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吉林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9년: 희망공사 > 력사사건

본문 바로가기
전체인기글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9년: 희망공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1-24 10:47| 조회 :2,546| 댓글 :0

본문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9년:  희망공사


 “난 또 학교를 다니게 되였습니다.” 자그마한 여린 손이 흑판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이는 비단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오게된 기쁜 심정을 표달했을 뿐만아니라 빈곤지구의 배움의 기회를 잃은 많은 아이들의 지식에 대한 절절한 갈망과 웨침이기도 합니다.

635712752_c9c23cde_u3D36287116192C376367지난 세기 80~90년대 우리 나라 빈곤지구에서는 해마다 약 100만명 빈곤가정 어린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빈곤지구의 학교조건이 차하고 기초교육수준이 낮은 상황은 빈곤지구의 경제발전과 사회주의정신문명건설의 발전을 엄중하게 저애했습니다.

1989년에 국가유관부문에서는 아래와 같은 수자를 공포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근 2억에 달하는 문맹이 있는데 세계적으로 문맹 네사람중에 중국사람이 한명씩 들어있다고했습니다. 이 참기 어려운 상황은 공청단중앙의 몇몇 젊은이들을 몹시 자극했는데 그들은 빈곤지구의 기초교육을 위하여 무슨 일이나 꼭 해보려고 결심했습니다. 1989년3월에 그들은 등록자금 10만원을 모으고 중국인민은행과 민정부의 비준을 거친후 공청단중앙, 전국청년련합회, 전국학생련합회, 전국소년아동사업위원회와 련합으로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를 세웠습니다.

1989년 10월에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에서는 우리 나라 빈곤지구의 품행과 학문이 다 우수하나 가정이 곤난하여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린이들을 장기적으로 보조하여 배움의 기회를 찾아주기로 경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활동의 이름은 “희망공사”이라고 달았습니다.

635712752_0e58b4cd_u3D24312631652C2314231990년 5월 19일에 혁명로근거지인 안휘성 금채현 남계진에 첫번째 희망소학교가 세워지면서부터 “희망공사”는 정식으로 가동되였습니다. “난 또 학교를 다니게 되였습니다”라는 이 사진은 1991년에 찍은것입니다. 사진속의 소녀애는 손에 연필을 쥐고 앞을 내다보고 있는데 두눈에는 지식에 대한 구지욕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이 소녀애의 이름은 소명견인데 구지욕으로 넘쳐흐르는 그의 눈길은 재차 무수한 전국인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이 발표된후 국내의 여러 신문과 잡지들에서 앞다투어 그 사진을 실어서 중국희망공사의 선전표지로 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구지욕이 넘쳐나는 그 소녀애의 눈길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희망공사애심행동의 도움하에 소명견은 순조롭게 고중학과를 마쳤을뿐만아니라 2002년9월에는 안휘대학 직업기술학원 금융전업에 입학했고 2005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또 순조롭게 중국공상은행 안휘성분행에 배치받아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소명견은 희망공사가 없었더라면 그는 고중도 다니지 못했을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공익활동에 참가하여 사회의 관심에 보답하는것은 소명견의 자각적인 행동으로 되였습니다.

사회의 력량을 빌어 교육을 꾸리는 희망공사의 성공적인 탐색은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경비를 모아 전사회가 공동으로 교육사업을 추진하는 유익한 모식은 사회각계층과 각지 정부로하여금  교육을 한층 더 중시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희망공사는 세상에 태여나자마자 등소평 등 로일대혁명가, 강택민, 리붕 등 령도동지의 찬양을 받았는바 그들은 희망공사를 위하여 제명을 하거나 제사를 썼으며 열정적으로 희망공사를 위하여 돈과 물건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또 희망공사의 보조를 받는 학생들을 만나보고 있는힘껏 희망공사사업을 떠밀어주었습니다.

635712752_57705928_u3D32287247032C119494희망공사는 빈곤지구의 배움의 기회를 잃은 많은 어린이들을 도와 배움의 기회를 다시 얻게 하였고 빈곤지구를 락후한 면모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전 민족의 과학문화 수준과 국민의 정체적인 자질을 제고하는데 적극적인 추진역할을 했으며 사회적으로 “아무리 째지게 가난해도 교육만은 가난하게 할수 없으며 아무리 거칠것 없이 가난해도 어린이들을 가난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웨침소리가 터져나오게 했습니다.

정부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단체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로부터 분분히 빈곤지구의 학교에 자선금을 보내왔으며 하나 또 하나의 사랑의 마음이 배움의 기회를 잃었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힘겹게 삼륜차를 몰고있는 이 로인은 백방려라고 하는데 74살부터 93살까지 삼륜차를 몰아 번 돈으로 300여명의 빈곤한 아이들을 도와 학업을 완수하려는 꿈을 실현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백방례의 고향은 하남성 창현 백가촌인데 백로인이 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마을의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학교로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로인은 저금했던 돈5천원을 몽땅 내놓고 또 매일마다 삼륜차를 몰아 번 돈으로 아이들을 계속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백로인과 그의 삼륜차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천진대학, 남개대학, 천진사범대학에는 그가 삼륜차를 몰아서 번 돈으로 추천해보낸 학생들이 날따라 많아졌습니다. 그랬으나 그는 아주 검박하게 생활했으며 절약하며 살았습니다

녀: [기자] 매일 뭘 자시는가요?
남: [백방례] 돈을 남기느라고 값이 싼걸로 사먹습니다. 고기같은건 궁리를 많이 하고 먹습니다. 자주 먹는다거나 고기만 먹는다고 말할수 없지요. 그렇게 먹지 않습니다.
묵은 밥을 먹고 기운 옷을 입으면서 절약할수만 있다면 그는 체면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써 모은 한푼한푼의 돈을 몽땅 빈곤한 어린이들에게 주었습니다.
녀: [기자] 지금 이렇게 하는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나요?
남: [백방례] 행복합니다. 왜서 행복하다고 하는지 알만한가요? 하고싶은 일을 하기에 행복하다는겁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희망공사는 자신을 완벽하게 해야 할 객관수요와 사회각계의 뜻에 따라 희망공사전략중점의 전이를 실시하여 과거 빈곤지구의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을 보편적으로 보조하던데로부터 우수한 학생을 따라가며 양성하는데로 옮겼으며 과거의 희망소학교의 기본건설 위주로부터 교원양성, 현대화교수설비배치로 옮겨오면서 괄목할만한 성과와 종합적인 효익을 가져왔습니다.

635712752_a2c67ac1_u3D40015064792C47369420년래 희망공사에서 모집한 금액은 56억원이 되며 346만명 농촌빈곤가정 어린이들을 계속 공부하게 하였으며 1만5천여소의 희망소학교를 지었습니다. 희망공정은 이미 중국개혁개방이래 사회자선금을 제일 많이 모아들이고 참여도가 가장 높은 공익활동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희망공사의 실시는 수많은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의 운명을 개변했으며 빈곤지구의 학교조건을 개선하고 전사회적으로 교육을 중히 여기는 의식을 불러일으켰으며 기초교육의 발전을 촉진하고 빈곤을 구제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것을 락으로 삼는 우량한 전통을 고양했습니다.희망공사는 어린이들을 구하는데로부터 착수하여 전반 중화민족의 희망을 떠올린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력사사건 목록

Total 53건 1 페이지
력사사건 목록
천리 결승--새중국은 여기에서 걸어나왔다 제 5 집 인기글 천리 결승--새중국은 여기에서 걸어나왔다 제 5 집 (남)해설원: 1975년 7월 원 국민당 제12병퇀사령 황유가 특사를 받았다. 그는 공덕림전쟁범관리소 대문을 나서면서 생각지 못한 한가지 요구를 제기했는데 하북의 서백파로 가보련다는 것이였다. 그는 공산당은 지휘소를 서백파에 설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공산…(2013-02-04 09:55:11)
인민페의 탄생-새중국은 여기에서 걸어나왔다 (제4집) 인기글 인민페의 탄생-새중국은 여기에서 걸어나왔다 (제4집) (남)해설원: 하북성 섭현 서쪽에는 깎아지르는듯한 절벽에 웅위로운 공중루각이 한채 있는데 이를 왜황궁이라고 부른다. 왜황궁과 멀지 않는 곳에 일부 작은 건물들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 개 비석들로 이루어 졌는데 이곳에 항일영웅 좌권장군이 모셔…(2013-01-31 09:09:34)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90년: 포동개발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90년: 포동개발 1990년 4월18일에 당중앙과 국무원에서는 상해시 포동지구개발을 다그칠데 관한 중앙의 결정을 정식으로 반포했습니다.포동은 황포강동쪽, 장강구 서남쪽, 천양하 북쪽으로…(2013-01-24 11:03:20)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9년: 희망공사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9년: 희망공사 “난 또 학교를 다니게 되였습니다.” 자그마한 여린 손이 흑판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이는 비단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오게된 기쁜 심정을 표달했을 뿐만아니…(2013-01-24 10:47:12)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7년: 력사적 사회발전단계를 정확히 확정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7년: 력사적 사회발전단계를 정확히 확정 1987년 10월25일부터 11월1일까지 중국공산당 제13차전국대표대회가 북경에서 개막되였는데 전국 4600만 당원을 대표하는 1936명의 대표가 대회에 출석했습니다. …(2013-01-24 08:58:11)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7년: “863” 계획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7년: “863” 계획 1986년3월3일 “세계고신기술발전을 따라갈데 관한 건의” 한부가 중공중앙에 올라갔습니다. 후에는 그 보고에 근거하여 중국고신기술연구와 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끼…(2013-01-24 08:45:09)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5년: 백만대군축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5년: 백만대군축 1985년에 중앙군위에서 내린 백만대군축결책은 중국인민해방군이 당과 국가의 사업중점을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로 옮기는 전략적결책을 관철시달하기 위한 중대한 행동…(2013-01-24 08:21:32)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4년:경제리론의 새로운 돌파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4년:경제리론의 새로운 돌파 1984년 당중앙12기3중전원회의에서는 “경제체제개혁에 관한 중공중앙의 결정”을 통과했습니다. 결정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전반 경제체제개혁중의 일련의 중대한 리론과 실천문제를…(2013-01-23 09:38:16)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3:통일대업의 위대한 구상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83:통일대업의 위대한 구상근대의 중국은 비바람속에 시달리고 굴욕을 받았으나 중국인민은 민족독립을 쟁취하고 국가의 주권과 령토완정 및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백여년을 끊임없이 분투하여 왔습…(2013-01-23 09:21:41)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중국농민의 위대한 창조 1982년 1월 1일 중공중앙에서는 1호문건을 발급했습니다. 우리 나라 농촌에서 나타나고 있는 농호별생산량도급제 등 여러가지 형식의 생산책임제를 긍정한것입니다. 사회주의 집체경제의 …(2013-01-23 09:01:44)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강령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 공화국의 발자취 1982년: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강령 1982년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중국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가 북경에서 성대하게 개막되였습니다. 등소평이 대회개막식을 사회하고 동시에 개막사를 드렸습니다 그는…(2013-01-23 08:54:18)
렌즈속의 기억-공화국발자취 1981년: 지도사상에서의 혼란상태수습의 승리적인 완수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발자취1981년: 지도사상에서의 혼란상태수습의 승리적인 완수11기3차 전원회의후 우리 당은 장기적으로 내려온 좌적사상을 청리, 규정하고 사상, 정치, 조직, 경제 등 령역에서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문화대혁명 및 건국이…(2013-01-21 08:10:53)
렌즈속의 기억-공화국발자취 1980년: 정치제제개혁의 발걸음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발자취 1980년: 정치제제개혁의 발걸음 1980년 8월 18일 등소평동지가 중앙정치국확대회의에서 한 “당과 국가의 령도제도의 개혁”이라는 중요연설은 새시기 당과 국가의 령도제도개혁에 방향을 기리켜주었습니…(2013-01-21 07:41:55)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77년:대학입시 문을 다시 열다.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77년:대학입시 문을 다시 열다 매년 여름철이면 중국에서는 모두 전국적인 대학입시를 맞이합니다. 이는 중국에서 목전 규모가 제일 크고 백성들의 인정도가 가장 높은 최고인재선발 제도로서 무수한 청년…(2013-01-18 08:20:53)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76년:10월의 승리 인기글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76년:10월의 승리 1976은 중국사회가 격렬한 요동을 치던 한해였습다. 이 한해동안 중국에서는 세계를 놀리우는 일련의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1월 8일, 주은래총리가 서거했습니다…(2013-01-18 08:18:25)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