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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도가와 태양신, 주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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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변도서관| 작성일 :11-05-25 14:51| 조회 :3,9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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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도가와 태양신, 주신(7)


진염  (산동대학 교수 )




    훌륭한 예술작품은 사람들에게 뭔가 음미할  맛을 남겨야 하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록이요 브레이크댄스요 하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다 욕망을 방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과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십년전에 최건이 우리 제남에 와서 음악회를 연적이 있는데 그때  표 한장의 값이 몇백원이였습니다.  당시로 말하면 비쌌지요. 그래서 누군가 표값이 왜 이리 비싼가고 주최측에 물었더니 명가수에게 출연비를  지불하고 또 걸상도 사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음악회를 열면 명가수가 무대우에서 노래할 때 무대아래의 관중들이 흥분되여  관람석에서 구르는통에 걸상이  얼마나 많이 망가지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게 어디 음악입니까? 이건 완전히 체육활동입니다. 이러고 보면 이것도 디오니소스의  영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가 CD를 가져오긴 했는데  여기에 음향설비가 없어서 방영할수 없습니다.  방금전에 돌려봤는데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CD를 보면 이 활동 자체가 속에 쌓인 뭔가를 푸는 현대판 디오니소스집회라는것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생활의 압력을 느낀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속에 쌓인것을  털어내야만 심리균형을 잡을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음악회는 예술가치에 대해 론할것이 못됩니다.  이를 두고 마르쿠제는 서거하기전의  한차례 담화에서 현대의 서방예술이 이미 지력의 자기방종으로 변했다고 격분에 넘쳐 지적했습니다.  예술적가치가 별로 없이 욕망을 표출하고 감각기관을 희롱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방은 비록 두개 급은 발달했지만 예술과 공예는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두개 급 말하자면  과학과 체육은 발달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공예와 예술은 특별히 발달했습니다.  처음에 중국과 서방의 민족심리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씀드렸지만 심리구조를 보면  서방은 두개 급이 제일 발달했습니다.  감성의 급은 주신정신이고 리성의 급은  태양신정신입니다. 서방의 민족사회구조도 두개 급이  발달했는데 감성의 급으로 체육이 특별히 발달했고 리성의 급으로 과학이  특별히 발달했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의 민족심리구조는 두개 급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감성에 치우친것은 도가이고 리성에 치우친것은 유가입니다.  이와 련관되여 우리의 민족문화구조도 똑같은 관계를 이룹니다.  감성에 치우친 예술이 특별히 발달하고 리성에 치우친 공예가 특별히 발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감성과 리성 이 두개 극에 있는  과학과 체육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예술발달은 유가와 도가의  상호보완과 관계됩니다.  유가는 충효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례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책이여서  자연히 문장을 나라를 다스리는 큰 업으로, 썩지 않는 성한 일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도가는 사물의 움직임에 마음을 싣는 그런 자유자재의 정신이여서 더구나 사람들로 하여금 심미의 태도로  전부의 생활을 대하게 합니다.  이런 감성과 리성의 조화적인 통일로 하여 중국인들은 순수한 감성욕망의 발로에 빠져들거나 또는 순수한 리성사변의  잘못에 빠져드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이는 진정에서 발하여 례의에 맞게 그치는  정치수요로부터 출발한것도 있겠지만  중국인의 정신상태가 쉽사리 감성과 리성을  빈틈없이 밀접히 융합시키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문화입니다.


 서방인들은 감성과 리성이 철저히  분렬된 대신 이 량자를 결부시키기는 어려워합니다.  때문에 서방인들의 예술은 리성에 치우쳐 예술을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과 도구로  삼지 않으면 감성에 치우쳐 예술을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수단과 도구로 삼습니다. 중국인은 이와 상반대이지요. 우리의 감성과 리성이 시종 철저히 분렬되지 않아  우리는 예술에서 특별히 자유롭습니다.  중국예술에 대한 저의 인식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어릴적에는 여러분들도 그랬겠지만 서방인들에게서 예술관념을 배웠습니다. 례를 들면 회화공부에서 소묘부터 배웠는데  밝음과 어둠, 빛과 그림자를 강조하고 먼저 대상의 진실성을 표현할것을  강조했으며 그 진실성을 우리의  추구목표로 삼았습니다.  단순히 이 각도에서 보면 서방예술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루브르궁의 조각상을 보십시오. 그토록 큰 대리석에 새겼는데도 그 근육감과 탄성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조각상은 정확도와 핍진감이 떨어져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저의 이런 관념이 차츰 변하기 시작한것은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서안으로 실습을 갔을 때  한당의 예술을 본 다음부터입니다. 서안모릉부근에서 우리는 한조의 장군 곽거병의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곽거병은 한조의 대장입니다.  당시 흉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공로로 한무제가 죽을 때 그를 배릉으로 삼습니다. 왕의 릉묘옆에 배릉을 만들게 하는것은 신하에게 크나큰 영예입니다. 그 릉의 위치를 보니 릉앞에  두개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그 조각상이 마치 도화처럼 생겼던것입니다.  커다란 바위의 모양새를 보고  모양이 소처럼 생겼으면 몇번 깎음질을 하여 소를 조각하고 모양이 범처럼  생겼으면 또 몇번 깎음질을 하여 범을 조각했습니다.  조각인물의 특징과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만 표현하고 다른 세부적인 부분은 전혀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그 무덤앞의 조각상앞에서 우리는  커다란 진동을 받았습니다.  중국 고대인들의 예술관이 무엇인지 저는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조의 조각석상을 보노라니 왜 소매를 이런 모양으로 그렸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만약 실생활에서 소매가 이렇게 길다면 걷다가 소매에 걸려 넘어져 교통이  막히겠지만 예술은 생활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의 감성과 리성의 조화로 정감의  표현에 이르는 그런 여유로움을 추구합니다.  하여 이런 조각상의 우점을 우리는 지금에야 발견하게 된것입니다.  서방에서는 인상파후기에야 비로소  이런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중국인은 2천여년전에 벌써 이런 예술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개괄하여 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은 생활에 대한 모방과 인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술은 류사함을 추구하지 않고  류사함과 비류사함 사이에서 주관과 객관의 어떤 관계를 표현하고 사물과 상상대상간의 장력을 표현합니다. 중국은 고대에 벌써 이 점을 인식했기에 화도에서 수묵이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인고 하면 대천세계는 오색령롱한 세계인데 오색으로 오색세계를 그리는것은 재간이 아니므로 흑백으로 오색을  그리는거야말로 참된 재간이라는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양이 비슷한 핍진함을  추구하지 않고 정신적인것, 지어는 생생한  기운을 추구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술작품은 장식성, 상상성이 크며 우리의 예술은 형상을  만들어내는 예술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방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방의 원림은 모두 기하상태로 되여있어 기계적이고 딱딱하고 주어맞춘감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상천외한 산천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융합된 소박한 정원에 와보면 어느 민족이 진정 예술을  아는 민족인지 알게 됩니다.  서방의 예술은 죄다 모식이지만 우리의 원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림마다 서로가 다릅니다. 모두 당지의 자연형태에 근거하여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그리고 완전히 천성적으로  이루어진 동시에 또 우리의 사상과 우리의  감정이 그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있습니다. 이러고 보면 우리 중국의 예술도 자체의  우점이 있는것입니다.


  예술만 이런것이 아니라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의 발자끄는 일찍 프랑스혁명은 한부의 력사이고 자기는 서기라고 말했습니다.  발자끄는 매우 겸손한 태도로 프랑스혁명을 력사라고 일컬으면서  자신은 서기관으로서 프랑스혁명의 력사를  충실하게 기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문학가인 발자끄가 력사의 서기관노릇을 한셈이 되였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와 상반대입니다.       로신은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 천고의 절창이요 운이 없는 리소라고 평가했습니다.  사마천의《사기》는 한부의 력사사서이지만 그 문학가치는 《리소》에 못지 않으며 《리소》처럼 시적감정이 넘쳐있습니다. 하여 저는 발자끄의 《인간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볼수 있지만 저더러 두번 보라고 하면 그건 저에게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한번이 아니라 두번, 열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비록 력사책이긴 해도 그 문학가치는 발자끄의  《인간희극》보다 훨씬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사마천의 《사기》를 보셨을겁니다. 특히 본기의 부분, 세가의 부분은 너무나도 훌륭하게 썼습니다.  진나라 양성에 진승이란 사람이 있었고  양하에 오강이란 사람이 있었다, 진승이 젊었을 적에 어떤 집에서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같은 처지의 친구에게
"장래 부귀한 몸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않도록 하자." 라고 말하자,  "우리같이 밭이나 가는 농사군 주제에  어떻게 부귀하게 될수 있겠는가?" 라고 대답했다,  이에 진승은 탄식하여  "제비나 참새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큰뜻을 알리요." 라고 말했다. 《사기》에 나오는 이 몇마디 말은 고생과 깊은 원한속에서 신세를 고쳐  해방되기를 갈망하는 한 농민형상을 표현하였습니다. 사마천이 진승을 본적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진승이 그날 밭을 갈 때 록음기가 있었겠습니끼? 없습니다.  그러니 진승이 이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마천은 력사학자로서 자기의 예술적상상을 통하여 이런 영웅을 부각할수 있었던것입니다. 


많은 예술상상은 또 감정적인 요소가  가공되여있습니다. 때문에 사마천이 쓴 인물을 보면 몇글자가  아닌데도 인물의 령혼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인물의 성격, 기질과 신분이 죄다  드러나는데 진승은 농민영웅형상입니다.  그리고 항우를 묘사한 대목을 보십시오. 항우가 숙부 항량과 함께 길을 가다가 진왕의 행차대렬과 마주칩니다. 길을 비키라, 임금님의 행차이시다 하는 소리를 듣고 다른 백성들은  제꺽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항우는 숙부 항량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말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뭐라고 말했는지 압니까? 그 자리에 내가 앉아봐도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지요. 그러자 항량이 황급히 그의 입을 막으며  목이 떨어지고싶어 그런 소리를 하는가고 꾸짖습니다.  물론 이 한마디 말은 항우란 이 용사의  강직하고 두려움 모르는 정신을 표현한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항우의 입에서만 나올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 이런 말을 할수가 없습니다.  례를 들어 려불위가 이런 말을 할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려불위도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대상인 려불위는 많은 장사를 하는데 나중에는 장사를 하다못해 국군장사를 할 생각까지 합니다.  려불위가 진왕을 처음 만난것은 진왕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자초가 아직 진왕이 되기전인데 진나라로 말하면 가장 운이 나쁠 때였지요. 그런데 려불위는 자초를 보자마자  그가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알아보고 이 진귀한 재물은 사둘만하다고 말합니다.  이건 상인들이 하는 말이지요. 이렇게 려불위는 사람을 상품으로 보았는데 마치 주식이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그것을 사두었다가 포장하여 다시 시장에 내놓는것과 같다고나 할가요? 아무튼 이렇게 려불위는 자초와 친구사이로 되고 나중에는 자초를 사서 진왕으로 되게 하여 국군을 사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주식매매에 성공한 셈이지요. 사마천은 이렇게 인물을 부각할 때  시적의미를 부여하여 때로는 우리 스스로 그 인물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리사란 인물을 봅시다.  리사는 등장할 때 두마리의 쥐가 변소에서 똥을 먹는것을 보게 됩니다 더럽고 구린내나는 똥을 먹던 쥐가 사람을 보자 겁을 먹고 제꺽 몸을 피합니다. 후에 그는 또 량식창고에 가서도  두마리의 쥐를 보게 되는데  살이 피둥피둥한 쥐는 그를 보고도 전혀 겁내는 티가 없습니다. 이때 리사가 혼자말로 중얼거리지요. 다같은 쥐로 생겨나 왜 저 쥐형제는 저토록 비참하게 살고 이 쥐형제는 이렇게 잘 지내는고? 이에 대해 사마천은 해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마천이 말하고저 하는 뜻을  우리는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사마천은 리사란 이 사람을 아주 하찮게 봅니다.  리사가 비록 나중에 승상이란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지만 그는 필경  평생의 노력으로 변소에 있던 쥐가  량식창고의 쥐로 변하듯 그의 인격은  여전히 밑바닥이고 그는 여전히 쥐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사마천은 말해주고있습니다. 이런 도리를 구태여 해석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사마천의 필묵에서 이런  생활의 감수를 느낄수 있습니다. 말로는 이런 도리를 해석할수가 없기에 우리는 한번 또 한번 거듭하여  읽어보는 가운데서 스스로 체득해야 합니다.  훌륭한 예술이란 미학가들이 제좋은 생각으로 떠들어대는 해석을 듣지 않고도 우리 스스로 거듭하여 읽어보고싶은 그런 작품입니다. 어느것이 일류이고 어느것이 이류이며  어느것이 삼류라고 구태여 해석할것도 없습니다.  이런 해석은 우리 독자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중국의 예술은 범예술이여서 무엇이나 모두 예술화하였습니다.


 우리 중국은 체육이 안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체육에서도 예술특징을 띠거나 예술성분이 있는 체조, 물에 뛰여들기, 피겨스케트 같은것은 성적이 괜찮습니다. 이런것은 죄다 예술성을 띠는 종목인데 이런 종목에서는 중국인들이 성적을 내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문화 배경에 감성과 리성이 결부된 훌륭한 그 부분이 침투되여있기때문입니다. 이런것들은 모두 우리의 특기종목입니다. 중국과 서방문화를 비교할수 있습니다. 방금전에 한 선생이 무술에 대해 제기했는데 중국의 무술과 서방의 권투를 비교할수 있습니다.  권투는 아주 간단합니다. 힘과 스피드를 리용하여 정확하게, 힘있게 상대방을 넘어뜨릴 때까지 경기가 진행됩니다. 겨루는것이 힘과 스피드입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하지만 중국의 무술은 다릅니다.  무술은 정확하게, 힘있게 때려야 할뿐아니라 아름답게 때려야 합니다.  아름답게 때린다는건 미학개념에서 하는 말입니다. 보기 좋은 자세로 팔다리를 놀려  매혹적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것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똑같이 때리는 동작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이 같지 않고 감상하는 성분이  같지 않으며 미학가치가 같지 않습니다. 때문에 감상각도에서 보면 권투는 미술에  미치지 못하고 방출가치에서 보면 무술은 또  권투처럼 사람들의 감성생명력의 활발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 모든것은 문화의 차이일뿐 어느것이 좋고나쁘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인의 감성과 리성의 결부가 가장  잘된 부분은 태권도입니다.  태권도는 골격과 육체의 운동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정신, 기운, 기품, 심신이 전일체를 이룬  그런 운동입니다.  때문에 태권도는 중국인의 문화를  가장 잘 구현합니다.  서방인들은 절대 이 운동을 할수가 없습니다.  커다란 운동장에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중에 서방인이 한두 사람 끼여있다면 첫눈에 알아볼수 있습니다.  그들의 동작이 둔해보이고  같은 동작을 해도 기품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의 문화에 이런것이 없기때문입니다.   마치 우리의 문화에 축구가 없는것과 같지요. 중국인들이 축구를 하는것을 보면 마음이 초조해납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선수들의 정신부담이 너무 큽니다.  머리에 온통 나라에 충성하고 보답하려는 생각뿐이니 공을 잘 찰수 없지요. 축구운동이란 본디 감성생명력이  왕성하게 살아나는 기회인데 이토록 많은  정신부담을 갖고야 어찌 공을 잘 찰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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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교의 기원-도교의 명절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도교의 명절 이번엔 우리의 생활과 밀접히 련관되는 도교의 일부 명절에 대해 알아봅시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도교의 명절로 일화삼청이 있습니다. 원시천존, 령보천존, 도덕천존을 일컬어 삼청도조성탄이라 하지요.다시말하면 삼청도조성탄이란 원시천존, 령보천존, 도덕천존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개 명절은 어느때일가요?원시천존의 생일을 알려면 동지, 하지를 알아야 합니다. 동지가 바로 원시천존의 생일이니까요.동지는 원시천존의 생일인데 옥청절이라고 부릅니다.동지날은 사실 도…(2010-12-20 16:38:21)
중국도교의 기원-도교의 두개 파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도교의 두개 파 도교는 두개 파로 나뉩니다.하나는 정일파이고 다른 하나는 전진파지요.정일파와 전진파는 나타난 력시시기가 다른데 정일파는 동한시기에 나타났습니다.정일파의 창시인은 장도릉입니다. 민간에서는 습관적으로 장천사라고 부르지요. 장도릉이 창립한 도교를 정일도라고 합니다. 그에게는 장형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정일도는 장자계승제를 하는것이 특점입니다.마치 황제가 죽으면 큰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듯 말입니다. 장도릉의 아들 장형은 력사책에 기재된것도 많…(2010-12-20 16:35:42)
중국도교의 기원-도가와 도교의 비슷한 점과 부동한 점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도가와 도교의 비슷한 점과 부동한 점 도교는 이 도를 인격화된 신으로 진화시켰습니다. 그래서 도교에는 1화 3청이란 설법이 있는데 도에서 진화되여나온 3청존신은 무엇을 말할가요?바로 원시천존, 령보천존, 도덕천존입니다. 1화 3청은 도가와 도교의 두번째 비슷한 점입니다.첫번째 비슷한 점은 숭배하는 대상과 경전이고 두번째 비슷한 점은 숭배하는 도덕관념입니다. 그렇다면 세번째로 비슷한 점은 무엇일가요?도가와 도교는 모두 신,(神)지(地), 귀(鬼)의 존재를 승인합니다. 도가거나 도교거…(2010-12-20 16:30:59)
중국도교의 기원 - 도의 이름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 - 도의 이름 그렇다면 부를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불변의 이름이 아니라는것은 무슨 뜻일가요?여기서 말하는 이름은 도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명실상부한 이름을 말하지요.도의 이름은 도에 대해 말하는것인데 도의 내용을 말로 나타낼수 없다면 도의 형식도 말로 나타낼수 없다는것입니다. 도의 이름을 말로 나타낼수 있다면 그건 불변의 도가 아니지요.그래서 부를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불변의 이름이 아니라고 하는겁니다. 《도덕경》에서 이름이 없는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2010-12-20 16:28:58)
중국도교의 기원-"도"의 특성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도"의 특성 그렇다면 "도"를 어떻게 리해해야 할가요?《도덕경》을 뜻풀이하여 "도"를 해석한다면 아래와 같은 특성이 있지 않을가고 생각합니다. 첫째 특성은 "도"는 초형상성을 띤다는것입니다. "도"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초형상성을 띱니다.초형상성 다시말하면 신비성을 띠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이 점에 대해 《도덕경》에서는 세개 글자로 도의 초형상성을 개괄했습니다.그 세개 글자를 보면 하나는 "이(夷)", 오랑캐라는 이이고 다른 하나는 "희(希)",희망이라는…(2010-12-20 16:26:39)
중국도교의 기원-도교와 도가 인기글 중국도교의 기원-도교와 도가 사로군 1993년 북경대학철학석사학위를 수여받고 1996년 중국인민대학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음. 현재 중앙민족대학 철학과 종교학학부 교수. 중국종교의 교수와 연구사업에 몰두하는데 주요저작으로는 《정토사상을 잘 이끌데 관한 론평》, 《중국도교의 기원》, 《도교개론》 등이 있음.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에는 유교, 불교, 도교 3대 주류학파가 있다고 말합…(2010-12-20 16: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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