에는 탄약과 량식이 다 떨어졌습니다.절강순무인 왕유령은 항주성과 생사존망을 같이하려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호설암에게 위탁하여 성을 빠져나게 했는데 첫째는 구원병을 청하고 둘째는 량식을 구해오려고 한것이였습니다. …(2013-02-12 13:32:09)
화복을 함께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화복을 함께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 교수 호설암은 거두어들인 대순금 오백냥을 왕유령에게 주어 그더러 실제직무를 맡았던 관리의 결원을 쟁취하게 하였습니다.왕유령은 돈을 가지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바로 그의 소꿉친구였습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2013-02-06 08:29:06)
림기응변-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림 기 응 변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인생의 기쁜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제일 바라는것이 바로 처음으로 얻게되는 목돈입니다. 그 수량이 많고 그 얻은 경력이 전기적이여야 하는데 이것은…(2013-02-06 08:22:35)
성실을 근본으로-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인기글 성 실 을 근 본 으 로 -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광용(胡光墉1823—1885…(2013-02-05 08:20:04)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인기글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이런 계책은 전쟁터에서만 사용되는것아니라 다른방면에서도 대량적으로 사용되는데 상업에서 더욱 뚜렷합니다.송조때 남송의 수도가 림안이였는데 바로 오늘의 항주입니다. 항주에 성이 배씨라는 한 상인이 있었는데 원래 전당포와 보석가게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항주에 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력사에서 아주 유명한 한차례의 큰 불이였는데 마침 가게가 불길에 제일 강한곳이여서 거의 아무것도 구해낼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였습니다.그래도 그의 …(2013-01-04 08:58:51)
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인기글 현대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으로 전쟁터에서 순리롭게 승리를 얻을수 있을뿐만아니라 경쟁이 치렬한 상업대결에서도 이는 늘쌍 쓰는 모략의 한가지입니다.다만 이 모략의 교묘한 정도가 이미 변화발전했을 따름입니다.그럼 상업경쟁에서는 어떻게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을 활용할수 있을가요?례하면 미국에서 20세기 40년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복사기가 탄생하게 되였는데 이 복사기의 특허권은 윌슨이라는 사람이 샀습니다.이 복사기는 당시의 원가로 2400딸라였는데…(2013-01-04 08:57:23)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