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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90년: 포동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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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3-01-24 11:03| 조회 :2,2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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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속의 기억-공화국의 발자취

                        1990년: 포동개발

1990년 4월18일에 당중앙과 국무원에서는 상해시 포동지구개발을 다그칠데 관한 중앙의 결정을 정식으로 반포했습니다.포동은 황포강동쪽, 장강구 서남쪽, 천양하 북쪽으로 상해 외탄과 맞대인 삼각형지구입니다. 이곳은 발전잠재력이 아주 많은 곳이였으나 력사적으로 황포강량안에 다리거나 턴넬이 없어서 포동의 발전은 포서보다 엄청나게 떨어져있었습니다.

635712752_70e26cef_u3D11046638622C232884일찍 20세기초에 손중산과 국민당정부 그리고 중국의 유지인사들이 포동개발의 구상을 제기했으나 모두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일찍 새중국의 건설과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상해시는 20세기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가 내려가고 도시가 낡고 환경오염이 심하고 시민생활질이 차한 곤난에 부딪치게 되였습니다. 남방 연해지구의 개방도시와 비하면 상해의 발전속도는 너무나도 늦었습니다.  1984년부터 국무원과 상해시정부에서는 상해를 일떠세우려면 항주만과 장강남북 량익으로 나가면서 조건을 창조하여 포동을 개발하며 새로운 개발구를 세워야 한다고 인정하고 “상해경제발전전략회보제강”을 제출했습니다. 1984년4월 당시 상해시 시장이였던 강택민의 주최하에 상해시정부에서는 포동개발의 초보적 방안을 제출하고 중앙에 “상해시도시계획방안회보제강”을 보고했으며 10월에 상해시정부에서는 또 국무원에 “상해시도시총체계획방안”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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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시도시총체계획방안”에서는 “동진” 즉 포동개발을 계획성구상에 넣었습니다. 국무원은 비준문건에서 “목전에는 포동지구를 계획적으로 건설하고 개조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포동을 현대화한 새로운 구역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1987년7월에 상해시정부에서는 포동개발련합자문소조를 설립하고 부시장 두사람이 정,부조장을 맡았습니다. 이듬해 5월에 상해시정부에서는 140여명의 전문가 학자들이 참가한 포동개발국제연구토론회를 열었습니다. 1988년부터는 당중앙의 지지하에 상해에서는 포동개방개발의  타당성 연구를 다그쳤습니다.  1990년 초에 상해시당위서기 주용기는 등소평에게 포동개발의 전략적 구상을 회보했는데 등소평의 중시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해 2월에 상해시당위와 시정부에서는 정식으로 당중앙 국무원에 “포동개발에 관한 청시”를 보고하고 포동개방개발의 기본적인 구상을 제기했습니다.

1990년 3월에 등소평동지는 몇몇 중앙의 책임동지들과 담화할 때 “기회는 틀어잡아야 하고 결책은 적시적이여야 하며 어느 곳의 조건이 좋은가를 연구하여 재원을 크게 개척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상해를 틀어쥐는것인데 상해는 우리의 왕패이므로 상해를 일떠세우는것은 한갈래 첩경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1990년 3월에 당시 국무원 부총리였던 요의림은 유관부문의 책임자들을 데리고 상해에 가서 포동개발문제를 둘러싸고 열흘동안 조사연구를 했습니다. 4월 10일에 국무원에서는 회의를 열고 조사연구회보를 청취하고 포동개발개방에서의 약간한 문제들을 연구했습니다. 4월18일에 당중앙과 국무원에서는 포동개발개방을 정식으로 선포했습니다.

1990년 4월후부터 상해시정부에서는 포동개발에 관한 일련의 정책과 조치를 제정했습니다. 9월에 국무원에서는 포동개방개발에 대한 상해시의 정책규정을 비준했습니다. 그리하여 포동개발은 실질성적인 가동단계로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1992년 음력설에 등소평동지는 재차 상해를 순시하면서 중요한 강화를 했습니다. 그는 “상해인민들은 사상을 더 해방하고 담량을 더 크게하고 발걸음을 더 빨리 재우쳐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상해는 인재, 기술, 관리면에서 선명한 우세가 있고 복사면이 크기에 발전을 다그칠 조건이 있으며 포동개발이 심수보다는 늦게 시작되였지만 기점을 높이기만하면 능히 심수를 따라잡을수 있을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635712752_c17ebc21_u3D41896165452C173290강택민동지는 당의 14차대표대회에서 당중앙, 국무원의 이 중대한 전략결책을 아주 형상적으로 개괄해 말했습니다. “상해의 포동개발개방을 룡두로 장강연안도시를 진일보 개방하며 상해를 국제경제, 금용, 무역중심으로 건설하며 장강삼각주와 장강류역지구 경제의 새로운 비약을 이끌어야 합니다.”

포동에서 제출한 기본방침은 세계로 향하고 현대화로 향하고 21세기로 향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것은 상해의 우세와 전국적인 지지를 충분히 리용하여 계획있고 절차있게 적극적이고도 온당하게 포동을 건설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중앙에서 원칙적으로 동의한 총체적 계획에 따라 8.5기간의 포동신구역의 발전중점은 “세개의 거리, 다섯개의 구역, 하나의 중심을 건설한다는것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문등로구매거리, 금교생산자료거리, 외육교”보세시장을 주체로 하는 특색거리” 천사진, 고교진, 로산, 주가도, 당교소구역과 장양로쇼핑센터입니다. 

9.5기간의 발전중점은 소륙가취중앙상무구역, 장양로상업거리와 화목국제박람센터를 건설하는것이였습니다. 이 두 단계의 건설을 거쳐 포동새구역은 기초시설이 비교적 온전한 국면을 초보적으로 형성하고 21세기초에 세계일류의 수준을 갖춘 국제적 도시새구역으로 건설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것이였습니다.

포동개방이 시작되자 실력이 있는 다국적기업과 중외금융기구에서 분분히 포동으로 몰려들어 외국인투자가 해마다 증가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외향형, 다공능형, 현대화형의 새로운 포동구역이 기적처럼 일떠나 전반 상해와 장강삼각주 및 전반 장강류역경제의 새로운 비약을 이끌었습니다. 그때로부터 포동은 새상해의 형상으로 되였으며 20세기90년대 중국개혁개방이 현저한 성과를 따낸 중요한 표징으로 되였습니다.

당중앙과 국무원에서 비준한 방안에 따라 세기를 뛰여넘는 포동의 개발개방은 세단계로 진행했는데 첫단계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를 개발개방의 시작단계로 하고 두번째 단계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를 중점발전단계로 하였으며 세번째 단계는 2001년후의 2.30년 혹은 더 긴 시간을 전면건설단계로 잡았습니다. 포동의 20년은 나라전략의 력사적 중임을 맡아한 외에 또 대량의 탐색을 거쳐 보귀한 경험을 축적하여 중국특색사회주의에 내용이 극히 풍부한 “포동본보기”를 기여했습니다.

과거 아주 긴 시간 상해사람들의 마음에서 포서는 도시고 포동은 시골이였습니다. 그래서 “포서에서 침대 하나를 가지고 살지언정 포동에서 집 한채를 준대도 가지 않는다고 했으며 딸을 낳으면 절대로 포동총각에게 주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포동은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상업이 흥성하여 국제금융중심의 어엿한 자태로 새로운 지역명칭- “포동새구역”을 우리나라 개혁개방의 력사에 적어넣었습니다.

륙가취는 당년에 가장 높은 건물이래야 27메터 되는 소방료망탑이였는데 포동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됨에 따라 련이어 468메터 되는 동방명주, 높이가 420.5메터 되는 금무빌딩, 높이가 492메터 되는 환구금융중심이 일떠섰고 2014년이면 높이가 632메터 되는 “상해중심”이 또 일떠서게 됩니다. 하나 또 하나의 고층건물은 포동건설의 높이과 속도를 말해주며 고층건물내의 백여개에 달하는 금융기구들은 륙가취를 명실공히 금융무역구로 되게했습니다.

2010년 4월18일 상해포동개발개방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세계박람회주체건물, 국제금융중심 등 일련의 칭호는 포동을 세게가 주목하는 초점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중국개혁개방의 척후병인 상해포동은 그제날의 시골버덕으로부터 오늘날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상가가 밀집한 대도시로 되였습니다. 포동은 전설적인 기적을 창조한것입니다. 20년은 포동의 “성인례”일 뿐만아니라 새로운 기점에서의 “출정식”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포동은 창상지변이면서도 세계를 향한 발발한 웅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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