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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전통명절문화유산과 국가휴가제도개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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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3-24 10:01| 조회 :5,1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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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전통명절문화유산과  국가휴가제도개혁(상)



                                                         황도



 중국인민대학 문학원 교수, 휴가개혁과제팀 전문가이며 석사생도사임. 하북대학 문학학사, 중국인민대학 문학석사, 북경사범대학 박사학위를 취득. 중국민속학회 부비서장, 중국민속언어학회 부비서장, 북경사범대학 민속전적문자연구쎈터 연구일군을 겸직. 저서로는 《언어민속과 중국문화》, 《민간언어지》 등이 있음.


저는 인민대학에서 20년도 넘게 교원으로 일해왔습니다.최근 몇년은 명절문제연구에 골몰해왔는데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민속학입니다.최근 몇년 저는 중국민속학회에서 휴가개혁이란 과제연구에 참여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이 몇년은 명절쪽으로 저의 관심이 많이 쏠렸는데 오늘 요청을 받고 여러분들께 그동안의 연구정황과 일부 감수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8개 문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휴가제도개혁의 배경입니다.

휴가제도개혁의 배경

 법정휴가가운데서 전통명절은 음력설뿐이다.저는 민속학회에서 두차례의 과제연구에 참가했습니다. 민속학회에서는 중앙정신문명판공실과 문화부의 위탁을 받고 전통명절의 기원, 진화 및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전통명절을잘 쇨것인가, 법정휴가제도를 어떻게 조절할것인가하는 과제연구를 하게 되였는데 전 이 두 연구에다 참가하여 줄곧 이 문제를 연구해왔습니다.

휴가제도개혁의 배경을 보면 우선 우리의 법정휴가제도체계에서 음력설만전통명절이고 다른 휴가일은 다 전통명절이 아닙니다. 전통명절에는 허다한 풍속행사가 있지만 그런 행사를 할 시간이 없는것이 문제입니다.작년 추석에 민속학자인 저는 문회보에 두편의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는 월병에 관한 글이고 하나는 추석명절을 되살릴데 관한 글이였습니다. 하지만 보통인으로서는 그저 학교에 가서아이가 하학하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처가집으로 추석을 쇠러 갔습니다. 안해는 직장에서 직접 갔지요. 그리고 처가집에서 한끼를 먹고 이튿날 애가 학교로 가야 했기에 저녁 9시쯤 총망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는 집에 온 뒤 또 숙제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추석날에 바쁜 시간을 내여 겨우 한끼를 먹었는데 그것마저 처가집으로 갈 때 애한테 군빵을 사준것이 화였는지 애가 며칠을 앓으며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바람에 란리가 났었지요. 이렇게 저는 추석을 아주 바삐 보내야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것은 시간이 없으면 전통명절의 풍속행사를 할수 없다는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그러다보면 점차 이런 명절이 의미를 잃어가게되지요.

명절을 쇠려고 해도 시간이 없으면 점차 무관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시간만 충분하다면 흥성하게 쇨수 있지요. 그래서 휴가가 관건문제로 나선것입니다. 이와 달리 5.1절이나 국경절 같은 다른 명절은 어떻습니까?이런 명절에 사람들은 주로 관광이나 하고 피곤하여 집에서 푹 쉬지 않으면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친구들을 만나는게 고작입니다. 특정된 민속행사나 내가 이명절에 꼭 해야 할 일이 따로 없는거지요.이것은 매우 대조적인 차이를 나타냅니다.

전통명절은 허다한 민속행사를 해야 하지만 시간을 낼수 없고 어떤 명절은 시간은 있는데 상응한 문화행사가 없는겁니다. 5.1절은 국제로동절입니다. 이 5.1절이 어떻게 기원되였습니까? 5.1절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솔직히 저도 이 문제는 똑똑히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자료를 찾아봐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민속과 관련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연구범위에 들지 않고 전통명절에 들지 않기때문입니다. 이전에 이에 관한 자료를 조금 찾아보긴 했지만 다 잊어졌습니다.

10.1 국경절은 우리들에게 뜻깊은 날입니다. 그런데 국경절에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천안문에 가서 국기게양식을 보고 국가를 듣는 행사도 아주 적은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가려 하면 교통이 붐벼서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다고 집에서 국가를 듣는 사람도 적습니다. 폭죽도 터치지 않고 꽃불도 터치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지방정부가 꽃불놀이를 하는것도 있지만 백성들이 꼭 해야 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휴가일을 5.1절과 국경절에 집중시켰으니 모순되지 않겠습니까.

1년에 열흘의 법정휴가일이 있는데 그중 5.1절과 국경절을 각기 사흘씩 정하고 음력설을 사흘, 양력설을 하루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세개의 황금주가 아홉날을 점하고 양력설이 하루를 점한것이 되지요. 우리의 많은 명절은 휴가가 없습니다.

두번째로 큰 명절인 추석에도 사람들은 쉴수 없는거지요. 휴가가 없으니까 추석을 바삐 지낼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집이 외지에 있다보니 추석에 처가집에서 총망히 한끼를 먹고말았는데일반적으로 중대한 명절은 자기집에서 쇠야하지 않습니까. 우리 종교문화로 말할 때 남권문화에서는 남자집에서 쇠야 합니다. 며느리는 시부모집에서 쇠야 하지요.그런데 저는 거꾸로 처가집에서 쇠였으니 이것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우리의 허다한 전통풍속행사가 변하고있습니다.

음력설은 사흘간의 법정휴가에 주말휴식 이틀을 합쳐 황금주가 됩니다. 음력설을 굉장히 쇨수 있는것은 휴가일과 관계됩니다. 음력설에도 휴가를 주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굉장히 쇨수 없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휴가를 주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민속학내부에도 쟁론이 있는데 우리는 국가차원에서 휴가제도를 실시하는것이 좋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선배님들은 이에 반대의견을 내놓고있습니다. 휴가를 주고 안 주고는 나라에서 관계할 일이 아니며 또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므로 개별적으로 휴가를 주면 그뿐이라는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게다가 지방마다 풍속이 다르고 소수민족의명절도 각기 다르므로 통일적으로 휴가를 줄필요까지는 없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휴가를 주는것이 그래도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시간이 있어야 어떤 행사를 할지 토론하고 나중에 다시 장소를 정하고 행사를 벌릴수있기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음력설도 그냥 휴가가 있었던것은 아닙니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한때 휴가제도가 취소되였었습니다. 1967년 1월 30일,국무원에서 통지를 발포하여 혁명화한 설을 쇠자고 호소하는 바람에 휴가제도가 취소되였지요. 그때 저는 농촌에서 살았는데 정월 초하루에도 농민들은 그냥 밭에 나가 일을 한걸로 기억됩니다. 말이 일이지 겨울에 무슨 할 일이 있었겠습니까?지금은 겨울이면 할 일이 없어 많은 농민들이 집에서 마작을 놀거나 장기나 두고있지요.물론 일부 농민들은 농민공일을 찾아 밖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문화대혁명때는 할 일이 없지만 형식적으로 설날에도 밭에 나가 일하게 하고는 공을 매겼습니다. 그때는 한공에 몇전씩 했을것입니다. 그러다 1979년에 《인민일보》에왜 설날에도 농민들이 편히 설을 쇠지 못하게 하는가 하는 독자의 편지 두통이 발표된 뒤에야 부분적 성에서 설날에 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설날에 폭죽을 터치지 못하게 하고 세배하러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의 고향 하북성 농촌은 명절풍속이 잘 보존되였다고 하는 곳인데도 한때는 사원대회를 열고 세배하러 다니지 말라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세배풍속을 완전히 금지시킬수는 없었지요. 저의 고향집에서는 지금도 설날에 세배를 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설날에 고향집으로 갈 때면 또 세배하러 다녀야 겠구나 하는 심리부담이 조금 있는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새배하러 다니자면 번거롭고 귀찮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배행사를 치르고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세배행사에 잘 참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평소에 다니지 않던 고향 친척집과 이웃집을 한집한집 돌아다니느라면 집집의 변화를 알게 되고 평소에 볼수 없었던 얼굴들도 볼수 있어 너무 좋은겁니다. 그리고 세배행사는 날이 희붐히 밝을무렵에 무리를 지어 다니며 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석해도 되고 선자리에서 허리만 굽석해도 됩니다. 그래서 세배를 할 때면 저는 항상 맨뒤에서 대충 머리를 숙이는 정도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했으며 나올 때는 제일 마지막에 나오면서 평소에 보지 못한만큼 몇마디라도 더 인사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향집 하북성경현일대의 세배풍속입니다. 이젠 이런 풍속이 남아있는 지방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가지 전통명절이 매우 많습니다.따지고보면 한국의 전통명절은 중국에서 건너간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명절을 자기네들의 전통명절로 간주하고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음력설, 추석, 단오절을 아주 굉장히 쇠는데 추석 사흘 련휴가일에는 전국적인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제가 한국에 1년 가까이 있으면서 추석을 지내봐 알지만 한국에서는 추석을 설처럼 굉징히 지냅니다. 추석을 쇠는 사흘동안은 고향 가는 교통이 막히고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집에서 추석을 쇠기때문이지요.

음력설도 사흘휴가제로 굉장히 쇱니다.단오절은 무형문화재종목에 등록신청까지 해놓고 아주 그럴듯하게 쇠는데 이때문에 우리 중국과도 마찰이 있었지요. 이밖에도 한국에는 불교명절, 기독교명절과 정치성명절, 기념일같은 명절이 많은데 이런 명절에는 비교적 방대하고 번잡한 행사를 벌립니다.이런 명절을 살펴보면 서방에서 건너간것도 있고 중국에서 건너간것도 있으며 그들 자체의 전통명절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특색 있는 전통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은 우리보다 민족자존심이 강하고 애국심도 더 강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한국은 나라가 작기때문에 매우 민감하고 세계적인 순위가 낮습니다. 때문에 백성들은 나라를 매우 사랑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땅이 크고 자원이 풍부한 대신 응집력이 좀 떨어지지요. 한국은 땅이 작지만 자존심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고부르는겁니다.

일본도 작은 나라지만 대일본이라고부르지 않습니까. 작기때문에 세계적지위를 확립하려고 큰것을 강조하고 자기의것을 강조하는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1년 있으면서 저는 한국이란 나라를 아주 좋아하게 되였습니다. 한국문화의 특색은 무엇일가요? 한국민속박물관을 돌아봤지만 저는 한국문화의특색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국의 민속박물관은 크지만 우리 나라 민속박물관은 아주 작다는것을 발견했을뿐입니다.중국은 력사박물관은 큰데 민속박물관은 아주 작아 민속박물관이 있는 고장을 알려주어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북경민속박물관은 동악묘에 있는데 공간이 아주 작고 전람할것도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력사박물관보다 민속박물관이 퍽 더크고 표를 사고 들어가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맞은쪽의 력사박물관은 아주 작고 찾아가는 사람도 별로 없지요.이것은 우리와 관념이 같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들은 민속발물관이 자기 나라의 문화특색을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력사는 문자로 기재된것이 짧아 우리 나라 명조이전에 해당되는 시기의 력사는 문자기록이없습니다.

30년대 우리 나라 상해가 세계적으로 썩 번화한 고장은 아니였지만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번화한 고장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 많은 한국사람들이 중국으로 건너왔지요. 30~40년대만 해도 한국은 매우 황량하고 락후한 나라였으며 상해는 한국사람들에게 유혹력이 대단한 고장이였습니다.그런데 몇십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경제가 우리를 앞섰습니다. 쾌속적인 발전을 가져온거지요.하지만 문화의 뿌리는 깊지 못합니다.자체의 력사기록이 짧기에 민족문화를 강조하고 민족문화에 각별한중시를 돌리는거지요.

한국민속박물관에 가보니 설에 세배를 드린다든가 팽이치기를 하고 연날리기를 한다든가 하는 허다한 민속놀이행사가 우리 중국과 같았습니다.결혼, 상례 례식도 기본상 중국의 이전의 풍속대로였고 어떤것은 고대의것을 그대로 보존하고있었습니다.

굳이 한국의 문화특색을 꼽자면 제가 보기엔 김치밖에 없습니다.김치는 한국의 특색이라 할수 있지요.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상세한 화면으로 소개되고있었는데 그것이 특색문화인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복장입니다. 우리 나라 조선족복장이 그들과 같지요. 저는 한국문화에 대해 깊은 연구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들만의 특색문화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치가 그들의 문화특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우리 나라에서도 김치를 아주 잘하고있었습니다. 사천김치가 맛있지 않습니까?어떤 지방의 김치는 한국의 김치보다 별로 못하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통문화에 대해 매우 중시를 돌립니다. 자기의것이라고 말하고있고 또 전통풍속대로 명절행사를 벌리고있는데 문화란 워낙 전파되는것이여서 우리가 롱단할수는 없습니다. 전통명절이 중국의것이라 해서 롱단하고 남들이 쇠게 못하는것은 옳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쇠고있으니 자기의것이라 생각할수 있고 또 그래서 분쟁이 생겼던것입니다. 무형문화재등록신청을 두고 분쟁이 생겼지요.결국 한국에서는 등록신청에 성공하였는데 이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우세한 지위에 놓이게 됩니다.

무형문화재를 보호한다는것은 현대사회에서 이런 문화종목을 보존하기 힘든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자금을 대여 이런 문화를 널리 알리고 견학단을 조직하여 견학시키며 나아가 이런 지방에 의탁하여 계승하게 하는것을 말합니다. 한국은 등록신청에 성공하여 국제적으로 중시를 받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한국에만 단오절행사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우리식대로 단오행사를 벌리고있습니다. 그러나 필경 우선은 한국에서 신청해갔지요.

이런 신청은 한개 나라에서 하면 다른 나라는할수 없거나 몇개 나라가 함께 신청할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왜 한국에서는 등록신청에 성공하였는데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는가 하는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땅도 크고 사람도 많은데 우리 나라가 성공하지 못하고 한국이 성공한것은 어딘가 공정하지 못하지 않은가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의 강릉단오제는 확실히 규모가 큰 종합성 명절행사입니다. 저의 동료가 한국에 갔을 때 강릉단오제에 참가하여 많은 사진을 찍어온것을 봤는데 정말 굉장했습니다.

강릉단오는 시기적으로 여름철이 다가올 무렵인데 많은 풍속은 여름맞이와 관계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강변이 시원하고 쑥이랑 창포 등은 습하고 시원한 강변에서 잘 자라지요. 그래서 단오행사도 강변에서 하는데 단오절에 제를 지내는 신들도 다 물과 련관됩니다. 굴원은 물에 투신하였고 오자서도 죽은 뒤 물에 버려졌으며 효녀 조아도 물에 투신하였습니다. 이 점은 중국과 마찬가지이지만 중국보다 굉장히 크게 행사를 벌립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제를 지냅니다. 중국의 굴원에게 제를 지내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민족영웅에게 제를 지냅니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조직으로 무역활동, 연기, 체육경기가 벌어지고 국제견학단의 참여로 들끓는 분위기가 형성되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 단오절은 어느 한곳도 강릉과 어깨를 겨룰만한 지방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룡선시합이 흥성한 대형행사로 되였는데 이런 종합성 단오행사를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수 없습니다.단오절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색바래지고있지요. 북방 이를테면 하북성에 있는 저의 고향집마을에서는5월 5일이 단오절이란것만 알뿐 그 어떤 풍속활동도 하지 않고 중즈도 먹지 않습니다.

북방의 농촌에서는 밀가루음식을 주식으로 하기에 입쌀이 적어 저의 고향집에는 중즈를 먹는 풍속도 없고 큰 물줄기가 없어 룡선시합도 하지 않습니다. 단오절의미가 많이 색바래져갔지요.

단오절등록신청에서 한국이 성공하고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모범으로 내세울 지방이 없고 전형적인 표본으로 삼을 지방이 없기때문입니다.단오절이 우리의 명절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것이 등록신청의 실패와 관계가 크다고 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법정휴가일에서 전통명절에 속하는것은 음력설뿐입니다. 그것도 섣달그믐날은 휴가일이 아니지요. 휴식하지 않는 이것이 첫번째 문제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20세기이래 전통문화에 닥친 위기와 도전입니다. 청조말년에 서방이 우리 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갑자기 우리 나라가 서방보다 많이 떨어졌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당조때만 해도 우리는 세계에서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백성이 법을 말하다"는 프로에 참가한적 있는데 그때 중국사람들이 서양을 숭배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었습니다.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중국사람들에게 전형적인 서양숭배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는데 나중에 보니 방송국에서 이 부분을 몽땅 삭제해버렸더군요. 부정적인것은 다 삭제해버렸던것입니다. 하지만 서양숭배가 깊이 뿌리내리고있다는것은 모두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서방이 우리보다 강하고 우리가 서방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서양을 숭배하는거지요.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면에서 서양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할뿐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낫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례를 들어 농촌에서 얼굴이 잘 생긴 애가 있으면 외국티가 나서 이쁘다고들 말합니다. 정말 외국티가 나서 이쁠가요? 제가 이전에 살았던 서삼기의 울안에는 아프리카주의 흑인과 결혼한 녀자가 있었는데 그가 낳은 딸은 피부가 새까매서 곱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외국티가 난다고 하는것은 바로 서양티가 난다는 말이지요.

서양사람들이 고와보이는것은 키가 크고 오관의 륜곽이 똑똑하며 피부가 하얗고 머리칼이 금황색이기때문일것입니다.그렇다면 미학적으로도 곱게만 보일가요?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력사적으로 서양인을 빨간 털귀신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양귀신이요, 빨간 털귀신이요 하고 불렀었지요. 눈은 파랗고 피부는 하야며 키가 우리처럼 맺히지 못하고 껑충한것이 얼핏 보면 귀신같다고 하여 빨간 털귀신이라고 부른겁니다.

이전에는 서양인이 귀신처럼 괴상하게 보이고 밉게 보였는데 왜 지금은 곱게 보일가요? 그들이 경제와 과학기술 면에서 우리보다 앞섰기때문에 이런 심미관념의 변화가 생긴것입니다. 그래서 미학관념에도 변화가 생기고 문화관념에도 변화가 생겼지요.만약 경제가 뒤떨어지면 모든것이 다뒤떨어졌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시체를 따르느라 도시를 따라잡으려하고 도시에서는 외국이나 향향, 대만을 따라잡으려 하는데 그건 이런 나라와 지구의 경제가 발달되였기때문입니다. 그리고 향항, 대만에서는 또 서방을 따라배우고있지요.

우리도 직접 서방을 따라배웠는데 그것은 서방의 경제와 과학기술이 우리보다 선진적이기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조때만 해도 세계가 우리를 따라배웠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좋다고 했고 우리의 명절을 시체적인 흐름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한국, 일본, 윁남, 싱가포르에서 왜 중국의 명절을 쇠겠습니까? 방금 한국의 정황을 말씀드렸는데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도 당조시기에 우리의 명절이전해져갔습니다. 당조시기에 전해져간 명절은 바로 추석입니다. 그렇다면 당조에는 왜 보름명절이 없을가요? 어떤 명절은 뒤에 생겨난것인데 처음에는 흥성하지 않았습니다. 당조에 보름명절이 없었다는데 대해서는 더 상세한 연구를 해봐야 하겠지요.그리고 청명절은 한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었습니다. 청명절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우리 나라에 그런 명절이 있었으나 청명절로 불리지 않았을따름이지요. 윁남의 명절은 더구나 우리 나라와 비슷합니다. 여기에 윁남민속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보면 음력설을 쇠는것도 우리와 비슷하고 추석을 쇠는것도 비슷합니다. 물론 차이가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다 우리 나라에서 전해져간것입니다.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모두 우리의 명절을 쇱니다. 한자도 다른 나라에 건너갔는데 아큐정신 같아보이지만 확실히 옛날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휘황했었습니다. 당조시기만 해도 우리는 세계의 큰형님벌이 되였지요. 우리의 문화도 큰형님벌이 되여 류행을 이끌었습니다. 문화는 상대적이고 문화의 선진성과 락후성도 상대적입니다. 경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곧 선진적이라할수 있지만 문화는 선진성과 락후성을 단정짓기어렵습니다.

일부 소수민족을 례로 들면 그들은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우리보다 뒤떨어졌지만 그들의 풍속은 매우 아름다우며 마음이 순결하고 많은 의미있는 습속을 지니고있어 문화면에서는 우리 이곳보다도 발전했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경은 우리 나라 수도로서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이지요.그래서 전국에서 모두 북경을 우러러보고있는데 그렇다고 북경의 공중문명이 꼭 다른 지방보다 낫다고 할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뻐스에 오를 때 질서없이 밀고닥치며 부주의로 조금만 부딪쳐도 욕부터 하는 현상을 자주 볼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산서 어느 자그마한 도시에 회의하러 갔을 때입니다. 그때 기차역부근에서 뻐스를 타게 되였는데 사람들이 질서있게 줄을 서서 기다렸고 뻐스에 오를 때도 조금도 밀치지 않았습니다. 기차역 부근인데도 공중질서는 북경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제가 이 실례를 드는것은 우리가 사는 곳이 경제가 발전하고 공중시설이 좋다고 해서 공중질서까지 좋은것은 아니라는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북경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매우 복잡한 곳입니다. 북경사람들의 문화자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원체 류동인구가 많다보니 사회치안환경이 썩 훌륭하다고 할수 없는것은 사실입니다.문화발전이 사회경제 및 현대화 발전과 발을 맞출수 없는것도 이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문화는 경제와는 따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경제가 뒤떨어지면 문화도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렬등감을 갖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실례를 하나 더 든다면 제가 한국 서울녀자대학에 있을 때 그들에게 결혼대상으로 어떤 사람을 찾겠는가고 물은적 있습니다. 한국녀자들은 착하고 현숙하며 남자들은 가족을 먹여살릴 돈을 버느라고 매우 고생한다고 중국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돈은 남자가 벌어들이고 집안일은 녀자가 맡아합니다. 한국남자들은 어려서는 어머니가 옷을 사주고 결혼해서는 안해가 사주는 옷을 입지 보통 자기절로 옷을 사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할일이 없을 때 백화점을 잘 돌아다녔는데 제가 옷을 고르자 남자가 옷을 사는것이 신기했던지 영업원들이 저를 보고 웃지 않겠습니까? 저는 남새도 잘 사들고 다녔는데 그러는 저를 보고 학생들도 대학교수가 절로 남새를 사는가고 놀림조로 말하군 했습니다. 평소 북경에 있을 때는 제가 남새를 사도 다들 습관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는 틀을 차리고 녀자는 아주 고생하는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녀자들은 치장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한국에는 사실 중국남자와 결혼하고싶어하는 녀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지요. 중국남자들은 집안일도 잘하고 성품도 좋아서모두 중국남자를 찾기 좋아합니다.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보다 락후해도 중국남편을 찾으려합니다. 북경사범대학에 온 일부 한국류학생들이 일본녀성과 결혼하고 일본녀성과 한국녀성들은 또 중국남자와 결혼한 실례가 한둘이 아닙니다. 우리가 락후하다 하여 그들이 우리를 업신여기는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방사람과 결혼하고싶지 않냐고 한국학생들에게 물었을 때는 "결혼하고싶지 않습니다." 하고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중국녀성들은 유럽남자와 결혼하면 키도 크고 멋지게 생겼다고 은근히 자랑하지만 한국녀성들은 우리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서양사람과 결혼하면 태여난 애의 피부가 황인종 같지 않고 오관도 황인종 같지 않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것입니다.

이렇게 관념상 우리와 같지 않았습니다.한국녀성들이 서양사람을 곱지 않게 보는것은 민족혈통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어째도 인종이 뒤섞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거지요. 그렇다고 중국사람이 그들과 똑같게 생긴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생겨 심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중국백성과 한국백성이 서양티가 나는 아이에 대한 심미관념이 이렇게 다른 원인은 경제적으로 우리가 한국보다 뒤떨어졌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경제가 발달하여 서방발달나라와 거의 차이가 없고 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아시아 네개 룡가운데서도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민족자존심과 문화지존이 상당히 강해졌지요. 이것이 우리와의 차이점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20세기에 들어와 위기에 직면한것은 바로 우리의 경제가 락후하고 과학기술이 락후해지자 스스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의심하기 시작한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4선구자들은 이런 전통문화를 모두 버리고 례의범절도 모두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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