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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과 굴원의 인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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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0-11-15 12:33| 조회 :4,9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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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절과 굴원의 인격 -1




                                   리경일 무한대학방송텔레비신문학부 주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오월 초하루이죠. 며칠후면 오월 초닷새, 중국의 민간명절―단오절이지요. 단오절이면 대잎찰밥쌈을 먹고 룡주시합도 하지요. 기실 명절마다 다 특정된 캐리어(载体)가 있어요. 음력설이면 폭죽을 터뜨리고 대보름이면 샐심을 먹고 등불구경하고 추석이면 월병을 먹고 중양절이면 국화를 감상하는거죠. 전통명절의 특유한 캐리어로써 일종 표현형식이지요. 이런 형식은 모두 력사적으로 형성된 문화현상이예요.

단오절에 대잎찰밥쌈을 먹고 룡주시합하는것은 위대한 애국시인 굴원을 기념하기 위한것이죠. 바로 기원전 278년도 이날, 즉 오월 초닷새날에 굴원이 물에 빠져 저승으로 간것이죠. 그럼 이 비극적인 날에 왜 룡주시합을 벌리게 되였을가요? 그것은 배를 타고 서로 앞다투어 굴원을 구하러 간다는 의미이지요. 대잎찰밥쌈을 강물에 뿌리는것은 교룡이 그걸 먹고 굴원의 몸을 뜯지 말아달라는 뜻이예요. 그것이 풍속으로 된것이죠.

중국사람들만 굴원을 기념하는것이 아니라 세계각국에서도 이 세계적인 문학거장을 존중하고 애대하는것이예요. 1953년, 굴원서거 2230주년을 기념하면서 당시 세계평화리사회는 전세계인민들에게 굴원을 기념하라고 호소했지요. 그해 세계 4대문화명인이 기념받게 되였던거죠. 그들로는 중국의 애국시인 굴원, 폴란드의 천문학가 코페르니쿠스, 프랑스의 문학가 라블래, 꾸바시인이며 민족운동가인 호쎄 마르띠였지요. 그래서 굴원은 중국사람만 숭모해온것이 아니라 세계각국인민들도 숭경해왔지요. 

    굴원은 전국시기의 후기 사람이였어요. 그 시기는 제, 초, 연, 한, 조, 위, 진 등 7국이 패권을 다툴 때였어요. 그중 어느 한나라가 전국을 통일해도 력사조류에 부합되고 진보적일수 있었죠. 그렇다면 굴원이 자기네 초나라를 열애한것을 애국주의라고 할수 있는가요? 

  굴원은 초나라의 귀족이였어요. 귀족으로서 그는 개혁의 리상을 견지하였죠. 개혁은 그가 속한 귀족집단의 리익을 건드리게 되는것이였지만 그는 시종 개혁을 주장하면서 낡은 귀족집단과 견결히 투쟁해왔는데 그의 그런 원동력이 어디에서 왔을가요?   굴원은 고향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였는데 이는 당시 일반 사대부들의 이 나라인가 저 나라인가 눈치를 보던 풍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시기에는 충신들이 없었어요. 지식인들이 이 나라인가 저 나라인가 하며 기웃거린것이 아주 정상적이였던거였죠. 허지만 굴원은 조국을 사랑했고 인민을 사랑했고 고향을 사랑했는데 왜 당시의 사회풍기와는 달랐을가요? 

  오늘날 우리가 굴원을 학습하는 현실적의의는 무엇일가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상술한 문제에 대해 분석하면서 탐구해보려고 해요.  세개부분으로 나누어 진술하겠어요.
 

                 굴원의 생애

           

  시인이였던 그의 인생자체가 바로 한수의 비장한 시였어요. 굴원은 초회왕(楚怀王)과 초나라의 경양왕(顷襄王)시기에 생활한 사람이죠. 전국후기였어요. 초회왕은 기원전 328년부터 299년이였고 경양왕은 기원전 298년부터 263년이였어요. 

  그 시기가 바로 부흥했던 초나라가 쇄락해가는 전환시기였어요. 굴원의 경력이 나라의 흥망성쇄와 이어진것이였어요. 그당시의 대환경은 《합종》(合纵),《련횡》(连横)이였고 투쟁이 복잡하고 치렬한 시기였어요. 그러한 력사배경하에 7국이 패권을 다투었죠. 그중 쟁탈이 치렬했던 세나라가 바로 진나라, 초나라와 제나라였어요. 

   7국패권다툼이 집중적으로 이 세나라에서 표현되였었지요. 이 세나라는 각기 자기의 특점과 우세를 가지고있었어요. 진나라는 당시 군사력이 가장 강대했고 개혁도 철저히 했었죠. 노예제의 낡은 체계를 철저히 부정했던거예요. 하여 봉건정권, 봉건제도의 확립에 비교적 좋은 토대를 닦아놓은 셈이였죠. 

  주지하다싶이 춘추전국시기는 노예제로부터 봉건제로 과도하는 전변시기였어요. 헌데 초나라의 전변이 철저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낡은 귀족세습제를 유지하고있었어요. 그렇지만 초나라는 또한 지역이 넓고 물산이 풍부한 특점이 있었어요. 남방땅은 대부분 초나라구역이였지요. 

  제나라도 바다와 린접한 자기의 우세가 있었어요. 연해지구라 비교적 부유했지요. 염업과 어업이 흥성했어요. 이러한 력사배경에 처한 초나라에서 굴원이 생활했던거예요.
  그럼 굴원의 생애부터 소개해드리지요. 우선 전기적색채를 띤 그의 《명》(名),《자》(字)와 《생신》(生辰)부터 소개해드리겠어요. 

  리경일: 굴원은 자기일생에 《명》,《자》와 《생신》이 있기에 더 자호감을 느꼈어요. 그는 그것을 선차적인 타고남이라며 《내적미》로 여겼지요. 그는 《리소》(离骚)에다 이렇게 썼어요. 《분오기유차내미혜, 우중지이수능》(纷吾既有此内美兮,又重之以修能。)자기에게 분연히 내적미가 있는데다 후천적인 수양을 닦으며 자기에 대한 요구를 높였다는 말이예요. 굴원은 반복적으로 자기의 내적미를 강조하였는바 그걸로 자신의 사회책임감과 시대사명감을 증강시켰던것이죠. 

   이름은 부모거나 부모의 친척친구들이 지어주는것이죠.  아이가 태여나기전에 이름을 지어놓는 부모도 있구요. 이름에는 금방 태여난 아기에 대한 사람들의 희망이 깃들어있는거예요. 좋은 이름은 그 사람의 평생에 대한 길상이 되여 고무격려가 되여주는거죠. 그 이름에 미안하지 않도록 노력하게끔 해주는거죠. 평생 원동력으로도 될수도 있어요.
  이름을 놓고 세가지를 말했는데 첫째는 희망을 기탁한것이고 둘째는 개인진보의 원동력으로 되는것이고 셋째는 사회평가인거예요. 

  굴원의 성은 원래 굴씨가 아니였어요. 그의 선조―굴하(屈瑕)는 초무왕(楚武王)―웅통(熊通)의 아들이였지요. 캐고보면 굴원의 성은 응당 웅씨여야 했어요. 헌데 그의 선조 굴하가 초무왕 웅통에 의해 굴(屈)이란 지방으로 책봉되여간거지요. 굴은 지명이였어요. 그의 성(姓)은 원래 웅이고 씨(氏)가 굴이인거였죠. 고대에서는 성과 씨가 구별되였댔어요. 큰 가족내에서 공유한 성이 있었고 그 아래 피줄을 따라 뻗어진 줄기를 씨라고 했었죠. 그 씨는 그 줄기의 어느 한 사람이 책봉된 관직이나 혹은 책봉되여가는 곳의 지명을 따서 달기도 했던거예요. 

  후에 와서 성과 씨를 갈라보지 않게 되여 《웅》자를 버리고 《굴》자만 쓰게 된거예요. 원래 굴원의 성은 《굴》이고 이름은 《평》(平)이였으며 자가 《원》(原)이였지요. 자는 그 사람의 별호인것이죠. 

  리경일: 《자》와 《명》은 서로 보충되는것이였어요. 자호가 어떤 때는 이름을 해석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죠. 례를 들면 제갈량인데 《량》(亮)이 이름이고 자가 《공명》(孔明)였지요. 《량》도 밝다는 의미이고 《공명》도 밝다는 뜻이죠. 이렇게 이름과 자호는 서로 보충해주고 련관되는것이였죠.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대부분 이름만 있고 자가 없어요. 옛날에는 직접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호를 불러 대방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던거예요. 

  굴원의 이름은 《평》이고 자가 《원》인데 그는 《리소》에다 이에 대한 예술적설법도 가했었죠. 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황람규여우초도혜, 조석여이가명》(皇览揆余于初度兮,肇锡余以嘉名)이라 그 이름은 《명여왈정칙혜, 자여왈령균》(名余曰正则兮, 字余曰灵均),나의 이름은 정칙, 나의 자는 령균이니라. 자, 그럼 우리 굴원의 이름을 고증해봅시다. 굴원의 이름이 《평》인데 평이란 무슨 뜻이죠? 《평》은 《평정》(平正)이란 뜻이죠. 공평, 정직, 단정, 공정이란 말이죠. 세상에서 제일 공평하고 정직한것이 《천》(天)이란 하늘이죠. 례를 들면 몹시 억울했거나 원한을 품었거나 리해되지 않았을 때는 늘 《하늘이여!》(天啊!)하고 부르죠. 때문에 평이란 평정의 뜻이죠. 가장 평정한것이 하늘이지요.

정칙은 《리소》를 통한 자기이름에 대한 예술적설법이지요. 굴원의 이름 《평》은 하늘의 상징이지요. 굴원의 자는 《원》인데 무슨 뜻일가요? 《원》은 광평광대(广平博大)하다는 뜻이죠. 세상의 만사만물중에 제일 광평하고 광대한것이 대지(大地)이지요. 대지는 광평광대한것이고 또한 아주 공정한것이지요. 그는 자기의 젖, 자기의 영양을 사심없이 공평하게 매 생령(生灵)마다에 부여해주는것이죠. 때문에 우린 늘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하죠. 어머니는 제일 대공무사해요. 자기의 젖과 일체를 매 자식들에게 다 바치는거죠. 그래서 어머니가 제일 위대한거죠. 

  어머니가 자기의것을 사심없이 모든 생령에게 주기 때문에 생물의 공정한 조절자도 어머니같은 대지인거죠. 하여 그는 령균(灵均)이라 하였어요. 령균 역시 대지의 뜻이죠. 개혁개방초기에 《말몰이군》(牧马人)이란 영화가 있었죠. 영화의 줄거리는 한 지식인 박해당하고 타격받아도 시종 조국을 떠나지 않고 자기의 뜻을 지킨것이죠. 그 주인공의 성은 허가이고 이름은 령균이였죠. 작자가 이런 이름을 달아준것은 주인공에게 굴원같은 품성이 있다고 여긴거죠. 굴원의 이름은 하늘을 상징하고 자는 대지를 상징한거죠. 실제상 굴원은 하늘과 땅을 자기가 본받을 대상으로 삼고 사회의 공정협조를 추구한거죠. 

  이번엔 굴원의 생신을 봅시다. 그는 《리소》에다 이렇게 썼어요. 《섭제정우맹추혜,유경인오이강》(摄提贞于猛陬兮,惟庚寅吾以降),강(降)이 바로 그의 생이예요. 이 시구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서로 다른데 여기서 렬거하지는 않겠어요. 여러 학자들이 공인하는 설법에 따르면 이 두구절에다 굴원이 초선왕(楚先王) 30년, 즉 기원전 340년 정월달 초이레날에 출생했음을 밝힌거죠. 기원전 340년은 인년(寅年)이고 정월도 인달(寅月)이며 초이레날 역시 인일(寅日)이였어요. 면바로 인년, 인달, 인일였지요. 

  옛사람들의 뜻에 따르면 인년, 인달, 인일에 태여나면 인생의 가장 큰 길조라고 여겼어요. 그 세월의 시작이고 그 인생의 시작이라는거죠. 만약 오늘날의 변증법적관점으로 본다면 너무 좋은거예요. 너무 좋기에 잘못될수가 있는거죠. 후에 굴원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였어요. 생신팔자는 좋았지만 물극필반(物极必反)이 된거죠. 그야말로 굴원은 이름으로 하늘을 얻고 자로 땅을 얻고 생신으로 팔자를 얻은 셈이지요. 천(天), 지(地), 인(人)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것인데 굴원에게 다 겸비된 셈이지요. 이것이 굴원의 생신이예요.

굴원의 고향은 바로 호북 자귀이지요. 호북사람들은 이에 자호감을 느껴야죠. 호북의 현인인데요. 청년시절에 굴원은 정치적으로 잘 나갔어요. 청춘득지(青春得志)였지요. 그건 초회왕 11년전후, 즉 기원전 318년쯤인데 그때 굴원은 스물서너쯤 되였지요. 그 시기를 청춘득지시기라죠. 

  젊었을 때 굴원은 재질이 뛰여났어요. 지식이 연박하고 기억력이 좋았죠. 정치에 정통하고 말주변이 좋았어요. 젊고 재질이 있는데다가 왕실궁족출신이였죠. 그는 초왕과 한집안이였어요. 당시 초나라에는 초왕 웅씨를 제외하고 초왕과 혈연적관계가 있는 3대귀족이 있었어요. 

  리경일: 굴가네, 경(景)가네, 소(昭)가네, 이렇게 세개 집안이 초나라 3대귀족을 이루었지요. 굴원이 초나라귀족출신인데다가 젊고 재질이 뛰여났기에 초왕은 그를 좌도(左徒)로 봉했어요. 좌도란 직무는 초나라에서 령윤(令尹)다음으로 가는 급이였어요. 령윤이란 재상이예요. 전국시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재상이라 불렀지만 남방에 있는 초나라는 문화가 좀 달랐기에 령윤이라고 부른거예요. 그럼 좌도의 직책은 무엇이였을가요? 좌도이면 국왕과 함께 국사를 의론하고 헌령, 법안, 방안같은것을 반포하지요. 대외로는 각국제후들을 대처했고 오는 손님들을 접대했었다는거죠. 굴원은 젊어서 초나라의 내정개혁과 외교사업에 참여한거죠. 당시 그의 주장은 대내로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법제를 실시하며 인재등용하고 대외로는 제나라와 손잡고 진나라를 쳐서 전국을 통일시키자는것이였죠. 

  후에 굴원은 큰 좌절과 타격을 당하게 되죠. 초왕과 간극이 생겼지요. 그건 기원전 313년으로부터 기원전 311년지간이였는데 그가 30살쯤 되였을 때였어요. 굴원이 초왕의 신임을 받은 기간은 약 6―7년정도였어요. 서른살에 이르러 초왕과 멀어졌던거예요.
  초왕이 왜 그와 멀어졌을가요? 그건 당시 초나라내정과 외교상에 있었던 두가지 일과 련관된거죠. 한가지 일은 내정에서 벌어진거죠. 초회왕이 굴원을 믿고 그한테 초나라의 내정개혁을 틀어쥐고 초나라진흥을 위해 개혁헌령을 작성하라고 하였지요. 《사기》에다는 이렇게 썼어요. 《굴평촉초고미정, 상관대부견이욕탈지, 굴평불여. 인참지왈: 왕사굴평위령, 종막불지.매일령출, 평벌기공, 왈이위〈비아막능위〉야. 왕노이수굴평.》 (屈平属草稿未定,上官大夫见而欲夺之,屈平不与。因谗之曰: 王使屈平为令,众莫不知,每一令出,平伐其功,曰以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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