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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과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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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3-22 09:04| 조회 :5,6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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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과민--로자


포 붕 산



오늘 계속하여 로자를 강의하겠습니다. 장자는 일찍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황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바로 우리 염황자손들의  황제말입니다.  천하를 다스리고 있을때  황제는 높은신 분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나라를 더욱 잘 다스릴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다면 이 높으신 분은 누구실가요? 장자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대외라고 부렀는데 구자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수하의 여섯 성현들을 거느리고 마차를 타고 대외가 살고있는 지방으로 그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찾았지만 그를 찾아낼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한 목동을 만났습니다. 너는 구자산이 어디인지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대외가 어디있는지도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황제는 듣고나서 매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작은 목동이 모든것을 알고 있으니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지도  알고 있지 않을가고?   이상하구나, 너는 구자산을 알고 있고 대외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으니 천하를 어떻게 다스리는지도 알고 있지 않겠느냐? 알고 있사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말을 모는 일과 같지 않겠습니까? 오직 말의 본성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될것이 옵니다. 

황제는 듣자마자 목동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로백성들이 안심하고 즐겁게 일할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역시 이렇게 간단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로백성들이 좋아하는 정책을 황제가  제정하고 널리 보급시키며 로백성들이 싫어하는 정책은 페지하면 됩니다. 그야말로 말을 모는것과 같은 리치입니다. 황제는 급히 목동에게 합장하고 큰 례를 표시했습니다.  황제는 다시 대외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목동의 그 한마디 말속에 천하를 다스리는 중요한 도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다면  그 중요한 도리란 어떤 도일가요? 바로 자연의 길입니다. 

아래 로자의 한단락의 말을 들어봅시다: “불상현 사민불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시이성인지치, 허기심실기복, 약기지강기골.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칙무불위.”   로자의 사상에서 더욱 많은 것은 일부 부정성적인 사상들입니다. 제가 통계한데 의하면  오천여개의《도덕경》안에는 235개의 “불”자가 있고 거의 백개에 달하는 “무”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금방 본 이 단락도 아주 전형적으로 단숨에 여덟개의 “불” 자와  네개의 “무” 자를 쓰고있습니다.

우리 함께 간단하게 분석해 봅시다. 례하면 시작의 첫구절에 불상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현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현의 좋지않은 면을 보아냈습니다.   이는 무엇때문일가요? 현은 비록 한 사람의 능력의 총화이지만 또한 현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유용한 공구가 될수 있음을 로자는 보아낸것입니다. 로자는 무위를 주장하였기에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무슨 일을 하려면 그때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사람은 현명할수록 많이 움직이고 많이 일해야 하며 동작의 폭도가 커질수록 잠재적 가능성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습니다. 로자가 보건대 이 세계상의 매우 많은 나쁜일들과 매우 많은 파괴성적인 일들은 모두 일부 능력있는 사람들이 해낸것입니다. 매우 많은 화는 그들이 불러온 것입니다. 때문에 로자는 특별히 고요한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두번째 구절 “불귀난득지화”. 화는 무엇일가요? 화란 사람마다 얻고 싶어하는 물질적 향수를 말합니다. 화의 나쁜점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허기심이라고 부르며 또 무엇을 약기지라고 합니까? 그것은 당신의 내심을 공허하게 하고 당신의 지향을 취약하게 합니다. 로백성들은 모두 심지가 공허하고 지향이 취약하므로 특별한 욕구가 없고 현상에 안착하여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적응하고 만족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우에서 그들에게 배불리 먹게하면 그것이 식기복입니다. 배가 부르면 강기골로서 그들은 좋은 신체를 가지게 됩니다. 로백성들은 배가 부르고 신체는 좋지만 심령이 공허하고 지향이 취약하여  무지하고 무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것이야말고 사실상의 우민정책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민정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로자의 이러한 우민정책의 목적이 통치계급의 정치와  백성의 고혈을 짜내려고 하는것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우매와 이러한 공허, 그리고 이러한 취약감이  참다운 순박성의 표현이고 적자지심의 상태라고 믿고있습니다. 심지어 배불리 먹고 배불리 마시고 신체가 건강하여 무지무식하며 아무런 욕구도 없는것을 도덕적인 사람과 도덕적인 사회의 최고의 경지라고 믿습니다. 동시에 로자는 이것이 가장 행복한 경계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사부지자부감위” 라고 할가요?     그것은 곧 로백성과 대중들이 모두 이미 우민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위장이 충실하여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의식주를 걱정할 일이 없으니 아무런 지향도 가지지 않고 아무런 추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머리는 텅 비여있고 사지만 건강하고 심지가 비여 있으니 지혜가 있는 자들이 무엇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어디에 가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할수 있을가요? 하기에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고립되여 갑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여도 심지어 세상을 한번 개변시키려고 하여도 아무도 응해주지 않습니다. 로자의 이러한 말은 확실히 반면적 영향을 가지고있습니다. 중국의 력사에서도 확실히 불량적인 영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우민정책은 사실상 아주 무서운것입니다.
 
로신선생은 일찍 이런 의혹을 가졌습니다. 철창안에 많은 사람들이 갇혀 깊이 잠들어 죽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혼미하게 자다가 깨여나지 못하면 저절로 죽어버릴 것입니다. 만약 이럴때 한 두사람이 깨여났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가요? 이 문제에 대하여 로신선생은  아주 당혹스럽게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한 두사람이 모두와 함께 계속하여 잠들어 죽기를 기다려야 할가요? 아니면 대중을 깨워 일어나게 해야 할가요? 당연히 로신선생은 최종적으로 깨워야 한다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그는 국민들을 불러 일으켜  깨울것을 희망하였습니다. 때문에 로신선생의  첫번째 소설집의 제목은《웨침》입니다。 즉 철창안에서 한두사람이 각성하여 반드시 자신들의 높은 웨침으로 민중을 일깨워야만이 국가가 비로서 희망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인민들만이 비로서 희망이 있습니다.

로자는 사실상 철저한 무정부주의자입니다. 무위의 결과란 긍정적으로 통치의 합리성을 부정하였습니다. 통치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다시는 사람을 다스리는 일도  없어야 하거니와 통치받는 로백성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사회조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례하면 국가라든지 등등 말입니다. 따라서 그에 상응한 도덕관념도 역시 “피지불존 , 모장언부”입니다. 때문에 일체의 모든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사실상 로자 역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한 단락의 유명한 말은 소위 “소국과민”의 리상입니다.

이제 “소국과민” 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비록 그가 “국”이란 단어를 쓰긴 하였지만 사실상 한개 국가가 이 정도로 작아지면 이미 국가라고 부를수 없습니다. 이 단락은 로자의 오천여개의 말중에서 가장 시적인 한 단락입니다. 중국의 문학사와 중국의 력사에서 매우 많고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래에 이 단락을 읽어봅시다. 그는  “소국과민, 사유십, 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도,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민복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락기속, 안기거, 린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로사불상왕래.”  

우리 다시 되돌아가서 분석해 봅시다. “소국과민”을 다시 읽어보면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어졌으니 국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적은 정도가 이웃나라를 서로 바라볼수 있고 개가 짖고 닭이 우는 소리도 서로 들립니다. 자기 국가의 땅에서 머리를 들어 바라보면 그것이 곧 이웃나라이며 이웃나라의 개짖는 소리와 닭울음소리도 모두 들을수 있으니 이것을 어찌 국가라 할수 있을가요? 때문에 로자가 이 곳에서 “국”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지만. 이 ‘국”은 사실상 이미 국가가 아닙니다. 이 곳은 오직 일부 원시적인 자연촌락일 뿐입니다. 크다고 해도 하나의 자그마한 진일 뿐입니다.  “소국과민”이라는 이러한 작은 규모를 가진 이후에는 십백의 무기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강의한 로자의  반지혜, 반기술, 반문명, 반진보의 사상입니다.

로자가 살아있는 년대로 인류가 발전되였을때는 춘추후기였기에 우리는 매우 많은 기술진보가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많은 기계와 공구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부분 공구들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것은 일종의 인류문명의  고유형식입니다. 그러나 로자는 사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고 도리여 “사민중사이불원도”라고 함은 로백성들이 모두 생사를 중히 여겨 먼곳으로 떠나지 않기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류와 이민이 없습니다. 당신이 어느 부락에서 태여났으면 죽을때까지 그 부락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결과가 “ 수우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인 것입니다. 즉 배나 선박, 그리고 차가 있어도 백성들은 먼곳을 떠나지 않기에 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배나 선박 이런 많은 무기들이 있더라도 쓰이지 않아 자연히 페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장갑차,  병사가 있고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진을 치고 싸울곳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자연적인  작은 부락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몽둥이를 들고 패거리 싸움이나 할뿐입니다. “사민복결승이용지”.  사람들로 하여금 결승이치의 시대로 되돌아가 문자도 쓰지 않고 다 페지시킵니다.

우리는 로자에게 이렇게 물어볼수 밖에 없습니다. 문자를 다 페지시키면  당신의 이 오천구절들은 어떻게 해야 할가요? 무슨 일이 있으면 바줄에  매듭을 지어 쓸 정도로 로자는 철저히 문명을 반대하였습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과연 로백성들은 어떠할가요?  “감기식, 미기복, 악기속, 안기거”. 백성들은 자신들이 먹어본 음식들이 모두 달콤하다고 여길 것이며 자기들이 입은 옷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여길 것입니다. 로백성들은 로자의 이런 풍속에 대하여 매우 쾌락을 느낄것이며 기꺼이 이러한 풍속에서 생활하기를 즐길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환경에 매우 안심할 것이며 안일하게 지낼 것입니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 보이고 닭울음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죽어도 서로 래왕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서로 래왕하지 않으므로 자연히 먼곳으로 이사갈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닭울음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서로 들린다는 것은 상대방의 닭들도 서로 들을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저 쪽의 개짖는 소리를  이쪽의 개도 들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은 래왕하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해 줍니까? 로자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화와 사회조직상의  관계를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즉 일종의 련계와 교류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사람사이의 문화적 뉴대를 끊어 버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적 혈연의 뉴대속으로 되돌아 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족속으로 되돌아가고  혈연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것은 원시적인 집단부락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뜻입니다. 보건대 로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회적 래왕에 대하여 너무 낮게 평가하였습니다. 매우 비관적인 태도를 품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문명한 성과인 국가에 대한 그의 평가는 더욱  낮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국가를 해산해야 한다는 경향에 머물러 있었으며 원시부락으로 다시 돌아가는  상태를 고집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묘사한 “소국과민”의 리상적인 생활은 중국의 력사에 매우 큰 영향을 일으켰습니다.

사상가는 언제나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하나의 생활의 리상을 제공한다고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례하면 공자는 우리들에게 “대동”의 리상을 제기하였고, 로자는 “소국과민”의 리상을 제출하였습니다. 참말로 일대 일소 현상입니다. 공자는 먼 앞날을 내다 보았다고 말할수 있고 로자는 뒤돌아 보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로자의 뒤돌아보는 이러한 사상이  분명히 비관적 색채를 띤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중국에서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례하면 진나라때 일입니다. 도연명은 아주 유명한 한편의 《도화원시병기》를 썼었습니다. 어느 하루, 진나라때  고기잡이군이  작은 내가를 따라 걷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어느만큼 멀리 왔는지를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그는 돌연히 한 뙈기의 도화림을 만났습니다. 이 도화림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모양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 앞으로 걷기로 하였습니다. 이 도화림의 끝까지 걸어볼 생각이였습니다. 수림의 끝에 이르자 자그마한 산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산옆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다가가  보았더니 동굴이였습니다. 그는 그 산굴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산굴은 매우 비좁았습니다. “ 초기협재통인”, 처음에는 동굴이 비좁아 겨우 한사람이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갔더니 불시에 앞이 환해졌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가요? 그 곳은 도화원이였습니다. 안의 건물들은 잘 정돈되여 있었으며 숙사들도 정연하였습니다. 천맥은  잘 통하여 있었고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향한 밭이랑들도 매우 정연하였습니다. 남자와 녀자들은 서로 오고 가면서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천을 짜고 있었습니다. 노랑머리를 묶어 드리운 아이들과 로인들의 표정은 엄숙하고도 즐거워 보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군산의 품에 안긴 세상과 격리된 작은 마을이였습니다. 전형적인 “소국과민”의 생활이였습니다.
 
제가 금방 강의한 도연명의 도화원은 실제로 있었던 곳인지 아니면 도연명의 허구인지는 학술계에서도 부동한 관점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것은 도연명 본인도 이 도화원에  가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허구적으로 이 도화원을 묘사할때는 사실상 모든 어민들이 안에서 나온후에 전해진 이야기일것입니다. 분명한건 도연명이 도화원의 이야기를 쓰면서 도화원의 형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할 때 로자의 “소국과민”의 한단락 이야기가 그의 두뇌속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음을 긍정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로자의 “소국과민”이나, 도연명의 ‘도화원”을 막론하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은 자연적이고도 혈연적인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는 오직 자연적 혈연관계가 있을뿐 사회적 조직관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있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야말로 행복하고도 안일하며 시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점에서 바로 로자의 “소국과민” 리상은 후세에 그처럼 큰 영향을  산생시킬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로자의 “소국과민” 사상 역시 우리 중화민족이 행복한 생활에 관한 아주 아름다운 상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기나긴 력사 시기에 중국의 고대봉건시기의 암흑한 년대에 이 리상은 매우 긴 시간동안 압박받고 착취받는 인민들의 환상속에서 하나의 리상왕국이였으며  리상세계였습니다. 로자의 철학가운데는 한가지 더욱 중요한 한 방면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즉 그의 인생철학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나 한 개체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처신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로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로자의 이 방면의 사상은 한 사상가의 큰 지혜를 체현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로자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로자의 인생철학은 도대체 큰 지혜를 체현한 것일가요? 아니면 음험하고 교활한 것일가요? 다음 시간에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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