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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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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4-10 08:46| 조회 :3,85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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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설암이 천만냥을 들여 구입한 누에실은 모두 썩어 버리였다.회풍은행의 이미 기한이 찬 4백만냥 대출금도 리홍장에게 억류되여 갚을수도 없었으며 더욱 골치아프게 한것은 호설암이 대출할때 리자를 더 추가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자희태후는 대노하여 호설암으로 하여금 곱절로 배상하게 하였을뿐만아니라 엄히 처분하게 하였습니다.리홍장의 수하사람들은 이 기회에 저축호들을 선동하여 전국각지에 있는 호설암의 돈가게의 예금을 찾아가게 하였습니다.이렇게 대청제국의 가장 부유한 호설암이 상상외로 순식간에 여지없이 패망하게 되였습니다.큰 재난이 닥쳐왔지만 호설암은 자결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으며 랭정하게 그 국면을 수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모친과 부인 그리고 십여명의 첩실들을 잘 안치내놓고 부득이한 경우에도 궁여지책으로 크고작은 채무를 처리하였으며 될수있는한 호경여당을 보존하였습니다.심지어 자기의 후사에 대해서도 주밀한 배치를 해놓았던것입니다.호설암이 세상뜬후 백여년이 지났지만 누구도 그가 어느곳에 매장되였는지 몰랐습니다.그럼 호설암은 도대체 어떻게 판국을 수습하였으며 그리고 누가 호설암의 묘지를 발견하였을가요?지금에 와서 호설암의 실패를 어떻게 평가할수있을가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마다 일정한 반향을 보입니다.많은 사람들은 이런 지경에 이르면 자살을 선택하군 합니다.자살은 매우 나약한 표현인데 호설암은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호설암은 줄곧 일종의 리념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만약 하늘이 패망을 원한다면 그저 이 호설암만 패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련루시켜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이런 위급한 관두에 이르렀어도 그가 그 약속을 실행했을가요?그가 먼저 생각한것은 자신이 아니라 모친이였습니다.그는 모친이 매우 가엽게 여겨졌습니다.한 사람이 매우 불쌍하게 된는것은 젊어서 부모를 여의고 중년에 배우자를 잃으며 만년에 자녀를 잃는것입니다.호설암은 모친을 생각할수록 자신이 불효함을 느꼈습니다.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부모를 먼저 보낸 불효보다는 비교도 안되는것입니다.

그는 집에 계시는 로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그래서 중국에는  만약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면 시체를 입관한후 관 두껑을 두드리는 풍습이있는데 부모보다 먼저 갔으니 불효자라고 넉두리를 합니다.호설암도 자기 모친이 가엽다는것을 알고 있기에 모친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그의 모친은 언녕부터 이런 결과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친은 몇번이고 타일렀는데 너무 빨리 재부를 모으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후에 호설암이 군수품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괴로움에 모대기였으며 왜서 그런 일로 돈벌이를 하는가고 한탄하였습니다.물론 우리로서는 호설암이 군수품장사를 한다해서 틀렸다고 할수는 없습니다.그것은 그가 한 일이 그때는 나라에 유리하였기때문입니다.허나 그의 모친은 부녀자로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가족에 불길하다고 여겼던것입니다.

그래서 <지원>안에다 불당을 하나 세웠는데 여유가 있으면 늘 불경을 외웠습니다.호설암의 모친은 마음속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도리여 그를 안위하였습니다.이렇게 된바엔 차분히 처리하면 되지않겠는가고 하였습니다.그는 모친에 대해 시름을 놓게 되였습니다.그는 부인과 여러사람들을 어떻게 안치할가를 상론하였습니다.그래서 모든 첩실를 불러들여  술을 마시자고 하였습니다.호설암은 <내가 지금 이미 여지없이 패망하게 되여 알거지가 되다싶이 했으니 당신들을 여기에서 계속 머물수없고 술을 마신후 물건들을 수습하는 한편 매사람이 몇백냥의 은전을 가지고 가서 자기절로 생계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면서 당년의 조조가 생각나지 않습니까?조조도 죽음에 림박하여 웅대한 포부에 대해 말하지 않고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처첩들에게 일감을 맡아 생계를 유지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여러처첩들은 이런 상황에서 별수가 없었으며 다만 안위하는 말로 <천하에는 흩어지지 않는 연회가 없다>고 하면서 제마끔 흩어져갔습니다.이리하여 호설암의 집에는 그 본인과 모친,부인 그리고 아홉번째 첩실만 남게 되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의 수자개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아홉은 장구하다는 구와 음이 매우 비슷합니다.이상한것은 여덟번째나 여섯번째가 아니고 유독 아홉번째 첩실이 남게된것입니다.보다싶이 항렬순서를 배렬할때부터 자기가 제일 장구하다고 여긴듯 했습니다.아홉번째 첩실은 학식도 있고 교양도 있으며 례절이 밝은 녀성이였습니다.그녀는 <기왕 이렇게 시집왔으니 살아서도 당신집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당신집의 귀신이 될것이며 죽어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그리고는 아무리 궁핍해도 떠나지 않을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람은 보통 생사관두에 직면하고 리해관계가 교접되였을때만이 그 진심을 알수있는것입니다.다른 사람은 다 떠나고 이 몇사람만이 운명을 같이 하면서 호상 지지하였습니다.
호설암은 이때에도 아주 책략이 있었으며 체무를 세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중국사람들의 지혜는 바로 모든 사물에 대해 세개 등급으로 나누는것입니다.가장 돈이 많은 고객과 척을 져서는 안되는데 돈을 갚지 않으면 참담하게 되는것입니다.그중에는 대관료도 있고 대부호도 있으며 심지어는 지방세력도 포함되여 있습니다.만일 그들의 빚을 갚지 않는다면 자손들에게 루를 끼치게 됩니다.그래서 그는 례의 바르게 큰 고객들에게 본금리자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기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고있었는데 몇냥, 혹은 몇십냥씩 채권이 있는 사람도 적지않았습니다.그러나 차마 그들을 모르체 할수 없었습니다.그들도 근근히 그만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하고 있으니  모르척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못할것 같았습니다.그래서 그는 항주 부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료해하고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본금리자를 돌려주면서 이렇게라도 갚지 않으면 어떻게 편안하게 여기서 살수있겠는가고 말하였습니다.
채무액수가 중간쯤되는 고객에 대해서는 별로 방법이 없었서 뒤로 미루었습니다.이런 집들에서는 그만한 돈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생활할수 있었고 미루지 않으면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이것이 바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궁여지책인것입니다.

그럼 이런 중간부류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가요?이들도 그를 놓아두지 않을것입니다.이들은 부강돈가게에 가서 은전을 바꿔달라고 조르다가 주지않으니 호경여당에 가서 행패를 하여 호경여당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정말로 경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사실 돈가게는 돈가게와 호경여당은 별로 상관이 없었습니다.그러나 돈을 맡긴 사람들 눈에는 마찬가지였던것입니다.모든것이 호설암의 산업이였기에 여기서 안되면 저기서 받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던것입니다.그리하여 호경여당의 일을 처리하는것이 가장 까다로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정부의 세력이나 관방에서 출면해야만이 채권자들의 행위를 억제할수 있는것입니다.그래서 채권자들한테 부강돈가게에 가서 돈을 요구할지언정 호경여당과는 무관하며 여기는 영업을 해야하기에 교란해서는 안되며 과분하면 관가에 고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정부에서 그를 대신해서 이일을 처리할수 있을가요?정부의 립장이 여기에 적합할가요?분명히 적합하지 않는것입니다.하여 그는 고심끝에 한 사람을 생각하게 되였는데 바로 문욱이라 부르는 문대감이였습니다.

그는 문대감과 북경에서 알게되였는데 그때 문대감이 그의 돈가게에다 돈을 저축하면서 면목을 익혔으며 후에도 교분이 괜찮았습니다.문대감은 그의 돈 가게에 5-60만냥의 은전을 저축했는데 감히 찾아갈수 없었습니다.호설암이 항주에 있을때 여러번 북경에 있는 돈가게에 재촉하여 모든 사람들의 돈을 돌려주라고 하였는데 오직 문대감만은 감히 찾아가지 못하였습니다.그는 이 소문이 퍼져서 서태후가 알면 온가족에게 련루될가바 념려해서였습니다.

자희태후는 다른 관료들이 공개적으로 돈 자랑을 하는것을 매우 꺼려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문대감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10만냥의 은전을 자희태후 한테 헌납하였습니다.어떻게 되던지간에 우선 개인재산을 10만냥쯤 헌납하면 자희태후가 매우 흐뭇해할것이라 여기였습니다.그 당시 자희대후는 국고가 텅 비는것을 매우 근심하였으며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그냥 돈이 모자랐습니다.자희태후의 신분으로도 돈이 모자람을 느꼈으니 그때의 시국을 상상할수 있는것입니다.비록 온 천하가 그의 것이라고 하지만 돈은 모자랐으며 그는 은전이 가장 수요되였습니다.이제와서 어떤 사람이 솔선적으로 돈을 헌납하니 당연히 기뻐하게 되였던것입니다.

문욱대감은 서태후가 기뻐하는 기회를 타서 <저는 호경여당의 주주가 아니지만 돈을 얼마간 저축한적이 있습니다.저는 채권자의 신분으로 그 재산을 차압하려 합니다>고 말하였습니다.원래 자희태후는 이 일을 좌종당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습니다.이런 방식도 중국사람들의 총명한 점이라 할수있는데 네가 거느리고 네가 제발한 사람이니 착오를 범하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것입니다.그래서 모든 사건은 실제상에서 좌종당의 맡아 처리하게 되였던것입니다.

허나 문욱이 이때에 나서는것이 호의인지 흑심인지 가리기 어려웠습니다.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인것입니다.문욱은 검은 얼굴 역할을 하면서 가만히 호설암에게 호경여당을 누구에게 넘겨도 결국은 보존하기 어렵고 자기가 나서 자희태후를 설득시켜 모든 재산을 차압하겠다고 하였습니다.그리고는 호경여당을 남겨도 경영하기 어렵고 인젠 그럴만한 능력도 상실했기에 차라리 자기가 대신해서 관리하여 그 소원를 풀어주면 어떻게는가고 하였습니다.

호설암은 모든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만일 즉석에서 좋다고 하면 안되는것입니다.그러면 여러사람에게 자기네들이 짜고들었다는것을 알리는거나 다름없는것입니다.호설암은 그 호의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반드시 연기를 꾸며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래서 당면에서 그는 죽어도 내놓을수 없다고 고집하였으며 결국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서명하였습니다.

이 두사람은 배합이 정말 잘되였습니다.한사람은 극구 요구하고 한사람은 죽어도 내놓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잘 꾸며대였으며 끝내는 할수없다는듯이 서명하여 재산권을 문대감에게 넘기게 되였으며 문대감은 그 호경여당을 접수하게 되였습니다.그야말로 항주지부의 자격이 있는것입니다.

항주성에다 포고를 내붙여서 호경당은 호설암에게 속하지 않고 문욱에게 넘겨졌으며 호설암을 대신해서 관리한다고 알렸습니다.이렇게 명분에 맞게 호경여당을 보호할수 있었던것입니다.사실 오늘의 안목으로 보아도 다행히도 문욱대감이 중도에서 나서는 바람에 호경여당이 지금까지 잘 보존할수 있었던것입니다.전반 과정을 음미하고 연구해보면 우리에게 많은 계발을 주기도 합니다.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다면 호경여당은 이미 훼멸되였을것이며 빈 껍대기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호설암이 만일 호경여당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는 헛된 인생을 보낸거나 마찬가지이며 문욱에게 넘겨줌으로써 그의 소망을 완수한것과 다름없는것입니다.여러분도 이후에 항주에 가게 되면 아무사람한테 호경여당이 누구인 것인가하고 물으면 긍정코 호설암의 것이라고 대답할것이며 문욱의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그래서 호경여당을 보류한것이 호설암이 판국을  수습하는 하나의 고명한 술책이기도 하였습니다.

호설암은 마침내 이 일을 한단락 매듭을 지었으며 차분하게 국면을 수습해놓았습니다.그 당시에 호설암 자신을 안위해준 한마디 말이 바로 <재물이 가면 안락진다>입니다.정말 그럴가요?그렇게 안락하지는 못했습니다.그는 좀 늦었던것입니다.여러분도 매우 랭정하게 자신이 호설암이라면 어찌하였는지 생각해보십시요.

첫째는 그가 처리한것이 늦어졌다는것입니다.시기는 늦어지만 문대감과 함께 이 정도로 무마했다는 자체가 대단한것입니다.만약 좀 일찍히 수수료를 챙긴 일이 로출되였다는것을 알아차리면서도 보완조치를 대지 않았다면 아마 그다음 세월은 지나기 어려웠을겁니다.그때 그의 심정은 지금처럼 긴장하지 않았으며 일도 급박하게 변덕하지 않아서 좀 자유스럽게 북경행차도 할수있었습니다.이런때 북경에 갈 시간도 없으면 안되지요. 북경에 가서 누구를 찾았을가요?

어떤때는 가장 나쁜사람이 가장 쓸모있는 사람일수 있습니다.누구일가요?바로 서태후가 가장 아끼는 리련영이였습니다.일이 틀려진후에는 근본상 리련영을 찾을 틈이 없는것입니다.그는 리련영을 찾아서 자기는 억울함을 당한것이고 자신이 돈을 버는것은 자기를 위한것이 아니라 서태후를 위한것이며 호경여당을 제외하고 전부의 자산을 그에게 헌납하련다고 서태후에게 전해달라 하였습니다.리련영은 죽은 사람도 말하게 한다는 사람으로서 수완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그가 좋고 나쁨을 제쳐놓고 서태후는 그의 말이라면 거진 들어주었으며 무슨 방법이 많았던것입니다.

호설암은 두번째길을 선택할수도 있었습니다.좀 일찍히 서태후를 만나는것입니다.물론 서태후를 만나려면 다른 사람을 통해야 하지만 그 당시에 리자를 추가한것이 자기를 위한것이 아니고 나라를 위한것이라고 하면 후과는 달라지는것입니다.그때의 나라란 서태후가 좌우지하고 있으니 이미 축적된 돈을 어떤 방법으로도 전이시키거나 헌납할수 있었던것입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즉 현대적인 말로 황금시기가 이미 지났기에 방법이 없었다는것입니다.무슨 방법이 있습니까?근본상 손쓸 틈이 없는것입니다.

모든 일을 처리한 후 호설암은 자신의 후사를 처리할 순서가 되였다고 느꼈습니다.한 사람이 발달한후 반드시 자기의 조상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그래서 호설암은 자기의 조부모의 묘지를 풍수가 좋은곳으로 옮긴적이 있습니다.자손으로서 성공한후 먼저 조상의 묘지가 좋은지에 대해 알아보고 수선하고 옮기는것도 무방한것입니다.그 자신도 재부가 많았기에 매우 넓은 풍수좋은 땅을 사놓을수 있었는데 이를 <수지>라고 하지 묘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후 묻어놓으면 묘지가 되며 사람이 살아서 사놓은 땅은 수지라고 합니다.

그가 사놓은 땅은 면적이 매우 크며 풍수도 매우 훌륭하였습니다.전반 구조는 모두 명인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던것입니다.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이런 상황에서 호설암이 감히 자기가 설정한 곳에 묻힐수 있다고 장담할수 있을가요?그는 이미 자신은 그런 타고난 복이 없고 또한 여기에 묻힐수도 없으며 묻혔다해도 인차 파헤칠것이라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여러사람들의 분노와 불평이 이를 용서치않을것입니다.그렇게 신고스럽게 모은 돈을 그한테 한순간에 날려버렸으니 안심하고 그런곳에 묻힐수도 없을것이며 누군가가 나서서 파헤칠것입니다.이는 인지상정인것으로 호설암은 매우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은 후 모든것을 간소화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그는 집사람들에게 자기가 죽은후의 사흩날에 밖에 철갑모를 쓴 사람이 나타날것인데 그 사람을 허술히 대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집안에 모셔들여 수의를 한쪼각 떼여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호설암은1885년11월에 세상을 떴는데 그 해에 62 세였습니다.59 세에 일이 생겨서 신고스럽게 두해를 지탱하면서 마침내 그 판국을 거진 수습하게 되였으며 자기가 이미 틀렸다는것을 알아차렸습니다.과연 틀림이 없었습니다.

좌종당과 문욱이 죽고 다음은 자신이라고 여겼던것입니다.그가 세상뜬 날에 옷을 갈아입히고 잘 안치해놓았습니다.사흩날에 집사람들은 호기심에 차 밖으로 나가 보았는데 과연 철갑모를 쓴 사람이 있어서 인차 집안에 모셔들여 호설암의 수의를 한쪼각 베여 주었습니다.그 사람은 받아쥔후 아무말없이 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가요?바로 전문 도굴하는 사람였는데 이들은 무슨 기업은 아니나 그래도 한개 직업이였으며 소식도 매우 령통하여 어느 부자집에서 출빈하고 어디에다 매장하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정탐해놓습니다.그러면 도굴하기 쉽기때문입니다.적지않은 부자들은 죽으면서 많은 수장품들을 함께 가지고 가기에 묘혈안에는 많은 물건들이 적치되여 이를 도굴하면 많은 돈을 벌수있는것입니다.과연 호설암의 말과 틀림없이 그들이 왔던것입니다.

그들에게 그가 입은 수의의 한 쪼각을 베여주었는데 세세히 살펴보더니 종이장처럼 얇은 천이여서 속으로 매우 궁핍하다고 여기였던것입니다.이런 궁핍한 사람의 묘지는 도굴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그들은 가버렸던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또 한사람을 거론할 필요가 있습니다.바로 아홉번쩨 첩실입니다.그는 여러 첩실들이 흩어져갔지만 계속 남아있었는데 어째서일가요?그는 호설암을 배동하여 이전처럼 시중들었습니다.이제와서 호설암은 돈도 없었지만 조금도 업신여기지 않고 집안일을 잘 보살펴주었습니다.호설암이 죽을때 로부인은 년세가 많았고 심정도 매우 비통해있었습니다.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년세가 많고 타격이 컸으니 말입니다.그래서 전반 후사는 그 아홉번째 첩실이 맡아 처리했던것입니다.

그 첩실은 호설암을 안장한 후 집에 돌아와 이층에서 목을 매여 자결하고 말았습니다.그렇지만 호설암이 대체 어디에 묻혀있는지 백여년이 지나도 누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백만장자로 소문놓았던 호설암은 이렇게 소리없이 떠나갔으며 휘황한 한생을 주름잡았던 호선생은 이렇게 창졸하게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중국에는 <기러기는 지나면서 소리를 남기고 사람은 지나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있습니다.세월이 흘러흘러 어느덧 백여년이 지났습니다.그럼 후세의 사람들이 당년에 이름짜한 호설암을 기억할수 있을가요?또한 누가 끝내 호설암의 묘지를 발견하였을가요?

백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많은 세상사가 변천되였으며 청나라도 인젠 보이지 않습니다.호경여당의 주인도 여러번 바뀌였습니다. 그중에서 한분을 반드시 지나칠수 없는데 바로 조옥성이란 분입니다.

조옥성은 어떤 사람일가요?그는 아직도 항주에 계신는데 호경여당의 약제사였으며 이미 50여년 근무하였습니다.반세기이래 그는 호경여당과 매우 깊은 감정을 쌓았는데 비록 직접 호설암을 보지는 못했지만 50년간 호설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으며 호설암에 대해 매우 경모하고 심후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호설암같은 사람이 죽은후 어디에 묻힌것조차 모르니 매우 가석하다고 여겼습니다.그는 호설암의 집사람들도 찾기를 희망할것이라 단정하고 다른 사람 모르게 찾으려 하였습니다.그는 다른 사람의 지원도 없이 스스로의 감정으로 2년이란 시간을 들여 이곳 저곳 신고스럽게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호설암의 묘지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그 묘지를 발견했을 때는 비석도 이미 넘어져있었으며 사람을 시켜 뒤번져보니 호설암이란 글자를 발견하였습니다.그는 매우 흥분되여  가치있는 일을 하였다고 느꼈으며 그 비석을 호경여당에 메여 왔습니다.그러나 그때 호경여당의 지도자는 그리 중시하지 않았으며 호경여당과 큰 관련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조선생은 사형인 풍근생을 찾아갔습니다.풍근생은 세세대대로 호경여당에 있었으며 그 소식을 듣자 인차 항주시정부에 련계를 달아 호설암의 묘지를 다시 수건하려고 하였습니다.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것이 편리하게 되였으며 첫시작에는 매우 황페하였습니다.

항주교외의 한 편벽한 산언덕에 새롭게 수건한 호설암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백여년의 광음은 마치 이 돌계단에서 연장되는 듯하였습니다.호설암의 묘지주위는 산으로 둘러쌓였으며 록음이 우거지고 얼마쯤은 호설암이 어릴적에 소몰이하던 곳처럼 보였습니다.아마 많은 풍파를 겪은 호설암이기에 마지막에 그리워지는것은 그의 동년의 아름다운 시절였으며 호설암이 선택한 이 곳은 아마 그의 가장 안성맞춤한 안식처일것입니다.

호설암의 일생은 바로 고봉도 없이 여지없이 패망하여 원점으로 되돌아온 인생인것입니다.여분들께 한가지 문제를 제출하고 싶은데 만약 이 일을 사전에 알고 그 한평생도 고봉이 있었고 그다음에 아무것도 없이 되였다면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호설암이 한마디 말을 남긴것이 있는데 몇십년간 얻은것이란 허사에 불과했다고 하였습니다.즉5-6세일때도 돈이 없이 구차했고 61-62세가 되는 이제도 돈이 없으니 헛되히 산것이 아닌가고 말입니다.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제보기엔 미리 이렇게 될줄 알았다 해도 해야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하며 어떠한 경력이든지 매사람에게 모두 보귀한 경험이 되는것입니다.

호설암이 사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공헌한 대가는 이미 받았다고 생각됩니다.백여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일에 대해 거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그러나 그가 범한 착오는 지워벌릴수 없으며 이로써 교훈을 삼아야 하는것입니다.그가 범한 착오를 시시각각 머리에 명기하면서 공금을 침점하지 말고 실제적이고 성근하며 규범있는 사람이 되기에 노력해야 하는것입니다.어쩌다가 부득불 변통해야 될대는 사후에 옳지않다고 생각되면 즉시에 보완해야 하며 절대로 늦춰서는 안됩니다.일단 늦추면 만구할 기회조차 잃는것이며 자기로 감당해야 하는것입니다.

호설암의 사실에서 좌종당도 그를 구할수 없고 자희태후도 여러방면의 압력때문에 명령을 내려 절강순무더러 호설암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고 참수하려고 까지 하였던것입니다.다행히도 그때의 관아에서는 호설암을 리해할수 있었고 공문이 왔다갔다하는 차수도 여러번 반복하면서 항주관아에 전해져서 사람을 파견하여 호설암을 체포하려고 할때는 그가 이미 그전날에 숨을 거둔뒤였습니다.이것이 아마 하느님이 호설암에게 내린 보상일것입니다.그후 항주관아에서는 조정에다 상주하였는데 이는 그저 한개 절차에 불과했으며 죽어야 할사람이라고 힐책하였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것입니다.그래서 흐지부지하게 사건이 취소되는데 이런 사례는 력사에서 자주 볼수있는것입니다.

호설암의 사건은 이렇게 중도에서 흐지부지하게 되였는데 관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한 사람이 죽은후에는 <객관론정>을 합니다. 즉 사람의 평가는 죽은후에 결정된다는것입니다.우리는 마땅히 그의 일생에서 무언가 총화를 얻어야하는것입니다.다음 마지막 강좌에서는 호설암의 일생이 우리에게 주는 계시가 무엇인가를 강의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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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비자들 해외인터넷쇼핑에 열기 인기글 중국소비자들 해외인터넷쇼핑에 열기 인민페가치가 오르고 인터넷지불방식이 갈수록 편리해지면서 갈수록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인터넷쇼핑 소비군체에 가입하고있다. 중국의 《제3자 지불플랫폼》에 따르면 2012년 해외인터넷쇼핑고객 소비수치를 발표했는데 지난 한해 분유를 위주로 한 영유아식품들은 해외인터넷쇼핑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비품으로 되였다.해외인터넷쇼핑은 최근 흥행한 국제인터넷쇼핑 소비추세로 해외인터넷쇼핑의 상품가격이 비교적 실제적이고 품질이 국제와 잇닿아 있어 적지 않은…(2013-04-19 07:43:32)
자업자득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자 업 자 득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중사강교수호설암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마치 사전에 예상한것처럼 매개 일을 잘 처리해놓았으며 죽은후의 일도 매우 타당하게 안배한듯하였습니다.그럼 그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 없었을가요?그의 유감은 어떤것일가요?여기서 우리는 그가 재산을 잃었다거…(2013-04-10 09:25:59)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랭정하게 국면을 수습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이 천만냥을 들여 구입한 누에실은 모두 썩어 버리였다.회풍은행의 이미 기한이 찬 4백만냥 대출금도 리홍장에게 억류되여 갚을수도 없었으며 더욱 골치아프게 한것은 호설암이 대출할때 리자를 더 추가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자희태후는 대노하여 호설암…(2013-04-10 08:46:51)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호경여당과 진불이가(真不二价)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호설암은 몇십년간의 분투를 걸쳐 끝내 빈곤한 소몰이아이로 부터 부유한 상인으로 변모하였습니다.공적을 쌓아 명성을 떨친 호설암은 자손들에게 무언가 남기려고 거금을 들여 큰 저택을 수건하였습니다.부지가 10여무에 달하는 장방형 저택은 왜서 동북쪽 귀모퉁이…(2013-04-10 08:10:33)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 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이름을 날려도 덕은 덕대로 쌓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국가에 대한 호설암의 공헌에 감사드리기 위해 좌종당은 호설암을 데리고 북경에 갔다. 그는 자희태후가 호설암을 포상하기를 희망했다. 호설암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좌종당과 함께 북경에 가는건 좋은 일인데 호설암은 어이하여 이…(2013-04-06 09:31:25)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인기글 먼저 의를 생각하고 후에 리를 고려하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좌종당은 청조말기 부패한 조정에서 보기드문 청렴한 장군이였다. 좌종당이 내란을 평정할때나 해군조선소를 세워 해안방어를 강화했을때나 특히는 반란을 평정하고 신강을 수복할때 좌종당의 부대에서 수요하는 급여와 보급품…(2013-04-02 10:56:52)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부귀해도 어진 마음를 지니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하루 빨리 항주를 수복하기위해 호설암은 자기의 돈으로 좌종당의 부대를 위해 군량을 구입했을뿐아니라 또 외국 은행에서 대출하여 부대에 서양총과 대포를 사주었다. 호설암의 심정은 몹시 긴장했습니다. 만일 호설암이 상첩군을 건립한후좌종당이 태평군과…(2013-04-02 10:51:29)
성의로 신용을 얻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성의로 신용을 얻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설암은 도처에서 소식을 탐문하면서 무슨 방법으로 항주성을 구할것인가고 궁리하면서 소식을 탐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좌종당의 군대가 강서에서 절강으로 쳐들어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그때 그의 부대는 구주에 주둔해 있었는데 능히 항주를 수복할수…(2013-02-18 13:30:52)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소홀함이 화근을 남긴다 -중국근대의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교수 증사강좌종당은 호설암에 대하여 엄격한 고찰을 거친후 많은 중요한 일들을 호설암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였습니다.얼마나 처리하기 힘든 일일지라도 슬기롭고 재치있는 호설암은 이전의 벗들을 통하여 모두 성사시킴으로 하여 좌종당의 신임을 깊이 얻게 되였습니다.항…(2013-02-18 13:27:51)
벗을 중요시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벗을 중요시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교수 증사강 태평군이 항주성을 포위공격하여 성내에는 탄약과 량식이 다 떨어졌습니다.절강순무인 왕유령은 항주성과 생사존망을 같이하려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호설암에게 위탁하여 성을 빠져나게 했는데 첫째는 구원병을 청하고 둘째는 량식을 구해오려고 한것이였습니다. …(2013-02-12 13:32:09)
화복을 함께하다-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화복을 함께하다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 교수 호설암은 거두어들인 대순금 오백냥을 왕유령에게 주어 그더러 실제직무를 맡았던 관리의 결원을 쟁취하게 하였습니다.왕유령은 돈을 가지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바로 그의 소꿉친구였습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2013-02-06 08:29:06)
림기응변-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인기글 림 기 응 변 -중국근대 고관거상 호설암의 상술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인생의 기쁜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제일 바라는것이 바로 처음으로 얻게되는 목돈입니다. 그 수량이 많고 그 얻은 경력이 전기적이여야 하는데 이것은…(2013-02-06 08:22:35)
성실을 근본으로-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인기글 성 실 을 근 본 으 로 -중국 근대의 거상 호설암의 상술을 살펴본다 대만사범대학 증사강교수 호광용(胡光墉1823—1885…(2013-02-05 08:20:04)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인기글 상업에서 리용되는 “불난집에서 략탈하기” 이런 계책은 전쟁터에서만 사용되는것아니라 다른방면에서도 대량적으로 사용되는데 상업에서 더욱 뚜렷합니다.송조때 남송의 수도가 림안이였는데 바로 오늘의 항주입니다. 항주에 성이 배씨라는 한 상인이 있었는데 원래 전당포와 보석가게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항주에 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력사에서 아주 유명한 한차례의 큰 불이였는데 마침 가게가 불길에 제일 강한곳이여서 거의 아무것도 구해낼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였습니다.그래도 그의 …(2013-01-04 08:58:51)
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인기글 현대상술에서의 “차도살인(借刀杀人)”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으로 전쟁터에서 순리롭게 승리를 얻을수 있을뿐만아니라 경쟁이 치렬한 상업대결에서도 이는 늘쌍 쓰는 모략의 한가지입니다.다만 이 모략의 교묘한 정도가 이미 변화발전했을 따름입니다.그럼 상업경쟁에서는 어떻게 칼을 빌어 사람을 죽이는 계략을 활용할수 있을가요?례하면 미국에서 20세기 40년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복사기가 탄생하게 되였는데 이 복사기의 특허권은 윌슨이라는 사람이 샀습니다.이 복사기는 당시의 원가로 2400딸라였는데…(2013-01-04 08: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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