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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주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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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2-03-26 09:16| 조회 :5,8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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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 주덕(하)


635712752_5d13a6f1_20088159204778517.jpg신중국이 성립되였습니다. 사회주의 력사단계가 시작되였습니다. 주덕동지는 중앙인민정부 부주석과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을 담임하였습니다.

주덕동지는 중국인민해방군에 호소를 내렸습니다.중국인민은 중국공산당과 모주석의 령도하에서 인민 자신의 군대를 주요공구로 삼고 의거하여 강대한 제국주의와 국내 반혁명세력의 통치를 뒤엎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하였으며 동시에 위대한 건설시기에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인민혁명이 승리한 후 새로운 력사임무가 있습니다. 계속하여 전국인민과 한길에 서서 인민민주전정을 공고히 하고 국방을 공고히 하며 인민혁명 승리의 성과를 보위해야 합니다. 조국의 건설을 보위하고 동방과 세계평화를 보위해야 합니다.

주덕동지는 여러차례 인민해방군의 대표를 접견하였으며 부대의 건설을 십분 관심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여러차례 해군과 공군부대에 심입하여 관찰했습니다. 주덕동지는 해군의 지휘원과 전투원들에게 허심하게 학습하고 사업에 노력하여 제국주의의 모험적인 침략에 능히 방어할수 있는 하나의 인민해군을 건설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신중국의 제일 첫패의 녀비행사들의 성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녀들에게 자만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여 학습하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고 고무격려했습니다.

주덕동지의 탁월한 공훈을 표창하기 위해 1955년 주덕 동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원수 직함과 일급 “ 8.1”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급 독립자유훈장과 1급해방훈장도 수여받았습니다.

당의 8기 1중 전회에서 주덕동지는 당중앙 부주석으로 당선되였으며 중공중앙 규률검사위원회 서기를 겸임하게 되였습니다. 당의 규률검사사업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제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주덕동지는 인대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였고 이후 련속 제3기 제4기 인대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였습니다.1958년 년세가 70이 넘은 주덕동지는 13릉 저수지 공지에 왔습니다. 주덕동지는 또다시 멜대를 메고 군중들과 함께 로동을 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우리나라 사회주의공업의 발전을 매우 관심했으며 천리에서 옥문유전을 찾아와 시찰했습니다. 주덕동지는 강철공장을 시찰했으며 그들에게 강철을 많이 생산하고 좋은 강철를 생산하여 하루 빨리 강철공업을 춰세워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주덕동지는 동필무동지와 함께 대경유전을 시찰했고 로동자들을 고무격려하여 웅심을 세우고 웅대한 뜻을 세우며 세계선진수평을 초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청해고원에 와서 농업생산의 상황을 시찰했습니다. 전쟁년대에 그는 인민을 위해 피속에서 전쟁을 치르고 분투했으며 건설시기에는 다시 인민의 먹고 입는 문제로 걱정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작은 나무배를 타고 미역양식장을 시찰했습니다.  주덕 서특립 사각재등 동지들은 계주산구의 작은 수력발전소를 시찰했습니다. 주덕동지는 반드시 산구의 건설을 중시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참대기구 생산합작사 시장에 왔습니다. 그는 수공업을 매우 중시했으며 수공업시장을 발전시켜 인민의 수요를 만족시킬것을 제출했습니다. 

635712752_f65075a1_2005_20100107113912191962년 주덕동지는 고별한지 30년이 넘는 정강산에 왔습니다. 당년의 폭동대장은 주군장를 보고 만감이 교차되였습니다. 주장군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리던 형상이 사람들의 눈앞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주덕동지와 강극청동지는 모주석이 있던 낡은 집을 참관하였고 동시에 정강산투쟁에 참가하였던 로동지들과 친철하게 한담을 나누면서 그들의 고초를 물으셨습니다.  이 로인은 기층에서 사업하는 간부들과 함께 좌담을 하면서 농촌건설이 어떤지? 광대한 군중들의 생활이 개선되였는지? 를 하나하나 물어보았습니다.

주덕동지는 과학기술과 문화교육사업을 관심하였습니다. 남경에서 그는 자금산 천문대에 올라 과학연구인원들과 친절히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강서에서는 여러차례 학교에 가서 교사들의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장춘에 온 그는 장춘영화촬영소의 촬영장에서 극을 찍고있는 연원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일찍 연안시대에 주덕동지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매우 관심했습니다. 건국 이후 새로운 일대에 대해 더욱 배로 애호했으며 아이들은 모두 그를 주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주덕동지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신강위구르자치구에 가서 여러민족 인민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하미의 록주에서부터 카자흐의 유르트까지 곳곳마다 이 로인의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그는 여러민족 인민들에게 단결을 가강하고 서로 배우며 민족단결을 위해 새로운 편장을 써야 한다고 고무격려했습니다.

신중국이 성립된 이후 주덕동지는 조선 몽고 쏘련과 동유럽의 일부 나라를 방문하였습니다. 조선에서 그는 각계의 인사를 회견하였고 중조 량국인민의 피로써 맺어진 우의를 찬송했습니다. 쏘련에서 그는 혁명도사인 레닌의 묘에 화환을 증송하였으며 동시에 레닌이 사업하였던 지방도 참관하였습니다. 루마니아에서 그는 선진생산자들과 친절하게 담화를 나누었으며 체스꼬 슬라베니아에서는 군관들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여러나라 인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일찍 전쟁년대에 주덕동지는 인도의 의사인 가강화와 독일의 의사인 한스 밀럴,  미국의 작가인 스미트리,  미국기자인 안나 루이스. 스트롱 등과 우의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다시 중국인민과 각나라 인민들과의 우의를 증진하기 위해 공헌을 했습니다. 주덕동지는 무산계급 국제주의 전사입니다.

주덕동지의 일생은 검박했으며 자신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했습니다. 그의 생활용품은 극히 간단했으며 의복과 신 양말들은 모두 신고 또 신고 깁고 또 기웠습니다. 로동인민의 본색을 영원히 유지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주덕동지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 편집한 체조를 했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도 중단한적이 없습니다.

주덕동지는 산을 오르기 좋아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말을 타고 남북을 달렸으며 명산준령을 밟았습니다. 높은 년령에 이르러도 여전히 산에 오르는것을 견지했으며 때론 려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북경향산의 귀견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백전을  친히 겪은 로원수는 여기에서도 전장을 벌이고있습니다.

주덕동지는 수영도 좋아했습니다. 수영은 전신을 단련시킬수 있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꽃을 기르기 좋아했으며 특별히 란을 좋아하여 늘 자기가 손수 전지를 해주군했습니다. 그는 신변의 인원들과 함께 꽃을 보면서 산보했고 능히 걸을수 있으면 혁명을 위하여 하루 더 사업할수 있다고 늘 말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책읽기를 즐겼습니다. 이것은 그가 일찍 《사기》와《삼국지》를 열독할 때 머리에 써넣은 평입니다. 건국 이후 주덕동지의 사업은 더욱 분망해졌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얼마나 다망할지라도 매일 학습을 견지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일생에 풍부한 혁명실천경험이 있었고 많은 중요한 저술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군사방면의 저술들은 우리가 중국혁명과 건설리론을 학습하고 연구하는데 보귀한 문헌입니다.

주덕동지는 비단 위대한 무산계급혁명가와 군사가일 뿐만아니라 한분의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시는 기세가 드높고 열정이 넘칩니다. 주덕동지는 또 유명한 서법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필치는 기품이 있고 힘차며 꾸밈이 없고 수수합니다. 오랜벗들이 집회를 가질 때면 그는 언제나 즉흥적으로 붓을 날리군 하는데 서법이 호매롭고 기백이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동란시기에 주덕동지는 림표와 “4인방” 반당집단의 공격과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송백마냥 꿋꿋하게 굴하지 않았으며 힘이 닿는 범위내에서 국사를 위해 애썼습니다.  늙은 천리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그 뜻은 천리밖에 있다고 합니다. 만년에 이를수록 웅대한 뜻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4년 88세 고령의 주덕동지는 다시 한차례 해군모부대를 관찰했습니다.

몇십년래 주덕동지는 인민군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남김없이 이바지했습니다. 만년에 이르러 여전히 정력을 군대의 건설에 놓았습니다. 이런 정경들이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만분 감동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주덕동지는 총지휘소에 올라 연습하는 군함을 검열했습니다. 로인은 해군의 지휘원과 전투원들에게 학습에 노력하고 단결을 강화하여 현대화한 인민해군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라고 고무격려했습니다.

1975년 89세의 고령에 이른 주덕동지는 제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를 주최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대표들은 다시 한차례 주덕동지를 인대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했습니다. “4인방”이 주덕동지를 배제하려 망상하고 4기 인대를 리용하여 국가의 최고 령도권을 찬탈하려던 음모는 철저히 파산되였습니다. 이 해 주덕동지는 “끝까지 혁명하자”는 네글자를 썼습니다.  공산주의를 위해 종신토록 분투한  그의 원대하고 위대한 뜻을 표달했습니다.

주덕동지는 서거되기 얼마전까지도 여전히 국가의 대사를 처리했습니다. 병이 중해진 기간에 외손녀더러 그를 위해 신문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친속들에게 “나에게 2만원 저금밖에 없는데 내가 죽은 후 이 돈을 조직에 바쳐 나의 당비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976년 7월 6일 주덕동지의 심장은 박동을 멈췄습니다. 온 나라가 비할바 없는 애통속에 잠겼습니다. 주덕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였으며 전투의 일생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서를 실현했으며 조금의 보류도 없이 자신을 위대한 당과 인민에게 바쳤습니다.

주덕동지는 우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형상과 빛나는 업적 숭고한 품덕은 영원히 중국인민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졌습니다. 우리를 고무하여 영원히 앞으로 전진하게 할것입니다.

주덕동지가 걸어온 길은 한갈래의 위대한 도로입니다. 주덕동지의 일생은 바다와 같이 설레이고 팽배할것이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입니다. 주덕동지의 이름은 중국혁명사에서 영원히 빛을 발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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