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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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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1-23 09:01| 조회 :2,9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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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



1982년 1월 1일 중공중앙에서는 1호문건을 발급했습니다. 우리 나라 농촌에서 나타나고 있는 농호별생산량도급제 등 여러가지 형식의 생산책임제를 긍정한것입니다. 사회주의 집체경제의 생산책임제였습니다. 그후부터 생산량도급제와 생산도급제라는 이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는 보편적인 보급과 시행을 얻었습니다.

당대 중국의 개혁은 농촌으로부터 발을 뗐습니다. 농촌의 개혁은 호도거리의 실행과 보급을 가장 기본적인 표징으로 합니다. 당과 국가는 문화혁명이라는 큰 재난속에서 걸어나왔습니다. 농민들도 발전을  속박하던 질고속에서 벗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 봄부터 시작된 진리기준문제에 관한 토론은 사상해방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농촌생산책임제에 관한 격렬한 쟁론속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생산과 생산방식을 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635712248_82eb6e35_u3D16172361892C351438안휘는 중국 중부에 있는 하나의 큰 농업성입니다 1978년 여름 안휘는 백년에 한번 만나기 힘든 특대 한재를 만났습니다. 비서 래안 봉양 등 현의 부분적 농민들은 재해를 이겨내고 스스로 구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조에 맡기기나 가정도급제 등 형식의 생산책임제를 시작했습니다. 1978년말 봉양현 소강촌의 18호 농민들이 한부의 토지도급계약서에 18개의 진붉은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갈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하게 철저한 생산량도급책임제를 실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면 청부제를 실행하여 가만히 땅을 호에 나누고 생산량을 도급맡기면서 중국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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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도거리나 생산도급제를 물론하고 당시 중앙에서는 아직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소수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것이 사회주의 원칙을 떠나는것이 아닌가고 걱정했습니다. 비록 이런 작법이 장시간내에 중앙의 인정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자본주의 자발경영” 으로 되여 비판과 압제를 받았지만 그러나 생산발전을 촉진할수 있었기에 광범위한 농민가운데서 보편적인 친밀감과 심후한 기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전면청부제는 갔다가 곧장 돌아오면서 에돌지 않고 량식을 수확한 후 국가에 충족하게 바치고 집체에 충족히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작법은 로동성과와 농민의 수익이 직접적인 련계가 되였기에 농민들의 환영을 널리 받았습니다. 증산효과도 아주 뚜렷했습니다. 1979년 추수가 결속된 후 소강촌에서는 일년에 13만 여근의 량식을 얻었습니다. 이는 소강촌이 1955년부터 1970년까지 15년간 량식총생산량에 상당합니다. 이 1년 소강촌에서는 국가에 2.5만근의 량식을 바쳤고 고구마 0.5만근 유료작물 2.5만근을 바쳤으며 처음으로 국가대출 800원을 상환했습니다.

전면청부제는 중국농민이 농촌의 생산관계를 변혁시키고 생산력을 해방시킨 하나의 위대한 창거입니다. 등소평 등 당과 국가령도자의 유력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동시에 “극좌사조”와 “두개 무릇파” 방면에서 오는 엄중한 교란을 극복했습니다.

635712248_0e16bf06_u3D41393612792C344105등소평은 농촌에서 나타난 개혁의 추세에 대해  긍정과 지지를 주었습니다. 1980년 4월 2일 그는 중앙책임자와 농업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반드시 매가정 매호로 하여금  모두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길을 찾고 생산을 증가하고 수입을 증가하며 어떤것은 조에 도급맡기고 어떤것은 개인에게 도급맡겨야 합니다. 이것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제도와 사회주의 성격에 영향을 줄수 없습니다.”

 5월 31일 그는 다시 유관책임동지와 담화할 때 안휘에서 호도거리와 생산도급제를 실행한 작법을 긍정했습니다. 이렇게 하는것이 집체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을것이라 여겼고 동시에 “관건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것이고 집체화의 진일보 발전을 위해 조건을 창조하는것이다” 고 제출했습니다. 이런 연설은 농촌개혁을 추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일으켰습니다.

호도거리는 생산대의 통일경영과 가정의 분호경영을 결합시켰기 때문에 농민의 절실한 리익을 생산량과 밀접히 련계시켰습니다. 평균주의와 일하는데 실효가 없고 맹목적인 지휘를 하는 페단을 효과적으로 극복했습니다. “각자는 능력을 다하고 로동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관철하는데 리로왔습니다. 

도급제는 집체경제속에서의 지위를 단순한 로동자로부터 생산자이면서도 경영자로 변하게 했으며 진정한 주인공으로 변하게 했기에 농민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도급제는 당시 생산력 발전단계의 법칙에 적응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농업생산의 거대한 잠재력을 신속히 석방해냈습니다.

635712248_10f007fd_u3D34056987512C3328901980년 9월 14일부터 22일까지 중공중앙은 각 성,시, 자치구당위서기 회의를 소집하고 농업생산책임제를 강화할데 관한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그번 회의는 생산대 령도하에 실행되는 생산량을 호에 도급맡기는것은 사회주의경제에 의존하는것이고 사회주의궤도를 탈리할수 없다는것을  긍정했습니다. 자본주의 복벽 위험도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다년래 생산량을 호에 도맡기는 것이 밭을 나누어 개인으로 하는것과 동등하며 자본주의와 동등하다는 관념을 타파하고 당이 농촌정책에서의 중대한 돌파를 실현했습니다. 그로부터 호도거리와 책임제는 중앙의 정책에서 승인을 얻었습니다.

전면 청부제를 주요형식으로 한 농촌의 호도거리는 안휘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1984년 말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96.6% 이상의 생산대에서 호도거리와 생산량도급제를 실행했습니다. 당년 전국의 량식생산량은 4200억 킬로그람의  높이에  도달했고 인평균 400킬로에 도달하여 처음으로 일약 세계의 평균수평으로 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호도거리는 강대한 생명력으로 림, 목, 부, 어, 등 각업에 신속히 확장되였습니다. 전국 농촌의 각항각업의 활발한 발전과 서로 경쟁하고 따라 잡으면서 종래로 있어본적 없던 좋은 형세가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1982년 양력설 우리당의 력사에서 첫번째로 된는 농촌사업1호 문건이 정식으로 출범했습니다. 문건은 전통적인 “3급소유 생산대를 기초로” 하는 체제 틀을 돌파하고 호단위생산도급제와 산량도급제 혹은 전면 청부제는 “모두 사회주의생산책임제” 이고 “사회주의 농업경제의 조성부분” 이라는것을 명확히 제출했습니다.: “호도거리의 운용은 집체리익과 개인리익을 합당하게 조화할수 있으며 동시에 집체통일경영과 로동자자주경영 두개의 적극성이 동시에 발휘될수 있도록 한다.” 이때로부터 호도거리와 생산도급제의 이름을 바로잡고 몇년래 농업의 생산책임제에 관한 쟁론에 원만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635712248_fa66beb5_u3D29390686672C3345691982년부터 1986년에 이르기까지 중앙은 련속 5년 “1호문건”의 형식으로 가정련산도급책임제에 명확한 긍정을 주었고 동시에 정책에서 적극적으로 인도하여 농촌개혁의 돌파와 농업생산의 발전을 유력하게 촉진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적지않은 국가와 지구에서 량식위기의 곤혹을 겪고있을 때 중국의 국내 량식공급은 평형되였고 량식가격이 평온했으며  창고에 곡식이 넘쳤습니다.

호도거리는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이며 우리 나라 농촌의 생산력수준에 적응되고 광범위한 적응성과 생산조직형식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호도거리 흥기와 보급은 중국의 농촌에 한차례 변혁을 가져왔으며 직접적으로 농촌사회구조의 혁명을 초래했습니다. 농촌개혁의 발전과 성공은 도시개혁의 진행을 추동했고 농업에서 공업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상호 영향을 주고 상호 개혁을 촉진 했습니다. 동시에 농촌자체의 개혁을 더욱 심입되고 더욱 광활한 령역으로 전진하도록 추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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