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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력사와문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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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7-22 08:19| 조회 :3,8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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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력사와문화 (3)



류경생   (중국인민대학)



   
     군기처의 뒤는 바로 양심전입니다. 양심전을 주의해 보십시오. 그 앞에는 작은 의자가 있고 뒤에는 큰 의자가 있습니다. 큰 의자의 중간에는 검은 장막이 있는데 그 장막은 조금 들려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하는데 쓰는 것일가요? 이것이 바로 자희태후가 수렴청정하는 곳입니다. 그의 아들 동치황제는 여섯살 어린이였고 그 뒤의  광서황제는 네살이였는데 어린애가 앞의 작은 의자에 앉습니다. 뒤에는 누른색 큰의자가 있는데 자희태후가 앉는 곳입니다. 자희태후가 정권을 탈취할 때 그는 겨우 스물일곱살 아직 스물여덟도 안되였습니다. 과거의 례의로 말하면 남녀는 직접 접촉하면 안되였습니다. 그래서 자희태후가 앉아 있을 때면 이 검은 문발을 내리 드리웠습니다. 자희태후는 뒤에서 대신들을 볼수 있었지만 대신들은 자희태후를 볼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렴청정입니다. 황제가 여섯살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사실상 자희태후가 대신들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양심전은 바로 이것을 하는 곳인데 권력중심인 것입니다.


앞에서 금방 군기처에 대해 말했는데 군기대신은  자기가 처리할수 없는 중요한 상주문이 있으면 자희태후에게 와서 청시하였습니다. 여기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청시하였습니다. 건청궁은 황제집의 응접실과 같습니다. 어떤때 손님이 오면  황제는 건청궁에서 접견했습니다. 곤녕궁은 황제가 결혼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곤녕궁,바로 건곤의결합을 말합니다. 이것은 진비정입니다. 진비는 광서의 후궁이였는데 말하자면 매우 복잡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광도인데 지금의 말로 말하면 무호시시장 정국급 간부입니다. 자희태후의 아버지는 혜정이라고 부릅니다. 청나라 때 규정이 있었는데 팔기의 자식가운데 녀자애가 열세살 되면 황궁에 가서 후궁을 뽑는데 참가합니다. 차례로 선 후 황제가 보고 뽑는데 자희태후도 뽑혔습니다. 그런데 자희태후는  뽑히기는 했지만 잘 생기지 못해 여섯번째 등급으로 뽑혔습니다. 황궁의 후궁은 모두 여덟개 등급인데 황후,황귀비,귀비,빈,비,귀인,답응,상재 등으로서 자희태후는 여섯번째인 귀인으로 뽑혀 지위가 높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운수가 좋아서 황제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는데 그가 바로 후날의 동치황제입니다.


 자희태후는 권리욕이 아주 강했는데 그의 남편은 서른한살에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겨우 여섯살이여서 자희태후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였고 그리하여 정권을 잡게 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바로 동치황제입니다. 동치는 여섯살에 황제가 되여   열아홉살에 마풍병으로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자희태후는 자기 녀동생의 아들을 황제로 내 세웠는데 그가 바로 광서황제입니다. 그는 녀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광서황제가 네살 때 그는 실제상 그의 어머니로 되였습니다.  후에 광서가 천천히 크자 자희태후는 자기의 오빠 계량의 딸을 억지로 광서와 결혼시켰습니다. 오빠의 딸과 녀동생의 아들을  결혼시킨 것입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없었지요. 광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광서는 진비를 좋아하였는데 이것이 진비의 유일한 사진입니다. 자희태후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900년 팔국련합군이 북경을 침략하자 자희태후는 광서를 데리고 서안으로 도망쳤습니다. 혼란속에서 자희태후는 진비더러 서양사람이 왔으니 자결하라고 하였습니다. 진비는 울면서 빌었습니다. 그는 금방 스물두살이였으니까요. 마지막에 자희태후는 최옥귀더러 진비를 우물에 밀어넣게 하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신을 크게 믿지않고 하늘을 믿습니다. 황제도 천자라고 부릅니다. 중국사람들은 하늘을 믿습니다. 그래서 북경에 전문 천단을 짓고 황제가 하늘에 제를 지내게 합니다. 제를 지낼 때 당시 사람들이 하늘에 대한 인식에 따라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입니다. 때문에 천단의 건축은 모두 둥근 것입니다.  그외 사람들은 하늘은 푸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천단의 지붕은 푸른 것입니다. 천단의 건축은 대단한 것으로서 아주 위대합니다. 천단에 가 보면 집안의 천정은  나무들을 모두 쐐기로 이어서 만든 것인데. 조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건축상에서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명나라가 원나라의 몽고사람을 몰아 냈는데 그들은 몽고사람이 드세다는 것을 알고 장성의 수건을 중시했습니다. 그때 장성을 수건하는데 천명 사람이 일년동안에  석장밖에 못했습니다. 석장이란 열메트르입니다. 천사람이 산에서 일년동안 일을하여  10메트르 밖에 수건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장성에 가 보면 알수 있지만 그렇게 큰 돌을 어떻게 산위로 올려 갔을가요? 그 때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별수 없이 둥근나무를 밑에 바치고 밀어 올린 것입니다. 1996년에 우의빈관에서 한차례 국제토론회의를 하였는데 무엇을 토론 하였겠습니까? 천사람이 산위에서 일년에 열메트르 쌓았으니 만리장성을 쌓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썼겠습니까? 산위 사람들이 마시는 물은 어떻게 해결했을가요? 또 벽을 쌓는데 쓰는 물과 진흙은  어떻게 해결했을가요? 나중에 사람들은 답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성입니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는 명성조 주체였는데 바로 지금 장릉에 있는 그 황제입니다. 그는 자손후대들이 부패해 져 장성을 잘 지키지 않을가봐 령을 내려  이후 황제의 묘지는 모두 장성옆에 짓게 하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자기 선조의 산소를 비교적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산소가 장성옆에 있기 때문에 자기집 선조의 산소를 성묘하려 해도 장성을 잘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성을 잃으면 묘지도 없어지니까요. 때문에 지금의 13릉도 장성과 가까워서 하루면 다 돌수 있는데 바로 이런 일입니다. 장성의 밑에는 궁전이 있습니다. 이 지하궁전에는 만력황제가 안장되여 있는데 그는 아홉살에 황제가 되였습니다. ≪이진궁≫이라는 경극이 있는데 “나의 나으리를 품고있다”는 바로 이 만력황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아홉살에 황제가 되여 47년을 황제로 있었습니다. 그는 열살부터 자기의 지하궁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23년 조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황제가 궁전을 다 지은 후 일본사람들이 알게 됐는데 일본이 북경을 통치할 때 이 지하궁전을 열러 했지만 문을 찾지 못하여 열지 못했습니다. 폭발시키면 모두 파괴되니까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1958년 대약진 때 13릉저수지를 건설하러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갔습니다. 저수지를 건설하다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돌비석에는  여기서부터 금강벽까지32장이라는 글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거기에 따라 가보니  과연 큰 문을 발견했습니다. 이 돌비석은 무엇을 하는 것일가요? 어째서 땅에 묻혀 있었을가요? 지하궁전을 열고 보니 명백해 졌습니다. 지하궁전에는 세개의 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높은 것은 만력황제이고 량쪽것은 두 황후의 것이였습니다. 지하궁전은 지었지만 표시할수 없었습니다. 황제더러 여기에 와 있으라고는 할수 없지 않습니까? 그를 위해 지었지만 또 다시 묻어야 했습니다. 만일 어느날 황제가 죽었는데 문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황제를 안장하겠습니까? 때문에 표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황제는 황후가 둘 있었는데 같은 날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죽으면 하나를 묻었는데 세사람 다 묻고서야 이 돌비석은 쓸모가 없게 되였습니다. 이 돌비석이 쓸모없게 되니 그를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여 우리는 이 대문을 찾게 되였습니다.


들어가 보니 땅바닥은 온통 란장판이였는데 금,은,진주가 온 땅에 널려 있었습니다. 황제의 관은 비뚤게 놓여져 있었는데 이것은 웬일일가요? 그때 황제의 관을  차에 싣고 들어왔는데 궁전안은 어둑컴컴하였습니다. 량쪽에는 태감,대신,궁녀,후궁들이 울고 있었는데 슬프지 않아도 울어야 했습니다. 엉엉 소리내며 울었는데 매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했겠습니다? 나도 함께 묻지않겠는가 하는 것이였습니다. 생각하여보십시오 어둑컴컴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두렵고 긴장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허겁지겁 달려 나왔는데 서로 밀고 닥치고하여 자기 몸의 물건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때의 문은 지금처럼 관광을 위해 큰 문을 단 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리하여 관은 제대로 놓여졌는지도 모르고 모두 나와 버린 것입니다. 앞으로 당신들이 정령으로 가면 잘 보십시오 옆의 진렬실에 당시의 사진이 있는데 일대 란장판입니다. 이것이 지하궁전입니다.


 로구교는  원래 북경의 영정하에 있었습니다. 원래 북경성은 영정하옆에 건설하려 했습니다. 왜냐면 도시에는 강이 있으면 물 쓰기도 좋고 기후도 조절하며 교통에도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영정하는 늘 범람하여 북경성을 북으로 20킬로메트르 가량 옮겨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로구교입니다. 이상 말한 것이  북경의 도시건설인데 대체적인 모습입니다.


아래에 원림문화를 말하겠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원림문화를 몹시 중시하는데 예전에 ”천인합일”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현대말로 말한다면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을 결합한다는 것입니다. 례컨대 이화원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데 건륭황제 때 수건한 것입니다. 후에 자희태후가 60세 생일을 지낼 때 또 재건하였습니다. 그가 중국을 48년간 통치했는데 대단합니다. 2년없는 50년인데 반세기입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는 없지만 사람을 다스리는데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이 로친은 아주 독하였는데 그것은 속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였습니다.


이를테면 그의 아들 동치황제에게는 아루트씨라는 황후가 있었습니다. 아루트씨의 아버지 숭기는  몽고의 장원이였습니다. 그에게 이런 보배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였습니다. 그 때 녀자들은 글을 몰랐는데 자희태후도 글을 몰랐습니다. 후에 좀 배웠는데 그것도 모두 틀린 글자였습니다. 이루트씨의 아버지는  딸이 황제에게 뽑혀 황후가 될가바 무척 두려워 하였습니다. 황제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너무 악독하여 딸이 시달림 받을가봐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치에게 뽑혔습니다. 뽑힌 후에는 어떻게 됐겠습니다까? 후에 동치황제가 마풍병에 걸려 위태롭게 되였습니다. 열아홉살 어린 나이의 황후는 황제에게 빨리 나아요,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 뜻인즉 시어머니가 독하다는 것이였습니다. 황제옆의 태감들은 모두 자희태후의 친신들이였는데 이 일을 자희태후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자희태후는 이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여  신도 신지 않은 채 거기로 갔는데 과연 며느리가 거기에서 시어머니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들어가서 며느리의 머리를 거머쥐고 뺨을 때렸습니다. 이때 아들도 침대에서 끌려내려왔는데 원래 병이 심한데다가 놀라서 죽었습니다.


동치가 죽은 후 자희태후는 녀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황제를 시켰는데 그가 광서황제입니다. 그럼 원래 동치황제의 황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처지는 참 딱하게 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고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회답 편지는  한장의 백지였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뜻이였습니다. 마지막에 황후는 굶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주의하였는지 모르겠는데 북경의 집들은 대문이 모두 남쪽을 향하였는데 유독 이화원만은 대문이 동쪽을 향하였습니다. 어째서일가요? 자희태후의 남편은 함풍황제였는데 함풍에게는 황후,즉 큰 댁이 있었습니다. 후에 자안이라고 한 이 큰 댁은 규정에 따라 동쪽채에 있었습니다. 동쪽이 위니깐요. 자희태후는 황제를 위하여  유일한 아들을 낳아 주었습니다. 황제는 기쁜김에 그를 인차 황귀비로 승급시키고  서쪽채에 들게 하였습니다. 어떤 때 태감들이 물을 떠 오면 동쪽인가 서쪽인가 하고 묻습니다. 후에 자희태후를 서태후라고 부른 것도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후에 이화원을 서쪽에 앉아 동쪽을 향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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