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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과 굴원의 인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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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0-11-15 12:38| 조회 :4,29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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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절과 굴원의 인격-2




       굴원의 품격


그럼 아래에 시간상관계로 간단하게 굴원의 품격에 대해 소개하겠어요. 앞에서 이미 굴원의 인격에 대해 초보적으로 료해했지요. 굴원은 민족의 위인이고 력사거인인거죠. 굴원의 품격에 대해 세가지 방면으로 말하겠어요.

첫째, 굴원은 리상주의자였어요. 비록 귀족출신이였지만 자기의 리익에 만족하지 않고 개혁의 리상을 내세웠지요. 그는 미정(美政)을 추구하고 내정을 개혁하며 법제를 실시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진흥시키고 나아가서 전중국을 통일시키려고 하였어요. 이건 진보적인 리상이지요.

굴원은 자기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미정에 언급했어요. 례를 들면 《봉선공이 조하혜, 명법도지혐의》(奉先功以照下兮,明法度之嫌疑)라 했지요. 주지하다싶이 귀족집단은 세습제이지 법제로 나라를 다스리는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굴원은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나라가 부강해지자면 법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리고 인재를 등용해야지 출신을 보고 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어요. 비록 그 자신도 귀족출신이였기에 좌도가 되였지만 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를 골라 써야지 출신을 보고 써서는 안되는데 이러자면 법적 기준이 있어야 하고 기울지 말아야 한다고 인정했지요. 그는 이걸 실현하는 길이 아무리 멀어도 모든 노력을 다하여 탐색하겠다고 했어요. 확실히 그는 그 리상을 위해 일체를 바쳐왔지요. 이 점만 봐도 굴원은 리상주의자인거지요. 오늘날 우리도 굴원처럼 자기의 리상을 세워야 해요. 큰 리상도 있고 구체 사업상의 추구도 있어야지요.

두번째는 굴원의 그 인격, 진취심이 강한 인격인데 주요하게 두가지 면에서 표현되였어요. 첫째는 과감하게 암흑을 폭로하는 비판적정신이예요. 그는 귀족출신이기에 귀족집단에 대한 료해가 더 투철할수 있었지요. 그는 그 집단 인간들이 탐욕하기 그지없고 앞다투어 재산을 긁어모으느라 만족할줄 모른다고 폭로하고 서로 파벌을 무어 사리만 채우고 자기들의 쾌락만 추구하느라 나라를 우매하고 위험한 경지에 밀어넣는다고 지적했었지요. 그는 초나라가 흑백이 전도되고 상하가 전도된 나라로 전락되면서 충신이 중용못되고 유능한 현인들이 등용못된다며 한탄했어요. 이로보아 굴원의 첫 인격특점은 과감히 폭로하고 과감히 비판하는거죠. 둘째는 죽어도 후회없는 신념을 가지고있는거예요. 당시 초나라귀족집단세력이 막강했기에 그들고 맞서자면 대가를 치러야 했고 지어 생명까지 바쳐야 했어요. 굴원의 대가가 무엇인가요? 20년간 추방이였고 자기의 생명이였지요. 다음은 굴원이 호매로운 기백이지요. 《세상이 혼탁하여 나 굴원을 리해해줄 사람도 없고 속심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는 처지에 빠졌지만 오직 내 굴원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면 계속 추구할 것이고 아홉번 죽더라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지어다.》

《나의 몸을 찢어놓아도 나의 리상은 포기하지 않을것이다.》굴원은 절대 본성을 고쳐 저속한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하였지요. 이것이 굴원이 품격상의 두번째 면인 인격이고 또 인격은 두가지로 설명하였는데 하나는 비판적정신이고 하나는 죽어도 후회없는 신념이지요. 감옥도 죽음도 추방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위해 싸우는 그런 정신이였지요.

굴원의 품격특점의 세번째는 그의 사상모순이지요. 그도 일찍 자기의 조국을 떠날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댔어요. 그 시기에는 조진모초(朝秦暮楚)가 일종 풍기였으므로 조소할 사람도 없었지요. 굴원의 말대로 마음이 다르고 뜻이 다를 바에는 떠나버리고 말자는 것이였지요. 하여 굴원도 자기가 조국을 떠나는 장면을 아주 랑만적으로 상상해보았어요. 《나는 하늘가의 구름노을을 찢어 내 기치로 삼고 봉황이 모는 수레에 앉아 하늘로 올라가노라. 가는 길에 불조산에 들려 서해가에 나가 보았노라. 초나라를 떠날 때에는 일천대 수레가 나를 동반하여 호호탕탕하게 하늘로 올라갔노라. 여덟마리 룡이 수레를 끌었고 하늘가의 구름노을이 나의 기치로 되여 주었노라. 마침내 해탈되게 되였으니 난 절주를 통제하고 심정을 안정시키고 대천세계를 아득히 내려다보았노라. 황천으로 거의 올라갈 무렵에 오색이 찬란해지더니 발밑에 고향이 있는 초나라가 나타났거늘 수행인들이 울고 말이 울부짖어서 더 올라갈수가 없었노라. 저걸 버리고 내가 어떻게 떠나노? 절대 떠날수 없노라.》

이것이 굴원의 진실한 토로였고 고향에 대한 그의 사랑이였지요. 저는 한 사람의 애국주의사상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고향을 사랑하는데로부터 형성된다고 봐요. 고향에 대한 감정마저도 없는 사람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진정이 있을수 있겠어요?  대학교의 한 학생이 저한테 이런 물음을 제기한적이 있었어요. 만약 외국류학에서 자연과학지식을 배운다음 돌아오지 않고 조건이 좋은 그곳에 남아 발명창조한다면 역시 전 인류에 대한 공헌으로 되기에 응당한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과학에는 국계가 없어요. 저는 이렇게 답복해주었지요. 학생이 국외에서 무얼 발명창조했다면 그건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조국도 전 인류의 한부분이예요. 하물며 조국은 학생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양성시켜준 곳이지요. 먼저 수요되는 곳이 그 곳이예요. 학생이 돌아오지 않아도 그릇된 일이 아니고 질책할 사람도 없어요. 허나 만약 돌아와서 조국과 고향을 위해 공헌한다면 그건 고상한거죠. 이런 생각 역시 굴원으로부터 계발받은것이죠.

당시 굴원이 초나라를 떠났다 해도 잘못된 일이 아닌거죠. 그당시 풍기가 그랬잖아요. 헌데 굴원은 떠나지 않고 초나라에 남았어요. 그래서 고상한거죠. 굴원은 고향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고향의 운명에 대해 더 관심했던거죠. 그는 고향에 대한 사랑을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켰고 조국을 위해 자기의 일체를 바쳐온것이였어요. 어떤 동학들은 굴원이 그렇게 초왕께 충성했는데 그걸 조국에 대한 충성이라 할수 있겠는가, 초회왕도 그를 믿어주질 않았고 경양왕도 그를 믿어주질 않았는데도 그는 언젠가는 왕이 불러주리리라고 믿어왔지 않았는가요, 이처럼 우매한 충성심을 애국심이라 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적이 있어요.

저는 그걸 애국심이라고 인정해요. 고대시기에는 모두 국왕을 나라의 상징으로 여겼댔어요. 우리가 오늘의 관념으로 그당시의 국가와 국왕을 갈라보면 안되는거죠. 전국시기에는 국왕을 나라의 상징으로 국가의 대표로 보았지요. 그는 조국에 대한 충성을 초나라와 초왕에 대한 충성으로 표현시켰지요. 그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어요.《기여신지탄앙혜, 공황여지패적》(岂余身之惮殃兮,恐皇舆之败绩) 즉 나는 내 개인의 리익을 근심하지 않는다, 다만 페하의 수레가 번져질가봐 무섭다 라고 한거지요. 페하의 수레란 국가라는 수레인데 그것이 망할가봐 무섭다는 말이죠. 때문에 굴원의 애국심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는 국가와 국왕에 대한 충성인데 역시 조국에 대한 충성인거죠.

또 어떤 사람들은 굴원이 초나라를 사랑했는데 초나라는 전국시기 일곱개 나라중의 한개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종 협애한 애국주의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제기했어요. 저는 굴원의 애국심을 협애한 애국주의라고 보지 않아요. 굴원이 초나라를 사랑하고 초나라가 부강해지기를 희망한것이 결코 초나라가 남방일대를 독차지하고 제후할거상태를 유지할것을 기대한것이 아니라 초나라의 진흥을 통해 전국을 통일시키려는것이였어요. 또한 굴원이 초나라를 사랑한 애국심에는 중화민족이 들어있고 중화란 대국가개념이 들어있는거예요. 왜 이렇게 말할수 있는가? 굴원은 자기가 초나라의 사람이라고 자호감을 느꼈고 특히는 삼황오제 (三皇五帝)의 후대라는데서 더욱 자호감을 느꼈지요. 삼황오제는 중화민족이 공동으로 모시고 받든 임금이였어요. 굴원은 자기가 삼황오제의 후대이지 남방미개인은 아니며 남방할거를 유지하겠다고 한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굴원의 희망은 초나라의 진흥을 통해 중화대지를 진흥시키려는거였지요. 이것이 제가 말하려는 두번째 큰 문제인 굴원의 품격문제였지요. 굴원의 품격에는 세가지 방면, 첫째는 리상에 대한 추구이고  둘째는 진취심이 강한 인격, 셋째는 애국주의 정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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