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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진의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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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10-27 08:28| 조회 :2,3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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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진의 이야기》(2)

전문충 (복단대학교수)


진실한 정황은 리시진 부자가 과거제도에  마음이 식어버렸고 절망했다는 것입니다. 리씨 가문에서 다시는 거인이 나오고  진사가 나올 가망이 없어지자  의학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입니다. 이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을 것이며  마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였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선비들의 심리 상태에 익숙하다면 이런 설법이 있다는 것도 알것입니다. 좋은 재상이 되지 못할 바에는 좋은 의사가 되라 즉 내가 우수한 재상이 되지 못할바엔 다음 기회로는 우수한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전통에서 글을 읽은 사람들의 전통적인 심리상태입니다. 승상은 당연히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반드시 과거시험을 통과한 출신이여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의 노력으로 능히 할수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크든 적든간에 이 점이 리시진 부자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였을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리시진이 23살 전에 과거시험에 쏟아부은 노력이 물거품으로 되지 않았는가고 우리는 말할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렇게 말하는것은 극단적입니다. 그것은 과거시험을 보려면 사서오경이거나  주희에 관한 글들을 모두 외워야 합니다. 이는 사람의 기억력에 대해 특수한 요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와 사유에 모두 상당히  엄격한 훈련이 수요됩니다. 우리들이 알다시피 매우 많은 중의들은  문화수평이 그리 높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중의들은 한평생 처방을 노래처럼 부릅니다. 여러분들이 만난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중의들은 처방을 당신에게 써 주는것이 아니라 약 명칭을 노래처럼 부르고 곁에서 다른사람이 써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글을 몰라 그가 부른 노래대로 약을 지어줍니다. 1949년 이전까지 매우 많은 중의들이 이런  창법으로 약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리시진은 당연히 그들과 다릅니다. 그는 매우 높은 문화수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재에도 합격한적이 있기에 기본적으로  좋은  문장을 쓸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기에 이 시간들이 리시진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과거시험을 보려면 반드시  중국전통적인 경전서적들을 읽어야 하는데 그 속에는 의약학에 관한 매우 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고전서적중《시경》에도 약에 관한 매우 많은 묘사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모든것들은 리시진에게 의심할바없이 매우 유용한 것들입니다. 리시진이 생활한 시대의 또 한가지 일에 대하여 우리들은 고도로 중시를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도시의 공상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의 전통에서는 장사를 할 때  매대우에 물건을 늘여놓지 못하였으며 이를 매우 체면을 깎는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명조의 중후기에 이르러서 갑자기 류행되면서 상업을 다시는 낮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과거급제와 같은 것들을  이전처럼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과거에 급제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였었는데 매우 많은 유생들이 특히는  과거시험에서 순리롭지 못한 유생들이  과학기술과 상업령역에 흡인되였습니다.


리시진은 어떠한 년대에서 생활하였을가요? 그는 동란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명조의 중후기에 살았습니다. 명조 중후기의  몇 몇 황제들은 모두 매우 우매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황제들은 우매한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례하면 어떤 황제는 몇십년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매우 많은 대신들이 한평생 관직에 있었으며 관직에 올라 죽을 때까지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황제들은 오직 향락만 추구하였으며 관료들과 대신들이 집정하고있었습니다. 매우 많은 경우에 백성들은 누가 황제인지도 몰랐고 오직 큰태감이 누구인지만 알았습니다. 때문에 민간에서는 황제가 둘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로황제와 작은 황제로 구분하였습니다. 태감의 나이가 대부분 많았기에 로태감을 로황제라고 불렀습니다. 또 서있는 황제와 앉아있는 황제라고도 하였습니다. 서있는 황제는 당연히 태감을 가리킵니다. 태감은 황제앞에서 앉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백성들의 심목에는 황제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태감이 동쪽 서쪽을 다 관리하고 그 외에도 특무기관과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적으로 특무화된 통치를 실행하였으며 수단 또한 비할바없이 잔인하였습니다. 조정안에서 책을 읽었다는 사대부들도  좋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신과 관리들이 서로 싸우고 이 싸움 역시  권력과 리익을 다투는 싸움이였습니다. 대신이든 관리이든 나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국사는 혼란했고 통치는 암흑했으며 경제는 바닥을 쳤고 사회는 동란에 휩싸이고 반항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것이 리시진이 생활한 명조 중후기의 대체적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단락의 력사시기에는 하나의 특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래와 우 황제와 관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전 사회적으로 일반 민중들까지  신을 숭배하는데 열중하였습니다. 이는 별로 신기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통적 중국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고 인단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비교적 이상합니다. 명조 중후기의 로백성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인단을 만드느라 바삐 보냈습니다. 신선에게 비는것은 모두 자기가 신선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일대의 간신 악명높은 엄숭을 우리는 다 알고있습니다. 이 엄숭은  청사를 잘 쓰는 바람에 명조의 정계에 능히 두각을 나타낼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청사라고 할가요? 이는 당시 송사도 아닙니다. 이것은 신선에게 빌 때 하늘의 신선에게 바치는 일종의 기도문입니다. 자신이 신선에게 비는 희망과 결심을  매우 화려한 어휘를 사용하여 쓴  그런 문장을 청사라고 합니다. 황제의 신임과 사랑을 얻고 마지막에는 독재적으로 대권을 틀어쥐고 나라를 망치고 백성에게 재화를  불러올수 있었던 것은  엄숭이 좋은 청사를 쓸줄 아는 덕분이였습니다. 엄숭같은 이러한 인물은 충신과 량민들을 박해하고 대권을 혼자 틀어잡고 악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느님이 일부러  이 미래의 위대한 약물학가를 고험하였는지 처음 시작부터 리시진에게 본때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본때를 보여  주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을가요?     리시진이 과거에 합격되여 의학을 배우려던 꿈을  정식으로 포기했던 그 해에 북경성에서는 가정황제가 인단을 만들어  신선이 되려는 결심을 크게 내렸습니다. 그때로부터 가정황제는 조정에 나가는 것을 거절했고 하루종일 전심전의로 인단 만드는것만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친히 인단 제련을 지휘하였습니다. 어떠한 곤난이 있더라도 만난을 물리치고 선단을 만들어내기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도가의 설법에 따르면 신선이 되는 길은 매우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생각은 일반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신선이 되려는 생각만 하고 고생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큰 힘을 들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각은 아주 간단하였는데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한 알의 령단묘약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그것을 먹고 우화등선  즉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이것이 가장 간편하고도 간단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간신인 엄숭은 이런 요괴한 기회를 리용하여 황제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황제가 이러하니 상황은 불보듯 뻔합니다. 인단을 만드는 도사가 대관이 되여 위엄있는 황궁안에 큰 제단을 만들고 즉 도교의 단을 만들고 인단을 제련하는 가마를 세웠습니다. 전민이 인단을 만들고 지방에서는 더욱 황당한 정경들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은 관아의 사람들에게 쫓기여 무엇을 했을가요? 매화사슴을 붙잡으려 다니고 단향목을 베고 령지를 캐러 다녔습니다. 이것이 공헌하는 것이고 황제가 인단을 제련하는데  쓰인다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이 일로 바삐 보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 일은 궁정에서 생기고 머나먼 북경 자금성에서 발생한 일인데 호북기주의 리시진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관계가 있습니다. 리시진 부자는 원래 진료소를 어디에다 꾸렸을가요? 리시진의 부친은 이미 령의가 아니라 태의원의 명의였습니다. 그는 거리를 다니면서 병을 본것이 아니라 진료소를 세웠는데 그 진료소는 당지에서 가장 복잡한 현묘관앞이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소주에 가보았으면 알수 있듯이 소주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 현묘관앞입니다. 현묘관을 도관이라고도 합니다.  도관앞에 그의 부친의 명성으로 진료소를 세우고 태의원의 의사가 되였으니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문에 장사가 아주 잘 되였으며 의사를 찾아오고 약을 지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끊기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묘관은 도관이였기에  더욱 가정황제의 호소에 쫓아 인단을 제련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현묘관의 도사들은 대규모로 인단제련을 시작하여 좋은 인단을 만들어 황제에게 바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황제를 도와 선선이 되게 하려는 위대한 몽상을 꾸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리시진 부자는 도관에서 쫓겨나고 진료소를 세울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리시진은  가슴에 울분을 품고  인단을 제련하여 신선이 된다는 이 우매하고도 상당히 미신적인 일에 대해 코웃음치고 평생동안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였습니다.  이 울분은 유래가 없는것이 아니며 력사도 유구합니다. 그것은 리시진이 금방 의사가 되였을 때 한가지 일에 부딪쳤습니다. 황제는 그 누구도 관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법에 의하면 황제는 천자라고 합니다. 중국의 전통에서는 황제를 천자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응당 황제를 관할할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황제의 이런 엉터리짓은  자신이 신선이 되지 못했을 뿐더러 도리여 하늘을 노엽히고 사람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하느님은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력사를 조금만 익숙히 알고 있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경고는 천자에게 하는것이 아니라 왕왕 가장 고난에 허덕이는 로백성들에게 내려진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입니다. 이번의 경고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불시에 온역이 발생했습니다. 인단을 제련하는 가마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푸른연기속에서  한 차례의 온역이 기세등등히 갑자기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시진의 고향인 기주  또한 중대한 재해를  입었습니다 리시진의 고향은 가뭄이 들었다가 다시 수재를 입었습니다. 큰 가뭄이 든 다음 큰 홍수를 입으면  이는 가장 쉽게 대규모적인 온역을 불러옵니다.


그렇다면 이번의 온역과 리시진은 또 어떤 관계가 있을가요? 리시진 부자는 이번의 온역에서 끊임없이 약을 만들고 살려낸 사람은 헤아릴수 없습니다.  이번의 대온역은 금방 의학의 길에 들어선 리시진을 책에서 읽었거나 혹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대량의 여러가지 병증들과 직접 대면하게 하였습니다. 현대의 언어로 표달하면  그는 보귀한 림상경험을 쌓게 되였습니다. 부자간의 의술이 높았을 뿐더러 의덕은 더욱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력사의 기재에 따르면 류리걸식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리씨 부자는 때로는 약값마저 받지 않았습니다. 대량적으로 약물을 공급하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당시 호광 일대에서는  젊은 의사 리시진이 그의 아버지의 조수가 되여  제일선에서 온역의 손으로부터 백성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때문에 젊은 리시진의 명성은 온역과 함께 전파되였다고 합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는 력사적 사실입니다.  당시의 정황과 지금은 당연히 다릅니다. 지금은 의학을 배우려면 6년 8년 의학학제가  비교적 깁니다. 하지만 리시진이 의학을 배우기 시작하여서부터 하나의 독립적인 직업의사가  되기까지는  3년이라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4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26살부터 시작하여 그는 이미 합격된 중의였습니다. 이어지는 리시진의 의학의 길이  순풍에 돛단듯 하였을가요? 그는 또 어떻게 되여《본초강목》을 편찬하게 되였을가요? 여러분들이 다음 강의를 듣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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