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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력사와문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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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7-22 08:16| 조회 :3,68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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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력사와문화 (2)



류경생   (중국인민대학)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지방은 이미 도시였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한 가난하고 편벽한 산골에 한 작은 산골마을에 네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탈수 있는 귀족관료가 있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마차를 타는 것은  급별에 따라 달랐던 것입니다. 이 묘지는 3500년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3500년전에 이미 북경성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연태자단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시황을 죽이려한 사람입니다. 그가 왔을 때 진시황도 여기에 와 있었습니다. “세찬바람 몰아쳐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연태자단은 그때 북경방산 남쪽에서 멀지않은 지금의 역현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연태자단은 죽기를 각오하였는데 진시황을 대처하기 위해 칼에 독약을 바르고 지도로 감쌌습니다 “지도가 풀려지니 비수가 드러나다” 라는 성어가 있는데 바로 이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진시황을 붙잡고 칼로 찔렀는데 찌르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은 곧 달아났습니다. 진시황은 대단한 제왕이였는데 형가가 온 방안에서 뒤쫓으니 위병을 부르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하여 사마천은 소인의 노여움은 제왕의 위풍을 누른다고 평론하였습니다. 형가는 자객으로서 소인이니까요. 형가는 진시황을 죽여도 죽고 죽이지 못해도 죽으니 죽는 것은 불가피면적입니다. 그래서 분노했는데 소인의 노여움은 제왕의 위풍을 누른다고 잘 평론한 것입니다. 형가의 정신은 찬양할 만 하지만 그의 검술은 세련되지 못하였는데 그로하여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후에 수나라에서 대운하를 수건했는데 대운하는 강남으로부터 곧바로 통현까지 이르러 장가만 이 일대까지 왔습니다. 이쪽의 장성은 북경 이 일대에 이르렀습니다. 진시황은 이곳까지 왔댔는데 이 곳의 한 도시가 진황도인 것이 증거입니다. 진시황이 왔던 곳인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진시황이 장성을 시찰하면서 진황도에 왔댔는데 북경은 바로 운하와 장성의 교차점으로서 북경의 중요성을 돌출히 나타냅니다.


1153년,지금으로부터 800년전입니다. 금나라는 북경을 수도로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북경이 처음으로 한조대의 수도로 된 것인데 수도의 지점은  지금의 북경 금어지대관원 일대입니다. 그후 1271년에  몽고사람들이 북경에 쳐들어 왔습니다. 이리하여 금나라 때는 금중도라고 하였는데 후에 원나라 때는 대도,즉 원대도라고 하였습니다. 원대도는 북경이 처음으로 전중국의  수도로 되게 하였는데 북경이 공제한 지역은 얼마나 되였겠습니까? 서쪽으로 구라파의 흑해까지인데 당시의 웽그리아,뽈스까,프랑스 이 일대가 모두 원나라의 판도에 들어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로씨야의 옹근 씨비리가 들어있고 남쪽으로는 지금의 페르샤와 이란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이렇게 큰 판도에서 북경은 그의 정치중심이였습니다.  이딸리아 려행가 마크폴로가 북경에 온 적이 있습니다. 원나라 황제 후비라이는 그를 만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돌아간 후 회억록을 썼는데 북경이 얼마나 번영하고 번화하며 북경은 로마보다 몇배나 더 강한지 모른다고 썼습니다. 우리 국가도서관에 ≪마크폴로려행기≫라는 책이 있는데 바로 그가 중국에 왔다간 후 쓴 려행기로서 생동하게 잘 썼습니다. 이로부터 당시에 북경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원대도는 북경에 기마대를 주둔시켰는데 말이 다닐 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는 길을 동이라고 하였고 한인들은 또 몽고사람을 호인이라고 하였는데 호동이란 말은 이렇게 온 것입니다. 후에 명나라가 몽고사람을 뒤집어엎고 명조를 세웠으며 북경성을 수건하기 시작했습니다. 북경성을 수건할 때 황궁을 먼저 세웠습니다. 황궁을 세울 때 북경은 한개 결점이 있었습니다. 우리 북경에 있는 사람은 다 알지만 북경의 물은 좋지 않습니다.  북경의 물을 우리는 재물 혹은 물깡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경에서 물이 가장 좋은 곳은 어디겠습니까? 바로 북경의 고궁입니다. 황성 이 일대가 물이 좋기에 황성을 이 자리에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보십시오 황성 주위의 지명을 보면 모두 물과 관계있습니다. 남지자,북지자. 왕부정일대에는 왕부들이 있었는데 조회의 편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왕부정일대의 물이 좋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또 무슨 금어호동이라고 있는데 북쪽으로 더 가면 팔면조가 있지요. 이 모두가 물과 관련있는데 당시 이 지방의 물이 좋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황궁이 건립된 후 우선 황궁정면의 중간에는 정양문인데 즉 우리가 보통 말하는 대전문입니다. 좌측에는 숭문문,문화를 숭상한다는 것입니다. 우측은 무력을 과시한다는 것인데 숭문,선무는 이렇게 온 것입니다. 즉 문화를 숭상하고, 무력을 과시한다는 것입니다. 뒤는요? 병사가 싸우러 갈 때 안정문으로 나가고 승전하고 돌아올 땐 덕승문으로 들어옵니다. 이 모든 것에는 따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태양을 향한다하여 조양문,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부성문 등입니다. 후에 동직문과 서직문을 세웠는데 서직문은 석탄을 나르는 문으로서 일체는 황궁위주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나라 당시 북경성의 건축이였습니다.  후에 명나라가 멸망되고 청나라가 섰는데 청나라는 북경을 경사라고 하였습니다. 명나라가 세운 북경성은  기본상 지금의 이환로 이내로서 이 분포는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1912년 북경은 북양정부의 수도였는데 줄곧 새중국이 창건될 때까지였습니다. 여기까지 북경의 력사를 말하고 지금부터 북경의 문화를 말하겠습니다. 북경의 문화에는 도시건설문화, 원림문화,종교문화 등등이 있는데 차례로 말하겠습니다. 


먼저 도시건설 문화를 말하겠는데 바로 북경성의 중심선입니다. 북경의 중심선은 영정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전문,천안문,단문,오문 태화전,중화전,보화전,건청궁 곤녕궁을 지나 곧추 북을 향하여 경산을 지나고 또 고루와 종루를 지나 지금의 새둥지체육장에 이릅니다. 우리는 생각을 잘 했는데  올림픽운동의 최초의 기본적인 항목은 마라송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항목인데 천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이환로를 따라 뛰다가 새둥지에 이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것은 중간선에서 시작하여 중간선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운동원이 북경의 중간선에서 달리는 것은 올림픽운동과 북경의 력사문화를 결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북경의 아주 중요한 점은 황궁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황궁은 곧 고궁입니다. 고궁의 궁전을 태화전이라고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본 드라마에서는 제멋대로 연기를 하는데 황제가 대신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근본상 사실에 맞지 않습니다. 옛날의 황제들은 근본상 대신들을 만나지 않는데 어떤 황제,례하면 정령의 만력황제는 23년간 조회를 하지않고 대신들을 만나지 않아 나라가 마비상태에 빠졌습니다.


황제는 도리상 일년에 두번 대신들을 만납니다. 한번은 음력설날 황제가 태화전에 있고 대신들이 그 앞 광장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고 또 한번은 황제가 생일을 쇨 때입니다. 그외에 황제가 등극할 때 만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날가요? 아침이면 지금의 네시쯤 되여 대신들은 모두 광장에 모여 꿇어앉기 시작합니다. 매개 사람의 앞에는 패말이 있는데 모두 거기에 꿇앉습니다. 아침 네시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전날은 음력 섣달그믐인데 그믐날도 제대로 쇠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 네시에 일어나 이곳에 와서 꿇어 앉아야 합니다. 명나라의 황제는 아주 게을러서 기본상 열시가 되여야  일어났는데 겨울날 새벽에 이렇게 꿇고 있어야 합니다. 많은 늙은이,오랜 대신들은 얼어서 병이 났고 어떤 사람들은 꿇고 있다가 기절하였는데 이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황제는 열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을 먹고서야 나왔습니다. 여기에 나온 것도 괜찮은 편인데 보통 열두시나 한시가 되여야  여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서 자리에 앉고 태감이 문서 하나를 읽으면 끝나고 헤여집니다. 대신들은 여기에 와서 반나절 꿇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끝난 것입니다. 이것도 황은이 망극하여 황제를 배알한 것이 됩니다.


황제는 여기로 온 후 먼저 태화전에 가지않고 태화전 뒤의 중화전이라는 작은 궁전에 갑니다. 황제는 열두시가 되여서야 여기로 왔는데 밥을 먹고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 사람들은 계속 밖에서 꿇고 있습니다. 중화전에 앉아서 좀 쉬다가 태감더러 아무 대신이나 불러오게 하여 여기에서 접견합니다. 이렇게 많은 관리들이 꿇어앉아 있다가 황제가 누구를 부르면 인차 일어 납니다.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면목을 보아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황제가 당신을 만나 보았으니 면목을 보아주고 은총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온 다음 황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말을 두어마디 할 뿐입니다.  어떤 때에는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황제는 리부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지금의 조직부 비슷한 리부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누구를 만나야 한다면 황제는 그렇게 했습니다. 어떤 황제는 자기의 심오함을 나타내기 위해 그 관리의 등기부를 보고 사람을 짚습니다. 그러면 태감이 앞에 나가서 그 사람을 부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반나래가 되여도 오지 않습니다. 황제는 왜 불러도 오지 않느냐고 불쾌해 합니다. 그런데 후에 조사해 보니  그 사람은 벌써20년전에 죽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수두룩 한데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중화전은 바로 이런 것을 하는 것입니다.


중화전의 뒤에는 보화전이 있는데 보화전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이곳은 해마다 과거시험을 보는 곳인데 시험에 합격되면 진사가 되여 황제의 접견을 받습니다. 그때 현에서 친 시험에 합격되면 수재가 되여 성에 가서 시험을 칩니다. 례컨대 산동의 수재들은 제남에 가고 산서의 수재들은 태원에 가서 쳤는데 이 시험에 합격된 사람은 거인이라 하였습니다. ≪범진이 과거에 급제하다≫를 배웠지요. 그것이 바로 거인에 합격된 것입니다. 거인은 북경에 와서 시험을 쳤는데 명나라 때는 지금의 류리창 자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류리창 이곳이 어찌 후에 문방사보와 문화용품을 파는 곳이 되였겠습니까? 원래는 유리를 굽던 곳이였습니다. 그곳은 집값이 싸서 가난한 지식분자들이  그곳에 모여 살았습니다.


 후에 청나라가 규모를 확대하여 지금의 북경역 앞  방건항 일대에까지 왔습니다. 그때 시험을 치면  보통 반달씩 쳤는데 매개인은 혼자 작은 단칸방에 있었습니다. 그 방은 겨우  책상 두개를 놓을 만한 방이였는데 널판자 두장이 있었습니다. 낮이면 널판자 하나를  위에꽂아놓고 하나는 밑에놓고  거기에 앉아서 글을 썼습니다. 저녁이면 위의 널판자를 빼내여 내려놓고 거기에서 잤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는데 문은 잠그고 불을 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문을 잠갔기에 불이나면 사람이 타 죽을가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정 행위를 방지하는 것인데 그때는 아주 엄격하였습니다. 새벽 두세시가 되면  야경령감이 새벽을 알리였습니다. 야경령감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귀신 울음소리를 냈는데 아찔한 소리를 내여 학생들을 겁 주었습니다. 어째서 이랬겠습니까? 론리대로 말할 때 만약 학생들 가운데 나쁜 사람이 있다면 누가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면 밤에 귀신 울음소리를 들으면 원쑤진 사람은 원쑤 갚으러 오고 원한이 있으면 원한을 갚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면 그에게 시비 가르러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약 나쁜 일을 했다면 누가 만약 비렬한 짓을 했다면 그는 어둑컴컴한 곳에서 모골이 송연하여 잠을 잘 잘수 없게되여 다음날 시험을 잘 칠수 없게 되므로 장차 벼슬을 할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당당한 군자라면 내가 만약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료재≫속의 석방평처럼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귀신이 불러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태연히 잘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나는 시험을 제대로 칠수 있고 이렇게 되면 나는 벼슬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보건대 이것은  고대의 일종 정치심사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식분자들은 시달림을 받은 끝에 400여명 합격되여 진사가 되는 것입니다. 진사는 여기 보화전에 와서 황제의 접견을 받습니다. 황제는 어떤 때 상련을 내고 진사더러 하련을 대답하게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제목을 내고 진사더러 시를 짓게 합니다. 그런 후 황제는 친히 일등 장원,이등 방안,삼등 탐화를 결정합니다. 황제가 친히 결정한다지만 사실상 중국의 많은 황제들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누가 잘 나고 눈에 들면 그가 장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결혼을 하였는가 묻는데 여기에는 내막이 있으므로 장원들은 인차 안했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집에는 안해가 있지만 없다고 하여  황제는 자기 딸을 주는데 이렇게 하여 부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며칠 후  안해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 옵니다. 진세미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과거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진세미는 하나의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화전에서 하는 일입니다.


 화신은 청나라의 군기대신이였습니다. 군기처는 황제저택의  문어구에 있는데 아주 작은 집입니다. 군기대신이 출근을 하면 각 지방군기처에서는 상주문을 가져다 바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군기처에 주어 군기대신이 먼저 보는 것입니다. 군기대신이 자기가 능히 처리할수 있으면 처리하고 자기가 처리할수 없으면 뒤의 양심전에 가 황제에게 보입니다. 그는 비서처나 판공청 비슷한 이런 기구입니다. 군기처의 군기대신은 사실상 권력이 대단합니다. 아래에서 가져온 상주문이 아무리 중요해도 군기대신이 황제에게 바치지 않으면 방법이 없으므로 회뢰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신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았겠습니까? 화신의 집 재산은  국고의 3년 수입과 맞먹습니다. 전중국이 8000만량인데 그의 집에는 3억이 있었습니다. 계산해 보십시오. 3년의 국고 수입은 삼팔이십사 3년 남짓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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